<죽음의 격차> 고인의 마지막 정리하는 특수청소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유품정리사

[기사 전문]

저는 사고 현장에서 마지막 이사를 하고 있는 유품정리사 김새별입니다.

특수청소부라는 게 조금 딱딱한 느낌이고 심적으로 안 좋더라고요.

가까운 일본이나 외국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유품정리사'의 의미가, 일반적인 유품 정리는 가족분들이 직접 하시거든요. 그리고 나머지는 폐기물 업체를 통해서 집 안에 있는 유품을 폐기하게끔 하는데 저는 돌아가신 자리를 특수청소를 하고 그런 다음에 유품 정리를 시작하죠.

좀 포괄적이죠. 업무의 범위가 넓은 것 같아요.
 

장례지도사에서 왜 유품정리사가 되었는지?


어떻게 보면 도전이었고요. 유품 정리나 이런 특수청소를 하는 사람이 국내에는 없었어요. 제가 1호예요. 1세대.

장례지도사로 근무할 때 병원마다 좀 다르기는 한데 '사고사 전문 장례식장'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장례지도사가 직접 구급차를 몰고 현장에 출동해요. 그래서 고인을 모시고 와요.

한 번은 장례를 치르시고 가셨던 따님분이 있으셨어요. 아버님 장례를 치르셨는데 그 현장에 제가 직접 가서 모시고 왔거든요. 근데 집에 술병이 엄청 많아요. 술을 많이 드시는 분들 특징이 각혈을 해요. 그분들은 각혈을 자주 하다 보니까 화장실로 안 가요.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드니까.

그래서 이런 양동이나 큰 세숫대야 같은 걸로 계속 피를 받아 놔요. 근데 각혈하시다가 어느 정도 받아 놨던 피를 엎으면서 쓰러져 돌아가신 거예요. 근데 그렇게 장례를 치르시고 집에 돌아가셨던 따님이 다시 오셔서 집에 못 들어가겠대요. 집 정리를 하려 그랬더니 도저히 못 하겠더래요.

그래서 저희한테 시신의 경험이 있는 장례지도사가 좀 도움을 주시면 어떠냐고 해서 도움을 드렸는데, 동사무소에서 스티커 발급받아서 장롱이나 이런 거에 붙여서 바깥으로 내놓으니까 종량제 봉투와 큰 물건들을 그렇게 내놨더니, 동네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이렇게 내놓으면 사람이 어떻게 지나가냐?"고. "우리가 이게 어디서 나온 쓰레기인지 몰라서 그렇게 얘기하냐. 재수 없게 어떻게 지나가냐. 귀신이라도 붙으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그날 있었던 그런 기억들이나 그런 감정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블로그에다가 일기처럼 작성했어요.

이글을 보고 다른 유가족분이 연락을 주신 거예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아버지께서 모시고 사셨대요. 그랬는데 병간호에 지친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아사로 돌아가신 거예요.


이런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데 찾을 수가 없었대요. 이사 청소하는 업체에 연락했더니 그 사람들이 와서 "어떻게 이런 집을 우리한테 청소하라 그러냐. 재수 없이... 세상에 어떻게 이런 걸 하냐?" 그러면서 다 가 버렸대요.

그래서 그날 또 이렇게 한번 도움을 드리고 나서 '아, 이게 누군가는 좀 해야 될 텐데, 이런 직업이 있어야 될 텐데...' 그러면서 이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유품정리사를.
 

연락을 받으면 그다음 절차는?

상황마다 좀 달라요. 어떤 집은 그다음 날 바로 현장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공동 주택 같은 경우는 바로 작업이 안 돼요.

일단 현장에 도착하면 저희가 바이러스 소독을 먼저 해요. 그다음에 묵념을 하고 돌아가신 자리부터 청소하죠. 다음에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구분하죠. 그러면서 가족분들에게 전달해야 할 유품을 또 선정을 하고요.
 

죽음의 격차에 대해...

제가 질문지에 보니까 '죽음에 격차가 있냐'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참 신선했습니다.

물론 죽음에는 격차가 있죠. 제가 다니는 죽음의 현장은 격차가 굉장히 낮은 곳이죠. 돌아가신 고인분의 재산이 넉넉하게 있었다면 그렇게 고독사로 돌아가실 일이 전혀 없죠.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들이 가서 할 일이 없거든요.

관련해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 본인 세입자분이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청소 좀 해야 하겠다'라고 연락이 와서 "유족이 나타날 텐데 왜 청소를 하세요?" 그랬더니 이런 일이 있고 지금 3일이 지났는데 유족이 안 나타난대요. 시신은 거의 한 달 만에 발견되셨어요.

날씨가 장마철이었고, 습하고 그러다 보니까 장마철에는 유난히 세균들이 많아서 시신이 마르는 게 아니고 현장이 거의 물바다에 가까울 정도로 흐물흐물하게 돼 있어요. 쓰레받기 같은 걸로 퍼내야 할 정도로, 그 정도이다 보니까 냄새가 너무 심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 정도면 얼른 청소해야 되겠다'해서 부지런히 청소하고 있는데, 하필 그때 유가족들이 들이닥친 거예요.

돌아가신 분이 당시 쉰여섯 살 정도 되신 남성분이었는데 한 25년 동안 연락이 끊긴 누나들, 형제들이 오셨어요. 그래서 "우리 동생이 아파트도 2채가 있고, 원래 젊었을 때부터 현금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근데 이분들이 저희에게 "그걸 놔둬야지, 왜 그걸 치우냐?"고 하더라고요. "누구 맘대로 치우냐?"고. 그러면서 논에 모 심을 때 허벅지까지 오는 노란 장화가 있어요. 그 장화를 신고, 노란 고무장갑을 하고 와서 그러더라고요. 


"누군데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고인의 누나래요. 그래서 찾아보시라고. "잠깐만요. 제가 소독 한 번 더 하고, 마무리만 하고 들어와서 찾으세요" 그랬더니 안 된대요. 그러면서 청소하고 있는데 막 들어와서 찾아요. 어떻게 찾냐 하면 도둑들이나 세관 직원들이 집 안을 뒤질 때, 깨끗하게 찾는 게 아니고 바닥에 쏟아 가면서 물건들을 들추고 그러잖아요. 그런 식으로 찾더라고요.

그런데 본인들이 원하는 걸 못 찾았어요. "그게 버려진 거 아니냐. 우리 동생이 이불이랑 베개는 어디 있냐?" 그래서 "비닐에 묶어서 차에 실어 놨습니다" 그러니까 칼로 비닐을 찢으면서 뒤지더라고요. 결국은 못 찾았어요. 그래서 '이거를 못 찾았는데 버려진 거다' 하니까 "아유, 언니 그런 얘기하지 마. 저 사람들이 찾았으면 찾았다고 얘기를 하겠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액자가 벽에 걸려 있길래 그것을 드렸더니 "아우, 냄새나는데" 그래서 버리래요. "이거 그냥 버리냐. 사진만이라도 빼서 태워 드리지..." 그렇게 잔소리를 했더니 귀찮았는지 "막내야, 네가 가서 좀 꺼내 와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꺼내 드릴게요" 하고 액자 뒤를 벌려서 나무 뚜껑을 열었더니 스티로폼을 파 가지고 집문서 두 개 하고 현금 500만 원이 들었더라고요. 그걸 찾더니 얼른 가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아니 그렇게 사람을 의심하고, 세상 그런 법이 어디 있냐. 사과라도 하고 가야지" 그랬는데도 그냥 얼른 가시더라고요.

대체로 좋은 기억은 없어요. 많이 슬퍼하시는 분들도 못 봤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한참 만에 발견되고 그러시죠. 사실 자제분들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시면 부모님을 돌아볼 여유가 없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러잖아요. "아버지는 신경 쓰지 말고 너희나 잘 살아. 난 혼자 몸인데 내가 뭘 못 하겠냐. 걱정하지 마" 뭐 이럴 수도 있고, 여러 사정이 있겠죠. 그러니까 많이 슬퍼하시는 경우는 그렇게 못 봤어요.
 


현장을 통계내 본 적은 있나.

통계를 따로 정확하게 내 보진 않았어요. 근데 제가 통계를 낸다고 해서 그게 맞는 통계가 아니잖아요. 전체적인 통계라고 하긴 그렇지만 제가 느낄 때 40~50대 중장년층의 고독사가 한 70% 정도 되고, 그 중에는 남성이 80%죠. 비율이 8:2 정도입니다. 그리고 20%가 자살한 청년들, 청년들은 30대 중반까지. 나머지 약 10%가 노인 고독사죠.
 

무연고자 시신은 있는지?

무연고자는 거의 없어요. 한 0.001% 정도 될 거예요. 무연고자를 만드는 거죠.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거예요.

굉장히 많죠. 장례지도사 때도 많이 보고요. '고독사, 사회적 문제, 이웃 간의 단절, 가족 간의 단절' 이런 얘기를 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사람들을 신경 쓰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사실 혼자 사시는 분들이 외부와 단절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스스로 벽을 만들고 다가오지 못하게, 얼굴 한번 보고 인사를 나누려고 해도 너무 차갑고 무서우니까 사람들이 못 다가가는 거죠.

"아니 동생 분이 혼자 이렇게 사시는데, 지금까지 연락도 안 하시고... 몇 년 동안 이렇게 연락을 안 하셨어요?" 하니까 13년 됐대요. 오죽했으면 연락을 안 하고 살았겠냐고... 연락 안 하고 사는 나는 마음이 편했겠냐고. 우리 동생이 도저히 형제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난리도 아니라고, 명절날 얘 때문에 집안 다 뒤집히고 제사상까지 엎어버리고 가버린 놈이라고. 맨날 술만 먹으면 아주 상태가 안 좋다고.

"다 큰 놈이 이제 말로 뭐가 안 되는데..." 우리가 대화가 안 되면 싸움이 일어나는 거예요. 나중에 지친 사람들은 싸움도 하기도 싫고, "야, 저리 가. 너랑 싸우기도 싫어"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거든요. 고인 스스로의 문제점이 많아요.

사실 산 사람을 탓하기도 그래요. 그나마 대상을 찾는 게 산 사람이지. 근데 그 사람들은 노력 안 했겠어요? 형제고, 내 자식이고 우리 부모님이고 그런데...
 

본인에게 죽음이란?

좀 어려운 질문이죠. 저한테 죽음은 슬픈 헤어짐인 것 같아요. 근데 누구나 죽음을 염두하고 사는 사람들은 없어요. 내일 돌아가실 분도 오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건강할 때 죽음을 항상 준비하는 것 같아요.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고...' 그러는 게 아니고. 저는 항상 현장에 다녀보고 그러면 가족들 간에도 단절이 참 문제더라고요.

그래서 최고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슬퍼해 주고 "그래, 좋은 사람이었어. 좋은 아버지였어"라는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것. 가족들 앞에서 죽을 수 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그런 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같이 여행도 많이 가고, 좋은 추억들 정말 많이 쌓으려고 노력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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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