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의 훈민정음 해례본’ 직지 미스터리 추적

눈에 보이는 27년 미제사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재의 가치는 이어받은 자의 의지에 비례한다. 그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그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문화재의 생명력과 직결된다. 우리는 조상이 남긴 눈부신 문화와 그 집약체를 잘 지켜가고 있는가. 650여년 전 인쇄된 한 권의 고서적이 그 대답을 대신하는 듯하다. 바로 직지(直指)다. 

1377년, 1455년, 1972년, 1995년, 2001년 그리고 2022년. 정식 서명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고서적으로 ‘직지심체요절’ ‘직지’ 등의 약칭으로 불린다.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찍어낸 <성서>보다 78년 앞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880년대 후반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랑 드 플랑시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 직지가 포함돼 프랑스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는 상·하 2권으로 구성돼있는데 이 중 하권 1권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시돼있다.

19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책 박람회에서 그 실물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2001년 9월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직지 맨 마지막장에 적힌 ‘선광칠년정사칠월일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는 간행 시기와 장소, 방법을 명시한 문구다. 흥덕사 터가 위치한 충북 청주시(청주목)는 이른바 ‘직지의 도시’로 매년 9월이 되면 다양한 직지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직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단순히 오래됐을 뿐(最古) 문화사적 가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는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그 이상의 문화재라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직지 목판본이 보물 1132호로 지정된 점으로 미루어 금속활자본이 발견되면 ‘국보급’ 문화재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직지 원본은 없다. 다만 그 가능성이 제기된 일종의 ‘제보’가 1995년에 있었다.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의 시작이다. 일부 전문가는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서적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금속활자 자체가 목판과 비교해 서적을 다량으로 찍어내기 위한 의도로 제작됐기 때문.

1995년 11월 최모씨는 자신의 집안에 소유하고 있던 고서적 몇 권이 한 부부를 통해 안모씨에게 넘어간 이후 엉뚱한 책이 돌아왔다며 청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최씨 일가는 안씨에게 빌려준 고서적 중에 직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씨가 실제 빌려간 책 대신 다른 책을 돌려주고 직지를 은닉했다는 주장이다. 

이듬해인 1996년 12월16일 청주MBC에서 <월요기획: 국보급 직지 국내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청주시민회에서 결성한 ‘직지 찾기 운동본부’도 최씨 일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처음에는 무혐의로 처리됐던 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재판으로 이어졌다. 

1995년 첫 고소 이뤄져
재수사 끝에 집유 선고


청주지법 재판부는 1998년 11월26일 안씨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안씨가 빌려간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돌려줬다고 주장한 최씨 일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러면서 안씨가 빌려간 책이 직지였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시도했다.

재판의 쟁점이 안씨의 행위 그 자체보다 대상에 있다는 점을 재판부가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최씨 일가의 집에 이른바 직지가 소장돼있었을 가능성 자체는 배제할 수 없지만 안씨가 빌려간 이 사건 고서가 직지라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며 “안씨가 고서를 횡령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만 그 고서가 직지인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재판부가 명확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최씨 일가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직지가 국내에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발‧진정‧항고‧재항고 등 직지를 찾아달라는 호소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새로운 고발인이 등장했고 안씨와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모씨가 전면에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직지를 갖고 있다’는 뉘앙스의 녹취록이 나왔고 새로운 증인과 참고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수백~수천장에 이르는 고발장, 자료 등은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진행된 고발건에 대해서는 경찰 선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횡령 인정
판단 유보

문제는 고발인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5년 이후 직지 관련 고발건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현재 구조상 경찰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특히 녹취록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무식과 무능력, 무기력함, 그리고 권력기관의 무관심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며 “감사원과 문화재청 등 국가기관이(직지 찾기에)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직지 관련 활동을 하는 몇몇 관계자들도 박 변호사와 비슷한 의견을 제기했다. 

특히 1995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진정서를 내는 과정에서 진정인의 서명을 받은 바 있다. 해당 진정인 목록에는 ▲청주시장 ▲청주시의회의장 ▲청주시 변호사회 ▲청주시의회 의원 ▲대학교수 등 청주시 오피니언 리더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직지 관련 고발을 진행한 이들은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과거에 비해 직지 관련 단체가 크게 늘었지만 고발과 관련해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청주고인쇄박물관, 사단법인 세계직지문화협회 등은 직지 관련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직지 찾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고발인은 “과거와 비교해 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청주시에서 직지 관련 단체에 예산을 지원할 정도인데도 유독 직지 찾기에는 관심이 없다”며 “프랑스에 있는 직지를 국내로 반환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있을 수도 있는 직지를 찾는 데 힘을 쏟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관계자는 “직지 실물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일단 실체가 확인돼야 그것이 직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보가 간간히 들어오지만 확인된 적은 없다고도 했다. 박물관의 역할은 직지를 찾은 이후에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은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수사기관에서 종결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사무총장은 1998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제기한 1심 판결문에도 이름이 등장할 만큼 오랜 기간 직지 관련 일을 해온 전문가다.

또 다른 고발인은 결국 수사기관, 특히 경찰 수사로 모든 이야기가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부실한 경찰 수사가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인물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수사 종결을 ‘방패’로 고발 등의 문제제기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행사는 진행
도움은 없어

그러면서 직지 관련 고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이어 피고발인으로 지목된 이씨에 대한 의혹이 줄을 잇고 있다. <일요시사>가 만난 고발인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직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2명(이씨와 안씨)이나 존재한다”며 “그 근거를 수사기관에 충분히 제공했는데도 압수수색 한 번 이뤄지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씨는 충남역사문화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고 충남대에서 한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고서적에 식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대전 지역 언론사 기자로 재직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직지 등의 옛날 책을 알아볼 수 있는 나름의 ‘눈’을 가졌다는 뜻이다. 


고발인은 이씨가 수차례에 걸쳐 ‘직지를 갖고 있다’ ‘(직지를)일본인에게 팔려고 시도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녹취록 또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고발인은 이씨의 집에 상당량의 문화재가 있고 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 중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1995년 최씨 일가가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안씨 집 가택수색 시 사전 양해를 구하고 형식적인 수색이 이뤄지면서 빌려간 책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는 시간을 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도 수사기관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씨의 관계다. 현재 피고발인으로 이씨만 지목돼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공범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고발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가 이뤄진 적도 있다.  

새로운 증거로 고발해도   
경찰 문턱 못 넘고 스톱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의 진정서 내용에 ‘안씨는 <○○일보> 이○○ 기자(이씨)로부터 고서의 중요성을 알게 돼 구입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판결문에는 ‘안씨는 실크로드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풍습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비교해 책을 만들려고 하니 옛날 물건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후’라는 배경이 기재돼있다. 

공교로운 점은 실크로드 관련 책을 쓴 사람은 안씨가 아니라 이씨라는 사실이다. 이씨는 1994년 <신 실크로드> 1, 2편을 내놨다. 안씨가 책을 쓰기 위해 고서적을 빌렸다가 이씨에게 줬든, 안씨의 집에 있던 고서적을 이씨가 가져갔든 간에 최소 1993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는 셈이다.  

고발인은 “안씨와 이씨는 최초 직지의 횡령 과정에서부터 서로 긴밀히 연결돼 묵시적으로 공모관계를 형성했거나 적어도 이씨가 직지를 어딘가에 숨겨 보관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현재에도 사후 공모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서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최초로 제기한 전 청주MBC 남윤성 PD는 “직지는 단순히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다”라며 “인쇄술의 발달은 서적을 배포한다는 점에서 문화발전과 맞닿아 있다. 그 당시 고려가 얼마나 문화선진국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직지인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1996년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당시 국내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PD는 직지, 금속활자 등과 관련해 1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다. 특히 금속활자와 관련한 보도는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등 그 영향력이 컸다.

납득 못할
수사 결과

직지 찾기에 오랜 시간 매진해온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수사기관에서 계속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수사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그게 어떤 결론이든지 간에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계속 직지 찾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직지 소유 의심’  이모씨 입장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장난으로 한 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씨는 최소 2명의 고발인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한 바 있다.

경찰은 모두 무혐의, 불송치 처리했다. 

이씨는 고발인 가운데 1명과 금전적으로 채무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의 관계를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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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