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의 훈민정음 해례본’ 직지 미스터리 추적

눈에 보이는 27년 미제사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재의 가치는 이어받은 자의 의지에 비례한다. 그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그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문화재의 생명력과 직결된다. 우리는 조상이 남긴 눈부신 문화와 그 집약체를 잘 지켜가고 있는가. 650여년 전 인쇄된 한 권의 고서적이 그 대답을 대신하는 듯하다. 바로 직지(直指)다. 

1377년, 1455년, 1972년, 1995년, 2001년 그리고 2022년. 정식 서명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고서적으로 ‘직지심체요절’ ‘직지’ 등의 약칭으로 불린다.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찍어낸 <성서>보다 78년 앞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880년대 후반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랑 드 플랑시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 직지가 포함돼 프랑스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는 상·하 2권으로 구성돼있는데 이 중 하권 1권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시돼있다.

19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책 박람회에서 그 실물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2001년 9월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직지 맨 마지막장에 적힌 ‘선광칠년정사칠월일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는 간행 시기와 장소, 방법을 명시한 문구다. 흥덕사 터가 위치한 충북 청주시(청주목)는 이른바 ‘직지의 도시’로 매년 9월이 되면 다양한 직지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직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단순히 오래됐을 뿐(最古) 문화사적 가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는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그 이상의 문화재라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직지 목판본이 보물 1132호로 지정된 점으로 미루어 금속활자본이 발견되면 ‘국보급’ 문화재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직지 원본은 없다. 다만 그 가능성이 제기된 일종의 ‘제보’가 1995년에 있었다.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의 시작이다. 일부 전문가는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서적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금속활자 자체가 목판과 비교해 서적을 다량으로 찍어내기 위한 의도로 제작됐기 때문.

1995년 11월 최모씨는 자신의 집안에 소유하고 있던 고서적 몇 권이 한 부부를 통해 안모씨에게 넘어간 이후 엉뚱한 책이 돌아왔다며 청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최씨 일가는 안씨에게 빌려준 고서적 중에 직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씨가 실제 빌려간 책 대신 다른 책을 돌려주고 직지를 은닉했다는 주장이다. 

이듬해인 1996년 12월16일 청주MBC에서 <월요기획: 국보급 직지 국내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청주시민회에서 결성한 ‘직지 찾기 운동본부’도 최씨 일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처음에는 무혐의로 처리됐던 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재판으로 이어졌다. 

1995년 첫 고소 이뤄져
재수사 끝에 집유 선고


청주지법 재판부는 1998년 11월26일 안씨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안씨가 빌려간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돌려줬다고 주장한 최씨 일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러면서 안씨가 빌려간 책이 직지였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시도했다.

재판의 쟁점이 안씨의 행위 그 자체보다 대상에 있다는 점을 재판부가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최씨 일가의 집에 이른바 직지가 소장돼있었을 가능성 자체는 배제할 수 없지만 안씨가 빌려간 이 사건 고서가 직지라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며 “안씨가 고서를 횡령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만 그 고서가 직지인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재판부가 명확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최씨 일가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직지가 국내에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발‧진정‧항고‧재항고 등 직지를 찾아달라는 호소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새로운 고발인이 등장했고 안씨와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모씨가 전면에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직지를 갖고 있다’는 뉘앙스의 녹취록이 나왔고 새로운 증인과 참고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수백~수천장에 이르는 고발장, 자료 등은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진행된 고발건에 대해서는 경찰 선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횡령 인정
판단 유보

문제는 고발인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5년 이후 직지 관련 고발건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현재 구조상 경찰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특히 녹취록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무식과 무능력, 무기력함, 그리고 권력기관의 무관심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며 “감사원과 문화재청 등 국가기관이(직지 찾기에)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직지 관련 활동을 하는 몇몇 관계자들도 박 변호사와 비슷한 의견을 제기했다. 

특히 1995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진정서를 내는 과정에서 진정인의 서명을 받은 바 있다. 해당 진정인 목록에는 ▲청주시장 ▲청주시의회의장 ▲청주시 변호사회 ▲청주시의회 의원 ▲대학교수 등 청주시 오피니언 리더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직지 관련 고발을 진행한 이들은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과거에 비해 직지 관련 단체가 크게 늘었지만 고발과 관련해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청주고인쇄박물관, 사단법인 세계직지문화협회 등은 직지 관련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직지 찾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고발인은 “과거와 비교해 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청주시에서 직지 관련 단체에 예산을 지원할 정도인데도 유독 직지 찾기에는 관심이 없다”며 “프랑스에 있는 직지를 국내로 반환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있을 수도 있는 직지를 찾는 데 힘을 쏟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관계자는 “직지 실물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일단 실체가 확인돼야 그것이 직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보가 간간히 들어오지만 확인된 적은 없다고도 했다. 박물관의 역할은 직지를 찾은 이후에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은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수사기관에서 종결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사무총장은 1998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제기한 1심 판결문에도 이름이 등장할 만큼 오랜 기간 직지 관련 일을 해온 전문가다.

또 다른 고발인은 결국 수사기관, 특히 경찰 수사로 모든 이야기가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부실한 경찰 수사가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인물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수사 종결을 ‘방패’로 고발 등의 문제제기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행사는 진행
도움은 없어

그러면서 직지 관련 고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이어 피고발인으로 지목된 이씨에 대한 의혹이 줄을 잇고 있다. <일요시사>가 만난 고발인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직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2명(이씨와 안씨)이나 존재한다”며 “그 근거를 수사기관에 충분히 제공했는데도 압수수색 한 번 이뤄지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씨는 충남역사문화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고 충남대에서 한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고서적에 식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대전 지역 언론사 기자로 재직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직지 등의 옛날 책을 알아볼 수 있는 나름의 ‘눈’을 가졌다는 뜻이다. 


고발인은 이씨가 수차례에 걸쳐 ‘직지를 갖고 있다’ ‘(직지를)일본인에게 팔려고 시도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녹취록 또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고발인은 이씨의 집에 상당량의 문화재가 있고 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 중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1995년 최씨 일가가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안씨 집 가택수색 시 사전 양해를 구하고 형식적인 수색이 이뤄지면서 빌려간 책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는 시간을 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도 수사기관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씨의 관계다. 현재 피고발인으로 이씨만 지목돼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공범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고발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가 이뤄진 적도 있다.  

새로운 증거로 고발해도   
경찰 문턱 못 넘고 스톱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의 진정서 내용에 ‘안씨는 <○○일보> 이○○ 기자(이씨)로부터 고서의 중요성을 알게 돼 구입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판결문에는 ‘안씨는 실크로드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풍습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비교해 책을 만들려고 하니 옛날 물건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후’라는 배경이 기재돼있다. 

공교로운 점은 실크로드 관련 책을 쓴 사람은 안씨가 아니라 이씨라는 사실이다. 이씨는 1994년 <신 실크로드> 1, 2편을 내놨다. 안씨가 책을 쓰기 위해 고서적을 빌렸다가 이씨에게 줬든, 안씨의 집에 있던 고서적을 이씨가 가져갔든 간에 최소 1993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는 셈이다.  

고발인은 “안씨와 이씨는 최초 직지의 횡령 과정에서부터 서로 긴밀히 연결돼 묵시적으로 공모관계를 형성했거나 적어도 이씨가 직지를 어딘가에 숨겨 보관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현재에도 사후 공모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서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최초로 제기한 전 청주MBC 남윤성 PD는 “직지는 단순히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다”라며 “인쇄술의 발달은 서적을 배포한다는 점에서 문화발전과 맞닿아 있다. 그 당시 고려가 얼마나 문화선진국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직지인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1996년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당시 국내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PD는 직지, 금속활자 등과 관련해 1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다. 특히 금속활자와 관련한 보도는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등 그 영향력이 컸다.

납득 못할
수사 결과

직지 찾기에 오랜 시간 매진해온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수사기관에서 계속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수사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그게 어떤 결론이든지 간에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계속 직지 찾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직지 소유 의심’  이모씨 입장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장난으로 한 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씨는 최소 2명의 고발인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한 바 있다.

경찰은 모두 무혐의, 불송치 처리했다. 

이씨는 고발인 가운데 1명과 금전적으로 채무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의 관계를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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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