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586 용퇴론과 97그룹 단일화론

이재명 싫어서 뭉치는 비명 전선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마땅한 인물을 내세우지 못했던 비명(비 이재명)계 쪽에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다수의 젊은 의원이 대표직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에 대한 당내 요구가 커지고 있는 분위기도 상당수 감지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재명 대세론은 흔들림 없는 모양새다. 이 의원을 잡겠다고 나선 의원이 너무 많은 탓이다.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다음 달에 있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 구도가 벌써부터 잡혀간다. 당초 ‘친명(친 이재명계)’ 대 ‘친문(친 문재인계)’ 혹은 ‘친낙(친 이낙연계)’의 싸움으로 흘러갈 것이란 예측과는 달리, 현재 구도는 친명 대 비명(비 이재명계)의 싸움으로 잡혀가고 있다.

재부상하는
세대교체론

특히, 비명계의 당권주자들 중 젊은 의원들이 전당대회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의 세대교체론을 주장하며 출사표를 던진 ‘97그룹 (90년대 학번·70년대 생)’이 그 주축이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5월 말 ‘586 용퇴론’을 주장했다가 민주당 중진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박 전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혼자 단상에 서서 “586의 사명은 민주주의 정착이었는데, 이제 그 사명을 다 완수했다”며 “이제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용퇴론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당내에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는 곧바로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비토가 쏟아져 나왔다. 메시지는 둘째 치고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당내 분란을 조장하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로 뛰고 있는 586세대가 있을뿐더러 당의 얼굴이었던 송영길 전 대표가 스스로 말했던 ‘586용퇴론’을 깨고 서울시장직에 도전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민주당은 이때 박 전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계속 지기만 하는 정당에는 새 정치가 필요하고, 결국 새 정치를 실행할 ‘새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그 시작점이 지금까지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지도부가 ‘물러날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당시 ‘박 전 위원장의 용퇴론’에 동조하는 의원이 상당수 있었다.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지도부에 직접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 개혁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은 박 전 의원장의 ‘586 용퇴론’에 대부분 동조하고 있었고, 발표 직후 그에게 격려 전화와 문자를 전했다.

당시 격려는 현재 전당대회 판세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중이다. 비명 진영 측에 젊은 의원이 하나둘 출마하는 중이고, 중립지대에 있는 많은 의원들이 이들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개혁과 쇄신의 방향을 ‘새 리더’로 하자는 의견에 다수 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는 분위기인 것이다.

“기득권 타파하자” 커지는 목소리
뭉치나? 심상찮은 비명계 움직임

중립지대에 있는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586 기득권을 타파하자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었고, 박 전 위원장의 발언 당시에도 상당히 많은 분이 공감했다”며 “특히 송영길 전 대표가 586 용퇴론을 스스로 이야기한 뒤 본인이 그걸 뒤집고 다시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정말 씻을 수 없는 실책을 범했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는 이변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구호가 틀릴 수도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방증한 것이 얼마 전 있었던 ‘전당대회 룰 파동’이다. 전당대회 전 급하게 꾸려진 ‘혁신형’ 비대위는 전당대회 룰 개정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지난달부터 룰에 민감한 각 계파를 어우르고 공정한 전당대회를 장려하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요구를 받아왔다.

비대위는 지난달 20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를 출범시키며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려 했다. 전준위 위원장은 4선의 안규백 의원(서울 동대문구갑)이 낙점됐다.

안 의원은 본래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인물로 현재 싸우고 있는 계파들에 속하지 않는,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선거관리위원장에는 3선의 도종환 의원(충북 청주시)이 발탁됐다.

도 의원은 친문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그 또한 현재 계파 싸움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인물로 안 의원과 함께 중립지대에 있는 중진 의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친명’과 ‘비명’ 간의 대립을 의식한 비대위가 고심 끝에 두 인물을 전준위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주간 양 계파의 의견을 수렴해왔고, 공정한 룰 제정에 온 힘을 다한 것으로 알려진다.

각 계파는 각자의 입맛에 맞는 룰을 전준위 구성원들에게 전달했고, 각각의 의견을 수렴한 전준위는 양측의 입장을 수렴한 절충안을 만들어 비대위 측에 전달했다. 

전준위가 내놓은 최종안은 예비경선(1차 컷오프)에서 ‘중앙위(당원투표) 70%와 대국민 여론조사 30%’, 본투표에서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여론조사 10%, 일반당원 5%‘였다.

민주당 취재기자들에 따르면, 몇몇 친명계 인사는 여론조사의 비중을 크게 늘릴 것을 전준위 측에 제안했다. 이들의 주장은 여론조사를 50%까지 늘려 일반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명분은 국민의힘(이하 국힘) 측의 쇄신을 본받자는 것이다. 국힘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국민 여론조사 50%를 반영한 바 있다. 그 결과 이준석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당의 키를 쥐게 되었고, 국힘은 서서히 변화할 수 있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5선 중진 안민석 의원은 지난 8일 라디오에서 “우리들은 여전히 대의원 투표 비율이 45%다. 표의 등가성이 일반 당원들과 1:90 정도 가까이 된다”며 “기존의 고루한 정당에서 당원 중심의 민주당으로 바꾸는 것이 전당대회의 의미이기 때문에 룰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꿔내는 환경에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인물 없다?

그러나 비명계에서는 지난해 국민의힘과 지금의 민주당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는 현재의 민주당 이재명 의원처럼 영향력이 크고 인지도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땅한 인물이 없던 상황에서 전당대회에 여론조사를 대폭 도입하니 혁신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는 논리다. 

비명계 측은 전당대회에 여론조사를 도입하면 압도적인 인지도의 이 의원이 유리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것은 민주당 쇄신의 방향과 일치하지만 현재의 여론조사 도입은 오히려 쇄신하지 못할 ‘독’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비명계는 지속해서 룰 개정을 반대해왔다.

그동안 민주당 전당대회는 1차 컷오프에서 중앙위원회의 100%를 투표를 유지해왔다. 이는 민주당 당헌·당규에 기인한다. 친명계의 주장대로 여론조사를 넣으려면 당헌 당규를 고쳐야 한다.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적용돼왔던 전당대회 룰을 바꾸자는 주장에 비명계는 특정후보를 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출마를 선언했던 비명계 강병원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를 하게 되면 이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나 비전이라기보다는 그 전에 해왔던 정치 행태로 인지도 싸움이 돼 버릴 것”이라며 “그런 부분들에 관해서 당은 우려한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도 공천 심사로, 기준에 맞는 사람들을 우리 국민에게 선보이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명계의 주장도 진영 논리의 일부분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기존 당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친문과 친낙계 인사들이 중앙위에 다수 포진돼있기 때문이다. 비명계는 중앙위 100%가 이 의원에게 불리할 것이고, 지금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1차 컷오프에서 탈락할수도 있다고 인식한다.

지난 2개월 간의 전대 룰 갈등은 곧 계파 싸움이었다. 지금은 당내 주류로 인식되고 있는 친명계가 주장하는 ‘여론조사 대폭 도입’이 현실화될지, 안 될지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비대위와 전준위는 당내 분위기를 충분히 살핀 후 최종 결정을 하는 당내 기관이다. 만일 친명계의 강력 반발만 있고 비명계 의원들의 목소리가 작거나, 소극적인 주장만 펼쳤다면 ‘여론조사 도입’은 그냥 이뤄질 수 있던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종 결정일 하루 전날이었던 지난 5일, 비대위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전준위 안을 폐기하고 현행(중앙위 100%)대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친명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결정에 민주당 내 인사들, 그리고 취재기자들까지 의아해했다.

비명계의 입김이 아직 남아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두고 
찬반 투표?

이 같은 결정에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재명 의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였다. 현재 민주당에는 당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며 “그 혁신에 이재명 의원은 낄 수가 없다. 계파를 만들어낸 당사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하루 뒤인 6일, 비대위는 전날 결정을 결국 번복하고 1차 컷오프에 여론조사 30%를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날 있었던 룰 파동은 아직도 당내서 회자되고 있다. 비명계 의원들의 반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유다.

그러나 그런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지금의 구도에서는 이 의원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비명계 측에서 나온 후보가 너무 많은 탓이다. 이 의원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당 대표직에 나선 사람은 총 여명이다. 

지난달 17일 일찌감치 당권 도전을 선언한 5선의 설훈(경기 부천을), 97그룹으로 분류되는 재선의 강병원(서울 은평을), 강훈식(충남 아산을), 박용진(서울 강북을), 박주민(서울 은평구갑) 의원과 3선의 김민석(서울 영등포구을) 의원이다.

설·김 의원을 제외하면 재선의 네 사람은 많이 닮아있다. 모두 재선이라는 점, 또 개혁적인 성향이라는 점, 계파색이 옅다는 점에서 이들은 통한다. 실제로 97그룹으로 묶인 뒤 네 사람은 몇 차례 회동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중 언론에 알려진 것은 지난 지난달 28일 있었던 4선 중진의 이인영 의원과의 오찬회동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의원은 이날 ‘양강양박’ 의원 네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조찬 모임을 진행하고, 다음 달 2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 출마를 부탁했다.

가장 먼저 대표직에 출마하며 스타트를 끊은 강병원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찬회동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 의원이) 이 세대교체론이 사그라지면 안 된다고 의원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며 “여러분들(97그룹)이 결단하고 뭔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문하셨다”고 밝혔다.

전당대회 룰 두고 갈등 재점화
당내에선 이 몰아내기에 열중?

이날 이 의원의 부탁대로 강 의원은 지난 3일 당대표 도전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후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의원이 차례대로 당 대표에 출마를 선언했다.

네 의원은 출마의 변에서 모두 ‘당의 쇄신’을 이유로 들었고, 이를 위해 젊은 의원이 당권을 잡아 계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돌풍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세론은 아직 흔들림이 없는 모양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조사한 민주 당대표 적합 후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이 의원은 33.2%로 1위를 달리고 있고, 박용진 의원이 15%로 뒤를 추격하고 있다.

박 전 비대위원장은 8.8%, 김 의원은 5.2% 순이었다. 없음, 잘 모름은 24.6%였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의원의 지지율은 나머지 후보 모두의 지지율을 합한 것보다 높다. 민주당 내 분위기에 비해 비명계 측의 지지율은 크게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단일화’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기는’ 선거를 위해서라면 의원들이 뜻을 모아 한 명의 인물을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97그룹 네 의원의 개혁 방향과 세대교체라는 대의명분이 합쳐진다면 단일화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먼저 젊은 네명의 의원이 단일화를 이룬 뒤 김 의원이나 설 의원을 설득한다면 이재명 의원과의 1:1 구도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벌써부터 단일화를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다. 강훈식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단계에서 논의할 사항은 아니다. 지금 누구로 단일화하자는 것 보다는 각자의 소신과 비전으로 승부할 시간”이라며 “당원들과 국민의 지지를 거쳐서 결국은 민주당이 혁신의 바람을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주장했다.

강병원 의원도 “지금은 너무 빠르다. 지금 승리의 비법은 단일화가 아니라 나를 잘 알리는 것”이라며 “우선은 강병원이 누군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나”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두 의원 모두 현재로선 단일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돌린 것이다. 현재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으나 정작 본인들은 아직 단일화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의 위해?
본인 위해?

끝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단일화가 필수조건이지만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일화론을 부정하는 일각에서는 이들이 차차기 당권과 대권을 노리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당 대표직에 나온 것이 ‘본인 인지도를 쌓으려 하는 것 아나냐’는 의심에서다. 이들이 진심으로 세대교체론에 뜻을 품고 있을지, 아니면 자기 정치를 하기 위해 전대를 이용하는 것일지는 곧 드러날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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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