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집 - 윤석열에 바란다!> 황우섭 미디어연대 상임대표

“여의도발 언론 개혁은 비극”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우리나라에서 정기간행물을 만드는 언론사 수는 2만4000개가 넘는다. 이 많은 언론사로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로 뭐가 진짜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탓에 공정 보도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언론은 많지 않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꼴찌 수준이다. <일요시사>가 창간 26주년을 맞아 황우섭 미디어연대 상임대표를 만나 언론의 공정성 회복 해법을 물었다. 

황우섭 미디어연대 상임대표는 KBS 교양PD로 오랜 기간 재직한 뒤, 3년간 이사로 봉직한 인물이다. 퇴직 이후 미디어연대에서 언론의 자유와 공정을 되찾고 미디어 발전을 위해 미디어연대 상임대표직을 맡아 으뜸 머슴임을 자처한다. 미디어연대는 자유와 공정 언론을 통해 공정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건 단체다. 

여러 미디어 단체가 연대해 자유 언론과 공정 사회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종의 재능기부를 통해 언론의 공정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봉사 중이다. 다음은 황 대표와의 일문일답.

- 최근 tvN <유퀴즈 온더 블럭>과 MBC <스트레이트>에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습니다. 

▲<유퀴즈>는 원래 유재석과 조세호가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이 작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퀴즈> 프로그램 출연을 타진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 출연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번 <유퀴즈> 제작자가 대통령 출연에 대한 공정성 원칙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아 의혹을 키운 면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스트레이트>의 경우는 MBC 보도의 ‘선택적 공정’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형수 욕설’ 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기준으로 보도해야 대중에게 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업·정치 유착 벗어나 각성
자유 지키는 최고 원칙은 공정

-언론과 미디어의 공정성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공정성 규정은 방송 내용이 정확하고 다양한 관점을 균형감 있게 보도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는 저널리즘 원칙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언론이 품격과 신뢰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공정성 원칙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가 아니라 언론인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는 최고의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공정성의 결여가 사회적 소통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그대로 노출되고, 소위 ‘가짜뉴스’라는 허위사실이 난무하고, 진영 논리의 적대적 정치 양상까지 발현되고 있습니다.

-언론은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편향성,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때가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과 정치가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착하는 행태는 언론과 정치의 관계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입니다. 언론인이 정치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언론은 정치에 예속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정치 논리가 언론을 움직이고, 저널리즘 원칙보다 정치가 중요한 기제로 작동하면 편향성 논란에 휩싸입니다. 언론 스스로의 각성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기업의 언론 길들이기도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는 문제로 보입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못지 않게 시장권력으로부터도 언론은 독립해야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명시적인 광고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는 협찬, 이른바 뒷광고를 통해 언론을 관리합니다. 통제와 관리 방식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그만큼 더 은밀하게 왜곡할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에 우려됩니다. 이와 함께 기업이 언론인에게 기업으로 이동하는 자리를 제공하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기자들이 기업으로 이직하기 유리한 ‘산업부’ 근무를 선호한다는 것도 언론계의 씁쓸한 풍경입니다.

-이런 공정성 결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디어공정재판소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미디어 공정성에 대한 문제는 1차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가 담당하고, 이 기관의 결정에 대해 불복이 있는 청구인은 법원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미디어공정재판소는 미디어 분쟁의 해법을 모색하자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의 공정성과 직결되는 수사학과 논리학 원리를 공정성 판단에 원용하는 방식입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언론과 미디어의 공정성 문제를 정교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미디어공정재판소 해법 모색
미디어 진흥 정책 실현 기대

-정치권에서는 언론개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면 민주당이 거대 여당 시절에 진작 추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선 패배 이후 서둘러 실시하려는 민주당 행태는 비판받기에 충분합니다. 최근 민주당이 25인 공영방송운영위원회와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정치성을 배제하고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지기진영의 정치적 후원세력이 특별다수로 포진할 수 있는 책략 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가 언론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언론징벌법 파동’은 난센스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다수당이 밀어붙인다면 언론개혁 입법은 처리될 수 있는 운명입니다. 언론개혁이 정치권의 입법에 의해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윤석열정부는 포털 편집권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포털은 ‘뉴스 검색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언론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윤정부는 포털 뉴스 편집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뉴스 제목을 클릭하면 언론사로 넘어가는 아웃링크의 경우, 언론사의 경쟁력 및 독립성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이용자 불편이나 일부 언론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정성을 강화하고 제도화시키길 바랍니다. 새 정부가 미디어 공정성을 국정과제로 삼고, ‘미디어혁신위원회’를 통해 미디어 진흥을 위한 제도 정비와 함께 새롭게 수립할 미디어 공정성 정책을 실현하길 기대합니다.


또 문재인정권에서 ‘적폐 청산’ 명목으로 자행된 언론인의 ‘정치 보복’에 대한 정상화를 위한 법적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문정부에서 KBS진실과미래위원회, MBC정상화위원회, 연합뉴스혁신위원회 등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소위 ‘적폐 청산’ 차원에서 진상조사 형식의 위원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정부는 언론인을 돕는 방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론인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가 한 줄의 기사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는지, PD가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미디어 제도를 개혁할 때에는 규제에 급급할 게 아니라, 도울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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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