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경기도지사 소름 돋는 평행이론

‘승부는 이미 끝났다?’ 소문은 현실이 될까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같은 해에 치러지는 기묘한 해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대선의 아픔을 떨치기 전에,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승리의 기쁨을 씻어내기 전에 또 다른 승부를 준비해야 한다. 두 당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지사 선거로, 이를 두고 요즘 정계에는 재미있는 소문이 떠돈다. 경기도지사와 대통령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소문이다. 이 소문은 과연 현실이 될까. 현실이 된다면 누가 웃을 수 있을까.

정계만큼 징크스를 신경 쓰는 곳도 많지 않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한 번 지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기 때문에 당선에 사활을 건다. 선거의 파이가 크면 클수록 패배의 타격은 커진다. 이 때문에 몇몇 정치인은 거액을 주고 정치 컨설턴트를 찾아가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무속인에게 미래를 점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가장 ‘많은’
가장 ‘첨예’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이런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정치권에 떠도는 징크스는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는 탓에 그동안 징크스는 어떤 후보에게는 ‘믿을 구석’으로, 또 다른 후보에게는 ‘불안요소’로 작용해왔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여의도에서는 이번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후보들이 주목할만한 징크스가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 바로 대통령과 경기도지사 간의 상관관계다. 이번 지방선거 판세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정치 컨설턴트들은 일찌감치 경기도지사 선거에 주목한 바 있다.

현재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대표하는 단체장이 걸린 선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기도 지역에서 민주당이 유리할지, 국민의힘이 유리할지 계산에 들어갔고, 각 당의 후보로 나온 인물들의 경쟁력과 홍보 방법 등을 분석해 이런저런 전략을 내놓고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분석은 역대 도지사들의 정당과 대통령의 정당 간의 상관관계다. 

이 분석에 따르면,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로, 경기도지사들은 대부분 대통령과 같은 당 후보가 당선됐다. 경기도의 유권자들은 보통선거를 지방선거가 시작될 때 당시 대통령과 같은 당의 경기도지사를 선택해왔다.

다만 같은 당이라고는 해도 대통령과의 관계는 선거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다른 계파의 사람이 후보여도, 혹은 직접적으로 대통령과 대립한 인물이어도, 경기도민들은 대통령의 ‘당 사람’에게 표를 찍어줬다.

경기도민들은 아무리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후보여도 ‘여당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후보를 주로 선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 당선된 2018년 지방선거가 대표적인 예다. 이 고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던 2018년 도지사에 당선됐다. 2016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온 민주당은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사실 민주당의 이런 대세 속에서 이 고문이 도지사로 당선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당시 그의 승리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가 문 대통령과 상당히 대립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문 대통령의 민주당 내 영향력은 매우 컸다.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를 견인한 문 대통령에게 민주당 인사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그와 가까워지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고문은 그런 문 대통령과 법정 시비까지 가는 등 극한의 대립을 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나치게 공격했던 탓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함께 거세게 문 대통령을 공격했던 이 고문은 경선 패배 후 ‘친문’파의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고, 이는 곧 ‘친문’ 인사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당내 갈등은 대법원까지 가서야 봉합됐다. 그는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 선고를 받는 등 곤혹을 치러야 했다.

‘정권 따라’ 여당에 우호적인 경기도민
역대 경기지사는 대부분 대통령과 대립

당선 과정도 쉽지 않았다. 성남시장을 10년간 지냈던 이 고문에게 경기도지사 선거가 매우 ‘쉬운’ 선거였음에도 문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탓에 경선 통과와 본선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지사에 당선된 이 고문을 두고 정계 전문가들은 ‘여당’이었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그 이전의 예는 남경필·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있다.

이 고문 직전의 경기도지사였던 남 전 지사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당이었다. 이른바 ‘소장파’로 소신 있는 정치를 해오던 그는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을 일컫는 이른바 ‘친박’(친 박근혜)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남 전 지사는 경남여객을 소유한 집안을 배경으로 수원에서 ‘유지’로 인식되고 있었고, 경기도민들은 한 평생을 경기도에서 보낸 남 전 지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15~19대까지 수원 팔달구와 수원병 등에서만 내리 5선을 지낸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남 전 지사에게도 경기도지사 선거는 매우 쉬운 선거처럼 보였다.

그는 결국 본인의 탄탄한 입지에 힘입어 지사까지 당선됐다. 당선 후에 뚜렷한 성과물도 내놨는데 임기 2년 동안 일자리 30만개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이후 최순실 국정 농단이 터지면서 그의 정치 여정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정 농단에 책임지지 않는 박 전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비판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 전 지사는 두 번째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하며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았다.

남 전 지사는 박 전 대통령 때문에 당선은 되지 않았고, 재임 중에도 그의 덕은 하나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당에 반발해 재임 중 ‘여당’ 타이틀을 내려놓기에 이르렀고, 재선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당시 민주당의 이 고문과 싸우다 제7회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이 고문과 남 전 지사처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또한 당시 같은 당 소속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극한의 대립을 펼친 바 있다.

사실 김 전 지사가 처음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2006년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그러나 임기 말 레임덕에 시달리던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고, 이는 당시 여권의 단일후보였던 유시민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패배로 이어졌다.


참여정부의 반대 급부에 힘입어 당선된 김 전 지사는 당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많이 치중한 정치를 펼쳤다. 정계에선 행정과 정치 모두를 병행한 유일한 도지사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과 대립?
여당이면 충분!

당시 여의도는 그를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지사임에도 개인에 치중한 정치 행보를 보여 ‘임기 후 차기 대선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모아졌다.

김 전 지사는 그들의 의심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행보를 이어갔다. 대권주자로 커나가는 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그는 임기를 막 시작한 이 전 대통령에게 ‘배은망덕한 정부’ ‘송산당적발상’ ‘되놈보다 더하다’는 등 정치적 비난을 퍼부으며 본격적으로 ‘적’이 될 것을 선언했다.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의 발언이 상궤를 넘는다는 지적이 있어 대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그의 발언을 비판했다.

김 전 지사가 대립각을 세운 시기는 이명박정부의 ‘선 지방 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란 지역별 균형발전 계획이 발표된 후였다.


경기도지사 입장에서 수도권의 ‘후 규제완화’는 김 전 지사의 공약을 이행시키는 데 방해되는 걸림돌이었다. 당시 그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과 국립종합대 설립 등 굵직한 건설사업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기에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본인이 내놓은 공약 대부분을 이행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본인의 공약 때문에, 그리고 후의 대권 도전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김 전 지사는 계속해서 이 전 대통령의 청와대를 공격했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더니 재선에 도전할 쯤인 2010년에는 사사건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결국 청와대 측에서 “돌출 발언으로 자신의 낮은 인지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치기가 엿보인다”며 “자중하면서 본업인 경기도 도정부터 잘 챙겨달라”고 정면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대통령과 경기도지사는 이처럼 앙숙관계인 채로 수십년을 보냈다. 그러나 이번에 치러지는 경기도지사 선거는 그간의 대통령-경기도지사 관계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윤심’ 업고
‘명심’ 지고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대권후보들과 친밀한 관계에서 선거전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누가 더 대권후보와 친한지를 겨루는 모양새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에서는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김은혜 의원이 선출됐다. 그는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 직전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대변인을 맡으며 ‘윤심’의 대표격인 사람이었다.

초선 의원이었던 그가 경기도지사라는 무거운 자리에 출마한 것을 두고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경선이 시작되며 그들은 김 의원의 출마를 납득할 수 있었다. 앞서 유승민 전 의원은 경기도지사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국민의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자객’인 김 의원이 윤핵관 측으로부터 발탁돼 출마했다고 전해진다. 경기도지사에 대한 영향력을 이어가겠다는 윤 대통령 측의 의도가 엿보이는 행보였다.

실제로 국민의힘 경선에서 여론조사에서 다소 밀리던 김 의원은 윤 대통령의 지원 아래 당원투표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경선을 통과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윤 대통령이 만들어준 경기도지사 후보인 셈이다. 또 다른 거대 양당인 민주당의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도 마찬가지다.

김 후보는 지난 대선 과정 도중에 수차례 토론을 벌이며 이 고문과 친분을 쌓았다. 토론이 지난 얼마 후 이 고문과 후보 단일화를 선언하며 그의 선거운동을 도운 바 있다. 

김-김, 대권후보들 지원사격
손학규 유일한 야권 당선 사례

지난 3월2일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오늘부터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위해 다시 운동화 끈을 묶겠다”고 공식 선언하자, 이 후보는 “김 후보님의 여러 좋은 공약을 잘 엮어 내겠다. 희망과 통합의 정치에 대한 김 후보님의 강한 의지도 그대로 이어받겠다”고 화답했다.

이때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 후보는 처음 출마 선언 때부터 이 고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의 선거 캠프에는 이 고문이 대선후보 시절 함께 일했던 인력이 대거 포함되어 일하고 있다. 최창민 공보팀장을 비롯, 이 고문의 측근에서 활동했던 김용 전 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현재 김동연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도 김 후보는 ‘친이(친 이재명)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서 압승했다. 당초 1차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기 힘들 거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50.67%의 표를 얻은 것이다.

경기도지사에 출사표를 던졌던 안민석 의원과 염태영 전 수원시장, 조정식 의원의 특표를 모두 합해도 김 후보의 득표율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같이 대권후보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경선을 통과한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과 민주당 김동연 후보를 두고 윤 대통령과 이 고문의 2차전이라는 평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는 선거에 어떻게 작용할까. 선거 전문가들은 김 의원에게는 ‘유리하게’, 김 후보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민들이 그동안 여당에 우호적인 투표를 했던 배경에는 “대통령과 같은 당이라면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될 거야”라는 기대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대선에서 이긴 국민의힘 측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모든 경기도지사가 여당에서만 배출된 것은 아니다. 김 전 지사의 전임이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당선될 당시(2002년)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 시절이었다. 같은 해에 치러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반면 손 전 지사는 당시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손 전 지사의 경기도지사 당선은 유일하게 야권 후보가 여권 후보를 이긴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와 옷 로비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으며 지지율 하향곡선을 타고 있었고, 민주당에서도 뚜렷한 차기 대권 후보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당시 민주당의 좋지 못한 분위기는 현재의 국민의힘과 닮아있다. 차기 정권 치고 지지율이 역대급으로 낮게 나오고 있는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청와대 이전 문제 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야권의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손 전 지사는 이 틈을 잘 파고들어 당선된 전례를 남겼다. 대선이 맞물려 있으면서 여권에 불리한 여론이 조성됐을 때 당선된 것이다.

김 의원의 ‘여권 프리미엄’을 강조한 한 선거 전문가는 김 후보의 선거전략이 당시 손 전 지사와 흡사하다고 지적하며 “해볼만한 승부”라고 평가했다. 아무리 여권에 호의적인 표 성향을 띠는 경기도 유권자라도 현재 분위기에서 김 의원에게 몰표를 찍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물 자체만 보더라도 30년간 관료로 일했고,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김 후보가 초선의 김 의원보다 더 낫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요즘 조사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오차범위 내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대선 데자뷰
아무도 몰라

지난 대선 때처럼 경기도지사 선거 결과를 장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경기도지사 여론조사가 대선 한 달 전에 조사됐던 여론조사 수치와 거의 흡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고작 25만표 차이로 갈린 초박빙 선거로 끝났던 것처럼, 양당은 경기도지사 선거도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여권 프리미엄’과 ‘인물론’의 승부는 6월1일이 지나서야 승부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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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