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경기도지사 소름 돋는 평행이론

‘승부는 이미 끝났다?’ 소문은 현실이 될까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같은 해에 치러지는 기묘한 해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대선의 아픔을 떨치기 전에,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승리의 기쁨을 씻어내기 전에 또 다른 승부를 준비해야 한다. 두 당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지사 선거로, 이를 두고 요즘 정계에는 재미있는 소문이 떠돈다. 경기도지사와 대통령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소문이다. 이 소문은 과연 현실이 될까. 현실이 된다면 누가 웃을 수 있을까.

정계만큼 징크스를 신경 쓰는 곳도 많지 않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한 번 지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기 때문에 당선에 사활을 건다. 선거의 파이가 크면 클수록 패배의 타격은 커진다. 이 때문에 몇몇 정치인은 거액을 주고 정치 컨설턴트를 찾아가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무속인에게 미래를 점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가장 ‘많은’
가장 ‘첨예’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이런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정치권에 떠도는 징크스는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는 탓에 그동안 징크스는 어떤 후보에게는 ‘믿을 구석’으로, 또 다른 후보에게는 ‘불안요소’로 작용해왔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여의도에서는 이번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후보들이 주목할만한 징크스가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 바로 대통령과 경기도지사 간의 상관관계다. 이번 지방선거 판세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정치 컨설턴트들은 일찌감치 경기도지사 선거에 주목한 바 있다.

현재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대표하는 단체장이 걸린 선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기도 지역에서 민주당이 유리할지, 국민의힘이 유리할지 계산에 들어갔고, 각 당의 후보로 나온 인물들의 경쟁력과 홍보 방법 등을 분석해 이런저런 전략을 내놓고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분석은 역대 도지사들의 정당과 대통령의 정당 간의 상관관계다. 

이 분석에 따르면,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로, 경기도지사들은 대부분 대통령과 같은 당 후보가 당선됐다. 경기도의 유권자들은 보통선거를 지방선거가 시작될 때 당시 대통령과 같은 당의 경기도지사를 선택해왔다.

다만 같은 당이라고는 해도 대통령과의 관계는 선거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다른 계파의 사람이 후보여도, 혹은 직접적으로 대통령과 대립한 인물이어도, 경기도민들은 대통령의 ‘당 사람’에게 표를 찍어줬다.

경기도민들은 아무리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후보여도 ‘여당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후보를 주로 선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 당선된 2018년 지방선거가 대표적인 예다. 이 고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던 2018년 도지사에 당선됐다. 2016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온 민주당은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사실 민주당의 이런 대세 속에서 이 고문이 도지사로 당선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당시 그의 승리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가 문 대통령과 상당히 대립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문 대통령의 민주당 내 영향력은 매우 컸다.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를 견인한 문 대통령에게 민주당 인사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그와 가까워지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고문은 그런 문 대통령과 법정 시비까지 가는 등 극한의 대립을 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나치게 공격했던 탓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함께 거세게 문 대통령을 공격했던 이 고문은 경선 패배 후 ‘친문’파의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고, 이는 곧 ‘친문’ 인사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당내 갈등은 대법원까지 가서야 봉합됐다. 그는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 선고를 받는 등 곤혹을 치러야 했다.

‘정권 따라’ 여당에 우호적인 경기도민
역대 경기지사는 대부분 대통령과 대립

당선 과정도 쉽지 않았다. 성남시장을 10년간 지냈던 이 고문에게 경기도지사 선거가 매우 ‘쉬운’ 선거였음에도 문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탓에 경선 통과와 본선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지사에 당선된 이 고문을 두고 정계 전문가들은 ‘여당’이었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그 이전의 예는 남경필·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있다.

이 고문 직전의 경기도지사였던 남 전 지사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당이었다. 이른바 ‘소장파’로 소신 있는 정치를 해오던 그는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을 일컫는 이른바 ‘친박’(친 박근혜)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남 전 지사는 경남여객을 소유한 집안을 배경으로 수원에서 ‘유지’로 인식되고 있었고, 경기도민들은 한 평생을 경기도에서 보낸 남 전 지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15~19대까지 수원 팔달구와 수원병 등에서만 내리 5선을 지낸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남 전 지사에게도 경기도지사 선거는 매우 쉬운 선거처럼 보였다.

그는 결국 본인의 탄탄한 입지에 힘입어 지사까지 당선됐다. 당선 후에 뚜렷한 성과물도 내놨는데 임기 2년 동안 일자리 30만개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이후 최순실 국정 농단이 터지면서 그의 정치 여정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정 농단에 책임지지 않는 박 전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비판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 전 지사는 두 번째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하며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았다.

남 전 지사는 박 전 대통령 때문에 당선은 되지 않았고, 재임 중에도 그의 덕은 하나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당에 반발해 재임 중 ‘여당’ 타이틀을 내려놓기에 이르렀고, 재선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당시 민주당의 이 고문과 싸우다 제7회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이 고문과 남 전 지사처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또한 당시 같은 당 소속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극한의 대립을 펼친 바 있다.

사실 김 전 지사가 처음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2006년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그러나 임기 말 레임덕에 시달리던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고, 이는 당시 여권의 단일후보였던 유시민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패배로 이어졌다.


참여정부의 반대 급부에 힘입어 당선된 김 전 지사는 당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많이 치중한 정치를 펼쳤다. 정계에선 행정과 정치 모두를 병행한 유일한 도지사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과 대립?
여당이면 충분!

당시 여의도는 그를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지사임에도 개인에 치중한 정치 행보를 보여 ‘임기 후 차기 대선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모아졌다.

김 전 지사는 그들의 의심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행보를 이어갔다. 대권주자로 커나가는 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그는 임기를 막 시작한 이 전 대통령에게 ‘배은망덕한 정부’ ‘송산당적발상’ ‘되놈보다 더하다’는 등 정치적 비난을 퍼부으며 본격적으로 ‘적’이 될 것을 선언했다.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의 발언이 상궤를 넘는다는 지적이 있어 대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그의 발언을 비판했다.

김 전 지사가 대립각을 세운 시기는 이명박정부의 ‘선 지방 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란 지역별 균형발전 계획이 발표된 후였다.


경기도지사 입장에서 수도권의 ‘후 규제완화’는 김 전 지사의 공약을 이행시키는 데 방해되는 걸림돌이었다. 당시 그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과 국립종합대 설립 등 굵직한 건설사업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기에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본인이 내놓은 공약 대부분을 이행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본인의 공약 때문에, 그리고 후의 대권 도전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김 전 지사는 계속해서 이 전 대통령의 청와대를 공격했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더니 재선에 도전할 쯤인 2010년에는 사사건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결국 청와대 측에서 “돌출 발언으로 자신의 낮은 인지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치기가 엿보인다”며 “자중하면서 본업인 경기도 도정부터 잘 챙겨달라”고 정면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대통령과 경기도지사는 이처럼 앙숙관계인 채로 수십년을 보냈다. 그러나 이번에 치러지는 경기도지사 선거는 그간의 대통령-경기도지사 관계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윤심’ 업고
‘명심’ 지고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대권후보들과 친밀한 관계에서 선거전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누가 더 대권후보와 친한지를 겨루는 모양새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에서는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김은혜 의원이 선출됐다. 그는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 직전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대변인을 맡으며 ‘윤심’의 대표격인 사람이었다.

초선 의원이었던 그가 경기도지사라는 무거운 자리에 출마한 것을 두고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경선이 시작되며 그들은 김 의원의 출마를 납득할 수 있었다. 앞서 유승민 전 의원은 경기도지사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국민의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자객’인 김 의원이 윤핵관 측으로부터 발탁돼 출마했다고 전해진다. 경기도지사에 대한 영향력을 이어가겠다는 윤 대통령 측의 의도가 엿보이는 행보였다.

실제로 국민의힘 경선에서 여론조사에서 다소 밀리던 김 의원은 윤 대통령의 지원 아래 당원투표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경선을 통과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윤 대통령이 만들어준 경기도지사 후보인 셈이다. 또 다른 거대 양당인 민주당의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도 마찬가지다.

김 후보는 지난 대선 과정 도중에 수차례 토론을 벌이며 이 고문과 친분을 쌓았다. 토론이 지난 얼마 후 이 고문과 후보 단일화를 선언하며 그의 선거운동을 도운 바 있다. 

김-김, 대권후보들 지원사격
손학규 유일한 야권 당선 사례

지난 3월2일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오늘부터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위해 다시 운동화 끈을 묶겠다”고 공식 선언하자, 이 후보는 “김 후보님의 여러 좋은 공약을 잘 엮어 내겠다. 희망과 통합의 정치에 대한 김 후보님의 강한 의지도 그대로 이어받겠다”고 화답했다.

이때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 후보는 처음 출마 선언 때부터 이 고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의 선거 캠프에는 이 고문이 대선후보 시절 함께 일했던 인력이 대거 포함되어 일하고 있다. 최창민 공보팀장을 비롯, 이 고문의 측근에서 활동했던 김용 전 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현재 김동연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도 김 후보는 ‘친이(친 이재명)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서 압승했다. 당초 1차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기 힘들 거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50.67%의 표를 얻은 것이다.

경기도지사에 출사표를 던졌던 안민석 의원과 염태영 전 수원시장, 조정식 의원의 특표를 모두 합해도 김 후보의 득표율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같이 대권후보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경선을 통과한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과 민주당 김동연 후보를 두고 윤 대통령과 이 고문의 2차전이라는 평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는 선거에 어떻게 작용할까. 선거 전문가들은 김 의원에게는 ‘유리하게’, 김 후보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민들이 그동안 여당에 우호적인 투표를 했던 배경에는 “대통령과 같은 당이라면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될 거야”라는 기대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대선에서 이긴 국민의힘 측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모든 경기도지사가 여당에서만 배출된 것은 아니다. 김 전 지사의 전임이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당선될 당시(2002년)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 시절이었다. 같은 해에 치러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반면 손 전 지사는 당시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손 전 지사의 경기도지사 당선은 유일하게 야권 후보가 여권 후보를 이긴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와 옷 로비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으며 지지율 하향곡선을 타고 있었고, 민주당에서도 뚜렷한 차기 대권 후보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당시 민주당의 좋지 못한 분위기는 현재의 국민의힘과 닮아있다. 차기 정권 치고 지지율이 역대급으로 낮게 나오고 있는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청와대 이전 문제 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야권의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손 전 지사는 이 틈을 잘 파고들어 당선된 전례를 남겼다. 대선이 맞물려 있으면서 여권에 불리한 여론이 조성됐을 때 당선된 것이다.

김 의원의 ‘여권 프리미엄’을 강조한 한 선거 전문가는 김 후보의 선거전략이 당시 손 전 지사와 흡사하다고 지적하며 “해볼만한 승부”라고 평가했다. 아무리 여권에 호의적인 표 성향을 띠는 경기도 유권자라도 현재 분위기에서 김 의원에게 몰표를 찍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물 자체만 보더라도 30년간 관료로 일했고,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김 후보가 초선의 김 의원보다 더 낫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요즘 조사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오차범위 내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대선 데자뷰
아무도 몰라

지난 대선 때처럼 경기도지사 선거 결과를 장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경기도지사 여론조사가 대선 한 달 전에 조사됐던 여론조사 수치와 거의 흡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고작 25만표 차이로 갈린 초박빙 선거로 끝났던 것처럼, 양당은 경기도지사 선거도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여권 프리미엄’과 ‘인물론’의 승부는 6월1일이 지나서야 승부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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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