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부작용

남보다 못한 한 지붕 두 가족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힘겨루기 끝에 마침내 손을 맞잡았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이야기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작도 전에 분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는 탓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진통 끝에 전격 합당을 결정했다. 대선 직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이 합당을 통해 공동정부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뒤 꼬박 47일 만이다. 당초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합당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합당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겉으론 하나

두 당의 합당은 대선 전부터 끊임없이 나오던 사안 중 하나다. 본격적인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 시점은 1년 전인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서다.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안 위원장이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에게 야권 단일후보를 뽑은 뒤 양당의 합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합당 논의는 급물살을 타는 듯 보였지만 양당의 힘겨루기가 지속된 탓에 끝내 결렬됐다. 이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선출되고, 이 대표가 국민의당을 압박해나갔다. 이 대표의 압박이 거세자 국민의당 측에서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며 강하게 맞섰다. 

당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이 대표와 안 위원장도 서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합당도 함께 무산되는 듯 보였다. 


재차 합당이 논의된 시점은 대선이 끝난 뒤다. 인수위가 출범하면서부터 합당 논의가 활기를 띠었다. 합당 직전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 사이에 잠시 미묘한 기류가 흘렀지만, 갈등을 빠르게 봉합하면서 양당은 지난 18일 당을 하나로 합치는 데 성공했다. 

잉크도 안 말랐는데 신경전?
안철수계 반발 시 내분 우려

합당 안건은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국민의당도 만장일치로 의결시키며 합당에 대해 서로 이견이 없었다고 해석된다.

기자회견장에서 이 대표와 안 위원장은 공동선언문에 서명하며 공식적인 합당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양당간 합의된 내용은 ▲국민의힘으로 당명 유지 ▲정강정책TF 공동 구성 ▲지도부 구성을 포함한 합의사항 이행 ▲지방선거 관련 합의된 기준으로 심사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앞서 새로운 당명으로 출발할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국민의힘 당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국민의당이 국민의힘에 흡수된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국민의당과 합당한 이상 민주당에 비해 약간 앞서는 정당 지지율 상승을 꾀할 기회를 얻었다. 의석 수는 110석에서 113석까지 늘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3석 추가 확보로 여소야대 형국을 돌파할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거대 야당을 상대하려면 아쉬운대로 1석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벌써부터 분란의 조짐이 느껴진다. 경찰 출신인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전 원내대표)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찬성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권 의원은 합의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지난 14일, 4당 원내대표 검수완박 관련 회동에 참석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자칫 국민의힘 계파와 국민의당 계파가 시작부터 내홍을 겪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 의원의 제명은 합당 과정에서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그 역시 국민의당에서 자진 탈당하지 않고 제명을 요구한 상태다.

이는 비례대표인 권 의원이 스스로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발탁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시작부터 균열의 조짐이 보이자 이 대표는 권 의원의 제명을 국민의당에서 신속 처리를 꼬집었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안 위원장이 인수위원회 활동을 종료하고 당으로 돌아왔을 때도 문제다. 인수위 출범 직후 총리직, 경기도지사 등 하마평에 올랐으나 안 위원장은 여의도로 돌아가겠다는 점을 암시했다. 사실상 정치를 다시 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안, 돌아오면 내홍 불가피?
경쟁력 있는 후보 없어 불안

안 위원장이 복귀하면 당내 기반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탓에 본래 국민의힘 측 인물들과 세 싸움이 벌어지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권력다툼과 기득권 유지를 위한 내홍이 불거진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남는 게 없는 장사다. 고용 승계 문제도 여전히 불씨 중 하나다.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 당직자 7명에 대한 승계는 합의가 됐으나 직급, 처우 등을 놓고 국민의힘 당직자와 노조에서 연일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파열음이 거세질 우려도 있다.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국민의힘 후보만 결정되는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현실적으로 국민의당 측 인사 중 경쟁력을 가진 후보가 있냐는 걱정스러운 시선도 존재한다. 이런 탓에 국민의당 쪽에서 지방선거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게 오히려 무리한 요구기 때문에 당내 분란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당은 지방선거를 비롯해 국민의힘 당내에서의 지분 확보가 시급하다. 국민의당이 합당을 통해 얻게 되는 득은 보수진영에서 새롭게 정치적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다. 득이 되기 위해서는 안철수계가 국민의힘 내에서의 세 싸움을 얼마나 잘 버텨내느냐가 관건이다.

정치적 기반을 쌓을 기회를 얻게 된 점을 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다만 국민의당은 당 자체를 잃었다. 안 위원장의 정치적 브랜드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안 위원장은 국민의당에서 제3지대를 통해 거대 양당의 대안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다. 


합당으로 인해 그가 꿈꿔오던 정치적 가치관, 철학이 한순간에 증발해 다당제의 가치를 잃은 셈이다. 그동안 그려온 안 위원장의 그림이 무위로 돌아가 국민의힘 내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속으론 남남?

장성철 대구카톨릭대 특임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양당의 화학적 결합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당내에서 여러 내분이 일어날 것”이라며 “양당이 서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합 속도도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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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