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택한 발달장애인 부모 사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4.26 09:02:38
  • 호수 1372호
  • 댓글 3개

생활고와 암 그리고 불편한 딸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부모가 자식을 죽인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서’ 사건이 벌어졌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로 “내가 죽으면 내 자녀를 누가 보살피느냐”고 외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부모들은 스스로 자녀를 죽이는 ‘악마’가 된다. 

지난 20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영민) 심리로 열린 A씨에 대한 살인 혐의 재판이 열렸다.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가해자의 잔혹함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사건은 다르다. 가해자는 발달장애인 딸을 둔 A씨고, 피해자는 그의 딸이었다. 

상황 비관

A씨는 갑상샘암 말기인 50대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가족은 20대 중증 발달장애인 딸 한 명뿐이다. A씨는 딸과 단둘이 살았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청각 ▲언어 ▲간 ▲안면 ▲장루·요루 ▲상지를 제외한 지체 장애 정도를 가지면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홀로서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지난해부터 인천에서 40평 남짓한 작은 화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A씨의 화원에는 전기요금 통지서가 말려서 꽂혀 있었고, 건강상의 이유로 문을 닫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주변의 이웃들은 A씨를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한 사람’ ‘이렇게 더운데 매일 움직이며 일하는 독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웃들은 A씨를 향해 “마른 사람이 저 더위에 계속 일을 하더라 아픈데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상황은 점점 안 좋아져서 장사도 잘되지 않았다. 비단 A씨뿐만은 아니었다. 코로나19 등의 상황이 겹쳐 그곳에 있는 화원 주인은 모두 힘들었다.

결국 A씨는 최악의 상황 속에 화원 운영을 시작한 것이다. 화원은 온도 조절 등이 중요해서 관리비가 많이 든다. 화원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거동이 불편한 A씨는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고, 중증 발달장애인인 딸은 사회생활이 힘들었다. 결국 A씨에게 주어진 수입은 기초생활보장 수급비와 딸이 가끔 벌어오는 아르바이트비가 전부였다.

병원비를 포함한 모녀의 한 달 생활비는 90만원 정도였다. A씨에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지옥이었다. 주어진 것은 갑상샘암 말기로 언제 심각해질지 모르는 본인의 건강과 나을 길 없는 아픈 딸, 그리고 끝없는 생활고였다. 

이런 상황을 비관해 A씨는 지난달 2일 오전 0~3시 사이 경기 시흥시 신천동 자택에서 딸을 질식해 숨지게 했다. A씨는 이튿날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 만나거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함께 가려고 했는데…”
살해 후 극단적인 선택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내가 딸을 죽였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질식시켜 살인’이 A씨의 혐의다. 

지난 20일 오전 10시께 그는 옅은 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에서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우울증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한 점은 참작 사유지만, 무고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딸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 순간 제 몸에 악마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어떠한 죄를 물어도 달게 받을 것”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어 “제 딸과 같이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제가 살아 이 법정 안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며 고개를 떨궜다. A씨에 대한 선고 재판은 다음 달 20일 열린다.

슬프게도 이런 유형의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저는 예비 살인자입니다. 부디 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온 적 있다. 청원 글을 올린 사람은 21세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50세 가장 B씨였다. B씨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B씨에 따르면 아들 C군은 1세 때부터 병을 앓았다. C군은 증세 완화를 위해 병원과 치료시설을 다니면서 노력했지만, 차도가 없어 현재 집에서 돌보는 실정이다.

B씨는 “아들은 유리창과 문을 수십 번 깼다. 형광등, 가구, 가전제품 등을 집어던지거나 쳐서 집에 있는 물건들이 남아나는 것이 없다”며 “현재 키가 175㎝에 몸무게가 90㎏인데 툭하면 자해하거나 남을 공격한다. 애 엄마와 저는 깨물리거나 얻어맞은 상처가 많다. 괴성에 난리를 하도 피워 동생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장애 아동을 자녀로 두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처참한 현실을 맞닥뜨려야 했다. C군은 차에서도 공격성을 보였다. 결국 안전을 위해 앞자리 좌석과 뒷자리 좌석 사이에 격벽을 설치했다.

살인 혐의 재판
검찰 10년 구형

C군은 차 지붕과 시트, 유리창마저 깨버렸다. 차 문도 여러 번 깨져서 수리했고, 차에서 소변이나 대변을 참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있어도 힘든 일이 하루에 2~3번 이어졌다. 공격적으로 변할 때는 자해 행위도 심해서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 깨지기도 했다. 당연히 C군의 얼굴이나 몸에는 자상이 많았는데, 간단한 치료를 위해서도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C군은 현재 장애학교 고등과정을 마치고 2년 동안 진행하는 직업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개인이 운영하는 장애인 돌봄 시설에 보내고 오후 6~7시 사이 집에 돌아온다.

B씨에게 가장 힘든 날은 휴일과 임시공휴일, 그리고 명절이다. 이 시기에 B씨의 가족들은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낸다.

동생을 위해 C군을 장애인 생활시설에 보낼까 고민도 해봤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갈 수 없어서 입소의 기회조차 없었다. 특히 C군처럼 공격적인 성향이 짙으면 거부당했다. 

B씨는 “내 건강에 이상이 오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서 C군을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상황으로는 그나마 남은 가족을 위해 C군을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절박한 심정을 표현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와 경기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달 8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가족에게 죽임을 당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추모제’를 개최했다.

부모연대는 부모에 의해 발달장애인 자녀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20대 발달장애 청년이었다. 이 가정은 한부모 가정이면서 기초생활수급 가정”이라며 “자녀를 살해한 부모들은 평상시에도 생활의 어려움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은…

이어 “발달장애인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전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며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 지원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눠 가지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통해 더 이상 가족에 의한 살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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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