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재명계' 송영길 공천 소동 후폭풍

이대로 지면 이재명 아웃?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옆집 사람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하더라도, 마을에 위기가 찾아오면 힘을 합쳐서 ‘공동의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상식이다. 우크라이나의 예가 그렇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내부의 지역적, 정치적 내부 싸움이 매우 치열했지만, 러시아가 쳐들어오자 한마음 한 뜻으로 되어 러시아와 맞서 싸우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에게 이런 우크라이나 정신을 본받으라고 전한다. 지방선거의 적인 ‘국민의힘’에 맞서 하나가 돼 싸워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단수 공천 시도가 ‘3일 천하’로 끝났다. 지난 17일 홍대에서 호기롭게 서울시장 출마선언식을 진행한지 꼭 3일 만인 지난 19일 화요일 늦은 저녁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측에서 송 전 대표에게 서울시장 공천 배제 결정을 내린 것이다.

3일 천하
구긴 체면

이 같은 결정을 들은 송 전 대표 측은 “공천 배제 방침은 지방선거를 포기하고 민주당을 파괴하는 자해행위”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수십 시간의 난상토론 끝에 민주당은 송 전 대표에 대한 완전 공천 배제는 철회하고 국민경선 100%에 참여시키겠다고 재차 발표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선 참여 자격이 주어졌지만, 송 전 대표의 체면은 제대로 구겨졌다. 당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억지로 나온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의도 아닌 타의로 선거에서 ‘배제될 뻔’ 했으니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진 것이다. 

이대로 경선에서 이긴다 해도 ‘희생’을 각오하러 왔다는 송 전 대표의 대의명분은 힘을 잃게 된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지도부는 모두 사퇴한 바 있다. 그때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한 지도부의 수장은 다름 아닌 송 전 대표였다.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지방으로 내려가 야인생활을 하던 그가 다시 정계로 돌아오는 데는 고작 한 달가량 걸렸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시장 후보군의 구원투수로 그를 영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인난’에 빠져 고심했던 바 있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을 이길 필승카드가 부재했던 탓이다.  당내 의원들은 이낙연 전 대표나 송 전 대표, 심지어 이재명 상임고문까지 거론하며 ‘거물급’ 인사들의 등판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거물 등판설’에 이 전 대표와 이 고문은 한사코 거부했지만, 송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능성을 열어 둔 채로 상황을 지켜봤다.

이후 이어진 끊임없는 당의 요구에 결국 송 전 대표가 승낙했다. 주소지를 서울로 옮기며 서울시장 출마에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간접적인 행보는 곧 직접적인 발언으로 이어졌다.

송 전 대표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세훈 시장의 지지율이 50%나오는 상황이고 누가 나오든 10~15%포인트 지는 선거에, 출마 선언도 안 하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희생하겠다는 자세”라며 “저는 현역 국회의원으로 임기 보장된 의원이다. 현역 2년, 국회의장에 도전할 기회도 포기하고 싸우는 것이 책임지는 자세”라고 출마 사유를 길게 설명했다.

‘어차피 질 선거’에 자신이 나서 패배의 아픔을 떠안고 정권을 내준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많은 이가 공감하지 못했다. 심지어 책임론을 주장하는 몇몇 사람은 그가 치르겠다는 ‘희생’에 돌을 던지고 나섰다. 

서울시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 수십명은 입장문을 통해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반대했고,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도 지난 8일 “전략공관위의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은 우리 비대위에 있다”며 “부동산 문제로 국민을 실망하게 한 분들이 지방선거에 예비 후보자로 등록했다.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난 당 대표도 마찬가지로 등록했다”고 비판했다.


송 전 대표 단수공천 불가능…입지 줄어
당 “송·박주민 포함한 국민경선 100%”

민주당은 일찌감치 서울시장 자리를 ‘전략 선거구’로 지정한 바 있다. 공천을 주는 것에 당 차원의 화력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일각에서 “당 지도부가 원하는 인사를 전략공천하겠다는 거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민주당 측 관계자는 당시 전략 선거구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자 “전략 선거구는 경선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며 “전략선거구를 한다고 해서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전략공천위의 방향은 송 전 대표를 전략공천하는 쪽으로 잡혀갔다. 서울시장에 도전한 현직 의원들의 출사표를 반려한 채 ‘거물급’인 송 전 대표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송 전 대표는 캠프를 꾸리고 본격적인 선거 유세 행보에 들어간 듯 보였다. 이대로 민주당 후보로 송 전 대표가 굳어지는 모양새였으나, 당의 예상을 빗나간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지지율 차이’였다.

민주당은 송 전 대표쯤 되는 거물급 인사가 나오면 오 시장과의 지지율 차이가 한 자릿수로 좁혀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 전 대표여도’ 오 시장과의 지지율 차이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완벽한 동상이몽이었다. 송 전 대표는 ‘희생’하러 왔다지만, 지도부 입장에서는 ‘승리할’ 후보가 필요했다. 수많은 당 내부의 비판과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패배한 지도부의 수장을 데리고 온 이유는 서울시장 자리 ‘탈환’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결과가 안 좋게 나올 것 같자 지도부는 공천 배제로 입장을 틀었다. 

해당 결정은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내렸다. 전략공관위는 보다 객관적인 후보를 찾아내기 위한 민주당의 당내 기구로 공천 심사 기준과 경선 방법 등을 논의해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전략공관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총 20명으로 구성됐으며 여성 50%, 청년 10%, 외부인사 30%로 채워졌다. 다만 이들이 내리는 결정은 비대위의 최종 승인 절차를 밟아야만 시행된다. 송 전 대표를 서울시장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바로 공관위였다.

벼랑 끝
동상이몽


공관위의 결정에 박 위원장이 뜻밖의 반응을 내놓았다.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그가 갑자기 송 전 대표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대선 때 누구보다 헌신했지만 선거 결과에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당 대표를 탈락시키겠다고 한다”며 “서울시장 공천, 경선해야 한다. 송 전 대표와 박주민 의원 배제 결정을 당원과 서울시민, 국민 모두 외면한 결정으로 규정한다”고 규탄했다.

개인의 의견을 넘어 지도부 전체의 생각은 송 전 대표를 버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략공천위에 던진 것이다.

전략공관위원으로 참여한 정다은 전 부대변인 또한 본인의 SNS를 통해 “송영길 전 대표, 박주민 의원을 배제하기로 했다”며 “반대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공천 배제에 대한 반대 행렬에 동참했다.

이제 송 전 대표를 위기에서 구해줄 곳은 비대위 지도부 뿐이었다.

해당 결정을 듣고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진 송 전 대표는 “전략공천위원회에서 배제했으니 이제 비대위가 결정을 어떻게 할지 봐야겠다”며 비대위가 다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희망을 걸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을 비대위 지도부는 들어줬다. 국민경선 100%에 송 전 대표를 참여시키기로 최종 결정을 낸 것이다. 전략공천위의 결정을 뒤집은 셈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손바닥 뒤집듯 하는 민주당 비대위는 현재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송 전 대표 사태를 계기로 수면 밑에 있던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공천 배제를 주도한 인물은 전략공관위원장으로 선임된 3선의 이원욱 의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위원장은 대표적인 ‘정세균계’ 의원이다. 이 위원장은 대학교 직속 선배인 정세균 전 총리와 친분이 두텁다.

그들의 인연은 10년도 더 됐다. 지난 2012년 대선후보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정 전 총리의 캠프에서 이 위원장은 캠프 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2017년 경선 때 최재성, 이미경 등 대표적인 ‘정세균계’ 의원들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때도 이 위원장은 “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돕겠다”며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보한 바 있다. 정계는 그가 뼛속 깊은 ‘정세균계’인 것을 이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번 2022년 대선 경선 때도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이 고문을 도울 때 이 위원장은 “최소한 경선 과정에서는 내게 여타 캠프에서의 역할에 대해서 기대하거나 말하지 말아달라”며 “나 또한 정 후보와 같이 백의종군하겠다. 저의 거취를 생각해 주는 여러 의원에게는 감사드린다”고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정세균계?
반이재명?

이런 이력을 갖고 있는 그가 ‘친이재명계’가 장악하고 있는 비대위가 결정하는 사항에 반대 의견을 내비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송 전 대표에 대한 공천 배제를 결정한 직후 KBS <최영일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당과 많은 의원의 우려에도 본인 정치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전략공관위에선 (공천 배제가)차선의 선택이었다”며 “송 전 대표가 선당후사와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당을 위해 존중하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박수쳤을 것”이라고 배제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말로 다시금 되풀이 된 모양새다.

민주당 내부 관계자는 “마치 대선 경선 직후 민주당내 파열음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며 배제 소식을 접한 후 소감을 <일요시사>에 전했다.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정세균 의원은 낮은 지지율을 이유로 일찌감치 사퇴한 바 있다.

그 후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잠행을 이어오다 대선 석 달 전, 이 고문을 만나 후원회장을 맡을 것을 선언했다. 이에 이재명 선대위 측은 고무된 분위기로 기자들에게 “민주당이 비로소 ‘원팀’을 넘어 ‘드림팀’이 됐다”고 알려왔다.

경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다퉜어도 결국 하나될 때는 하나 되는 민주당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드림팀 선언은 지금 와서 정계의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고문 측은 대선 패배의 책임은 ‘전혀’ 지려 하지 않고 있고, 그와 드림팀이 됐다고 선언한 ‘이낙연계’ ‘정세균계’ 등 ‘반 이재명계’ 의원들은 당내 세력 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공천위 이원욱 의원이 주도
수면 밑 ‘반이재명’ 이빨 드러내

지난달 24일, 민주당의 원내대표 선거가 그 분위기를 잘 보여줬다. 결국엔 ‘친이재명계’ 박홍근 의원이 당선됐으나 3차 투표까지 가는 초접전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애초부터 당내 치열한 선거전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 후보 등록도 받지 않은 채 ‘콘클라베’ 방식을 차용한 바 있다.

‘원팀’을 선언했지만 사실 ‘원팀’이 아니기에 차용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최종 득표 수도 미미한 수준으로 판가름났다고 민주당 측은 전했다. 이는 민주당 의원들의 계파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양분됐음을 의미했다.

민주당 비대위는 이 갈등이 지방선거까지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랬으나, 최근 송 전 대표의 공천 배제 소동으로 그 바람이 깨졌다.

배제 소식이 들리자 송 전 대표는 곧바로 “사실상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의 정치 복귀를 반대하는 선제 타격”이라며 배제의 저의를 계파 갈등에서 찾았고 언론들도 ‘명낙대전의 부활’이라며 싸움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자신은 ‘정세균계’라며 계파 갈등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계파 공천 운운하는 것은 그 일관성, 진정성, 의도를 의아하게 한다”며 “나는 명낙대전으로 흔히 표현되는 그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내게 계파 공천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수용할 수 없는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서울시장 공천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모양새지만, 굳건했던 ‘이재명계’가 흔들리는 계기는 됐다. 만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억지로 공천을 받은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국민의힘에 완패한다면 이 고문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줄어든다.

8월에 있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고문이 노리고 있다고 알려진 ‘당 대표’는 사실상 물 건너 갈 것이다.

드림팀
깨지다

현재 여러 접전 지역에서 민주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서울시장을 비롯해 강원도지사나 충청도지사, 제주도지사에서 대부분 뒤지고 있거나 오차범위 내의 초접전 양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 속에서 민주당은 계파 갈등에 시달리기만 할 뿐, 당 차원의 화력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이길 필승 전략을 기다리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의 행보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와 함께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이낙연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상임고문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민주당의 거물급 인사로 자리 잡았다.

현재 지방선거 후보들의 지지율 차이를 보더라도 ‘대선 컨벤션 효과’는 입증이 된 상태다. 

후보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대선 때 특수를 누구보다 많이 누린 이 전 대표에게 끊임없이 구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표 측은 지방선거에 출마할 계획이 없음을 재차 알렸다.

그는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저는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 실패 이후 미국 연수를 준비해왔고, 서울시장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민주당 지도자 등 몇 분께 말씀드린 바 있다”고 주장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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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