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외국인학교 수상한 사무실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4.12 09:06:42
  • 호수 13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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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이사장 회사가 학교 건물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학교는 범죄로부터 학생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타 시설에 비해 외부인 출입에 더 엄격하다. 하지만 경기수원외국인학교에선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외부인은 사무실이 학교 건물에 있어 출퇴근을 했을 뿐이다. 

경기수원외국인학교(이하 수원외국인학교)는 2006년 9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투자해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에 개교했다. 경기도가 100억원, 지식경제부가 50억원 등 모두 150억원의 건축비를 지원했고, 수원시는 100억원의 터 3만3000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총 250억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됐다.

250억원
혈세 투입

수원외국인학교는 유치원 1학급, 초등학교 5학급, 중학교 3학급, 고등학교 4학급 등 모두 13개 학급(학생 정원 260명)으로 이뤄졌다. 도서관, 체육관(수영장), 강당 등 각종 편의시설과 64실 규모의 기숙사가 설치됐고 초·중·고교 전 과정 13개 학급에 520명의 외국인 학생을 수용하며 200명 중 25%는 내국인에게 할당된다.

장기적으로 이 학교의 학생 정원을 500명으로 늘리고 교육 언어도 영어는 물론 독일어, 일본어까지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히면서 수원 인근 거주 외국인들에게 큰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던 중 2011년 수원외국인학교에서 교비 불법 전용 문제가 불거졌다. 설립자였던 P씨가 수원외국인학교 교비 136억원을 빼돌려 대전외국인학교 공사대금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나 형사 처벌을 받았다.


경기도와 수원시는 P씨에게서 운영권을 돌려받고자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2019년 10월, 법원의 조정 결정이 내려졌는데 P씨가 교비 30억여원을 학교에 변제하고 미국에 주소지를 둔 비영리법인 ‘효산국제교육재단’에 운영권을 넘기라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는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진이 P씨와 함께 대전외국인학교를 운영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교 운영권을 넘기지 말아야 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효산교육재단이 결격사유도 없을 뿐더러 인가를 하지 않으면 학교 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법원 결정에 따라 효산국제교육재단에 운영권을 넘겼다. 

2020년 1월 수원시와 효산국제교육재단이 맺은 운영 협약서에는 “효산국제교육재단은 학교 건축물과 토지를 어떤 경우에도 담보물로 제공하거나 임대, 매각, 기타 처분을 할 수 없다”며 “효산국제교육재단이 법령 또는 협약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본 협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임대계약서도 없이 무상 사용
외부인 출입…솜방망이 처벌

그런데 효산국제교육재단이 운영하는 수원외국인학교에 한 중소기업 사무실이 입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해 8월 에이치앤드씨는 취업 포털사이트에 채용공고를 올렸다. 부동산 임대 및 개발업과 무역업이 주력 사업인 에이치앤드씨의 주소지는 수원외국인학교와 동일했다. 

모집 분야는 사업기획이며 세부 업무 내용으로 보유 부동산 매각, 필요 부동산 매입, 건물 신축과 관련된 업무 소개 등이었다. 이외에도 대관 업무와 민원 신청인 법무 업무도 있었다. 학교와는 전혀 무관한 업무들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11월, 수원 시민 A씨가 에이치앤드씨 위장 사무실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 수면 위로 드러났다. A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에이치앤드씨의 거짓 구인공고를 확인해달라”는 민원을 접수했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이하 경기지청)은 “해당 기업은 수원시를 소재지로 해 채용공고 당시인 8월24일부터 10월23일까지 실제 근무장소가 수원시였음을 확인했다”고 답변했다. 

결국 지난달 3일 A씨는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에 “에이치앤드씨가 취업 포털사이트를 통해 수원외국인학교 주소로 특정하고 구인모집 광고를 했다. 학교 건물을 기업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에이치앤드씨 본사 사무실이 평택으로 돼있지만 식당이었으며 거짓 장소로 확인됐다. 비슷한 기간 안양, 군포 등을 근무지라고 한 뒤 채용 공고하는 내용이 있어 현장을 확인했으나, 사무실로 이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민원을 넣었다.

이어 “수원외국인학교 내에서 부동산 매매하는 기업이 학교 시설물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것이 적법한 것이냐”고 물었다. 

교육청 적발
고작 ‘주의’만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학교시설 사용 허가는 교육 목적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학교의 장이 결정할 사항이다. 해당 학교를 방문해 해당 기업이 행정적 처리 없이 학교시설을 이용하고 해당 기업 직원이 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답변했다. 

또 “법인의 모든 재산의 관리책임은 이사장에게, 학교장은 교육용 기본재산과 학교용 보통재산의 운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해당 기업이 수원외국인학교장의 허가 등 행정적 처리 없이 학교 재산(시설)을 사용한 사실과 관련해 학교 재산(시설)에 대한 관련자의 업무 소홀이 인정되기에 이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고 앞으로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도록 조치했음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수원교육청에 따르면, 해당 기업이 이용한 건물은 학생 출입이 없는 별도의 건물로, 해당 기업의 물건은 모두 반출된 상태고 직원들 또한 더 이상 학교를 출입하지 않고 있다.

초·중등 교육법 제60조2(외국인학교) 및 ‘외국인학교 및 외국인유치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 제5조(설립 자격)에 의거해 수원외국인학교 운영권이 있는 효산국제교육재단은 비영리외국법인으로 수원외국인학교 운영과 관련해 수원시와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학교 운영 관련 검토가 요구되기에 필요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수원시에 통보하는 작업을 마쳤다. 당해 법인이 학교 재산(시설)을 임대계약서 작성 등 행정적인 처리 없이 기업이 무상으로 사용하게 한 사실 등 접수내역을 전달한 것이다.

등기와 다른
실제 사무실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해당 기업과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장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없어 해당 기업에 대한 조치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의 사무실 사용 시기와 해당 조치를 묻는 질문에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교시설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을 적발하고 ‘주의’ 촉구를 했다. 사무실 사용 기간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경인미래신문>에 따르면 수원시도 해당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시가 재발 방지를 위해 수원외국인학교에 ‘엄중 경고’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치앤드씨는 어떻게 학교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에이치앤드씨 연혁을 살펴봐야 한다. 에치앤드씨의 시작은 2003년 샘메디칼로 시작했다가 1년 뒤 2004년 씨에스메디케어로 사명을 변경했다. 5년 뒤 씨에스메디케어 대표이사로 이모씨가 취임하는데, 수원외국인학교 운영을 맡는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장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효산국제교육재단 홈페이지에 이사장 사진과 함께 인사말이 나와 있다. 이씨 밑에서 일했다고 밝힌 A씨에게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장 사진을 보여주자 “씨에스메디케어 회장이었던 그 사람이 맞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고용노동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기업 대표이사를 제외한 근로자 5명이 학교에서 근무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씨가 효산교육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학교 건물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5명 학교로 출퇴근
“별관 사무실 비어서 사용”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이씨와 관련해 ”에이치앤드씨 전임 대표가 수원외국인학교 이사장이었다. 해당 인물이 이사장이었던 시절 학교에 별관 사무실이 비어있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언급한 내용이 담겼다.

이어 “해당 주소가 학교다 보니 부동산 등기등본부에 등록하지 않고 평택 사무실로 기재한 뒤 실제 근무는 별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씨가 운영한 씨에스메디케어는 이상한 회사였다. 업무 내용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연수원 관리인 모집, 조경관리, 집사 등 갖은 업무를 직원들에게 시켰다”며 “그뿐 아니라 연장, 휴일수당은 정상적으로 지급하지도 않았다. 모집공고에 표기돼있었는데, 수당에 대해선 면접 때 꼼수를 제안했다”고 이씨가 운영한 회사에 대해 폭로했다.  

이어 “이씨는 ‘실질적으로 야근과 주말 근무도 있다. 주 40시간 이상 초과근무하게 되면 세금을 더 내게 되니 그 나머지 금액은 현금으로 지불할 테니 증거를 남기지 말자’고 말했다. 그 말만 믿고 야근했는데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았다”며 “나 말고도 다른 직원들도 초과근무를 거절하면 이씨 말 한마디에 해고를 당했다. 또 연중무휴 근무는 자연스럽게 강요되고 하루만 쉬어도 퇴직 사유가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A씨는 에이치앤드씨(당시 씨에스메디케어)와 부당 해고와 임금체불건으로 법정 다툼을 벌였다. A씨는 부당해고에 관한 보상으로 280여만원을, 임금체불에 관한 보상으로 100여만원을 회사로부터 받았다. 

에이치앤드씨 사무실은 2004년부터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내에서만 움직였다. 2016년 5월부터 만안구 안양로 모 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일 기자가 해당 주소지를 직접 찾아가 에이치앤드씨에 대해 묻자 해당 건물 관리 경비원은 “이 건물에서 이사간 지 1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에이치앤드씨가 사용했던 지하 1층은 다른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1년 전
이사 갔다”

현재는 에이치앤드씨 군포지점으로 이름을 바꾼 뒤 주소까지 변경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포지점 주소로 찾아갔지만 회사 간판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외국인학교 측은 “해당 내용에 답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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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