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울고 웃는 노총

그나마 따뜻했던 봄날은 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한국 노동계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이들은 5년 만에 벌어진 보수세력의 정권 탈환에 씁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대화가 통했던 문재인정부 아래에서 이뤄낸 결실들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빛바랠 위기에 처한 탓이다. 일단은 정권과 대화를 시도하는 모양새지만 반(反) 노조 성향을 공공연히 밝혀온 차기 정부와의 갈등 표출은 결국 시간문제라는 관측이다. 

노동계에 있어 문재인정부 5년은 앞선 보수정권 10년에 비하면 봄날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전방위적인 노조 압박이 사라지면서 ‘민중 총궐기’ 등 극한 대립도 잦아들었고, 비교적 협조적인 정부와 소통하면서 각종 성과도 만들어냈다.

각종 성과

특히 노동계에서 꾸준히 주장해온 노동시간 단축·최저임금 상승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주당 68시간이었던 법정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줄어든 반면, 최저임금은 2018년 16.4%·2019년 10.9%로 대폭 인상됐다.

이외에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공공 부문 노동이사제 등 노동계 숙원사업으로 불리던 굵직한 사안들도 문정부 들어 제도화됐다.

문제는 윤석열정부가 지난 5년간의 ‘공든 탑’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최저임금제도부터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앞서 “최저임금을 200만원으로 잡으면 150만원, 170만원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일을 못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최저임금 재조정·차등 적용 필요성 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이미 법제화된 제도다.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에는 “최저임금은 업종별로 구분해서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실제 적용된 경우는 1988년 단 한 차례뿐이다. 하지만 문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서 ‘차등 적용 부활’을 요구하는 사용자 측 목소리는 점차 거세져왔다. 지난 5년간 꾸준히 최저임금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됐고, 매번 부결되긴 했어도 점차 찬반 표 차이가 좁혀지는 양상이다.

이듬해 적용될 최저임금 심의는 내달 5일부터 시작된다. 임기 시작 이전부터 노동계와 차기 정부의 대립이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문 들어 일군 노동 개혁
윤으로 가면 말짱 도루묵?

윤 당선인은 근로시간 규정도 손본다는 방침이다. “주 52시간제를 폐지하겠다고 한 적 없다”고 선을 긋긴 했지만, 공약집에는 재계 요구사항인 ‘노동시간 유연화’가 전면 배치됐다.

구체적 방안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1년 이내로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 연 단위 도입, 주 52시간제 예외 업종 확대 등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윤 당선인은 대한상공회의소 특별강연에서 “주당 52시간이라는 것을 연평균으로 유지하더라도 하는 업무 종류와 노사 간 합의에 따라 유연화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재택근무가 많아지면 근무시간보다 실적과 질에 따라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도 연이어 우려를 표명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이 법을 겨냥해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지난 2일 TV 토론에서는 “구속 요건이 약간 애매해 형사 기소 시 여러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발언했다.

공공 부문 노동이사제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찬성하고 나섰지만, 현재 입장은 안갯속이다. 윤 당선인과 단일화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가 강경한 반대 의사를 드러낸 바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양대 노총은 이 같은 윤 당선인 행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노동개혁 퇴보는 물론이고 대정부 영향력 약화, 노조 활동 압박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공개 지지한 바 있다. 정책협약을 맺고 대선 승리 실천단 활동까지 이어왔다.

이 같은 전력이 차기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 발돋움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노총 지도부를 정면 비판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에 임명되면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임 의원은 지난달 한국노총의 이 전 후보 지지 결정을 겨냥해 “한국노총 현 집행부의 퇴행적 사고를 규탄한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었던 바 있다.

아울러 그간 이어온 민주당과의 밀월 관계도 빛이 바래게 됐다. 한국노총은 지난 제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정책연대를 맺은 이후로 민주당과의 정책 협의 등을 통해 핵심 사업들을 진행해왔다.

내부 분열도 수습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한국노총 산하 노조 다수가 상급 단체 방침에서 이탈해 윤 당선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전 후보와의 정책협약 체결을 전후로 한국노총 산하 택시노조위원장·부산지역본부 산별 대표자·전국외국기관노조연맹 등지에서 윤 당선인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

안팎으로 시끄러운 한국노총
민주노총 투쟁 전 대화 시도 

내부 이견을 충분히 조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이번에 조합원 총투표 대신 840여명 규모 임시대의원회의를 통해 최종 지지후보를 결정했다. 앞서 17대 대선과 19대 대선에서는 지지후보를 결정하기 위해 총투표를 진행했었다.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 방침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지난해부터 “윤석열은 자격 미달이고, 이재명은 철학이 없다”며 양비론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다만 이 전 후보는 비교적 친노조적인 입장을 낸 것에 반해 윤 당선인은 연일 민주노총을 겨냥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대립각을 세웠다.

더 강한 충돌이 우려되는 이유다.

윤 당선인은 지난 6일 거리 유세에서 “전체 근로자의 4%를 대변하는 강성 노조는 완전히 치외법권”이라며 “강성 노조, 이게 왜 강성인 줄 아느냐. 세고 열심히 해서만 강성이 아니라 불법을 일삼는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윤 후보에 대한 비판 공세를 이어왔다. 당선 직후인 지난 10일에도 “(윤 당선인의)노동에 대한 무지와 노동조합 혐오에 기초한 ‘막말’을 볼 때 당장 오늘부터 노동자, 민중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것이 예견돼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종 집회와 파업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6월 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9월 말 ‘전국 동시다발 총파업 투쟁’, 11월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진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일단 교감

다만 민주노총은 우선 윤 당선인에게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2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장과 윤 당선인의 만남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 측은 “통합의 첫걸음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라며 “지금이라도 대통령 당선인은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노동정책을 구체적으로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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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