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로 지역주택조합 240억 사기 의혹 전말

‘판박이 먹튀’ 꼬리 잡힌 지주택 빠꼼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구로 5동에 ‘지역주택조합’을 세우겠다며 피해자들을 유인, 돈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 류모 대표. 그는 진행 중인 재판에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장의 신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가 서울 모처에서 벌인 또 다른 사건이 드러나면서다. 두 사건의 양상은 그야말로 ‘판박이’. 계획된 범죄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하 남부지검)은 지난해 11월18일 구속영장을 발부해 류 대표와 전 조합장 이모씨 등 2명을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함께 피소된 한모씨도 같이 재판에 넘겼다. 이들에게는 사기·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류 대표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19개에 달한다.

사기 혐의
구속 재판

<일요시사>는 남부지검이 작성한 사건의 공소장 전문을 입수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류 대표는 2015년 당시 구로 5동 532번지 일대에서 8년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돼온 일대 개발 사업권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가 일부 주민에게 받아놨던 ‘지역개발 동의서’도 함께 넘겨받았다.

이 동의서에는 단순히 ‘부동산을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만 담겨있다. ‘토지 사용 권한을 넘기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주택법에서 조합설립 인가의 요건이 되는 ‘토지 사용권원 확보’의 근거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이 동의서를 토지 사용권원 확보 서류로 둔갑시켜 조합원들을 속였다. 이 동의서 작성 비율과 국공유지·도로 비율 등을 합친 수치가 토지 사용권원 확보율인 것처럼 꾸민 뒤 “토지 확보가 거의 완료됐다. 조만간 착공해 2020년쯤에는 입주 가능하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리는 수법이었다. 


이들이 조합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안내장을 발송한 때는 2017년. 당시 실제로 확보된 토지 사용권원 확보율은 28%에 불과했다. 심지어 토지 구매율은 전체 토지의 3%를 채 넘지 못했다. 이 같은 진행 상황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남부지검은 공소장에 “(피고인들은)별다른 자금도 없고, 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다”며 “이들이 직접 설계·승인한 각종 용역계약 구조에 의하면 조합원들에게 1·2차 계약금을 모두 지급받는다고 하더라도, 여러 수수료를 빼고 나면 사업 추진을 위한 필수 사업비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피해자 477명을 기망해 조합 가입 계약금 명목으로 239억6950만원을 편취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2배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한 피해자는 “총 조합원 수가 1000명 이상”이라며 “고소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피해까지 포함하면 총 피해 금액은 47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남부지검에 따르면 류 대표는 빼돌린 투자금 일부로 회사 운영비를 충당했다. 투자금·마사회 마권 구입 등 개인 목적으로도 사용했다. 또 돈을 빼돌리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토지매입 용역비 부당 지출, 부지 매매대금 부풀리기 등 5가지 유형의 업무상 배임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주된 세탁 창구는 토지 용역회사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토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3개월 뒤, 류 대표가 용역회사를 차명으로 인수해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이후 용역회사가 토지매입 및 동의율을 부풀려 용역 대금을 청구하면, 조합장이 승인해주는 방식이었다.

사기·배임 혐의…피해 금액 470억 추산
결백? 다른 조합서도 사기 치다 쫓겨나 


류 대표는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 류 대표 측 법률대리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사업 과정에서 개인적인 편취나 배임 등은 없었다”며 “오해가 발생한 부분이 있는데, 마침 사업 지연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던 조합원들이 류 대표를 찍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류 대표는 조합원들이 낸 사업비가 모자라자, 자신이 받을 몫인 업무 대행비까지 대여해가며 사업을 이어나갔다”며 “이 업계에서 용역회사로 뒷돈을 빼돌리는 일이 빈번한 것은 안다. 하지만 류 대표는 사업비가 모자라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용역회사를) 인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류 대표는 여전히 사업을 정상화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제시한 류 대표의 횡령·배임 내역에 대해서는 “검찰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같은 류 대표 측 주장과 배치되는 과거 행적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요시사>는 류 대표가 서울 모처의 ‘A동’에서 벌인 다른 지역주택조합 사업 경과를 추적했다. 취재 결과, 류 대표가 A동에서도 구로 5동 지역주택조합 사업(이하 ‘구로 사업’)과 유사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정황이 드러났다. 류 대표 주장의 모순점도 여럿 발견됐다. 사정 당국 역시 이를 인지하고 이미 수사에 착수했다.

구로 5동처럼, A동에도 답보상태에 놓인 지역주택조합 사업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2003년 처음 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 2010년 들어 조합변경 인가를 한 차례 승인받은 게 활동의 전부였다. 류 대표는 2017년 초를 전후로 사업을 넘겨받았다. 1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판박이’ 사업을 하나 더 벌인 셈이다.

1년 전과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사업 자금을 끌어올 만한 곳이 바로 있었다는 점이었다.

앞서 류 대표는 막상 구로 사업을 인수하고도 초기 사업자금이 없어 애를 먹었다. 결국 1년이 지나 한씨가 투자처를 연결해준 뒤에야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류 대표가 받은 투자금은 약 20억원으로 알려졌다.

류 대표는 2016년 9월 업무대행사를 세우고, 그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은 2017년 초에는 토지 용역회사와 A동 사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그런데 이때 류 대표가 두 건이나 되는 인수자금을 어디서 마련해왔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류 대표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당시 그는 인수자금을 확보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희생양? 
혐의 부인

류 대표는 앞서 “투자금과 업무 대행비 등 회사의 각종 재원은 만성 적자 상태에 놓인 조합을 유지하는 데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류 대표가 두 인수 건을 모두 무상으로 마무리한 것이 아닌 이상, 자금을 끌어올 구멍은 조합비와 회사 수익금 단 두 곳뿐이었다. 


“조합비를 빼돌리지 않았다” “업무 대행비도 챙기지 못했다”는 두 주장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류 대표 고소에 참여한 구로 조합원들은 검찰이 공소장에서 언급한 ‘빼돌린 조합금’이 A동 사업 인수자금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또 류 대표는 사업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구로 사업 초창기와 유사한 수법을 활용해 A동 조합원을 모집해나갔다. 그는 이번에도 허위사실까지 퍼트리면서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류 대표는 A동에서도 사업을 진행할 의지를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A동 사업을 맡은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전 사항이 전무한 것이 그 방증이다.

마치 구로 사업처럼, 토지 확보율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멈춰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 확보한 땅들은 ‘전시용’으로 의심받고 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현장을 찾았을 때, 땅 곳곳을 확보하는 중으로 착각하도록 조금씩 사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에 관해 류 대표는 “2017년부터 땅값이 급등해 사지 못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아울러 관련 인가 승인이나 규제 해제도 이뤄낸 게 없다. 심지어는 류 대표가 토지 성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조차 미지수다.


국토부가 제공하는 ‘토지e음’ 서비스에 따르면 A동 사업 부지는 ‘제2종 7층 일반 주거지역’으로 분류돼있다. 용어 그대로 지상 7층 이하의 건축만 허용되는 땅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저층 주거환경 보호·난개발 방지 등이 필요한 지역에 설정되는, 일종의 제한 장치다.

지난해 말에 들어서야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서 층수 제한을 25층까지 높일 수 있게 됐다.

류 대표는 이 땅에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며 조합원들을 불러 모았다. 계획대로 지으려면 제3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는 게 필수적이다. 하지만 류 대표와 업무대행사는 지난 5년 동안 용도 변경은커녕 조합변경 인가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관할 구청에 문의해봤다. 구청 관계자는 “해당 지역은 2010년 조합 변경 인가 승인 이후 변동사항이 없었다”며 “2018년 한 차례 변경 인가 요청이 들어온 적은 있지만 반려됐다”고 밝혔다.

류 대표의 ‘30층 아파트’ 계획이 허가받을 수 있을지도 물었다. 이 관계자는 “우선 30층 사업 계획을 전달받은 바 없다. 반려된 2018년 요청도 2010년 인가와 동일한 18층짜리 사업 계획을 제시했다”며 “이전에 검토한 바 없어 즉답은 어렵지만, 무조건 통과할 수 있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고 답했다.

한편 류 대표가 당시 사업 계획을 굳이 18층에 맞춰 제시한 배경은 땅 용도를 제2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제2종 일반 주거지역에 18층 층수 제한이 있었다. 종전에 제2종 일반 주거지역에서 지을 수 있었던 최고 층수를 써낸 셈이다.

류 대표가 A동 사업을 처음 맡은 때가 2017년이다. 최소 1년 이상을 땅 용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도 변경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왔다는 게 된다.

다만 층수 혼동 문제가 조합 인가 반려의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짜고 친 정황
의도된 한탕

구청 관계자는 “조합 설립·변경 인가에서, 사업 계획은 참고만 한다”며 “조합 인가 승인과 사업 계획 승인은 별개의 문제다. 조합 인가 승인을 우선 받고, 사업 계획 승인은 차후에 따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령 그때 류 대표가 30층짜리 사업 계획을 제시했더라도 조합 변경 절차에만 문제가 없었다면 변경 인가가 승인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류 대표가 A동 사업을 맡은 후 사업은 사실상 일시정지됐다. 반면 조합 재정은 ‘밑 빠진 독’이 됐다. 각종 운영비와 수수료가 계속 빠져나간 탓이다. 그동안 꾸준히 제 몫을 챙기왔던 류 대표의 업무대행사와 조합 사무실 등은 지난해 류 대표가 구속된 뒤 연락이 두절됐다.

A동 조합도 구로 사업처럼 류 대표로 인해 최소 100억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도 “류 대표가 구로와 A동 사업비를 수표로 인출해 보관하다 횡령했다”고 명시돼있다. 구로 사건 공소장에서 일부 확인되는 A동 조합 피해 금액만 집계해봐도 최소 15억원 수준이다.

불안감을 느낀 일부 조합원은 ‘보장증서’를 근거로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류 대표가 구로·A동 조합원들에게 나눠줬던 보장증서에는 “신탁기관이 안전하고 투명하게 자금을 관리하겠다” “사업 계획 미승인이 확정될 경우, 납부한 분담금 전액을 돌려주겠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조합원들이 보장증서를 근거로 투자금을 회수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단한다. 구로와 A동 모두 관련 안건이 총회에서 논의된 적 없어 보장증서의 법적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지역주택조합 관련 민사소송을 여러 번 맡아봤다는 한 변호사는 “이 같은 내용의 보장증서가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단체법에 근거해 조합 총회에서 결의를 받아야 한다”며 “이미 지역주택조합 관련 사건에서 비슷한 증서들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판례가 많다”고 전했다.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던 조합 신탁 예치금도 무사하지 못했다. 조합장들의 묵인·동조 속에서 류 대표는 자금을 사실상 독단적으로 활용했다. 업무대행사를 감시·견제해야 할 조합장들은 알고 봤더니 류 대표와 ‘한패’였다.

구로 사업 전 조합장 이씨와 A동 사업 조합장 한씨는 모두 직책을 맡기 전부터 류 대표와 친분이 있었다. 이윽고 이들은 류 대표 뜻에 따라 움직이는 ‘낙하산’ 조합장이 됐다.

마권 구입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
은폐 위해 대금 부풀리기 등 동원

이들이 처음 마주한 시기는 2015년으로 류 대표가 구로 5동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이씨와 한씨는 구로 5동 주민으로, 류 대표 이전에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해오던 ‘지역개발주민 협의회’ 소속이었다. 일명 ‘지역개발 동의서’를 받고 다닌 장본인들이었다.

이들은 류 대표가 구로 사업을 인수했을 때부터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씨는 지역개발주민 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이력을 살려 구로 조합 추진위원회 위원장·조합장 등을 맡았다. 그는 류 대표가 차린 업무대행사와 조합 간의 용역·대리사무 계약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씨가 조합원들에게 류 대표의 비위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구로 사업 피해자는 “이씨는 미진한 사업 진행 상황에 의구심을 느낀 조합원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했음에도 마땅한 이유 없이 이를 뭉갰다”며 “결국 대법원까지 법적 다툼이 이어졌고, 이씨는 벌금형과 자격박탈에 처해졌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2016년에는 구로에서 토지 용역 작업을 하다가, 2017년 A동 사업으로 넘어가 조합장이 됐다. A동 조합원들은 이들의 관계를 뒤늦게 알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허탈해했다.

또 조합장들은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를 ‘바지 조합장’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특정 건에 대해)왜 도장을 찍어준 것이냐”는 추궁에 “조합장 도장은 류 대표가 가지고 다녔다. 본인 마음대로 찍고 다녀서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A동 조합원들도 류 대표와 사업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 절차를 마쳤다. 현재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한 A동 조합원은 “압수수색도 2번이나 진행됐고 수사도 잘 진행 중이라고 전달받았다”며 “혐의 입증은 문제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류 대표와 한씨의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이들을 사업에서 몰아내기로 했다. 사업을 다시 본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서다. 이들은 과반수의 의견을 모아 총회를 열고, 관련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한씨가 총회 소집을 거부하면서 시일이 조금 더 소요됐다. 법원에서는 일단 조합장의 손을 들어줬다. 조합 규약에 따르면, 총회 소집 요구 정족수는 과반수가 아닌 3분의 2 이상이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조합원들은 이달 초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다시 확보했다. 법원에도 다시 총회 소집 요구 의사를 전했다. 요건을 충족했으니, 총회 개최와 류 대표 ‘축출’은 사실상 시간문제가 됐다.

사업 정상화
물갈이 예고

한 조합원은 “류 대표는 애초에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며 “총회가 열리는 대로 바로 쫓아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류 대표가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 사업 자금만 잘 회수되면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우리는 류 대표 처벌보다도 사업 정상화에 방점을 두고 모든 노력을 쏟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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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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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