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로 지역주택조합 240억 사기 의혹 전말

‘판박이 먹튀’ 꼬리 잡힌 지주택 빠꼼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구로 5동에 ‘지역주택조합’을 세우겠다며 피해자들을 유인, 돈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 류모 대표. 그는 진행 중인 재판에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장의 신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가 서울 모처에서 벌인 또 다른 사건이 드러나면서다. 두 사건의 양상은 그야말로 ‘판박이’. 계획된 범죄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하 남부지검)은 지난해 11월18일 구속영장을 발부해 류 대표와 전 조합장 이모씨 등 2명을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함께 피소된 한모씨도 같이 재판에 넘겼다. 이들에게는 사기·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류 대표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19개에 달한다.

사기 혐의
구속 재판

<일요시사>는 남부지검이 작성한 사건의 공소장 전문을 입수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류 대표는 2015년 당시 구로 5동 532번지 일대에서 8년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돼온 일대 개발 사업권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가 일부 주민에게 받아놨던 ‘지역개발 동의서’도 함께 넘겨받았다.

이 동의서에는 단순히 ‘부동산을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만 담겨있다. ‘토지 사용 권한을 넘기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주택법에서 조합설립 인가의 요건이 되는 ‘토지 사용권원 확보’의 근거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이 동의서를 토지 사용권원 확보 서류로 둔갑시켜 조합원들을 속였다. 이 동의서 작성 비율과 국공유지·도로 비율 등을 합친 수치가 토지 사용권원 확보율인 것처럼 꾸민 뒤 “토지 확보가 거의 완료됐다. 조만간 착공해 2020년쯤에는 입주 가능하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리는 수법이었다. 


이들이 조합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안내장을 발송한 때는 2017년. 당시 실제로 확보된 토지 사용권원 확보율은 28%에 불과했다. 심지어 토지 구매율은 전체 토지의 3%를 채 넘지 못했다. 이 같은 진행 상황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남부지검은 공소장에 “(피고인들은)별다른 자금도 없고, 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다”며 “이들이 직접 설계·승인한 각종 용역계약 구조에 의하면 조합원들에게 1·2차 계약금을 모두 지급받는다고 하더라도, 여러 수수료를 빼고 나면 사업 추진을 위한 필수 사업비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피해자 477명을 기망해 조합 가입 계약금 명목으로 239억6950만원을 편취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2배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한 피해자는 “총 조합원 수가 1000명 이상”이라며 “고소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피해까지 포함하면 총 피해 금액은 47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남부지검에 따르면 류 대표는 빼돌린 투자금 일부로 회사 운영비를 충당했다. 투자금·마사회 마권 구입 등 개인 목적으로도 사용했다. 또 돈을 빼돌리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토지매입 용역비 부당 지출, 부지 매매대금 부풀리기 등 5가지 유형의 업무상 배임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주된 세탁 창구는 토지 용역회사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토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3개월 뒤, 류 대표가 용역회사를 차명으로 인수해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이후 용역회사가 토지매입 및 동의율을 부풀려 용역 대금을 청구하면, 조합장이 승인해주는 방식이었다.

사기·배임 혐의…피해 금액 470억 추산
결백? 다른 조합서도 사기 치다 쫓겨나 


류 대표는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 류 대표 측 법률대리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사업 과정에서 개인적인 편취나 배임 등은 없었다”며 “오해가 발생한 부분이 있는데, 마침 사업 지연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던 조합원들이 류 대표를 찍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류 대표는 조합원들이 낸 사업비가 모자라자, 자신이 받을 몫인 업무 대행비까지 대여해가며 사업을 이어나갔다”며 “이 업계에서 용역회사로 뒷돈을 빼돌리는 일이 빈번한 것은 안다. 하지만 류 대표는 사업비가 모자라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용역회사를) 인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류 대표는 여전히 사업을 정상화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제시한 류 대표의 횡령·배임 내역에 대해서는 “검찰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같은 류 대표 측 주장과 배치되는 과거 행적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요시사>는 류 대표가 서울 모처의 ‘A동’에서 벌인 다른 지역주택조합 사업 경과를 추적했다. 취재 결과, 류 대표가 A동에서도 구로 5동 지역주택조합 사업(이하 ‘구로 사업’)과 유사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정황이 드러났다. 류 대표 주장의 모순점도 여럿 발견됐다. 사정 당국 역시 이를 인지하고 이미 수사에 착수했다.

구로 5동처럼, A동에도 답보상태에 놓인 지역주택조합 사업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2003년 처음 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 2010년 들어 조합변경 인가를 한 차례 승인받은 게 활동의 전부였다. 류 대표는 2017년 초를 전후로 사업을 넘겨받았다. 1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판박이’ 사업을 하나 더 벌인 셈이다.

1년 전과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사업 자금을 끌어올 만한 곳이 바로 있었다는 점이었다.

앞서 류 대표는 막상 구로 사업을 인수하고도 초기 사업자금이 없어 애를 먹었다. 결국 1년이 지나 한씨가 투자처를 연결해준 뒤에야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류 대표가 받은 투자금은 약 20억원으로 알려졌다.

류 대표는 2016년 9월 업무대행사를 세우고, 그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은 2017년 초에는 토지 용역회사와 A동 사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그런데 이때 류 대표가 두 건이나 되는 인수자금을 어디서 마련해왔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류 대표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당시 그는 인수자금을 확보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희생양? 
혐의 부인

류 대표는 앞서 “투자금과 업무 대행비 등 회사의 각종 재원은 만성 적자 상태에 놓인 조합을 유지하는 데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류 대표가 두 인수 건을 모두 무상으로 마무리한 것이 아닌 이상, 자금을 끌어올 구멍은 조합비와 회사 수익금 단 두 곳뿐이었다. 


“조합비를 빼돌리지 않았다” “업무 대행비도 챙기지 못했다”는 두 주장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류 대표 고소에 참여한 구로 조합원들은 검찰이 공소장에서 언급한 ‘빼돌린 조합금’이 A동 사업 인수자금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또 류 대표는 사업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구로 사업 초창기와 유사한 수법을 활용해 A동 조합원을 모집해나갔다. 그는 이번에도 허위사실까지 퍼트리면서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류 대표는 A동에서도 사업을 진행할 의지를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A동 사업을 맡은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전 사항이 전무한 것이 그 방증이다.

마치 구로 사업처럼, 토지 확보율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멈춰 있다. 가뭄에 콩 나듯이 확보한 땅들은 ‘전시용’으로 의심받고 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현장을 찾았을 때, 땅 곳곳을 확보하는 중으로 착각하도록 조금씩 사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에 관해 류 대표는 “2017년부터 땅값이 급등해 사지 못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아울러 관련 인가 승인이나 규제 해제도 이뤄낸 게 없다. 심지어는 류 대표가 토지 성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조차 미지수다.


국토부가 제공하는 ‘토지e음’ 서비스에 따르면 A동 사업 부지는 ‘제2종 7층 일반 주거지역’으로 분류돼있다. 용어 그대로 지상 7층 이하의 건축만 허용되는 땅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저층 주거환경 보호·난개발 방지 등이 필요한 지역에 설정되는, 일종의 제한 장치다.

지난해 말에 들어서야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서 층수 제한을 25층까지 높일 수 있게 됐다.

류 대표는 이 땅에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며 조합원들을 불러 모았다. 계획대로 지으려면 제3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는 게 필수적이다. 하지만 류 대표와 업무대행사는 지난 5년 동안 용도 변경은커녕 조합변경 인가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관할 구청에 문의해봤다. 구청 관계자는 “해당 지역은 2010년 조합 변경 인가 승인 이후 변동사항이 없었다”며 “2018년 한 차례 변경 인가 요청이 들어온 적은 있지만 반려됐다”고 밝혔다.

류 대표의 ‘30층 아파트’ 계획이 허가받을 수 있을지도 물었다. 이 관계자는 “우선 30층 사업 계획을 전달받은 바 없다. 반려된 2018년 요청도 2010년 인가와 동일한 18층짜리 사업 계획을 제시했다”며 “이전에 검토한 바 없어 즉답은 어렵지만, 무조건 통과할 수 있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고 답했다.

한편 류 대표가 당시 사업 계획을 굳이 18층에 맞춰 제시한 배경은 땅 용도를 제2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제2종 일반 주거지역에 18층 층수 제한이 있었다. 종전에 제2종 일반 주거지역에서 지을 수 있었던 최고 층수를 써낸 셈이다.

류 대표가 A동 사업을 처음 맡은 때가 2017년이다. 최소 1년 이상을 땅 용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도 변경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왔다는 게 된다.

다만 층수 혼동 문제가 조합 인가 반려의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짜고 친 정황
의도된 한탕

구청 관계자는 “조합 설립·변경 인가에서, 사업 계획은 참고만 한다”며 “조합 인가 승인과 사업 계획 승인은 별개의 문제다. 조합 인가 승인을 우선 받고, 사업 계획 승인은 차후에 따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령 그때 류 대표가 30층짜리 사업 계획을 제시했더라도 조합 변경 절차에만 문제가 없었다면 변경 인가가 승인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류 대표가 A동 사업을 맡은 후 사업은 사실상 일시정지됐다. 반면 조합 재정은 ‘밑 빠진 독’이 됐다. 각종 운영비와 수수료가 계속 빠져나간 탓이다. 그동안 꾸준히 제 몫을 챙기왔던 류 대표의 업무대행사와 조합 사무실 등은 지난해 류 대표가 구속된 뒤 연락이 두절됐다.

A동 조합도 구로 사업처럼 류 대표로 인해 최소 100억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도 “류 대표가 구로와 A동 사업비를 수표로 인출해 보관하다 횡령했다”고 명시돼있다. 구로 사건 공소장에서 일부 확인되는 A동 조합 피해 금액만 집계해봐도 최소 15억원 수준이다.

불안감을 느낀 일부 조합원은 ‘보장증서’를 근거로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류 대표가 구로·A동 조합원들에게 나눠줬던 보장증서에는 “신탁기관이 안전하고 투명하게 자금을 관리하겠다” “사업 계획 미승인이 확정될 경우, 납부한 분담금 전액을 돌려주겠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조합원들이 보장증서를 근거로 투자금을 회수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단한다. 구로와 A동 모두 관련 안건이 총회에서 논의된 적 없어 보장증서의 법적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지역주택조합 관련 민사소송을 여러 번 맡아봤다는 한 변호사는 “이 같은 내용의 보장증서가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단체법에 근거해 조합 총회에서 결의를 받아야 한다”며 “이미 지역주택조합 관련 사건에서 비슷한 증서들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판례가 많다”고 전했다.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던 조합 신탁 예치금도 무사하지 못했다. 조합장들의 묵인·동조 속에서 류 대표는 자금을 사실상 독단적으로 활용했다. 업무대행사를 감시·견제해야 할 조합장들은 알고 봤더니 류 대표와 ‘한패’였다.

구로 사업 전 조합장 이씨와 A동 사업 조합장 한씨는 모두 직책을 맡기 전부터 류 대표와 친분이 있었다. 이윽고 이들은 류 대표 뜻에 따라 움직이는 ‘낙하산’ 조합장이 됐다.

마권 구입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
은폐 위해 대금 부풀리기 등 동원

이들이 처음 마주한 시기는 2015년으로 류 대표가 구로 5동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이씨와 한씨는 구로 5동 주민으로, 류 대표 이전에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해오던 ‘지역개발주민 협의회’ 소속이었다. 일명 ‘지역개발 동의서’를 받고 다닌 장본인들이었다.

이들은 류 대표가 구로 사업을 인수했을 때부터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씨는 지역개발주민 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이력을 살려 구로 조합 추진위원회 위원장·조합장 등을 맡았다. 그는 류 대표가 차린 업무대행사와 조합 간의 용역·대리사무 계약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씨가 조합원들에게 류 대표의 비위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구로 사업 피해자는 “이씨는 미진한 사업 진행 상황에 의구심을 느낀 조합원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했음에도 마땅한 이유 없이 이를 뭉갰다”며 “결국 대법원까지 법적 다툼이 이어졌고, 이씨는 벌금형과 자격박탈에 처해졌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2016년에는 구로에서 토지 용역 작업을 하다가, 2017년 A동 사업으로 넘어가 조합장이 됐다. A동 조합원들은 이들의 관계를 뒤늦게 알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허탈해했다.

또 조합장들은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를 ‘바지 조합장’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특정 건에 대해)왜 도장을 찍어준 것이냐”는 추궁에 “조합장 도장은 류 대표가 가지고 다녔다. 본인 마음대로 찍고 다녀서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A동 조합원들도 류 대표와 사업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 절차를 마쳤다. 현재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한 A동 조합원은 “압수수색도 2번이나 진행됐고 수사도 잘 진행 중이라고 전달받았다”며 “혐의 입증은 문제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류 대표와 한씨의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이들을 사업에서 몰아내기로 했다. 사업을 다시 본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서다. 이들은 과반수의 의견을 모아 총회를 열고, 관련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한씨가 총회 소집을 거부하면서 시일이 조금 더 소요됐다. 법원에서는 일단 조합장의 손을 들어줬다. 조합 규약에 따르면, 총회 소집 요구 정족수는 과반수가 아닌 3분의 2 이상이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조합원들은 이달 초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다시 확보했다. 법원에도 다시 총회 소집 요구 의사를 전했다. 요건을 충족했으니, 총회 개최와 류 대표 ‘축출’은 사실상 시간문제가 됐다.

사업 정상화
물갈이 예고

한 조합원은 “류 대표는 애초에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며 “총회가 열리는 대로 바로 쫓아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류 대표가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 사업 자금만 잘 회수되면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우리는 류 대표 처벌보다도 사업 정상화에 방점을 두고 모든 노력을 쏟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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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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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