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로 남은 이재명의 앞날

눈앞에 놓인 세 갈래의 길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는 문구가 한국사회를 뒤덮은 적이 있다. 2등과 3등도 노력해 이룬 성적이지만, 세상은 항상 1등만을 기억한다는 아쉬움이 섞인 소리다. 그러나 적어도 2022년 대선에는 이 문구가 먹혀들지 않아 보인다. 정계는 대선에서 2등을 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을 아직 잊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인사는 그가 정계에 조기 복귀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선택의 순간과 마주한다. 청소년기엔 무엇을 공부해 어떤 학교를 갈지 선택하고, 청년기엔 어떤 일을 하며 장래를 그려 나갈지, 또 누구와 만나 어떤 가정을 꾸려나갈지를 선택한다. 그때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역할인가
책임인가

정치인들의 정치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인은 대통령까지 클 수도 있고, 조기 은퇴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네 번째 대권 도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정치 인생을 조기에 마감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 고문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대선에서 패배하며 낙담하고 있을 그에게 민주당은 당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지방선거를 이끌어야 한다는 ‘역할론’을, 그리고 대선 패배를 책임지고 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책임론’을 내놨다. 역할론을 제시한 쪽은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던 ‘친이(친 이재명)계’ 의원들이고 책임론을 제시한 쪽은 이낙연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시자는 쪽의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이다.

민주당 내부 목소리에 의하면, 대선 패배 후 선대위를 해체하기 직전 이 고문은 몇몇 친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전 대표의 비대위원장 위촉에 반대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패배 후 당내 이권싸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고문은 공식 대통령선거 기간인 지난 4일 선거유세 중에 “정치를 끝내기에는 아직 젊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가 대선 패배를 가정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패배로 정계를 은퇴한다거나 대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말처럼 이 고문은 정계 은퇴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올해 59세(만 57세)인 그는 정치인으로서 이미 약 10년의 커리어를 쌓은 베테랑이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경력을 두루 갖춘 이 고문이 동년배 정치인 중에서 국정 경험은 압도적으로 깊다는 데 정치 평론가 모두가 동의한다.

이번 대선을 거치며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이 고문은 일약 ‘주류’ 정치인으로 탈바꿈했다. 경선부터 본선까지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선거를 치러온 이 고문은 그간 패배한 민주당 대권주자들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많은 것을 얻으며 대선 레이스를 마쳤다.

그중 하나가 ‘차기 대권 가능성 확인’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일컬었던 이번 선거에서 보통 정치인이었으면 하나만 터졌어도 곤란했을 논란이 서너 가지가 연이어 터졌다.

여배우 스캔들부터 형수 욕설 논란, 아들의 도박 논란, 배우자의 갑질 논란, 그리고 대장동 비리 관여 의혹까지 굵직 굵직한 네거티브 뉴스가 매스컴을 장식할 때마다 이 고문의 입지는 좁아져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재빠른 사과와 진실 규명을 적절히 섞어가며 난관들을 헤쳐나갔다.

기지를 발휘한 이 고문의 대처 덕분에 지지율에는 큰 영향이 없었고, 오히려 대선 레이스 막판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격차를 좁혀가는 양상을 그려내며 분전했다.

정계 조기 복귀해 당내 역할?
지방선거 다시 출마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김대중 이후에 논란을 가장 잘 대처한 진보진영의 정치인’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본인 리스크나 도덕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대중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내는 ‘정치’를 잘했다는 평가다.

선대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어떨 때 사과를 해야 하는지, 어떨 때 맞서 싸워야 하는지 이 고문에게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다”고 전했다.

리더의 소양이 충분하다는 평가와 함께 나온 것이 이 고문의 ‘책임론’이다. 이처럼 능력 있고 힘 있는 리더가 지금 민주당 비대위에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현재 민주당은 윤호중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가 구성돼있다.

민주당 선대위는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씨 등 참신한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쇄신 분위기에 힘쓰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많은 지지를 보내준 ‘이대녀’(20대 여자)'를 중심으로 선거 분위기를 개편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윤 비대위원장은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책임’져야 하는 인사다. 지도부가 모두 사퇴한 시점에 비대위를 꾸리기에 부적절한 인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비대위를 이끌 만큼의 여력도 충분하지 못하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윤 비대위원장은 일부 민주당 지지자에게 문자 폭탄을 받는 등 ‘정치적 테러’를 겪고 있다. 다른 선대위 인사들처럼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게 문자의 주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고문에게 역할론이 제시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책임을 져야 하는 후보긴 하지만, 동시에 국민으로부터 지지율로 인정받은 후보이기에 지금 시점에 비대위원장을 맡을 능력이 있는 후보는 그뿐이라는 것이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이 전 대표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려 했으나 당내 분위기와 이 전 대표의 의지에 따라 무산됐다. 리더십 있고, 무게감 있는 인사가 부재한 탓에 돌고 돌아 이 고문에게까지 역할 제안이 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고문 또한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는 만큼, 이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이도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후에 차기 당 대표로 선출된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랬고, 문재인 대통령도 그랬다. 

바로 복귀?
경기 또지사?

다만 이 고문은 여의도 정치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일찌감치 이번 대선은 ‘0’선 의원 간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고문은 그간 민주당 대통령들과는 달리 국회에서 국회의원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없다. 지방 행정 이력만 갖추고 있는 이 고문의 세력은 결집도도 매우 약한 집단으로 평가된다.

비록 이번 대선에서 ‘주류’로 탈바꿈한 모양새지만, 당권이 약한 그에게 당 대표를 맡겨도 되는지 의구심을 품는 이가 많다. 아무래도 ‘친문파’ 의원이 대다수인 민주당 내에서 세력을 통합하기가 쉽지 않지 않겠냐는 걱정이다. 이 고문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캐릭터다.


워낙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논란이 많이 된 탓에 같은 당에 있더라도 그에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이번 경선이 끝난 후 민주당 지도부는 원팀을 표방했지만, 몇몇 중진 의원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 고문의 당선을 진심으로 돕지 않았다.

심지어 이낙연 경선 선거 캠프에 있던 한 인사는 윤 당선인의 캠프에 합류해 활약하는 등 분열을 우회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리더로서의 재목으로서 당에 역량을 보여준 적 없는 이 고문은 이제 시험대 위에 섰다. 다수 의견을 무릅쓴 채 당권을 잡으려면 지난 대선 본선에서 보여준 능력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줘야만 한다.

‘친문’과 ‘친이’의 대립이 극심한 민주당을 하나로 통합해 낼 수 있을지에도 정계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사실 대선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자마자 바로 당내로 복귀한 사례는 아직 없다. 모두 몇 개월에서 몇 년간 야인 생활을 거친 후에 정계로 돌아왔다.

역대 가장 많은 표차로 대선에서 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제18대 총선이 있을 때까지 약 1년간 야인 생활을 했다. 후에 당의 요청으로 서울 동작구에 출마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한 뒤, 2009년에 무소속으로 전북 전주시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10년 2월 민주당에 복당하며 대선 낙선 후 3년 후에나 본격적인 정치 재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 또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한 후 의원직만 유지하고 평당원으로 잠행을 이어오다 2015년에나 당 대표로 선출되며 다시 대권에 도전하게 된다.

200명에 전화
과연 의미는?

평균으로 치면 최근 민주당 후보들은 대권 패배 후 약 3년이 지나서야 세력을 갖추고 당내 실세로 복귀했다. 이 고문은 3주도 채 지나기 전에 당내 복귀설이 나왔기 때문에, 이는 너무 이례적인 데 많은 이가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이 고문이 야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이도 많다. 그간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들이 그랬듯, 패배 후보는 시간을 갖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가장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 승패는 당의 운명을 판가름할 만큼 무게감이 있기에 역대 대선에서 패배한 세력들은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관례처럼 여겼다.

이 고문이 정 전 장관, 문 대통령과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대선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이 그를 휘감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고문에게는 사법 처벌의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이 고문은 지난달 선거유세 과정에서 “저 지면은 감옥 갈 것 같다. 없는 죄도 만들어서 뒤집어 쓸 것 같다”며 상대 후보인 윤 당선인을 공격하는 동시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대선 기간 지금 이 고문에게 걸린 검찰 수사는 배우자 김혜경씨 공무원 사적 동원 의혹, 허위 해명 혐의, 신천지 압수수색 거부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김씨 법인카드 유용과 경기주택공사 합숙소 비선캠프 의속, TV토론에서 정영학 녹취록 왜곡 공개 혐의, 검사 사칭 전과 기록 허위 소명 의혹 등 6개다.

6건과 별개로 대장동 수사도 진척되고 있어 이 후보의 걱정은 날로 깊어지는 중이다. 최근 녹취록 공개와 관련자들의 증언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분위기에서 이 고문은 자신을 위한 선택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당권을 잡는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이 고문은 지방선거에 직접 뛰어들 수도 있다. 야인인 채로 검찰과 수사를 받게 된다면 진영 차원의 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 고문은 역대 대선 패배 후보들보다 빠르고 적극적인 정치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야인으로 지내다 다음 대선에?
당장 수사 받는 입장…선택은?

선거 패배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이 고문은 민주당 모든 국회의원과 자신을 도운 인사 약 200명에게 직접 안부 인사를 하며 정계 복귀 신호탄을 날렸다.

이 고문이 실제로 노리고 있는 것이 당권인지, 지방선거 출마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 고문 스스로가 야인으로 생활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파악된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차기 대권후보 한 명을 잃는 것은 뼈아픈 손해이기에 그의 정계 복귀를 서둘러 지원할 수 있다.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사법 처벌을 받는 등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얻었던 모든 것을 다시 빼앗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후보이 지방선거에서 공천받을 만한, 유력하게 점쳐지는 자리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그리고 경기도지사까지 세 자리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모두 민주당 인사들의 실책으로 국민의힘에 내준 자리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큰 표 차이로 국민의힘에 패배했다.

박원순 전 시장과 오거돈 전 시장은 모두 성추문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정치 평론가들은 민주당이 이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대선주자급의 무게감 있는 후보가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범한 후보로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할 것이란 판단이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서울시장 후보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 우상호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정도인데, 이들을 모두 제치고 이 고문이 나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울시장뿐 아니라 경기도지사도 가능성이 높다. 이 고문은 지난 민주당 경선이 끝난 후 최종 후보에 당선됐음에도, 끝까지 경기도지사직 사퇴를 미뤄온 바 있다. 국정감사를 도지사 자격으로 참여해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였다.

이 고문이 경기도지사직에 애착이 남달랐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지난달 선거유세 과정에서 자신의 도지사 시절 업적을 언급하며 “경기도지사 시절 도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며 “시민들은 제가 도지사일 때 가장 도지사다웠다고 말해주셨다”고 언급했다.

경기도지사 민주당 후보로는 현재 안민석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경기도지사에는 민주당의 귀책 사유가 없기 때문에, 대선 직전까지 도지사로 일했던 이 고문이 복귀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리다.

당선 가능성과 무게감으로 본다면 이 고문이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민주당 고위 인사들은 전한다.

사법 처벌
큰 타격

민주당은 또 다른 승부를 목전에 두고 있다. 패배는 이미 지나갔고,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것은 패배에 대한 성찰과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상대의 약점 분석, 그리고 당의 쇄신이다. 명분과 사익에 집착하지 말고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만을 연구해야 한다. 이 고문이 어떤 역할을 할 때 당의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지 지금 민주당 비대위는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민주당은 문자 폭탄 전쟁 중?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대선 경선이 끝나자마자 미국행을 암시한 바 있다. 그는 1년 정도 미국에 머무르며 남북 관계와 국제 정치 등을 대해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대선 뒤로 연기됐다. 지방선거까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의 대선 지원 요청 때문이었다.

이 전 대표는 당의 선대위 수장직까지 맡아가며 총력 지원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이 정도로 도와줬어도 이 고문의 지지자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요즘 민주당 인사들에게 이 고문 지지자들이 문자 폭탄을 돌리는 중이다. 국민의힘과는 달리 당에서 이 고문을 총력 지원 안 했다는 의심에서다.

실제로 원팀 구성과 당의 전폭적인 지지는 약 한 달 남짓 남았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선 때의 앙금을 씻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친문’ ‘친문’ 사이에 있던 감정의 골이 대선 패배를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중이라고 평가한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에는 ‘친문’ 지지자들이, 이낙연 측 인사들에게는 ‘친이’ 지지자들이 문자 폭탄을 보내며 다투고 있다.

당을 쇄신해야 하는 민주당은 지금 서로 물어뜯기 바쁘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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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