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 몰린 이재명 라스트 퍼즐

김·노·문에 답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지만, 민주당 대선후보가 대권으로 가는 길에는 왕도가 있는 모양이다. 역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들은 모두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왕도’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실행된 이래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여러 명의 대통령을 각각 배출해냈다. 양 진영에서 배출한 대통령들은 저마다의 매력과 선거 전략으로 대권을 쟁취했다. 그중 민주당이 배출한 세 명의 대통령은 모두 지금의 이재명 후보와 비슷한 문제와 마주했고, 이것을 해결해내며 당선됐다.

역대 민주당 
대통령 보니…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많은 대선 출마 끝에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에 열세 속에서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써내며 대통령이 됐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은 것처럼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출마가 이미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 또한 당시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게이트’가 없었으면 당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도 민주당 대통령들의 본선 과정과 마찬가지로,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새로운 가족 리스크는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한 달 전에는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요즘은 배우자가 일으킨 논란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는 중이다.

가족 리스크뿐이 아니다. 그의 대권행 열차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산재해있다. 우선 이 후보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호남에서의 낮은 지지율이다.

이 후보는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과거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통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90% 이상의 지지를 보내주곤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최종 호남 지역 대선 지지율은 약 95%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약 94% 였다. 

그에 반해,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50% 내외에 그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를 두고 “나의 업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그리고 경기도지사 시절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후계자라 평가받는 문 대통령과 날선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2018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되돌아보니 정말 싸가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손해만 될 행동을 했다. 그 후과를 지금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이 후보가 말한 ‘싸가지 없는 행동’은 5년 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대권으로 가기 위해 경선에 참여한 이 후보는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문재인 후보에게 “기득권자들을 선거캠프에 대대적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실질적으로 뿌리를 보면 혹시 기득권과 대연정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며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면 지금과 똑같은 기득권 정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합세해 문 후보를 향해 다양한 소재로 네거티브전을 펼쳤고, 이때 호남에 포진돼있는 상당수의 민주당 골수 지지층은 그에게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지지율 격차 벌어져…특단의 카드 절실
대권으로 가는 왕도? 과거 대선서 배운다

반감이 짙었던 지지층의 분노를 제대로 폭발시킨 것은 다름 아닌 혜경궁 김씨 트위터 사건이다.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는 트위터 아이디 ‘08_hkkim’의 계정주는 원색적으로 문 대통령을 비난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한 문어벙” “문재인이나 와이프나 생각이 없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제인. 문제 많은 문죄인” 등 노골적인 표현을 담아 문대통령을 비난했다.

해당 계정주가 김씨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가 김씨라고 믿고 있다. 이 후보가 자체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0% 이상이 계정주가 김씨라 대답한 것이다.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공식을 세워낸 것은 김 전 대통령이다.

사실 1971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지역에 따른 정치색은 지금보다 많이 옅은 수준이었다. 전라도에서 박정희를 뽑아도, 경상도에서 김대중을 뽑아도 이상하게 치부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호남 민심을 민주당 쪽으로 끌어온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끝난 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다.

1993년 당시 써낸 책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는 “박정희씨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호남 차별부터 시작했습니다. 영남민에게 우월감을 부추기고 호남인에게는 열등감을 조장했습니다”라며 “군부는 물론 관청, 군영기업, 그리고 일반 대기업까지 호남 사람은 채용과 승진과 직책에서 철저한 차별을 받았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남을 의도적으로 차별해 호남 지역이 크질 못했고, 이에 대항해 호남인들이 힘을 하나로 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보수정권을 이기기 위해 야당에 힘을 모아주자는 취지로 김 전 대통령은 ‘호남 차별론’을 펼쳤다. 지금의 ‘호남 소외론’의 근본적 기틀이 되는 논리를 이때 그가 만든 것이다.  

가족 리스크
문제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의 주장에 객관적인 근거는 전무하지만, 이를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던 호남인들은 그의 말에 동요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그동안 차별받았던 자신의 지역을 다시 살려보자는 의견에 많은 지지를 보내줬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진영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에 호응해 호남 출신의 인사들을 민주당 진영에 대거 영입했고, 대권을 거치며 호남 차별론을 호남 소외론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난 30년간 김 전 대통령이 가꿔 놓은 호남 텃밭에서 열매를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정치평론가들로부터 지역주의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지만, 호남 차별론에서 파생된 이익은 민주 진영의 크나큰 자산이 돼왔다.

그의 논리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면, 민주당의 대통령은 대권을 쥘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스스로 민주당의 텃밭을 버린 이 후보는 이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셈법을 답습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갈라치기 해놨다는 비난은 아직 이어지고 있으나,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확실한 이득은 모두 챙겨왔다.

현재 친문(친 문재인)과 반문(반 문재인) 사이에서 제대로 된 입장을 취하고 있지 못하는 이 후보가 가야할 길은 중도가 아닌 친문과 반문 어느 하나의 길이다.

영남을 버리고 호남을 선택했던 김 전 대통령의 결단처럼 이 후보는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해 확실히 가야만 한다. 그다음 이 후보를 위협하는 장애물은 비호감 이미지다.

이 후보가 가지고 있는 비호감 이미지는 ‘무서운 권력자’ ‘조폭 연루 시장’ 등등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것들뿐이다. 이 후보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그 목적이 선할지라도 정책을 강하게 수행하는 모습은 일부 유권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경기도지사 시절 시행한 ‘계곡 불법 설치물 철거 사업’이 한 예다.

당시 이 후보는 경기도 불법 설치물 철거 사업이 경기도민의 숙원 사업이라 규정짓고 철거를 강행했다. 많은 경기도민들이 그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당사자였던 해당 업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권리금을 몇 억씩 주고 들어온 업장에서 이제 투자금을 회수하려 하는데, 너무 급진적인 사업 강행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의견을 모아 “사업 강행을 조금만 유예해달라”는 건의를 이 후보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대답은 “절대 불가”였다. 이미 유예될 대로 유예된 철거 사업을 또다시 유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옳은 일을 위해 내린 강단 있는 결정이었지만, 이때 몇몇 사람은 그의 강직함에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악재로 작용했던 사건은 그의 형 이재선씨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이다. 

주변에 믿을 
사람이 없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이 처음 불거졌던 것은 2014년이다. 그의 형수 박인복씨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극심한 형제 갈등 끝에 형 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고 주장했다.

후에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와 한 전화 통화가 폭로되고, 관련 문건들이 보도되며 의혹은 한층 짙어져갔다.

국민은 처음에 반신반의하다 관련 내용을 접한 후 그럴 수도 있겠다며 강제 입원 의혹이 진짜라는 것에 힘을 실었다. 좋고 나쁜 사건들이 맞물리며 이 후보는 ‘무서운 권력자’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을 떠안게 됐다. 

이미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례는 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는 경선 과정 내내 사상에 대한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이인제 후보 측에서 제기한 ‘장인어른의 좌익 활동’ 의혹은 사상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인제 후보는 인천 경선 때 연단에 올라 “급진 좌파가 우리 당을 점령하고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고 노 후보에 대한 사상을 의심했고, 이로부터 얼마 후 민주당 기자실에서 이인제 캠프의 한 특보가 기자들에게 “노 후보의 장인이 6·25 때 부역 혐의로 복역 중 사망했다”고 발언했다.

노 후보의 해결책은 정면돌파였다. 본인에 대한 의혹 제기에 쉬쉬하며 대응하지 않고,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것도 경선 연설 현장에서였다.

그는 연단에 올라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에도 참 힘이 듭니다”라며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많은 유권자를 자신의 편으로 결집시켰다.

이인제 후보 측의 악의적인 사상 검증을 ‘그럼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야 하느냐’는 구도로 바꿔 본인의 페이스로 가져온 것이다. 그는 후에 경선에서 승리하며 민주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의혹 제기를 정면으로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며 영리하게 본인의 이미지를 바꿔나갔다.

김은 호남 소외론…노는 정면돌파
문은 김종인 위원장으로 문제 해결

이 후보 또한 그간 문제를 해결해왔던 방식이 노 전 대통령과 많이 닮아있다. 아들 도박 논란이 있었을 때, 그리고 배우자 김씨의 갑질 의전 논란이 있었을 때마다 그는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면돌파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새로운 구도 전환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본인에게 유리한 판을 짠 노 전 대통령의 전략이 지금 이 후보에게는 필요하다.

그가 안고 있는 부담스러운 이미지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라는 오명이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도지사 시절까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온 기관장이었다.

실제로 그는 성남시장 시절에 청년 배당·공공 산후조리지원·무상 교복으로 구성된 성남시 3대 보편복지를 시행해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을 주요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우며 기본소득 도입으로 경제적 풍요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 시절의 복지 성과는 지지자들의 결집을 불러일으켰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배급과 뭐가 다르냐’는 우려를 보냈다.

시 단위의 예산 운용에서 보편 복지는 장점만이 부각됐지만 국가 단위에선 과연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까란 의심이 지속됐고, 결국 국민 의견을 받아들여 기본소득 정책을 철회할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도 지금의 이 후보처럼 대권 도전 당시 ‘실패한 정부의 비서실장’이라는 타이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한 번 실패해본 사람에게 정권을 다시 줘도 되겠냐는 일각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유권자들은 경제 정책을 잘 펼칠지 많은 우려를 보냈다.

참여정부 시절 민생 안정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의 관료가 어떻게 경제를 되살릴 수 있겠냐는 걱정이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민주당에 영입했다. 김 전 위원장은 평생 경제 공부만 해온 경제 전문가다. 그는 국익이 된 일에 모두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보수도 진보도 아닌 실용 경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중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중도층의 표를 끌어오는 힘을 가진 김 전 위원장은 불리한 조건의 당에 합류해 수차례의 선거를 승리로 이끈 바 있다. 2016년 민주당과의 총선 때도 그렇고, 지난해 국민의힘과의 보궐선거 때도 그랬다.

김 전 위원장은 2017년 대선 직전 당내 갈등을 봉합하지 못해 끝내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를 영입함으로써 이미지와 선거 분위기 쇄신에 큰 도움을 받아 대선에서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

시대 변해도…
세 갈래의 길

시대가 급변하고 민심이 요동치는 요즘, 과거의 왕도가 지금 먹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제시한 방법이 4대 민주당 대통령 배출에 힘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 후보가 나름의 왕도를 스스로 찾아 제시할지 민주당 지지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종인에 목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7일 김 후보와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80분가량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김 전 위원장은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람 한 번 만난 것 갖고 뭘 그렇게 관심이 많냐”며 “특별한 얘기 한 것도 아닌데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의 선 긋기와는 달리 정치권은 이날 만남을 민주당 영입을 위한 이 후보의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음양으로 김 전 위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후보에게 비호감도가 높은 김 전 위원장이지만 계속되는 삼고초려에 앞으로도 그의 태도가 같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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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