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싸움' 김운용스포츠위원회 이권다툼 내막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2.08 08:55:08
  • 호수 13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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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대부’ 이름에 먹칠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스포츠위원회를 남겼다.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설립한 그의 바람은 수포가 되는 모양새다. 2대 위원장 자리를 물려받은 그의 가족과 이사진 간 내분 때문이다.

한국 스포츠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이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다. ‘태권도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설했으며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7년 별세
순조롭게 시작

스포츠를 사랑했던 그는 2016년 9월 자신의 이름을 딴 ‘김운용스포츠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는 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오래 지키진 못했다. 이듬해 10월 건강 문제로 별세했다.

공석이었던 위원장 자리에 장녀 김혜원씨가 앉았다. 김 위원장은 윤곡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과 김운용컵 국제오픈태권도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대한체육회와 협력해 출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순조롭게 운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영국인이었기에 한국 상주하기가 불가능했던 데다 한국의 비영리 법인 운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결국 김 위원장 아버지 비서로 재직했던 서모씨에게 위원회 운영을 일임하며 재정적 지원에만 전념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7월경까지 위원회에 2억6000만원이 넘는 후원금과 여성 스포츠인을 위한 윤곡 대한민국여성체육대상 비용을 지원했다. 또 2018년 1월부터 위원회에 임대료를 내고 사용하던 기존 유료 사무실 대신 김 위원장 소유의 오피스텔을 무료로 제공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가 일궈놓은 위원회를 지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지만 이사진 간 갈등이 발생했다. 그는 임 이사 등이 자신의 컴퓨터와 회계장부 등을 훔치고 유족 모르게 태권도대회를 유치해 국가보조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그들은 2017년경부터 2019년 7월까지 2억6000여만원의 후원금 중 최소 1억원을 술값, 밥값, 커피값, 노래방, 사우나, 개인 차량 주유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운용 전 IOC 총재 딸…2대 위원장 
특수절도·사업비 횡령 등 이사 고소

그는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이하 김운용컵)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매해 4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았고, 김운용컵을 운용하는 데만 사용해야만 했다”며 “하지만 투명하게 사용하지 않고 돈이 항상 부족하다는 허위 보고를 했다. 그 사실도 모른 채 2억원이 넘는 금액을 후원했다”고 억울해했다. 

또 위원회 이사진이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위원회 자금을 개인 계좌로 현금이체하는 방식으로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9년 8월, 이사진이 사무실 출입문 도어락을 파손시킨 후 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해 컴퓨터 4대, 모니터 1대, 회계장부와 법인 비품 등을 무단 반출해 업무를 중단시켰다고도 주장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사진의 주장은 법인을 만들 때 법인 설립비용을 자기들이 냈다는 것이다. 액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00만~3000만원 든 것으로 안다”며 “문제는 그 법인 설립비용을 냈다고 해도 법인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 그들도 공로가 있지만 그 돈을 마음대로 사용한 건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주장은 법인통장의 돈을 사용하는 데 있어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에서 지원금이 최소 3~4억원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사들이 그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김 위원장은 임 이사를 특수절도, 자격모용 사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를 받았다. 김 위원장이 임 이사를 고소한 사건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해 현재 재항고 또는 재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vs 이사진
위원장직 갈등

임 이사 측은 2019년과 2020년 임시총회에서 김 위원장이 위원장 자격을 상실했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7월경 김 위원장은 이사 재신임 여부 안건에 관해 임시총회를 열었다. 같은 해 8월14일 이사진은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김 위원장을 이를 거절했다.

같은 달 21일과 29일 임시총회를 또 계획했으나 김 위원장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9월6일과 23일에도 이사진은 임시총회를 소집하려 했으나 김 위원장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10월10일 이사진은 김 위원장 해임과 관련해 임시총회를 소집했으나 김 위원장은 이마저도 거절했다. 이후 이사진은 이듬해 1월28일부터 2월7일까지 수차례에 걸쳐 이메일, SNS 등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재차 요구했으나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2월, 3월, 6월에도 임시총회를 열어 김 위원장 해임 안건에 대해 논의했다. 위원회 정관 제8조(회원의 탈퇴와 제명)에 따르면 ‘회원이 법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목적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 경우, 또는 1년 이상 회원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경우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위원장이 제명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제명은 회원의 의사에 반해 회원의 자격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사단법인이 회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제재이므로 제명에 관한 정관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위원회 이사진은 업무처리 시 김 위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살아계실 때 국고를 받아 매년 국제대회를 개최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까지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수차례
임시총회 

이 관계자는 “이사진은 지출 내역을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에 있어 투명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며 “그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을 해임하려는 움직이도 보였고 위원장 허락도 맡지 않고 대회를 개최하는 등 갈등이 계속 불거졌다. 2~3년 전부터 이런 행태가 지속되다 보니 위원회는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또 위원회 이사들은 ’김운용‘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다른 대회를 개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2017년부터 매년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를 주최했다.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는 ’위원회‘가 주최하고 매년 새로 구성되는 조직위원회가 주관해온 대회다. 

그러나 임 이사는 해당 대회를 주최하는 위원회의 위원장도 아니고 위원회를 대표해 보조금을 신청할 권한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단법인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 조직위원회’ 대신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 조직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기관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국고 보조금 승인을 요청했고 2020년에는 무주군청과 전라북도청에 3억원을 수령했다가 회수 조치했다. 

김 위원장은 “무단으로 유사한 명칭의 위원회 도장을 파고 통장을 개설한 뒤 절도해간 위원회 컴퓨터와 주요 서류를 계속 사용해 마치 기존 위원회 사무인 것처럼 신청자료를 작성하고 국고 보조금을 받아내려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사진 일부가 2016년 12월부터 ‘주식회사 김운용스포츠위원회’라는 것을 설립해 운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말도 없이 아버지 이름을 이용해서 사업을 한다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지방자치단체에 위원회 설립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요청도 냈다. 서울 영등포구청은 지난해 김 위원장의 진정을 받은 후 위원회가 신고한 주소지인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지 않고 사업 수행도 불가능해 보인다며 서울시에 설립허가 취소를 요청했다. 

후원금·국비 받아 허위 보고? 
결재 없이 태권도 대회 개최


서울시는 “후속 조치를 위해 법인의 관계자 및 법률대리인에게 확인한 결과 등기부등본상 기재된 사무실이 부존재하나 변경된 사무실이 존재하며 법인 관련 소송 중으로 주사무소 변경 등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민법 제38조에서는 법인설립허가 취소 사유로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한 경우, 조건에 위반한 경우, 그리고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사실 확인 결과를 토대로 법인설립허가 취소에 대해 검토한 바, 사단법인 김운용스포츠위원회의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부존재·위원회 관련 배임 의혹 등의 사유만으로 법인설립허가 취소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해당 법인과 관계된 소송 결과 확정 후, 사무실 부존재 사유와 원인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법인설립허가 취소 사유에 해당되는지 판단하고 그에 따른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김운용컵 대회의 유치와 약 20여개의 해외 지부 설립 등을 통해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지만 사무국 폐쇄라는 극단적 선택이 내부갈등으로 비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원회 문제가 확대될 경우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1988 서울올림픽 개최, 대한민국 최초의 IOC 수석부위원장 등을 이룩한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명예가 실추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금전 관계가 깨끗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위원회를 위해 돈을 지원해줬는데 이사들이 대회를 홍보한답시고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돌아다니는 등 마음대로 돈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위원회는 제대로 된 운영이 잘 안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만간
입장 발표”

해당 의혹에 대해 임 이사는 “조만간 입장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다른 이사진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태권도 대부’ 김운용 누구?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 부위원장은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된 뒤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IOC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특히 고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 등에 기여했으며,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회식 당시엔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을 이끌어낸 바 있다.

‘태권도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설했으며,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내 체육계를 대표했던 김 전 부위원장은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 특유의 친화력과 인맥 쌓기로 스포츠 외교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2015년 양정모(레슬링), 박신자(농구)와 함께 ‘올해의 스포츠영웅’에 선정됐다. 

하지만 그의 생애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9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에 연루돼 IOC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았으며, 2004년 대한체육회와 세계태권도연맹 운영 과정에서 횡령 등 비리 혐의로 수감돼 국제 체육계를 떠나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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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