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인기'만 없는 김동연 대선후보

“막 퍼주는 이·윤 생각 없으니 막 뱉어”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 있다. 학교 내에서 각종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 교무실에 불려간 적도 없다. 때로는 옳지 않은 일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급우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학생이 반장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늘 떨어진다. 가장 중요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은 역대 대선에서도 손꼽을 만큼 혼탁한 선거가 됐다.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는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연일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무속인 논란’ ‘도박 논란’ ‘주가 조작’ ‘대장동 비리’ 등 하나만 터져 나와도 치명상이 될 약점들이 이번 대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나온다. 

사실, 이런 형국에서는 비리에 연루된 후보의 지지율이 대폭 빠져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각종 비리들이 터져도 양강 체제는 더욱 공고해져갔다. 오히려 각 당의 지지자들이 결집해 서로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깜짝 반등했던 것도 후보들의 비리보다는 국민의힘 ‘내홍’ 문제가 주된 원인이었다.제3지대에서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후보는 지금 대선판이 억울하기만 하다.

그는 가족 리스크에서도, ‘대장동’이나 ‘고발 사주’ 같은 본인 비리 의혹에서도 자유롭다. 그의 경력 또한 요즘 국민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경제 대통령’에 가장 부합한다. 김 후보는 지난 40년간 청와대에서 경제 관련 일만 해온 ‘경제통’이다. 


김 후보는 정치인으로서의 드라마도 갖추고 있다. 대선 출마 후, 판자촌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이 재조명되며 언론은 그에게 진정한 ‘개천의 용’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아무런 배경 없이 능력만으로 청와대의 중책을 맡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행정 능력도 탁월해 그간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러브콜을 받았다. 그가 함께 일한 대통령만 총 6명(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나 된다.

이번 대선에서 최대의 캐스팅 보트가 될 2030 청년들에 대한 이해도도 가장 높은 후보다. 타 후보들과 달리 대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인물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2015년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해 약 2년간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일선에서 목격해왔다.

이번 대선 출마 때도 출마 선언문의 절반가량을 청년들을 위한 공약으로 채웠다.

판자촌 유년 시절 ‘개천서 용’
배경 없이 오직 능력으로 중책

개천에서 난 용 신화, 도덕적 흠결이 없는, 경제·청년 전문가 등 대선후보로의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김 후보가 단 하나 갖지 못한 것은 ‘지지율’이다. 새로운물결의 초기 예측과는 달리, 완벽한 김 후보의 지지율은 좀처럼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조사한 모든 여론조사에서 1%대 지지율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심지어 최근 몇몇 조사에서는 0.5%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요즘 고심이 많을 김 후보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다음은 김 후보와의 일문일답.


-‘나는 OOO 대선후보’라고 정의한다면.

▲제게 ‘지지율만 빼고 다 가진 후보’라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감사하면서도 아쉬운 평가입니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지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존 정당들의 달콤한 권유를 마다하며, 기존 정치권에 빚을 지지 않은 채 시작했습니다. 그 제의를 받아 그들의 자금력과 조직을 활용했으면 아마도 지금보다 지지율도 높았을 테고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고, 낡은 정치 체제 안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후보들이 걸어가는 길과 가장 크게 다르다고 말씀드립니다.

나는 ‘기존 정치권에 빚이 없는 후보’라고 자부합니다.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신 걸로 압니다. 그럼에도 경제관료가 되려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스스로 표현하면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입니다. ‘세상 누구를 내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나보다 열심히 살 수는 없다’는 각오로 살았습니다.

덕수상고 3학년 때 은행에 들어갔지만 고졸 출신이라는 현실의 벽이 높았습니다. 100m 달리기 경주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학력에 대한 갈증에 야간대학을 다녔는데, 우연히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 잡지를 보고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고시란 게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공직에 대한 포부나 의식은 딱히 없었고 다분히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되는 게 제게 더 나은 기회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후보님이 이뤄낸 기적을, 지금 청년들은 이뤄낼 수 있다고 보시나요.

▲기적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게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청년 시절은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과 역동성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착실히 저축하면 내 집은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실제로 지금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성세대고 더구나 공직에 오래 몸담았던 터라 더 좋은 나라를 만들지 못한 점 때문에 청년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그만큼 시대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청년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세대가 지금 청년세대입니다. 많이 힘들고 화도 날 겁니다. 다만, 힘들고 실패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합니다. 남이 하고 싶은 일, 사회가 인정해 주는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 해답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청년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새로운물결이라는 이름을 지으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새로운물결’은 세 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부패를 쓸어버리는 물결입니다. 우리 사회에 기득권과 부패가 얼마나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온 국민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부패만 없애도 수많은 기회가 생깁니다. 저와 ‘새로운물결’의 집권은 대한민국에서 부패를 종식하는 반부패 원년이 될 것입니다. 

둘째, 기득권 둑을 허물고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를 만들어내는 물결입니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비슷한 공약, 구호만 요란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공약과 정책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일한 대통령 6명
노무현과 가장 잘 맞고
문재인이 가장 아쉬워

셋째, 기득권 양당 정치를 바꾸는 물결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진흙탕입니다. 새 물결로 깨끗하게 쓸어버리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힘이 새 물결이 될 것이고, 그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깨고 국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YS 때부터 총 6명의 대통령을 모셨습니다. 최고와 최악을 꼽는다면.

▲최고, 최악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보람이 컸던 일 중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들었던 ‘비전 2030’ 수립입니다. 당시 25년 뒤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을 담았습니다. 처음으로 ‘동반 성장’이라는 말을 썼고,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간다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정치권의 세금 폭탄 프레임에 말려들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때 기득권 정치의 폐해를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경험으로는 경제부총리로 일할 당시 부동산 등 경제 현안에서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다는 일화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분들을 비난하거나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국가 경제, 나라 살림을 맡아온 경험으로 정책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 구성원, 이해관계가 모두 고려돼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이념에 따른 목표에 매몰될 경우 국가 정책의 방향도 일방적이고 거칠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공무원이었을 때 못 느꼈던 점이 있을까요?

▲공직에 있을 때 지금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좋은 정책도 잘못된 정치로 인해 실패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에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소신으로 한 말입니다. 그리고 작년 8월 대선 출마 선언 후 5개월여 동안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 혼탁한 대선판을 겪으며 여야 어디가 집권하든 흔히 말하는 ‘정권 재창출’이나 기득권 정당 사이의 ‘정권교체’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헛된 장밋빛 약속이나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정치판 자체를 바꾸고 정치세력을 교체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하고 있습니다. 

-양강 후보들의 경제 정책 중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면.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가 양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만, 두 분 다 자신들이 추구해온, 추구하겠다는 가치와 비전에 어긋나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경제 공약을 내세우면서 국민소득 5만불과 경제강국 5대 강국, 국가주도에 의한 대규모 투자로 성장을 견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민주당이 추구해온 진보적 가치와 맞지도 않고, 이명박정부 시절 ‘747’ 공약을 연상시킵니다. 

“기존 낡은 정치에 빚이 없다”
YS 때부터 빠짐없이 러브콜

윤석열 후보는 임대료의 3분의 1을 깎아주고 나머지는 국가와 임차인이 부담한다고 합니다. 3분의 1 임대료는 시장가격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뜻이고, 시장가격에 정부가 개입할 경우 발생하게 된 시장 왜곡에 대해서 과연 생각은 해봤는지 의심스럽습니다.

-4년 중임 대통령제에 대한 입장은 아직 확고하신가요? 이것을 어떻게 해낼지 구체적인 방안이 궁금합니다.

▲작년 11월 ‘권력구조 대개혁’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거기에 4년 중임제 개헌을 위한 개헌 공약이 있습니다. 당연히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현재의 대통령 후보들이 먼저 합의해서 길을 트고, 당선자가 임기 초반에 강력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헌법개정국민회의’를 구성, 2023년 말까지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해내고, 2024년 총선 일정에 맞춰 대통령선거까지 한꺼번에 치르는 일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은 임기가 2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정치개혁’을 위한 헌신적 결단을 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이 문제에 합의한다면 국민들께서 박수쳐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최저임금제에 대해 현 정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당연히 가야 할 방향입니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인상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 큰 부담이 됩니다. 임금은 노동의 가격입니다. 임금의 가격이 오르면 임금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주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결국 고용에서 조정이 일어났고, 부정적인 효과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목표가 분명히 보인다고 무작정 빨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특히 최저임금 같은 경우는 수요와 공급의 기본 원칙하에 경제의 상황을 잘 살피고 속도 조절하며 추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정책 추진은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습니다. 많은 변수를 같이 봐야 하는데 특정 목표나 이념에 집착하게 되면 다른 부분을 놓치면서 시장이 왜곡됩니다. 투기 억제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함과 동시에 공급 확대를 원활히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수도권 올인 구조를 깨는 국토균형 발전도 병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정책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국민과 시장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지금 정부가 지나치게 잦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은 것이 시장 신뢰를 잃게 만든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집권하면 1년 안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끝으로 같이 대선 레이스를 뛰고 있는 후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대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루하루 거친 언사와 날선 공격만 오가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국민도 힘드시고, 또 당사자들 마음도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덕담이랄까, 격려의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계실 텐데 건강 챙기시면서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한 길에 나섰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김 후보는 황급히 다음 일정을 소화하려 움직였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게 목표인 김동연의 대선 캠프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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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