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인기'만 없는 김동연 대선후보

“막 퍼주는 이·윤 생각 없으니 막 뱉어”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 있다. 학교 내에서 각종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 교무실에 불려간 적도 없다. 때로는 옳지 않은 일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급우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학생이 반장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늘 떨어진다. 가장 중요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은 역대 대선에서도 손꼽을 만큼 혼탁한 선거가 됐다.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는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연일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무속인 논란’ ‘도박 논란’ ‘주가 조작’ ‘대장동 비리’ 등 하나만 터져 나와도 치명상이 될 약점들이 이번 대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나온다. 

사실, 이런 형국에서는 비리에 연루된 후보의 지지율이 대폭 빠져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각종 비리들이 터져도 양강 체제는 더욱 공고해져갔다. 오히려 각 당의 지지자들이 결집해 서로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깜짝 반등했던 것도 후보들의 비리보다는 국민의힘 ‘내홍’ 문제가 주된 원인이었다.제3지대에서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후보는 지금 대선판이 억울하기만 하다.

그는 가족 리스크에서도, ‘대장동’이나 ‘고발 사주’ 같은 본인 비리 의혹에서도 자유롭다. 그의 경력 또한 요즘 국민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경제 대통령’에 가장 부합한다. 김 후보는 지난 40년간 청와대에서 경제 관련 일만 해온 ‘경제통’이다. 


김 후보는 정치인으로서의 드라마도 갖추고 있다. 대선 출마 후, 판자촌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이 재조명되며 언론은 그에게 진정한 ‘개천의 용’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아무런 배경 없이 능력만으로 청와대의 중책을 맡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행정 능력도 탁월해 그간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러브콜을 받았다. 그가 함께 일한 대통령만 총 6명(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나 된다.

이번 대선에서 최대의 캐스팅 보트가 될 2030 청년들에 대한 이해도도 가장 높은 후보다. 타 후보들과 달리 대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인물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2015년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해 약 2년간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일선에서 목격해왔다.

이번 대선 출마 때도 출마 선언문의 절반가량을 청년들을 위한 공약으로 채웠다.

판자촌 유년 시절 ‘개천서 용’
배경 없이 오직 능력으로 중책

개천에서 난 용 신화, 도덕적 흠결이 없는, 경제·청년 전문가 등 대선후보로의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김 후보가 단 하나 갖지 못한 것은 ‘지지율’이다. 새로운물결의 초기 예측과는 달리, 완벽한 김 후보의 지지율은 좀처럼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조사한 모든 여론조사에서 1%대 지지율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심지어 최근 몇몇 조사에서는 0.5%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요즘 고심이 많을 김 후보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다음은 김 후보와의 일문일답.


-‘나는 OOO 대선후보’라고 정의한다면.

▲제게 ‘지지율만 빼고 다 가진 후보’라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감사하면서도 아쉬운 평가입니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지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존 정당들의 달콤한 권유를 마다하며, 기존 정치권에 빚을 지지 않은 채 시작했습니다. 그 제의를 받아 그들의 자금력과 조직을 활용했으면 아마도 지금보다 지지율도 높았을 테고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고, 낡은 정치 체제 안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후보들이 걸어가는 길과 가장 크게 다르다고 말씀드립니다.

나는 ‘기존 정치권에 빚이 없는 후보’라고 자부합니다.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신 걸로 압니다. 그럼에도 경제관료가 되려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스스로 표현하면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입니다. ‘세상 누구를 내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나보다 열심히 살 수는 없다’는 각오로 살았습니다.

덕수상고 3학년 때 은행에 들어갔지만 고졸 출신이라는 현실의 벽이 높았습니다. 100m 달리기 경주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학력에 대한 갈증에 야간대학을 다녔는데, 우연히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 잡지를 보고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고시란 게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공직에 대한 포부나 의식은 딱히 없었고 다분히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되는 게 제게 더 나은 기회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후보님이 이뤄낸 기적을, 지금 청년들은 이뤄낼 수 있다고 보시나요.

▲기적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게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청년 시절은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과 역동성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착실히 저축하면 내 집은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실제로 지금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성세대고 더구나 공직에 오래 몸담았던 터라 더 좋은 나라를 만들지 못한 점 때문에 청년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그만큼 시대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청년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세대가 지금 청년세대입니다. 많이 힘들고 화도 날 겁니다. 다만, 힘들고 실패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합니다. 남이 하고 싶은 일, 사회가 인정해 주는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 해답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청년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새로운물결이라는 이름을 지으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새로운물결’은 세 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부패를 쓸어버리는 물결입니다. 우리 사회에 기득권과 부패가 얼마나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온 국민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부패만 없애도 수많은 기회가 생깁니다. 저와 ‘새로운물결’의 집권은 대한민국에서 부패를 종식하는 반부패 원년이 될 것입니다. 

둘째, 기득권 둑을 허물고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를 만들어내는 물결입니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비슷한 공약, 구호만 요란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공약과 정책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일한 대통령 6명
노무현과 가장 잘 맞고
문재인이 가장 아쉬워

셋째, 기득권 양당 정치를 바꾸는 물결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진흙탕입니다. 새 물결로 깨끗하게 쓸어버리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힘이 새 물결이 될 것이고, 그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깨고 국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YS 때부터 총 6명의 대통령을 모셨습니다. 최고와 최악을 꼽는다면.

▲최고, 최악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보람이 컸던 일 중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들었던 ‘비전 2030’ 수립입니다. 당시 25년 뒤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을 담았습니다. 처음으로 ‘동반 성장’이라는 말을 썼고,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간다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정치권의 세금 폭탄 프레임에 말려들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때 기득권 정치의 폐해를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경험으로는 경제부총리로 일할 당시 부동산 등 경제 현안에서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다는 일화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분들을 비난하거나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국가 경제, 나라 살림을 맡아온 경험으로 정책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 구성원, 이해관계가 모두 고려돼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이념에 따른 목표에 매몰될 경우 국가 정책의 방향도 일방적이고 거칠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공무원이었을 때 못 느꼈던 점이 있을까요?

▲공직에 있을 때 지금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좋은 정책도 잘못된 정치로 인해 실패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에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소신으로 한 말입니다. 그리고 작년 8월 대선 출마 선언 후 5개월여 동안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 혼탁한 대선판을 겪으며 여야 어디가 집권하든 흔히 말하는 ‘정권 재창출’이나 기득권 정당 사이의 ‘정권교체’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헛된 장밋빛 약속이나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정치판 자체를 바꾸고 정치세력을 교체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하고 있습니다. 

-양강 후보들의 경제 정책 중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면.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가 양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만, 두 분 다 자신들이 추구해온, 추구하겠다는 가치와 비전에 어긋나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경제 공약을 내세우면서 국민소득 5만불과 경제강국 5대 강국, 국가주도에 의한 대규모 투자로 성장을 견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민주당이 추구해온 진보적 가치와 맞지도 않고, 이명박정부 시절 ‘747’ 공약을 연상시킵니다. 

“기존 낡은 정치에 빚이 없다”
YS 때부터 빠짐없이 러브콜

윤석열 후보는 임대료의 3분의 1을 깎아주고 나머지는 국가와 임차인이 부담한다고 합니다. 3분의 1 임대료는 시장가격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뜻이고, 시장가격에 정부가 개입할 경우 발생하게 된 시장 왜곡에 대해서 과연 생각은 해봤는지 의심스럽습니다.

-4년 중임 대통령제에 대한 입장은 아직 확고하신가요? 이것을 어떻게 해낼지 구체적인 방안이 궁금합니다.

▲작년 11월 ‘권력구조 대개혁’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거기에 4년 중임제 개헌을 위한 개헌 공약이 있습니다. 당연히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현재의 대통령 후보들이 먼저 합의해서 길을 트고, 당선자가 임기 초반에 강력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헌법개정국민회의’를 구성, 2023년 말까지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해내고, 2024년 총선 일정에 맞춰 대통령선거까지 한꺼번에 치르는 일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은 임기가 2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정치개혁’을 위한 헌신적 결단을 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이 문제에 합의한다면 국민들께서 박수쳐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최저임금제에 대해 현 정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당연히 가야 할 방향입니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인상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 큰 부담이 됩니다. 임금은 노동의 가격입니다. 임금의 가격이 오르면 임금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주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결국 고용에서 조정이 일어났고, 부정적인 효과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목표가 분명히 보인다고 무작정 빨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특히 최저임금 같은 경우는 수요와 공급의 기본 원칙하에 경제의 상황을 잘 살피고 속도 조절하며 추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정책 추진은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습니다. 많은 변수를 같이 봐야 하는데 특정 목표나 이념에 집착하게 되면 다른 부분을 놓치면서 시장이 왜곡됩니다. 투기 억제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함과 동시에 공급 확대를 원활히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수도권 올인 구조를 깨는 국토균형 발전도 병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정책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국민과 시장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지금 정부가 지나치게 잦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은 것이 시장 신뢰를 잃게 만든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집권하면 1년 안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끝으로 같이 대선 레이스를 뛰고 있는 후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대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루하루 거친 언사와 날선 공격만 오가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국민도 힘드시고, 또 당사자들 마음도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덕담이랄까, 격려의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계실 텐데 건강 챙기시면서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한 길에 나섰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김 후보는 황급히 다음 일정을 소화하려 움직였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게 목표인 김동연의 대선 캠프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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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