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두 얼굴’ 기막힌 기부의 세계

내고도 욕먹는 이상한 나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되는 기부지만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기 및 비리의 온상으로 치부되기도 할 정도. 기부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자 전문가들은 ‘현명하게 기부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부’는 어려운 사람들을 자의적인 마음으로 돕는다는 점에서 자원봉사와 함께 대표적인 선행으로 꼽힌다. 기부단체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모인 돈이나 물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등 각 기부단체의 목적을 위해 쓰인다. 

대표적 선행
단점도 다수

기부와 자원봉사를 병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부와 자원봉사를 결합한 재능기부라는 형태도 등장했다.

기부가 좋은 취지로 시작되는 것은 맞지만 마냥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돈이 돌아다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를 노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서 사기 및 비리의 온상 중 하나로 꼽힌다.

일부 자선단체의 경우 기부받는 나라의 현지 사정을 무시하고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기부단체의 이름을 사칭해 모금한 뒤 돈을 갖고 잠적하는 경우도 꽤 있다. 특히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앵벌이가 이런 경우다.


길거리나 지하철 입구 계단 등에서 금전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단체에게 돈을 주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 기부된 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이후 행방을 알 수도 없고, 기부받는 단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단체인지, 혹은 사칭인지 사실 여부도 알 수 없으며 영수증도 발급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행위는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약자들이 구걸에만 의지하게 만들어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기부할 때에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저명한 기부 단체인지 확인해야 하고 해당 단체의 목적을 확인해 기부금이나 물품이 어떻게, 어디에 투명하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기부하는 것이 좋다. 

기부하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돈이나 물건만 전해주고 나서 관심을 끊을 뿐, 전체적인 상황들을 검토해서 진실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또 사기임이 밝혀져도 후원금을 돌려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소송 비용이 후원금 액수보다 더 크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냥 포기한다. 

기부금을 낸 사람은 기부금을 추적하는 것도 어렵다. 수십만원에서 수억원을 넘는 기부금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거나 엉뚱한 데 사용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개인단체들이라는 점이다. 

국가가 개입하면 기부를 가장한 국외 지원이니 이론상 지원받은 국가의 외교적 관례상으로는 완전한 부패 행정 정도는 막을 순 있겠지만, 영향력 행사라는 외교 관련 논란이 생길 수 있고, 민간의 경우는 대놓고 활동하는 기부단체를 제외한 기부단체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1990년대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 불우이웃돕기 기부금을 걷었지만 1994년 감사원 감사 결과 내무부·경기도 등 17개 기관이 기부금을 유용해 기관장 경조사비·판공비 등으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민간 주도로 전환됐다. 

좋은 취지로 시작되지만…끊임없는 논란
‘기부는 좋은 일’ 명분으로 정당화하기도

이후 2000년대에는 ‘사랑의 열매’와 사랑의 온도계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국가가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시행됐으나 2011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마저 성금 일부를 단란주점, 유흥주점, 노래방, 래프팅, 바다낚시 등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가 주도하거나 간접적으로 특정 단체를 지원하는 형식의 기부는 사라지게 됐다. 

이 같은 문제로 상세하게 집행 내역을 공개하는 단체들도 있으며 모든 자선단체가 마냥 풍족한 지원을 받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다.

기부금의 실 사용 문제로 이야기가 많은 요즘은 홈페이지에 예산 책정이나 기부금 사용내역을 공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 단체의 경우 놀랄 정도로 기부금 내역을 상세히 공시하는 단체들도 있다. 

반대로 이 같은 점을 역용해 기부금 상세 내역을 믿도록 유도하는 단체들도 있다. 물론 기부단체가 전부 사기꾼인 것은 아니지만 영수증 자체를 가짜로 발급하는 단체마저 있는 상황에서 기부자 개개인이 인터넷상의 정보만으로 기부단체를 전적으로 믿을 근거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기부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세금을 동원한 국가의 복지기능 확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으로, 기부가 없으면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는 반박도 있다.

기부가 만사의 해결책처럼 여겨진다는 주장도 있다. 근본적으로 기부받아야 될 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사회적 구조나, 법망의 문제 등에 대한 개선을 논하기보다는 기부행위 자체를 추켜세우고 그런 원인으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기부에 의존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기부금 지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오히려 비효율적인 지출이 이뤄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체 지출 중 실제로 사업에 들어간 비용의 비율이 높은 단체는 효율적이고 청렴한 단체며, 그렇지 않으면 불투명한 단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인식
불투명 운영


최근 횡령 문제로 인해 단체의 투명성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일반인이 재정보고서를 읽어봐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단체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수입이 이렇게 많은데 사업비 지출은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걸고 넘어질 수도 있다.

단체 입장에서도 후원자 입맛에 맞추려면 사업비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어 곤란하기는 매한가지다.

인기 후원수단인 1:1 결연 후원 방법에도 문제가 많다. 결연 후원은 후원자와 아동을 연결해 서로 편지를 주고받고 선물을 보내는 등 인간적 교류를 할 수 있는 후원수단으로 보통 단체로 들어오는 개인 후원금의 절반 이상이 이 1:1 결연 후원으로 들어올 정도로 보편적이다. 

신규 후원자를 유입하는 효과가 높아 많은 국제구호개발단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많다. 실제로 정직하게 1:1로 연결하더라도 비판은 피할 수가 없다.

첫 번째 문제는 아동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 노출에 대한 윤리 부분이다. 비록 좋은 의도라고는 하나 아직 정보 공개에 대한 판단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외국 후원자에게 신상정보와 성장 과정을 노출하는 게 과연 문제가 없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평성으로 동일 지역, 같은 사업 혜택을 받으면서도 어떤 아동은 후원자와 연결될 수 있고 어떤 아동은 후원자를 만나지 못해 평등구호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유니세프가 1:1 결연 후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평등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세 번째는 과연 임의적이고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관계가 아동 및 후원자의 정서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아동이 성인이 되어 결연 후원이 종료될 때까지 후원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 해당 아동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물론 단체에서는 1:1 결연 후원이 끊긴 아동도 지역 사업비용으로 계속 지원하게 되므로 후원이 끊겼다고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지만, 나를 지원해주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어른이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후원자 쪽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데, 구호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지역 특성상 아동 및 청소년이 어른이 되기 전에 사망 혹은 실종되거나 부모에 의해 어딘가로 팔려가거나 성폭행, 조혼 등의 임신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일들이 상당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희생자 중에 자신의 후원을 받던 아이들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과 슬픔에 빠진 이들이 많았다.

“기부는 좋은 일”이라는 명분으로 기부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에 일반인부터 유명인이나 부유한 사람에게 사람들이 대놓고 기부하라고 강요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일반인의 경우 지나가다 보면 보이는 기부단체의 기습 질문이나 설문에 참여하면서 시작된다. 

기부 강요자가 어느 정도 권력이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협박 및 갈취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돈 내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기부하라는 말로 대체함으로서 마치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디까지나 기부는 기부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타인이 기부자를 설득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기부자를 비난하거나 강요할 권리는 없으며 남에게 기부하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반대로 기부했다는 실적을 면죄부로 사용하기도 한다. 

선의로 기부
세금 부메랑

선의의 기부가 ‘세금폭탄’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기부처에 따라 제3자에게 재산을 준 것으로 보고 상속세를 매기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손들이 한국을 알리기 위해 해외 대학 등에 40여억원을 기부했지만, 돌아온 것은 ‘세금폭탄’이었다.

김구 선생의 차남인 고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2006년부터 10여년간 미국 하버드대, 브라운대 등 유수의 대학 등에 42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장학금으로 쓰이기도 했고, 항일 투쟁의 역사를 알리는 ‘김구포럼’ 개설, 한국학 강좌 개설 등 한국을 알리는 데 쓰였다.

김 전 총장은 지난 2016년 5월 별세했고, 국세청은 2년여가 지난 2018년 10월 김 전 총장의 자녀들에게 상속세(9억원)와 증여세(18억원) 27억원을 부과했다. 현행법상 공익법인에 출연하거나 기부한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를 감면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해외 대학은 공익법인이 아니라서 세금을 감면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상속·증여세는 재산을 받은 사람이 내야 하지만, 해외에 거주자에게 증여했을 경우 증여자가 내야 한다. 해외 거주자에게 국내 과세당국이 현실적으로 세금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 장손인 김진씨가 해외 대학 송금 내역과 기부 소식을 보도한 현지 기사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해 소명했지만, 국세청은 원칙에 따라 과세하겠다고 했다. 결국 김구 선생의 후손들은 지난해 1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1년5개월여간의 심사 끝에 조세심판원은 지난 9일 김구 선생의 후손들에게 부과된 세금 27억원 중 절반가량인 14억원을 취소했다. 

김구 선생의 사례 외에도 공익 목적의 고액 기부에 ‘세금폭탄’을 맞는 사례는 ‘수원교차로’ 사건 등 종종 있어왔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의 창업주인 고 황필상 박사는 2003년 18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 90%를 모교인 아주대와 함께 설립한 ‘구원장학재단’에 증여했다. 장학재단은 학생 1000여명을 지원했다. 

그런데 2008년 국세청은 해당 재단에 증여세와 가산세 등 140억원을 부과했다. 의결권이 있는 회사 주식 5% 이상을 초과해 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재벌이나 부자들이 장학재단이나 공익법인 등을 설립해 회사 주식을 넘겨 ‘기부’라는 이미지는 얻고, 공익법인을 지주회사 삼아 계열사들을 조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 규정이 되레 황 박사와 같은 공익 목적 기부자들에게 세금폭탄을 안긴 것이다. 

선의로 수십억 냈지만 ‘세금폭탄’
전문가 ‘현명하게 쾌척 방법’ 제시

2009년 시작된 행정소송은 2017년 대법원이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까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으로 끝났지만, 황 박사는 대법원 결정 이듬해인 2018년 사망했다.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문가들은 현명하게 기부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로 자원봉사를 통한 직접 경험한 단체에 기부하는 방법이다. 직접 구성원이 되어 단체의 윤리적 운영 및 활동을 확인해 지역사회 자선활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식을 쌓는 데도 도움을 준다.

두 번째는 기부금 영수증을 받는 것이다. 기부금 영수증 발급이 가능한 단체는 지정기부금 또는 법정기부금 단체로 정부로부터 공익성을 인정받은 단체다. 또 연말정산 시 기부금 영수증이 있어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는 단체에 관한 객관적이고 신뢰성 높은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물론 최근 국내서도 ‘빈곤 포르노’를 이용한 일부 자선단체의 모금활동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감성에 호소하는, 자극적인 정보와 이미지로 모금활동을 하는 자선단체일수록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가이드스타’ 홈페이지에서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에 공개된 기관정보, 회계정보와 언론 보도자료 등 다양한 자선단체 정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자선단체를 통한 기부다. 새희망씨앗 등 자선단체의 기부금 사기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간혹 몇몇 기부자들은 자선단체를 믿지 못해 개인에게 직접 기부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다양한 매체에서 정보수집이 가능한 자선단체를 통해 기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특히 직접 기부할 경우 증여세와 상속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혹시 자선단체 모금가로부터 직접 기부 요청을 받았다면 후원계좌의 예금주가 기관명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또 유명 자선단체와 단체명이 유사한 단체는 한 번 더 면밀한 확인이 필요하다.

현명한 기부
주의사항 숙지

아울러 단체의 정보공개를 꺼려하거나 기부자의 기부금 관련 질문에 합리적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단체엔 소중한 돈을 기부할 필요는 없다. 이처럼 현명한 기부를 위한 주의사항들을 확인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서까지 기부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수도 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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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