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5대 그룹 총수 임인년 키워드 대해부

“변하지 않으면 가차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기업 총수들이 임인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올해 과제 및 달성 목표를 제시하고 나섰다. 잔뜩 움츠렸던 최근 수년간의 모습과 달리, 올해는 미래 먹거리를 마련키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예고된 분위기다. 코로나19의 여파를 털어내는 건 물론이고, 본격적으로 재도약을 도모하겠다는 포부가 엿보인다. 

재계는 어느 때보다 힘겨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이후 기업의 경영 환경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뾰족한 돌파구가 없는 현실이 2년 넘게 지속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들어 국내 대표 재벌 기업들이 회복 국면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지만, 생존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명확해진 양상이다. 5대 그룹 총수 및 최고경영진이 내놓은 신년사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됐다.

[삼성]
먼저 리더부터

삼성전자는 2014년까지만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하례식의 행사를 열었지만, 이듬해부터 신년하례식 없이 시무식만 진행해왔다. 아울러 이재용 부회장 명의의 신년사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대신 최고경영진이 신년사를 통해 한 해 목표 및 그룹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는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이 신년사를 내놓고 고객을 지향하는 기술혁신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고객 우선’ ‘수용의 문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선도’ 등을 경영 화두로 던졌다.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은 “고객을 지향하는 기술의 혁신은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근간이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고객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야 하고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실패를 용인하며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포용과 존중의 조직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며 “제품, 조직 간 경계를 넘어 임직원 누구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꿈꿀 수 있도록 존중의 언어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를 리더부터 변해 함께 만들자”고 강조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중점 사업으로 점찍은 ‘4대 분야(시스템 반도체·바이오·차세대 이동통신·인공지능’에서 초격차 신화를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정기인사에서 조직을 대폭 물갈이하는 결정을 내렸고, 모바일과 소비자가전 분야를 통합하며 쇄신을 꾀했다.

[현대차]
가능성 일상화

현대자동차그룹은 미래사업을 현실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신년사를 통해 “2022년 올해는 우리 그룹이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을 가시화해 가능성을 고객의 일상으로 실현하는 한 해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번 신년사를 통해 정의선 회장이 연구개발로 이룩한 성과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은 “고객이 가장 신뢰하고 만족하는 친환경 브랜드가 되기 위한 기반을 확실하게 다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의선 회장은 소프트웨어(SW) 원천기술 확보 중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미래 최첨단 상품 경쟁력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며 “우수 인재가 있는 곳에 AI 연구소를 설치해 관련 분야 역량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개방형 플랫폼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SK]
도전자 정신

SK그룹의 2022년 핵심 전략은 ‘도전정신을 통한 혁신과 성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31일 회사 임직원에게 이메일로 보낸 2022년 신년사에서 “기업의 숙명은 ‘챔피언’이 아니라 ‘도전자’가 되는 것”이라며 “새해에도 위대한 도전정신으로 미래를 앞서가자”고 당부했다.

여기에는 과거 경험에 안주하지 말고 전략적 유연성에 기반해 창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도전과 혁신을 통한 성장 예고
생존싸움서 살아남겠다는 의지

그는 “이제는 기업도 지구와 직접 대화할 때”라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1% 탄소 감축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고, SK는 사업 모델 혁신을 통해 미래 저탄소 친환경 사업을 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SK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새로운 목표를 담은 신년사를 발표했다. 공통적인 경영 화두는 ▲넷제로(탄소중립) ▲그린 ▲글로벌 등으로 귀결된다.

장동현 SK㈜ 부회장은 지난 3일 사내 신년사에서 “파이낸셜 스토리의 실행력을 더욱 높여 2022년을 ‘빅 립’(더 큰 수확)으로 진입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투자 전문 회사로서 첨단소재, 바이오, 그린, 디지털 등 4대 핵심 사업별 성장과 투자 수익 실현을 본격화하고, ESG 경영 전파로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도 신년사에서 “친환경 에너지 및 소재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카본 투 그린(탄소에서 친환경으로)’ 혁신을 위한 도전을 지속해가자”고 당부했다.  

[LG]
고객 제일주의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20일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먼저 신년사를 발표하고 ‘혁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모든 구성원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혁신을 통해 가치 있는 경험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혁신이라는 키워드는 궁극적으로 고객 경영이라는 이념과 맞닿아 있다. 구광모 회장은 “고객이 감동할 사용 경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며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사용하기 전과 후의 경험이 달라졌을 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느꼈을 때 만들어진다”고 했다. 

구광모 회장이 고객 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후 첫해인 2019년 신년사에서 “LG가 나아갈 방향은 고객”이라고 천명한 이후 매년 고객가치 경영 메시지를 강조해왔다. 양질의 제품을 만드는 일에 그치지 말고, 고객에게 그 이상의 가치를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구광모 회장의 시각이다.


총수의 뜻에 맞춰 계열 회사 최고경영진들도 고객가치 경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지난 3일 “고객가치에 재도약에 나서자”고 언급했고, 정철동 LG이노텍 사장 역시 “LG이노텍만이 줄 수 있는 고객 경험 혁신에 집중하자”고 당부했다.

[롯데]
강력한 실행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임인년 신년사에서 도전 정신과 강력한 실행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일 그룹 사내 홈페이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혁신을 위한 적극적인 시도를 당부했다.

신동빈 회장은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이제 비즈니스 정상화를 넘어 더 큰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혁신을 위한 시도는 미래 성장을 위해 필수이지만 과거의 성공 방식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계속 도전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신동빈 회장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샷은 100% 빗나간다’는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동시에 인용해 눈길을 끌었다. 신동빈 회장은 “실패는 무엇인가 시도했던 흔적”이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도전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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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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