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5대 그룹 총수 임인년 키워드 대해부

“변하지 않으면 가차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기업 총수들이 임인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올해 과제 및 달성 목표를 제시하고 나섰다. 잔뜩 움츠렸던 최근 수년간의 모습과 달리, 올해는 미래 먹거리를 마련키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예고된 분위기다. 코로나19의 여파를 털어내는 건 물론이고, 본격적으로 재도약을 도모하겠다는 포부가 엿보인다. 

재계는 어느 때보다 힘겨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이후 기업의 경영 환경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뾰족한 돌파구가 없는 현실이 2년 넘게 지속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들어 국내 대표 재벌 기업들이 회복 국면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지만, 생존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명확해진 양상이다. 5대 그룹 총수 및 최고경영진이 내놓은 신년사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됐다.

[삼성]
먼저 리더부터

삼성전자는 2014년까지만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하례식의 행사를 열었지만, 이듬해부터 신년하례식 없이 시무식만 진행해왔다. 아울러 이재용 부회장 명의의 신년사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대신 최고경영진이 신년사를 통해 한 해 목표 및 그룹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는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이 신년사를 내놓고 고객을 지향하는 기술혁신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고객 우선’ ‘수용의 문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선도’ 등을 경영 화두로 던졌다.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은 “고객을 지향하는 기술의 혁신은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근간이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고객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야 하고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실패를 용인하며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포용과 존중의 조직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며 “제품, 조직 간 경계를 넘어 임직원 누구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꿈꿀 수 있도록 존중의 언어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를 리더부터 변해 함께 만들자”고 강조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중점 사업으로 점찍은 ‘4대 분야(시스템 반도체·바이오·차세대 이동통신·인공지능’에서 초격차 신화를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정기인사에서 조직을 대폭 물갈이하는 결정을 내렸고, 모바일과 소비자가전 분야를 통합하며 쇄신을 꾀했다.

[현대차]
가능성 일상화

현대자동차그룹은 미래사업을 현실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신년사를 통해 “2022년 올해는 우리 그룹이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을 가시화해 가능성을 고객의 일상으로 실현하는 한 해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번 신년사를 통해 정의선 회장이 연구개발로 이룩한 성과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은 “고객이 가장 신뢰하고 만족하는 친환경 브랜드가 되기 위한 기반을 확실하게 다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의선 회장은 소프트웨어(SW) 원천기술 확보 중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미래 최첨단 상품 경쟁력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며 “우수 인재가 있는 곳에 AI 연구소를 설치해 관련 분야 역량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개방형 플랫폼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SK]
도전자 정신

SK그룹의 2022년 핵심 전략은 ‘도전정신을 통한 혁신과 성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31일 회사 임직원에게 이메일로 보낸 2022년 신년사에서 “기업의 숙명은 ‘챔피언’이 아니라 ‘도전자’가 되는 것”이라며 “새해에도 위대한 도전정신으로 미래를 앞서가자”고 당부했다.

여기에는 과거 경험에 안주하지 말고 전략적 유연성에 기반해 창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도전과 혁신을 통한 성장 예고
생존싸움서 살아남겠다는 의지

그는 “이제는 기업도 지구와 직접 대화할 때”라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1% 탄소 감축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고, SK는 사업 모델 혁신을 통해 미래 저탄소 친환경 사업을 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SK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새로운 목표를 담은 신년사를 발표했다. 공통적인 경영 화두는 ▲넷제로(탄소중립) ▲그린 ▲글로벌 등으로 귀결된다.

장동현 SK㈜ 부회장은 지난 3일 사내 신년사에서 “파이낸셜 스토리의 실행력을 더욱 높여 2022년을 ‘빅 립’(더 큰 수확)으로 진입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투자 전문 회사로서 첨단소재, 바이오, 그린, 디지털 등 4대 핵심 사업별 성장과 투자 수익 실현을 본격화하고, ESG 경영 전파로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도 신년사에서 “친환경 에너지 및 소재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카본 투 그린(탄소에서 친환경으로)’ 혁신을 위한 도전을 지속해가자”고 당부했다.  

[LG]
고객 제일주의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20일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먼저 신년사를 발표하고 ‘혁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모든 구성원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혁신을 통해 가치 있는 경험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혁신이라는 키워드는 궁극적으로 고객 경영이라는 이념과 맞닿아 있다. 구광모 회장은 “고객이 감동할 사용 경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며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사용하기 전과 후의 경험이 달라졌을 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느꼈을 때 만들어진다”고 했다. 

구광모 회장이 고객 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후 첫해인 2019년 신년사에서 “LG가 나아갈 방향은 고객”이라고 천명한 이후 매년 고객가치 경영 메시지를 강조해왔다. 양질의 제품을 만드는 일에 그치지 말고, 고객에게 그 이상의 가치를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구광모 회장의 시각이다.


총수의 뜻에 맞춰 계열 회사 최고경영진들도 고객가치 경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지난 3일 “고객가치에 재도약에 나서자”고 언급했고, 정철동 LG이노텍 사장 역시 “LG이노텍만이 줄 수 있는 고객 경험 혁신에 집중하자”고 당부했다.

[롯데]
강력한 실행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임인년 신년사에서 도전 정신과 강력한 실행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일 그룹 사내 홈페이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혁신을 위한 적극적인 시도를 당부했다.

신동빈 회장은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이제 비즈니스 정상화를 넘어 더 큰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혁신을 위한 시도는 미래 성장을 위해 필수이지만 과거의 성공 방식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계속 도전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신동빈 회장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샷은 100% 빗나간다’는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동시에 인용해 눈길을 끌었다. 신동빈 회장은 “실패는 무엇인가 시도했던 흔적”이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도전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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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