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여행지 ⑤서귀포 빛의벙커

어둠의 벙커에서 빛과 음악의 궁전으로

대로를 벗어나자 차선도 없는 길이다. 듬성듬성 농가와 밭을 경계 짓는 돌담을 거듭해 지난다. 대수산봉 서쪽에 자리한 빛의벙커는 가는 길부터 그 의미를 짐작게 한다. 전시(戰時)도 아닌데 벙커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공간의 모양 때문이다.

빛의벙커는 KT가 국가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센터에 해당한다. 철근콘크리트 단층 건물로 1990년 완공했다.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벽 두께 3m에 이른다. 지붕은 두께 1.2m 위에 높이 1m 공간을 두고, 다시 1m를 올린 이중 구조다. 이를 가로세로 1m짜리 콘크리트 기둥 27개가 떠받쳐 요새나 다름없다.

다양한 전시

센터 준공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했지만, 센터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듯했다. 건물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마치 산의 일부처럼 보이게 위장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방호벽을 두르고, 이중 철조망과 적외선 감지기를 설치한 뒤, 현역 군인이 통제했다. 인근에 사는 사람도 짓는 줄은 알았으나 완공된 줄은 모르는 건물이었다.

센터는 2000년대 초부터 용도 없이 방치되다 2012년 민간에 불하했고, 2015년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옛 센터의 사무실과 숙소동에 들어섰다. 종전 센터 벙커는 한동안 공연장과 행사장 등으로 쓰이다가, 2018년 11월에 빛의벙커가 문을 열었다.

빛의벙커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이다. 빔 프로젝터 90대가 벽과 바닥 등에 영상을 투사해 명화를 연출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편집한 거장의 작품이 삼면을 장식하는 순간, ‘빛의벙커’라는 이름을 실감한다.


개관 기념 전시로 연 〈구스타프 클림트-색채의 향연〉과 2019년 〈빈센트 반 고흐-별이 빛나는 밤〉이 큰 인기를 끌며 ‘2019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르누아르와 모네, 샤갈, 클레 등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전시한다.

파트Ⅰ ‘Voyages to Mediterranean(지중해로의 여행)’은 이상주의부터 모더니즘까지 6개 시퀀스로 나눠 작품 500여 점으로 빛의벙커를 채운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칼레트의 무도회’, 모네의 ‘수련’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샤갈의 ‘율리시스의 메시지’ 등 예술가 20인의 작품이 약 35분 동안 펼쳐진다.

파트Ⅱ는 파울 클레의 ‘Painting Music(음악을 그리다)’이다. 클레는 화가이자 음악가, 교사로 활동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주제곡과 클레의 작품이 10분 동안 공간을 채우는데, 스피커 69대를 설치해 귀도 눈 못지않게 즐겁다.

빛의벙커 전시는 평면적인 회화 전시가 아니라, 거장의 작품을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다. 이를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면 된다. 가장자리 의자는 벽에 등을 기댈 수 있어 편안하다. ‘불멍’이나 ‘물멍’을 하듯 작품을 감상하기 좋다. 물론 작품 바로 앞 바닥에 앉으면 몰입도가 올라간다.

바닥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따라 걸으며 감상할 수도 있다.

전시장은 하나의 열린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거울로 이뤄진 작은 미러룸, 전시 중인 작품을 한 장씩 보여주는 ‘ㄷ 자형’ 갤러리룸 등과 여러 개 벽이 공간을 구획해 단조롭지 않다. 입구나 열린 창이 프레임 역할을 해, 보는 방향에 따라 흥미로운 시선도 연출한다.


시설의 면과 선을 교차하거나 겹치도록 촬영하면 색다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 전시와 전시 사이, 미디어 아트 작품이 사라지는 막간에 콘크리트 공간이 날것 그대로 보여, 잠시나마 옛 센터의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해저 광케이블 관리하던 센터에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으로

빛의벙커는 남쪽 입구와 북쪽 출구의 모습이 똑같다. 입체적인 사다리꼴로, 입구 위쪽은 수목이 무성해 공간을 위장한 흔적이 엿보인다. 벙커 옆에는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있다. 카페와 박물관이 공존하고, 창이 넓어 숲을 바라보며 커피 마시기 좋다. 인근 바람의 숲이나 대수산봉 둘레길, 대수산봉 정상 등을 연계해 산책 삼아 걸을 만하다.

빛의벙커 홈페이지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소설가 김영하와 뮤지컬 배우 카이가 들려주는 오디오 도슨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시를 좀 더 알차고 재밌게 경험하는 방법이다. 현재 전시는 내달 28일까지 열린다. 빛의벙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연중무휴), 관람료는 어른 1만8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빛의벙커에서 가까운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를 잇는 해안으로, 썰물 때는 이끼 낀 빌레(너럭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암이 바다를 만나 굳으며 생겨난 지형이다. 그 위를 걸어볼 수 있는데 성산일출봉까지 뻗어 나간 풍경이 장관이다.

광치기는 ‘광야처럼 넓다’라는 뜻이 있고, ‘관치기’라는 슬픈 이름도 있었다.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 죽으면 파도에 시체가 밀려와 관을 짜서 묻었다고 한다. 광치기해변의 일출이 장엄하게 느껴진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본태박물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지은 건물이다. 전시관과 전시관을 잇는 동선이 미로처럼 이어져 연신 호기심을 자아낸다. 2관 2층 통로에서 보는 제주 남쪽 바다와 산방산, 단산, 모슬봉의 파노라마 풍경 역시 자연을 담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특징을 잘 드러낸다.

본태(本態)는 ‘본래 형태’를 뜻한다. 특히 한국 전통 공예품 전시가 돋보인다. 1관은 소반과 보자기 등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4관은 전통 상례와 관련된 꽃상여, 용수판, 용마루 꼭두 인형 등이 눈길을 끈다. 3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와 5관 제임스 터렐의 초기작 ‘단일 벽 투사’ 전시실은 공간을 체험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제주의 활기를 느끼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서귀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근래에는 관광객에게 더 인기다. 아케이드 형태로 365일 열리는 시장인데, 제주의 특산물과 간식거리가 많다.

다진 마늘이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마늘통닭, 김밥과 어묵, 떡볶이 등을 다 함께(모닥) 넣은 제주식 모둠 떡볶이인 모닥치기, 꽁치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꽁치김밥 등이 부동의 스테디셀러다. 흑돼지김치말이, 땅콩만두, 대게고로케, 감귤찹쌀떡 등은 근래 각광받는 메뉴. 삼시 세끼로 부족한 ‘먹부림’의 진수를 펼쳐 보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빛의벙커→제주커피박물관 바움→광치기해변→서귀포매일올레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빛의벙커→제주커피박물관 바움→광치기해변→성산일출봉
둘째 날: 본태박물관→군산오름→서귀포매일올레시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서귀포시 관광 www.seogwipo.go.kr/field/tourist.htm
- 비짓제주 www.visitjeju.net
- 빛의벙커 www.bunkerdelumieres.com
- 제주커피박물관 바움 www.jejubaum.com
- 본태박물관 www.bontemuseum.com  

문의 전화
- 서귀포시청 관광진흥과 064)760-2654
- 빛의벙커 1522-2653
- 제주커피박물관 바움 064)784-2255
- 본태박물관 064)792-8108
- 서귀포매일올레시장 064)762-1949

대중교통
[버스] 제주국제공항에서 111번·112번 급행버스 이용, 고성환승정류장(고성리회전교차로) 하차, 빛의벙커까지 택시 이용, 약 2.3㎞. *문의: 제주버스정보시스템 064)710-2447, http://bus.jeju.go.kr

자가운전
제주국제공항→공항입구교차로→용문로 시청 방면 우측 도로 729m→월성로 종합경기장 시청 방면 우회전, 1.3㎞→오라로 연삼로 방면 우회전, 740m→오남로 우회전, 230m→연삼로 시청·법원 방면 좌회전, 3.9㎞→번영로 봉개·표선 방면 19.2㎞→비자림로 평대 방면 좌회전, 5.9㎞→중산간동로 성읍·성산 방면 우회전, 11.65㎞→서성일로 성산 방면 좌회전, 1.2㎞→서성일로 우회전, 346m→서성일로1168번길 우회전, 378m→빛의벙커

숙박 정보
- 플레이스캠프 제주: 성산읍 동류암로, 064)766-3000, www. playcegroup.com
- 취다선리조트: 성산읍 해맞이해안로, 064) 784-2221, www.chuidasun.com
- 제주에코스위츠휴양펜션: 서귀포시 중문상로, 064)738-9975, www.jejueco.com


식당 정보
- 경미네집(경미휴게소)(전복덮밥): 성산읍 일출로, 064)782-2671, www.instagram.com/gyeongminejib
- 나목도식당(삼겹살): 표선면 가시로613번길, 064)787-1202
- 와랑와랑(핸드드립커피): 남원읍 위미중앙로300번길, 070-4656-1761

주변 볼거리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용머리해안, 김녕금속공예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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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