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더 비싼' 황금 번호판 뒷거래 실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1.23 13:16:20
  • 호수 13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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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넘버 ‘1111 2000만원’ 부르는 게 값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1111, 2222 등 희귀한 차량번호들은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이른바 ‘포커 번호’라고 불리는 이 희귀 차량번호들은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상당히 고액에 거래되고 있다. 비싼 가격에도 ‘눈에 잘 띄는’ 희귀 번호를 구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가격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숫자가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1990년대 삐삐가 전 국민의 필수품이었을 때 숫자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예를 들면 8282는 빨리빨리, 486은 사랑해, 1004는 천사란 뜻이다. 이처럼 숫자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삐삐용어란 말도 생겼다.

‘좋은 번호’
특별한 배열

삐삐 시대가 지났어도 숫자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이삿짐센터 전화번호는 2424, 부동산 중개업체들은 4989가 유리해 해당업계에선 국룰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음식점 배달 전문업체는 8282, 콜택시는 8255 번호를 선호한다. 

우리 일상에선 전화번호에서부터 자동차 번호판, 아파트 동·호수, 집 번지, 생년월일, 은행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이 언제부턴가 자신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수단이 돼버렸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눈에 띄는 차량번호는 국회의원 등 공무원들이 주로 사용했다. 의원들은 외우기 쉽고 ‘눈에 잘 띄는’ 3000번이나 5656, 5060 등의 번호를 확보하려고 애썼다. 구구단형 8756번이나 9545번도 좋은 번호로 꼽힌다.


의원들은 차량번호뿐 아니라 전화번호도 특별한 것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띄는 번호는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외우기 쉬운 번호가 권위로 격상하는 것은, 이 같은 번호에 대한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기 때문에 특별한 능력을 행사해 이를 취득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 비서관은 특별한 숫자에 집착하는 현상에 대해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듯 의원들은 4년마다 있는 선거에 이겨야만 하기에 의원들은 자기가 쓰는 차량과 전화의 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황금 번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자동차가 많아지고 번호판 부정 배정 잡음에 따라 신청한 순서대로 받게 됐다. 황금 번호 차량은 부정번호의 상징이 돼버린 탓에 일반 시민은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으며 배정받더라도 피하는 사람이 늘었다. 

‘눈에 띄는’ 번호 목돈 주고 배정
고객이 원하는 대로…짭짤한 딜러

사생활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탓이다. 남의 눈에 쉽게 띈다는 점을 오히려 꺼림칙하게 생각하기도 쉬웠다. 또 눈에 띄는 차를 타고 다닐 경우 사람들은 인식이 ‘돈만 많고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 ‘부정적인 사람’ 등으로 인식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서울 자동차 관리사업소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제작하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자동차 번호가 권위의 상징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좋은 번호를 갖고 있다고 누가 우러러봐 주지도 않는다. 좋은 번호를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자동차 황금 번호를 다시 찾고 있다. 개인사업자가 늘어나면서 잠재적 고객에게 각인시키는 용도로 눈에 띄는 차량 번호를 다시 찾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중고차 카페에서 황금 번호를 구한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도 황금 번호를 받기 위한 방법이 공유됐다. 일반적인 차량번호 배정 방식은 완전 무작위 방식으로 이뤄지며 번호 공란 현황과 발급 상황 등 변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주로 하루를 기점으로 바뀌지만, 때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뀔 수 있다.

순서가 바뀌어도 차주가 원하는 번호를 찾는 방법은 있다.

자동차 등록 업무를 지원하는 구청 교통행정과나 차량등록사업소에 일일이 유선으로 문의하면 된다. 다만 서울의 각 구청 교통행정과로 전화 연결 시 상당수가 다산콜센터와 연동돼있어 통화 연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만 한다.

유선 문의를 통해 해당 구청 혹은 자동차등록사업소에서 분출하는 차량 앞 두 자리 번호와 글자, 그리고 뒤 네 자리 번호의 첫 번째 숫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차량 용도와 번호판 형식 등에 따라 다른 번호를 운용하기 때문에 유선 문의에 앞서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줘야 한다. 

이삿짐·배달점
전번 의미 부여

확정된 앞번호와 달리 뒷번호는 당일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배정받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대략적인 번호 범위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이미 확정된 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단, 후자의 경우 황금 번호와는 상관없는 일관성 없는 번호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등록일에 차주가 가장 마음에 드는 앞번호를 선택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운에 맡겨야 한다. 

예를 들어, 차주는 ‘55오 5555’라는 희귀한 번호를 갖고 싶어 한다. 뒷번호가 5로 시작한다는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미 5555 번호를 사용 중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앞뒤 번호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해당 번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있어 변수는 시간이다. 신차 출고와 동시에 등록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10일에 불과하다. 이후 10일 경과 시 5만원, 그 이후 1일에 1만원씩,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에 맞춰 모니터링이 필요하기에 자동차 번호 선택 시 적당히 타협하게 된다. 주어진 10개의 보기 중 ‘취향’에 맞는 번호를 고르게 되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그나마 직접 등록할 때 이를 저울질할 시간이 제법 주어지는 편이다.

보통 등록 대행을 맡겼을 경우 이 선택의 시간은 30초 내로 한정된다. 


차량 등록 시 제시된 10개 번호를 확인한 이후, 그와 완전히 다른 무작위 배정이 가능한지는 배정 현황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이에 해당 번호가 빠진다면 새로운 번호로 보기가 추가되지만, 확인 직후 재배정 시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각종 서류 작성 및 제출, 비용 납부를 마친 뒤 원하는 번호판을 받을 수 있다.

발품을 팔지 않고 좋은 번호를 받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고액의 돈을 들여 황금 번호를 취득하는 것이다. 각종 중고차 카페나 거래 매매 사이트에 “황금 번호를 구한다”는 게시글을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회원 수가 많거나 게시글이 많이 올라오는 등 규모가 큰 카페일수록 좋다. 

게시글을 올리지 않아도 구매 대행업체 직원이나 브로커가 ‘포커 번호(연속된 숫자를 의미)’를 구해줄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후 브로커가 연락을 준다고 한 뒤 한참 동안을 기다려야 한다. 

연락이 바로 오는 경우는 드물다. 브로커는 황금 번호 희망자에게 일 주일에서 한 달 정도의 날짜가 지난 뒤 연락을 취한다. 원하는 번호대를 확인한 후 수수료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한다. 원하는 번호 등급에 따라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유튜브·블로그 
발급 방법 공유

1등급으로 불리는 포커 번호를 구해주는 데 수수료는 1000만원대까지 올라간다. 자동차 번호는 대표적으로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나누어져 있다. 


등급 별로 ▲1등급 앞뒤 포커(111가1111) ▲2등급 오름차순(123가4567) ▲3등급 앞 오름차순과 뒤 포커(123가7777) ▲4등급 포커(147가1111) ▲5등급 특정 차량 (페라리 0488, 0911 포르셰) ▲ 6등급 1000번대(1000, 2000) ▲7등급 오름차순 내림차순(1234, 4321) ▲8등급 AABB패턴(1122, 2211) ▲9등급 개인적인 선호 번호로 나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번호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다. 혹은 자신의 핸드폰 뒷자리를 차량번호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여간 네 자리 숫자가 동일하거나 0이 3개 포함된 황금 번호 대부분이 수입차나 국산 고급차에 집중됐다. 이 기간 황금 번호가 발급된 현대자동차 i30와 엑센트는 각각 55대, 134대에 불과하지만 벤츠 E클래스는 857대, BMW 5시리즈의 경우 499대나 황금 번호를 배정받았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좋은 번호를 얻는 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대행업체를 거쳐 돈을 주고 번호판을 매매한다는 것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차량등록사업소 출신 퇴직 공무원 등이 대행업체를 차리기도 한다는 점을 들어 유착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중고차 카페·거래사이트 만남의 장
1~9등급 따라 수수료 가격 천차만별

황금 번호를 원하는 A씨는 서울의 한 구청을 방문했지만, 공무원이 아닌 번호판 발급 대행사 직원의 설명만 들어야 했다. 대행사 도움 없이 스스로 황금 번호를 얻고 싶었던 그는 다음날에도 구청을 찾았지만 원하는 번호를 뽑는 데 실패했다.

돌아가려던 순간 A씨는 다른 부서엔 들르지도 않은 채 번호판 발급 장소로 직행해 3000번을 달고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의 모습을 목격했다.

A씨에 따르면 보험개발원 전산원에서 뽑아본 0이 3개씩 들어간 번호들은 다 외제차였다. 이 같은 경험은 온라인에서 비일비재하게 찾아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차량 번호판은 구청이 1000개 단위로 번호를 배정받아 10분의 1씩 잘라서 발급하고 있다. 

10개씩 무작위로 추첨한 것 중 차주가 고르기 때문에 비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게 구청 공무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1000단위로 딱 떨어지거나 한 가지 숫자가 연속되는 골드 번호를 취득하는 데 있어 대행사들이 분주해진다.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황금 번호가 나올 때까지 10개 단위의 추첨을 여러 번씩 반복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7777번이나 7788번 같은 ‘프리미엄 번호’를 얻으려면 대행사에 1000만원 이상씩 내야 한다는 것은 업계 정설로 통한다. 또 다른 구청은 민원인은 물론 대행사에도 좋은 번호를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이미 발급됐어야 할 번호도 유보로 잡고 있다가 나중에 내주는 경우도 확인되곤 한다.

A씨는 중고차 사이트에서 이미 발급됐어야 할 차량번호를 입력했는데 미등록 번호로 나와 해당 번호를 달라고 문의했더니 “이미 나간 번호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공무원과 공모해 좋은 차량 번호를 얻는 건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순서를 바꾸거나 미리 빼돌려 좋은 번호를 선점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원하는 번호를 콕 집어 얻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남은 좋은 번호 중에 기다리고 기다려서 구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자동차 번호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범죄는 아니지만 문제가 있는 행위”라고 덧붙였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김 교수는 “황금 번호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보다는 성숙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돌리고 돌려
미리 빼돌려

앞서 브로커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좋은 번호를 구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과거 명품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명품을 구매하는 행태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바 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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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