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친문?' 기로 선 이재명 딜레마

문 박차고 나와야 산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달 민주당 최종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만 해도 지지율 난항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민주당 경선에서 과반 득표한 그가 본선에서 맹활약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의 예상은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후보의 위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3주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를 비판하는 제각각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딱 이 문장이 떠오른다. 

목소리 
제각각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오는 국민의힘 윤석열 선대위가 행복한 가정이라면, 불행한 가정은 지지율에 부침을 겪는 이재명 선대위일 것이다. 박스권 지지율을 뚫지 못하는 이 후보의 부진을 분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의 ‘불행’이 선대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10명의 초선 의원들은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은 민주당이 비대하고 느리며 현장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며 “20대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당 선대위가 국회의원, 선수 중심으로 구성돼 현장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청년, 여성, 서민 소외계층, 사회적 약자 등 각계각층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구조”라고 선대위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사회 각계각층의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외부 인재를 영입해 전면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선 우상호 의원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나도 공동총괄본부장 중 한 명이지만 민주당의 대응이 너무 늦다. 상근 체제를 실시해 하루에도 몇 번씩 저쪽 대응에 대응하고 비판할 것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며 “선대위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쓴소리했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도 지난 17일 간담회에서 “민주당 선대위에서 절박함이나 절실함을 찾을 수 없다. 후보만 죽어라 뛰고,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은 분들이 벌써 다음 대선이나 자기 자리 욕심만 채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전 원장은 “지금처럼 후보 개인기로만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후보가 중심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안 하면 승리가 어렵다”고도 비판했다.

이들 목소리를 종합해보면, 현재의 이재명 선대위는 현장성이 부족하고 대응이 느리며, 절박하지도 않다. 지난 3주간 행태를 볼 때 이 같은 비판들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지난 9일 새벽 이 후보 배우자 김혜경씨는 산책하던 중 낙상 사고를 당했다. 이 후보는 곧바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배우자 병간호에 들어갔는데, 이를 두고 인터넷에는 “둘이 싸운 것 아니냐”는 악의적인 루머가 떠돌았다.

선대위는 하루가 지난 10일에 최초 유포자로 추측되는 네티즌 2명을 고발하고, 3일이 지난 12일에는 앰뷸런스 CCTV 사진을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루머가 퍼질 대로 퍼진 시점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CCTV 사진 공개가 3일이나 걸린 점은 비판의 주요 대상이 됐다. 


윤과 지지율 격차…선대위 문제?
“느리고 느슨” 머릿속엔 투트랙?

이 후보의 부산 비하 발언 논란도 비슷한 경우다. 이 후보는 지난 13일 지방 정부의 재정 문제를 논의하던 중 “부산은 재미없잖아, 솔직히”라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휘말렸다.

복수의 언론들은 “부산을 비하했다”며 이 후보를 향한 비판 보도를 쏟아냈다. 이번에도 선대위는 즉각 반박하지 못하고 하루 뒤인 14일에서야 뒤늦은 논평을 냈다.

반복되는 선대위의 헛발질에 이 후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후보는 지난 17일, 이낙연계 의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지금 선대위에는 기민함이 필요하다”며 “별동대를 구성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소수 정예의 인사를 중심으로 별도의 팀을 꾸려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의견을 두고 당내에서는 “원팀 정신이 있긴 한 것이냐” “별동대로만 선거를 치르겠다는 소리냐” 등 이 후보의 ‘원팀 정신’을 두고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경선의 아픔을 딛고 간신히 꾸려놓은 원팀을 후보 스스로 깨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의 ‘별동대 발언’은 선대위에 답답함을 느낀 후보가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의견 피력이었으나,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그동안 의심해왔던 속내를 이를 계기로 드러냈다.

바로 이 후보의 머릿속에는 ‘투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후, 이 후보는 곧바로 친문(친 문재인) 행보를 펼친 바 있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는 당 차원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 후보의 머리 한 쪽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찝찝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둘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지난 2017년 대선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에도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로 뛰던 이 후보는 올해 경선서 이낙연 후보와 대립했던 것처럼 문재인 당시 후보와 거센 네거티브 공방을 주고받은 바 있다.

뼛속 비문
친문인 척?

토론 내내 ‘문재인 때리기’에 열중했던 이 후보는 조세제도, 정체성 논란, 재벌 개혁 의지, 심지어 문 후보가 군 시절 받았던 ‘전두환 표창장’에 대해서도 수위 높은 비판을 했다. 경선 토론 중 질의 시간 대부분을 문 후보에게 썼고, 그때마다 문 후보가 아플만한 말들을 쏟아냈다.


갈등의 정점을 찍은 건 혜경궁 김씨 관련 논란이었다. 당시 08_hkkim이란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 트위터리안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명한 독설가였다.

그는 주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전해철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를 비난했는데, 공교롭게도 비난의 대상 모두 이 후보의 선거 상대들이었다. 이는 자연스레 해당 트위터리안은 이 후보 측근이 아니냐는 의심으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아이디의 이니셜이 이 후보의 배우자 김씨와 똑같은 점을 들어 누리꾼들은 측근을 그의 배우자 김씨로 특정했다. 그리고 누리꾼들은 문제의 트위터리안에게 김씨의 이름에서 착안한 ‘혜경궁 김씨’란 별칭을 붙였다. 

‘혜경궁 김씨’는 전 후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손잡은 전해철 때문에 경기 선거판이 아주 똥물이 됐다. 여의도나 가라”고 하거나, 문 대통령에 대해선 “문 후보가 대통령되면 꼭 노무현처럼 될 거니까 그 꼴 보자. 대통령 병 걸린 놈”이라고 하는 등 사자 조롱과 문 후보를 모욕하는 발언을 동시에 했다.

결국, 전 후보는 해당 계정의 사용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전 후보는 “트위터 내용에 고인과 문 대통령에 대한 패륜적 비난이 담겼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경기도 남부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지만, 미국 트위터 본사가 해당 계정의 정보공개를 거부해 혜경궁 김씨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 수사가 자신을 향한 문정부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목표를 정하고 증거를 짜 맞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경찰은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 그들이 지금 이재명 부부에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집중했더라면 아마 나라가 지금보다 10배는 좋아졌을 것”이라고 문정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혜경궁 김씨 논란 후 얼마 뒤 결국 ‘이재명의 난’이 일어났다. 이 후보가 혜경궁 김씨를 수사하려면 문 대통령의 아들 문주용씨에 대한 특혜취업 의혹 수사부터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진흙탕 싸움
상처는 아직…

이는 문 대통령과 완전히 척을 지는 행보였다.

그는 “변호인으로서는 부인이 계정주가 아니며, 특혜 의혹 글을 쓰지 않았음을 밝히는 동시에 그 글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법적으로 입증해야만 한다”며 “트위터 글이 죄가 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선 먼저 특혜 채용 의혹이 허위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뒤 이를 바탕으로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 후보는 민주당 최대 계파인 ‘친문(친 문재인)’과의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후에 “둘 다 무혐의 결론을 내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정계 전문가들은 이 행보가 당시 문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둘의 사이가 개선될 조짐을 보였던 건 이 후보의 최종 경선 이후다. 민주당의 최종 대선후보로서,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힘을 합해야 하는 둘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억지로’라도 관계를 개선해야 했다. 

지난달 26일 이 후보와 문 대통령은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관례에 따라 여권 후보로 정해진 이 후보가 문 대통령을 예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후보는 치열하게 대립했던 과거가 생각난 듯 멋쩍게 “지난 대선 때 좀 모질게 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한다”며 “따로 뵐 기회가 있으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문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1위 후보가 되니까 그 심정 아시겠죠?”라며 웃으면서 화답했다.

4년 만에 두 손을 맞잡게 된 둘은 회동 내내 따뜻한 분위기를 이어가려 애썼다. 이 후보는 “대통령과 생각이 너무 일치해서 놀랄 때가 있다. 대통령이 민주당의 핵심가치라고 하는 민생, 개혁, 평화의 가치를 정말 잘 수행했다”며 문정부의 업적을 추켜세웠다. 

문 대통령은 공직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기에 말을 조심했지만 “이 후보와 지난 대선 때 저와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고, 경쟁을 마친 후에도 다시 함께 힘을 모아서 함께 정권교체를 해냈다”며 “그동안 대통령으로서, 경기도지사로서 함께 국정을 이끌어왔는데 이제 나는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고, 이 후보가 새로운 후보가 돼 여러 모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오래된 인연과 악연
불편한 동거 깨지나?

회동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뒤,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에 등장한 이 후보의 목에는 당시 문 대통령이 선물한 넥타이가 매어 있었다. 하나의 민주당을 표방하는 자리서 그는 공개적으로 청와대와도 관계가 개선됐다는 시그널을 낸 것이다.

4년 만에 화해한 둘의 평화는 채 두 달을 가지 못했다. 이 후보가 결국 다시 문정부를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인데 원인은 다름 아닌 지지율 부진이었다. 경선 전, 이 후보의 지지율은 윤 후보와 4~5%대의 격차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 격차는 국민의힘 최종 경선을 기점으로 급격히 벌어졌다. 지난 16일 여론조사 공정이 <데일리안>의 의뢰로 12~13일 동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 후보는 지지율 45.4%를 기록했고, 이 후보는 34.1%를 기록했다.

몇 주 사이 11%가량 벌어진 것이다.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최종 경선이었던 지난 5일 이후 조사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은 평균 10% 이상 윤 후보에게 뒤지고 있다.

경각심을 느낀 이 후보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여러 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윤 후보에게 매주 일대일 회동을 하자고 한 ‘토론 카드’와 대장동과 고발사주를 동시에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특검 카드’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별다른 반전이 일어나지 않자 결국 이 후보는 마지막 한 수인 ‘비문 카드’를 꺼냈다. 그는 지난 15일 민주당 선대위 회의에 참석해 정부와 민주당 모두를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문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국가 경제의 총량은 좋아진다고 하지만 지금의 서민경제가 현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해보라”고 운을 뗀 뒤 “다수의 국민, 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현장감각도 없이 필요한 예산들을 삭감하는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의 경제 정책이 탁상공론만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에 대해서는 “국민들께서 민주당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해줬지만, 지금은 그 높은 기대가 실망으로 변질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비문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친문의 가면을 벗는 시점이 대선이 끝난 후가 될지, 전이 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비문 카드를 꺼낸 이 후보지만, 이 방법으로도 먹히지 않으면 다시 친문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상 유일하게 레임덕을 겪지 않고 있는 문 대통령의 인기를 이대로 완전히 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지지율에 따라 자신의 노선을 결정하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 또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경선 때 필요했던 친문 표심이 이제는 필요 없으니 버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가면
언제 벗나

한 마디로 이 후보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비문으로 가자니 기회주의자가 되고, 친문으로 가자니 지지율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곧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 후보는 현재 어느 쪽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 필사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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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