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친문?' 기로 선 이재명 딜레마

문 박차고 나와야 산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달 민주당 최종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만 해도 지지율 난항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민주당 경선에서 과반 득표한 그가 본선에서 맹활약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의 예상은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후보의 위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3주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를 비판하는 제각각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딱 이 문장이 떠오른다. 

목소리 
제각각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오는 국민의힘 윤석열 선대위가 행복한 가정이라면, 불행한 가정은 지지율에 부침을 겪는 이재명 선대위일 것이다. 박스권 지지율을 뚫지 못하는 이 후보의 부진을 분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의 ‘불행’이 선대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10명의 초선 의원들은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은 민주당이 비대하고 느리며 현장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며 “20대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당 선대위가 국회의원, 선수 중심으로 구성돼 현장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청년, 여성, 서민 소외계층, 사회적 약자 등 각계각층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구조”라고 선대위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사회 각계각층의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외부 인재를 영입해 전면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선 우상호 의원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나도 공동총괄본부장 중 한 명이지만 민주당의 대응이 너무 늦다. 상근 체제를 실시해 하루에도 몇 번씩 저쪽 대응에 대응하고 비판할 것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며 “선대위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쓴소리했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도 지난 17일 간담회에서 “민주당 선대위에서 절박함이나 절실함을 찾을 수 없다. 후보만 죽어라 뛰고,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은 분들이 벌써 다음 대선이나 자기 자리 욕심만 채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전 원장은 “지금처럼 후보 개인기로만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후보가 중심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안 하면 승리가 어렵다”고도 비판했다.

이들 목소리를 종합해보면, 현재의 이재명 선대위는 현장성이 부족하고 대응이 느리며, 절박하지도 않다. 지난 3주간 행태를 볼 때 이 같은 비판들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지난 9일 새벽 이 후보 배우자 김혜경씨는 산책하던 중 낙상 사고를 당했다. 이 후보는 곧바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배우자 병간호에 들어갔는데, 이를 두고 인터넷에는 “둘이 싸운 것 아니냐”는 악의적인 루머가 떠돌았다.

선대위는 하루가 지난 10일에 최초 유포자로 추측되는 네티즌 2명을 고발하고, 3일이 지난 12일에는 앰뷸런스 CCTV 사진을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루머가 퍼질 대로 퍼진 시점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CCTV 사진 공개가 3일이나 걸린 점은 비판의 주요 대상이 됐다. 

윤과 지지율 격차…선대위 문제?
“느리고 느슨” 머릿속엔 투트랙?

이 후보의 부산 비하 발언 논란도 비슷한 경우다. 이 후보는 지난 13일 지방 정부의 재정 문제를 논의하던 중 “부산은 재미없잖아, 솔직히”라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휘말렸다.

복수의 언론들은 “부산을 비하했다”며 이 후보를 향한 비판 보도를 쏟아냈다. 이번에도 선대위는 즉각 반박하지 못하고 하루 뒤인 14일에서야 뒤늦은 논평을 냈다.

반복되는 선대위의 헛발질에 이 후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후보는 지난 17일, 이낙연계 의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지금 선대위에는 기민함이 필요하다”며 “별동대를 구성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소수 정예의 인사를 중심으로 별도의 팀을 꾸려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의견을 두고 당내에서는 “원팀 정신이 있긴 한 것이냐” “별동대로만 선거를 치르겠다는 소리냐” 등 이 후보의 ‘원팀 정신’을 두고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경선의 아픔을 딛고 간신히 꾸려놓은 원팀을 후보 스스로 깨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의 ‘별동대 발언’은 선대위에 답답함을 느낀 후보가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의견 피력이었으나,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그동안 의심해왔던 속내를 이를 계기로 드러냈다.

바로 이 후보의 머릿속에는 ‘투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후, 이 후보는 곧바로 친문(친 문재인) 행보를 펼친 바 있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는 당 차원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 후보의 머리 한 쪽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찝찝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둘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지난 2017년 대선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에도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로 뛰던 이 후보는 올해 경선서 이낙연 후보와 대립했던 것처럼 문재인 당시 후보와 거센 네거티브 공방을 주고받은 바 있다.

뼛속 비문
친문인 척?

토론 내내 ‘문재인 때리기’에 열중했던 이 후보는 조세제도, 정체성 논란, 재벌 개혁 의지, 심지어 문 후보가 군 시절 받았던 ‘전두환 표창장’에 대해서도 수위 높은 비판을 했다. 경선 토론 중 질의 시간 대부분을 문 후보에게 썼고, 그때마다 문 후보가 아플만한 말들을 쏟아냈다.

갈등의 정점을 찍은 건 혜경궁 김씨 관련 논란이었다. 당시 08_hkkim이란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 트위터리안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명한 독설가였다.

그는 주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전해철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를 비난했는데, 공교롭게도 비난의 대상 모두 이 후보의 선거 상대들이었다. 이는 자연스레 해당 트위터리안은 이 후보 측근이 아니냐는 의심으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아이디의 이니셜이 이 후보의 배우자 김씨와 똑같은 점을 들어 누리꾼들은 측근을 그의 배우자 김씨로 특정했다. 그리고 누리꾼들은 문제의 트위터리안에게 김씨의 이름에서 착안한 ‘혜경궁 김씨’란 별칭을 붙였다. 

‘혜경궁 김씨’는 전 후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손잡은 전해철 때문에 경기 선거판이 아주 똥물이 됐다. 여의도나 가라”고 하거나, 문 대통령에 대해선 “문 후보가 대통령되면 꼭 노무현처럼 될 거니까 그 꼴 보자. 대통령 병 걸린 놈”이라고 하는 등 사자 조롱과 문 후보를 모욕하는 발언을 동시에 했다.

결국, 전 후보는 해당 계정의 사용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전 후보는 “트위터 내용에 고인과 문 대통령에 대한 패륜적 비난이 담겼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경기도 남부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지만, 미국 트위터 본사가 해당 계정의 정보공개를 거부해 혜경궁 김씨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 수사가 자신을 향한 문정부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목표를 정하고 증거를 짜 맞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경찰은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 그들이 지금 이재명 부부에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집중했더라면 아마 나라가 지금보다 10배는 좋아졌을 것”이라고 문정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혜경궁 김씨 논란 후 얼마 뒤 결국 ‘이재명의 난’이 일어났다. 이 후보가 혜경궁 김씨를 수사하려면 문 대통령의 아들 문주용씨에 대한 특혜취업 의혹 수사부터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진흙탕 싸움
상처는 아직…

이는 문 대통령과 완전히 척을 지는 행보였다.

그는 “변호인으로서는 부인이 계정주가 아니며, 특혜 의혹 글을 쓰지 않았음을 밝히는 동시에 그 글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법적으로 입증해야만 한다”며 “트위터 글이 죄가 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선 먼저 특혜 채용 의혹이 허위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뒤 이를 바탕으로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 후보는 민주당 최대 계파인 ‘친문(친 문재인)’과의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후에 “둘 다 무혐의 결론을 내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정계 전문가들은 이 행보가 당시 문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둘의 사이가 개선될 조짐을 보였던 건 이 후보의 최종 경선 이후다. 민주당의 최종 대선후보로서,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힘을 합해야 하는 둘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억지로’라도 관계를 개선해야 했다. 

지난달 26일 이 후보와 문 대통령은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관례에 따라 여권 후보로 정해진 이 후보가 문 대통령을 예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후보는 치열하게 대립했던 과거가 생각난 듯 멋쩍게 “지난 대선 때 좀 모질게 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한다”며 “따로 뵐 기회가 있으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문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1위 후보가 되니까 그 심정 아시겠죠?”라며 웃으면서 화답했다.

4년 만에 두 손을 맞잡게 된 둘은 회동 내내 따뜻한 분위기를 이어가려 애썼다. 이 후보는 “대통령과 생각이 너무 일치해서 놀랄 때가 있다. 대통령이 민주당의 핵심가치라고 하는 민생, 개혁, 평화의 가치를 정말 잘 수행했다”며 문정부의 업적을 추켜세웠다. 

문 대통령은 공직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기에 말을 조심했지만 “이 후보와 지난 대선 때 저와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고, 경쟁을 마친 후에도 다시 함께 힘을 모아서 함께 정권교체를 해냈다”며 “그동안 대통령으로서, 경기도지사로서 함께 국정을 이끌어왔는데 이제 나는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고, 이 후보가 새로운 후보가 돼 여러 모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오래된 인연과 악연
불편한 동거 깨지나?

회동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뒤,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에 등장한 이 후보의 목에는 당시 문 대통령이 선물한 넥타이가 매어 있었다. 하나의 민주당을 표방하는 자리서 그는 공개적으로 청와대와도 관계가 개선됐다는 시그널을 낸 것이다.

4년 만에 화해한 둘의 평화는 채 두 달을 가지 못했다. 이 후보가 결국 다시 문정부를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인데 원인은 다름 아닌 지지율 부진이었다. 경선 전, 이 후보의 지지율은 윤 후보와 4~5%대의 격차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 격차는 국민의힘 최종 경선을 기점으로 급격히 벌어졌다. 지난 16일 여론조사 공정이 <데일리안>의 의뢰로 12~13일 동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 후보는 지지율 45.4%를 기록했고, 이 후보는 34.1%를 기록했다.

몇 주 사이 11%가량 벌어진 것이다.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최종 경선이었던 지난 5일 이후 조사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은 평균 10% 이상 윤 후보에게 뒤지고 있다.

경각심을 느낀 이 후보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여러 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윤 후보에게 매주 일대일 회동을 하자고 한 ‘토론 카드’와 대장동과 고발사주를 동시에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특검 카드’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별다른 반전이 일어나지 않자 결국 이 후보는 마지막 한 수인 ‘비문 카드’를 꺼냈다. 그는 지난 15일 민주당 선대위 회의에 참석해 정부와 민주당 모두를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문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국가 경제의 총량은 좋아진다고 하지만 지금의 서민경제가 현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해보라”고 운을 뗀 뒤 “다수의 국민, 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현장감각도 없이 필요한 예산들을 삭감하는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의 경제 정책이 탁상공론만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에 대해서는 “국민들께서 민주당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해줬지만, 지금은 그 높은 기대가 실망으로 변질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비문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친문의 가면을 벗는 시점이 대선이 끝난 후가 될지, 전이 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비문 카드를 꺼낸 이 후보지만, 이 방법으로도 먹히지 않으면 다시 친문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상 유일하게 레임덕을 겪지 않고 있는 문 대통령의 인기를 이대로 완전히 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지지율에 따라 자신의 노선을 결정하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 또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경선 때 필요했던 친문 표심이 이제는 필요 없으니 버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가면
언제 벗나

한 마디로 이 후보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비문으로 가자니 기회주의자가 되고, 친문으로 가자니 지지율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곧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 후보는 현재 어느 쪽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 필사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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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