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만족 치유여행 ②순창 용궐산하늘길

섬진강 굽어보는 짜릿한 잔도

“지난 주말에 왔다가 차 막혀 되돌아갔당께. 다시 오길 잘했구먼. 절경은 절경일세.” 광주에서 온 나이 지긋한 부부가 유장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자못 감격한 어투로 말을 잇는다. 지난 4월 개장한 용궐산하늘길은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해 순창의 최고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용궐산하늘길 들머리는 용궐산치유의숲이다. 이곳 널찍한 주차장이 평일이지만 거의 찼다. 아직 주말에는 차가 많아 되돌아갈 정도라니 되도록 평일에 방문하자. 주차장에서 거대한 암반에 덱 로드로 만든 용궐산하늘길이 올려다보인다. 어떻게 바위에 저런 길을 냈는지 신기하다.

아름다운 풍경

화장실 앞에 용궐산 안내판이 붙었다. 여기서 지도를 참고해 코스를 그려보자. 용궐산하늘길은 용궐산의 몸체 가운데쯤 드러난 거대한 수직 암벽에 놓은 덱 로드로, 길이 530m가 조금 넘는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가파른 돌계단을 40분쯤 올라야 한다.

용궐산하늘길을 둘러보고 옛 등산로로 내려오는 주차장 기점 원점 회귀 코스는 약 3.5㎞, 1시간30분쯤 걸린다. 길이 험하니 등산화를 신고, 스틱도 챙기는 게 좋다.

화장실을 지나 ‘용궐산하늘길’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돌계단이 시작되는 지점 나뭇가지에 전국 각지의 산악회 리본이 달렸다. 가히 용궐산하늘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돌계단은 용궐산하늘길을 만들면서 개통한 등산로다. 가파른 산비탈에 놓였으니 쉬엄쉬엄 오르자.


거대한 암반이 보이기 시작하면 용궐산하늘길이 가깝다는 뜻이다. 평평하고 매끄러우며 넓은 바위를 등산 용어로 슬래브(slab)라 하는데, 북한산의 ‘대슬래브’가 부럽지 않은 규모다. 암벽등반 애호가라면 군침을 흘릴 정도로 반질반질한 화강암이 매혹적이다.

바위를 한 번 만져보고 힘내서 오르면 드디어 용궐산하늘길의 덱 로드다. 계단을 오르면 시야가 넓게 열린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계단이 끝나면 길은 수평으로 이어진다. 여기가 하이라이트다. 수평 덱 로드는 짧으니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다. 수직 암반에 수평으로 만든 길은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을 준다. 임실군 덕치면에서 흘러온 섬진강이 용궐산을 적시고, 순창군 적성면 쪽으로 흘러간다.

섬진강 주변으로 펼쳐진 첩첩 산은 풍경을 깊고 그윽하게 만든다. 이 풍경을 눈에 담고 걷다 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주차장의 차들이 성냥갑 같다.

거대한 암반에 덱 로드 만든 용궐산하늘길
혜성처럼 등장한 순창의 최고 핫 플레이스

전망대를 지나면 덱 로드가 끝나고 삼거리와 만난다. 용궐산 정상과 옛 등산로를 따라 하산하는 길이 갈리는 지점이다. 여기부터 정상까지 시종일관 오르막길이고 40분쯤 걸린다. 용궐산하늘길 감상이 목적이라면 삼거리에서 내려오는 게 낫다. 덱 로드를 따라 되돌아 내려가기보다 옛 등산로로 하산하는 걸 추천한다. 이정표에 있는 ‘산림휴양관’ 방향이다.

길은 호젓한 오솔길이다. 다소 가파르지만 조심조심 내려가면 어려움이 없다. 울창한 솔숲 사이를 구불구불 걸어가면 이름 모를 무덤이 보인다. 무덤을 지키는 문인석이 제법 크고 볼 만하다. 무덤 주인이 지체 높은 분이었나 보다.


무덤을 지나면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야자수 매트가 깔린 길을 만난다. 거의 다 내려온 셈이다. 여기서 잠시 이정표를 따라 어치계곡 쪽으로 가보자. 100m쯤 가면 수려한 어치계곡을 만난다. 계곡에 잠시 발 담그고 피로를 풀어도 좋다. 어치계곡에서 출발점인 주차장까지 10분쯤 걸린다.

용궐산하늘길에서 내려오면 섬진강 따라 이어진 순창의 명소를 둘러보자. 요강바위는 주차장에서 불과 1.5㎞쯤 떨어진 곳에 있다. 섬진강 거센 물살이 강물 안에 너럭바위를 조각했는데, 요강바위가 가장 유명하다. 구멍이 뚫린 형상이 요강처럼 보여 그렇게 부른다.

강변에서 ‘요강바위’ 이정표를 보고 내려가니 물이 불어 요강바위 머리만 살짝 보인다. 여기서 바라보는 섬진강과 현수교가 멋지게 어우러진다.

이제 동선은 섬진강을 따라간다. 구미마을을 지나면 들판에 우뚝 솟은 채계산이 나타난다. 채계산출렁다리는 용궐산하늘길이 뜨기 전까지 순창의 명소였다.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비녀를 꽂은 여인 그림이 있다. 채계산은 ‘비녀를 꽂은 여인을 닮았다’는 뜻이다.

‘책 수만 권을 쌓아놓은 형상’이라 책여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름이 많다는 건 풍경이 변화무쌍하다는 뜻이다.

입구에서 10분쯤 오르면 두 봉우리에 걸린 빨간색 출렁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출렁다리는 주탑이 없는 현수교로, 길이가 무려 270m다. 다리에 서니 오금이 저리고 어질어질하다. 출렁다리를 건너 바로 위 정자에 올라보자. 풍요로운 순창의 가을 들판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무럭무럭 자라는 벼가 보기 좋다.

채계산출렁다리

향가유원지는 섬진강이 순창 지역을 떠나는 지점이다. 이곳에 오래된 향가터널과 향가목교가 있다. 길이 384m 향가터널은 일제가 순창과 담양 일대에서 나는 쌀을 수탈하기 위해 철로를 만들려고 뚫었다. 하지만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터널로 남았다. 터널을 지나면 교각만 남은 향가목교가 있는데, 여기에 다리를 놓아 섬진강자전거길을 만들었다. 슝~ 자전거가 힘차게 다리를 건너 섬진강을 따라 흘러간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용궐산하늘길→요강바위→채계산출렁다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용궐산하늘길→요강바위→채계산출렁다리
둘째 날: 향가유원지→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순창장류박물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순창군 문화관광 www.sunchang.go.kr/tour

문의 전화
- 순창군청 문화관광과 063)650-1648
- 순창군종합관광안내소 063)650-1674


대중교통
[버스] 서울-순창,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5회(09:30~17:10)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순창공용버스정류장에서 순창-동계 농어촌버스(13:50) 이용, 장군목 정류장 하차, 용궐산하늘길 입구까지 도보 약 1.3km. 순창공용버스정류장에서 용궐산하늘길 입구까지 택시 이용, 약 2만원.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순창공용버스정류장 063)653-2186

자가운전
광주대구고속도로 오수 IC→남악교차로→연산사거리→내룡교차로→용궐산치유의숲 주차장

숙박 정보
-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구림면 안심길, 063)653-4779
- 섬진강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 적성면 강경길, 0507-1356-6785
- 금산여관: 순창읍 옥천로, 063)653-2735
- S모텔: 순창읍 옥천로, 063)653-3960

식당 정보
- 채계산멧돼지식당(돼지고기·뼈우거지탕): 적성면 적성로, 063)652-8660
- 향가산장(메기탕·참게메기탕): 풍산면 향가로, 063)653-6651
- 2대째순대(순대전골·머리국밥): 순창읍 남계로, 063)653-0456
- 순흥즉석순두부가든(순두부백반·두부버섯전골): 순창읍 장류로, 063)652-3636

주변 볼거리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구암정, 구송정유원지, 섬진강자전거길, 강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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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