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문학이 흐르는 길을 따라-창원시 마산 합포구

진정한 문학의 고향에 깃들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는 고운 최치원이 월영대 앞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해 오래도록 머물며 후학을 기른 문학의 고향이다. 이곳에 마산 문학의 흐름을 보여주는 창원시립마산문학관이 있다. 전시실은 결핵 문학, 민주 문학, 바다 문학 등 문학의 특징별로 나뉘었다. 이중 국립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에 머무르던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결핵 문학은 꽤나 독특하다. 결핵 계몽지 <요우>와 지금도 발행되는 <보건세계>, 문학동인지 <청포도> <무화과> 등을 발행할 만큼 많은 문인들이 그곳에 머물렀다고. 문인들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창원시립문신미술관과 마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창원시립마산박물관, 마산조각공원에 자리한 창원시립마산음악관도 볼거리다.

고운 최치원 이후 고려·조선시대 문장가들의 순례지
<요우> <보건세계> <청포도> <무화과>의 산 고향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는 바다가 육지 안쪽으로 길게 들어온 천혜의 항구다. 바다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산업도시로 더 많이 알려진 것은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있기 때문. 지금도 항구 가까이에서는 산업 단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여행의 시작점
시립마산문학관

하지만 마산합포구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의 고향이다. 신라 시대 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월영대 앞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해 후학을 기르며 오래도록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것. 이후 월영대는 고려·조선 시대 많은 문장가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마산합포구 문학 여행의 시작점은 창원시립마산문학관이다. 문학관은 시조 시인 이은상이 산책하던 노비산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은상의 호 ‘노산’도 이 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문학관 앞마당에는 창원시를 연고로 둔 시인들의 문학비가 있다. 노산의 고향에 대한 추억이 담긴 ‘옛 동산에 올라’를 감상해보자.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료.
지팽이 더저 짚고 산기슭 돌아나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료.

시를 감상하고 돌아보면 노산이 ‘가고파’에 묘사한 파란 바닷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도심의 건물들은 작품이 쓰일 당시와 달라졌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것은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인 셈이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창원 문학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다. 마산합포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수많은 문인들이 피난와 머문 곳이다. 특히 국립마산결핵요양소(현재 국립마산병원)는 문학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운 생활 때문인지 문인들은 결핵 환자가 많았다. 이들이 모여들면서 요양소는 자연스레 문인들의 토론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학적 동지를 찾기도 했으리라. 그 결과 이곳에서 결핵 계몽지 <요우>와 지금도 발행되는 <보건세계>를 만들었고, 문학동인지 <청포도> <무화과> 등이 발행되었다.

전시관에서 시인의 친필 원고도 만날 수 있다. 200자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시어들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문학비가 늘어선
시의 거리


마산합포구 곳곳에는 문학비가 있다. 가장 많은 곳은 용마산 산호공원이다. 공원 입구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문학비가 늘어선 ‘시의 거리’가 시작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학산 만날공원으로 가보자. 그곳에 천상병의 시인의 〈새〉 문학비가 있다.

만날공원은 해마다 추석 이틀 뒤 열리는 만날제의 행사장이기도 하다. 진해에서 마산으로 시집간 딸이 친정이 그리워 저도 몰래 추석 상을 물린 밤중에 이곳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열리는 축제다. 이 공원에서 무학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편도 3.6km 구간으로 두 시간 정도 올라야 정상에 닿는다. 하산할 때는 오른 길을 돌아오거나 마산중학교로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모두 3~4km 내려와야 한다.

창원 문학의 오랜 전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이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최치원이 머무르던 월영대를 찾아 시를 남긴 문장가들의 시비가 있다. 고려시대 정지상, 김극기, 안축 등과 조선시대 서거정, 이황, 정문부 등 13명이 남긴 시다.

시비를 돌아본 뒤에는 옛 마산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박물관으로 가자. 선사시대 유물부터 원나라의 일본 정벌 전초기지 역할을 한 고려 시대의 합포, 임진왜란 당시의 합포, 조선이 스스로 개항한 마산포, 3·15마산의거와 부마민주항쟁 등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며 쉬어갈 수 있는 역사북카페도 있다.

박물관에서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이다. 미술관은 문신의 초기 작품인 회화를 볼 수 있는 제1전시관, 조각 작품을 전시하거나 기획전을 여는 제2전시관, 문신의 석고 원형 작품을 전시하는 문신원형미술관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문신원형미술관이다. 전시관 한가운데 놓인 하얀 석고상들이 주인공이다. 이 석고상들은 작가가 작품을 위해 제일 먼저 만드는 ‘원형’이다. 문신은 이 원형을 그대로 작품화했다. 종종 석고 원형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다고. 원형미술관 창문 너머로 프랑스에서 영구 귀국한 작가가 생전에 살던 작은 집이 보이는데, 지금은 그의 미망인이 살고 있다.

추석 이틀 뒤
열리는 만날제

문신미술관은 7월10일부터 10월21일까지 ‘내 고향 남쪽 바다’전을 연다. 남쪽 바다를 주제로 삼은 전혁림, 변시지, 임호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창원시립마산음악관에도 문신의 흔적이 있다. 작곡가 조두남에게 보낸 편지다. 음악관 앞 마산조각공원은 천천히 산책하며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 코스
‘문학여행’ 창원시립마산문학관 → 만날공원 → 창원시립마산박물관 → 창원시립문신미술관 → 창원시립마산음악관 → 마산조각공원

1박2일 코스
첫째 날 : 창원시립마산문학관 → 만날공원 → 무학산 등산 → 마산어시장
둘째 날 : 창원시립마산박물관 → 창원시립문신미술관 → 창원시립마산음악관, 마산조각공원 → 용마산 산호공원 시의 거리

대중교통편
[기차] 서울역-마산역, KTX 주중(월~목) 7회, 주말(금~일) 11회 운행, 약 3시간 내외 소요
※문의 : 코레일 1544-7788, www.korail.com
[버스]-동서울종합터미널-성산휴게소(환승센터)-창원
※문의 : 창원종합버스터미널(고속) 055)288-3355
-수원, 청주, 대구, 울산, 부산-마산
※문의 : 마산시외버스터미널 055)256-1622, www.masantr.com
[시내버스]-마산역, 마산시외버스터미널-창원시립마산문학관
-마산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정류장에서 100·103번 버스 탑승. 마산역 앞을 지나 육호광장 정류장에서 하차. 문창교회를 이정표 삼아 걸어가면 문학관 안내판이 보인다.

자가운전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 서마산 IC → 서마산 IC 사거리, 운동장·통영 방향 좌회전 → 66m 앞 삼거리, 통영·마산법원 방향 우회전 → 석전사거리, 운동장 방향 좌회전 → 약 180m 진행 후 마산합포구청 방향 우회전 → 약 1.4km 지점에서 문창교회 쪽 골목길로 우회전 진입 → 마산문학관

숙박정보
- 사보이 호텔 : 마산합포구 삼호로 055)247-4455 www.benikea.com (베니키아)
- 신라온천 : 의창구 북면 천주로 055)299-9301 (굿스테이)
- 북면황토방온천장 : 의창구 북면 천주로 055)298-9890 (굿스테이)
- 마산m호텔 :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055)223-0550 www.masanmhotel.co.kr
- 리베라호텔 :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055)248-5200 http://rivierahotelms.co.kr

주요먹거리
-광포복집 : 복국, 마산합포구 오동동 복어거리 055)242-3308
-고향아구찜 : 아귀찜,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구찜거리 055)242-0500
-못대 : 생선구이정식,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어시장 내 055)222-1522
-임진각식당 : 석쇠불고기, 의창구 팔용동 남산로1번길 055)256-3535

축제 및 행사정보
-만날제 : 추석 이틀 뒤 http://festival.changwon.go.kr/mannal
-가고파국화축제 : 10~11월 http://festival.changwon.go.kr/gagopa

주변 볼거리
창원해양공원, 주남저수지, 창원과학체험관, 웅천도요지전시관, 진해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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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