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가을 ①안동 가일서가

책과 한옥이 만드는 아름다운 날들

평소 마음에 둔 책 한 권 들고 대청마루에 앉는다. 살랑거리는 가을바람 벗 삼아 책장을 넘긴다. 잠시 책을 내려놓고 멍하니 한옥 마당을 내다보고, 마당 위로 열린 하늘도 바라본다. 그러다 깜빡 졸아도 좋다. 앉아 있기 싫으면 스르르 마루에 누워도 괜찮다. 이런 가을날의 호사를 누리러 안동 ‘가일서가’에 갔다.

가일서가는 안동 권씨 집성촌 가일마을에 있는 한옥 책방이다. 아름다울 가(佳)에 날 일(日)을 쓰는 마을 이름은 ‘따사롭고 아름다운 햇빛이 드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가일의 사전적 의미는 ‘날씨나 일진 따위가 좋은 날’이다. 이래저래 기분 좋은 마을 이름을 따 책방도 가일서가라 했다.

문화 공간

좁은 마을 길 끝자락에 고풍스러운 한옥 두 채가 나란히 서 있다. 경북 안동시 문화유산 노동서사와 노동재사다. 노동서사는 1770년에 조선 후기 학자 권구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고, 노동재사는 유생들이 숙소로 쓰던 건물이다. 1919년에는 가일마을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권오설이 이곳에 원흥학술강습소를 열고 교육 활동을 펼쳤다.

그 뒤 100년이 흐른 2019년, 가일서가가 문을 열었다. 책방지기 부부는 팍팍한 도시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바람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안동에 내려와 빈 한옥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노동재사를 만났고 ‘바로 여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중 어르신의 허락을 받고 노동재사에 작은 책방을 열기로 했다.

부부는 한동안 비어 있던 노동재사를 직접 보수했다. 우선 ‘ㅁ 자형’ 집에서 대청마루와 이어진 큰방을 책방으로 정했다. 천장에 덧씌워 있던 패널을 모두 떼어 서까래가 보이는 원래 한옥 상태로 되돌리고, 나무로 서가를 짜 넣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대청마루는 광나게 닦고 또 닦아 지금은 책방의 자랑이 됐다.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네모난 마당에는 커다란 돌을 가져다 깔았다. 가치 있는 노동 끝에 노동재사가 가일서가로 다시 태어났다.


인터넷 서점에서 편하게 책을 사는 세상에 굳이 시골 책방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터넷 서점이 결코 주지 못하는 특별한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일서가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책방지기 부부가 마음을 담아 고른 책이다. 오래 두고 읽어도 좋은 책,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 위주로 선정한다. 책에는 책방지기가 감상과 소개가 자필로 적혀 있다. 짧은 글이지만 책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책방지기와 방문객이 교감한다. 작은 책방이 주는 특별함이다.

안동 가일마을에 있는 한옥 책방
가을바람 벗 삼아 넘기는 책장

가일서가는 지역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 공간을 꿈꾼다. 뜻 맞는 사람들과 전시회, 토크 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 6월에는 안동 대표 로스터리 카페 ‘396커피컴퍼니’와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외양간을 개조해 커피 내리는 아담한 공간으로 삼았다. 지금도 주말이면 커피를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이곳에서 396커피컴퍼니의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보는 커피 내리는 모습이 운치 있다. 

지역 아이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이들의 글을 모아 <나를 쓰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향후 꾸준히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기를 마련하려 한다.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가일서가에서 준비한 질문지를 뽑아 자기 생각을 담은 책을 엮어본다. 대청마루에 앉아 에코백도 만들 수 있다. 가일서가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하는 수~금요일은 예약제, 토·일요일은 자유롭게 방문 가능하다(월·화요일 휴무).

가일서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한옥 건축물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안동 체화정은 뒤에 산이, 앞에 연지가 펼쳐져 한 폭의 한국화를 완성한다. 1761년 이민적이 세운 곳으로, 형과 함께 머물며 형제애를 돈독히 했다고 알려진다. 체화라는 이름도 형제의 두터운 우애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체화정 앞 연지에는 신선 사상과 음양론 등을 반영한 인공 섬이 세 개 있는데, 이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한다. 연못을 따라 찬찬히 산책하기 좋다. 정자 옆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울 때 최고 절경을 자랑한다. 

풍산 류씨가 대를 이어 살아온 집성촌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역사마을’로 등재된 하회마을도 방문해보자. 골목을 따라 기와집과 초가집이 이어진다. 양진당, 충효당, 옥연정사, 염행당 고택, 양오당 고택 등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많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조선 시대에 맞은편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어 조성했다는 만송정 숲(천연기념물)도 놓치지 말자.


하회마을

낙동강변에 조성한 마애솔숲공원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수려하다. 강변을 따라 걷다가 벤치나 정자에 앉아 호젓하게 쉬기 좋다. 공원을 조성할 때 구석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돼 마애선사유적전시관을 건립했다. 전시관에서 발굴 유물과 구석기시대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하회마을→가일서가→체화정→마애솔숲공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하회마을→가일서가→체화정→마애솔숲공원 
둘째 날: 영호루→안동찜닭골목→신세동벽화마을→월영교→안동시립민속박물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가일서가 www.instagram.com/gail_bookshelf
- 안동관광 www.tourandong.com
- 안동하회마을 www.hahoe.or.kr
- 마애선사유적전시관(안동시시설관리공단) www.andongsisul.or.kr:452/coding/sub4/sub6.asp

문의 전화
- 가일서가 010-6713-6722
- 안동관광 054)840-3433
- 안동하회마을 054)852-3588
- 마애선사유적전시관 054)850-4615 

문의 전화
[버스] 서울-경북도청,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6회(06:40~19:0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3회(07:00, 12:20, 18:2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경북도청시외버스 정류장에서 976-2번 일반버스 이용, 가곡리 정류장 하차, 가일서가까지 도보 약 7분.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txbus.t-money.co.kr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안동시버스정보시스템 www.kobus.co.kr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서안동톨게이트→예천·경북도청 방면 좌회전→경서로→하회마을·경북도청 방면 오른쪽→도청대로→지하차도 오른쪽 옆길→신도시교차로에서 하회마을·병산서원 방면 좌회전→가곡로→가일선원길 방면 좌회전→노동길 방면 좌회전→가일서가

숙박 정보
- 락고재 안동하회마을(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풍천면 하회강변길, 054)857-3410 
- 죽헌고택(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서후면 태장죽헌길, 010-5217-2174 
- 케이스호텔 안동점(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안동시 강남2길, 054)857-0007

식당 정보
- 풍전(풍전프렌치브런치): 풍산읍 안교1길, 054)858-4036
- 황소곳간(불고기전골): 풍산읍 풍산태사로, 054)843-1002
- 탈빙고(빙수): 풍천면 전서로(하회세계탈박물관 1층), 010-8582-2938 

주변 볼거리
안동 병산서원, 하회세계탈박물관, 안동 봉정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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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