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서다' 쌍용차 영욕의 66년 풀스토리

끝이 안 보이는 롤러코스터 터널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쌍용자동차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전혀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다. 과거보다 기업 상황이 악화된 탓이다. 명가는 먼 옛말일 뿐 망가로 불린지 오래다.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 인수 경쟁은 당초 SM그룹과 에디슨 모터스의 2파전 양상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SM그룹이 인수를 포기하면서 쌍용차는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사실상 끝이라는 말도 나온다. 쌍용차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또 벼랑 끝
다시 살까?

쌍용차와 매각주관사(EY한영회계법인)는 지난 6월 기업 인수합병 공고를 냈다. 지난 7월30일 인수의향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업체는 SM그룹, 카디널 원 모터스 등 총 9개 업체였다.

당초 인수전은 SM그룹과 국내 전기버스 업체 에디슨모터스의 2파전 양상으로 흘렀다. 이에 따라 쌍용차의 새 주인이 누가 될지 업계 관심도 증폭됐다. 

그러나 인수에서 유리하다는 평을 받았던 SM그룹이 발을 빼면서 인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현 상황에서 가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업체는 에디슨모터스다.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금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모펀드 KCGI와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PE) 등도 컨소시엄에 함께 참여했다. 개인투자자 등에서도 약 2700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쌍용차는 이번 달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본실사, 투자계약 등의 수순을 밟았다. 업계는 쌍용차 공익채권 3900억원과 추가 투입 비용 등을 합산한 인수금액을 1조원으로 예상한다.

우여곡절의 시절을 겪고 있는 쌍용차의 시초는 1954년 하동환씨가 설립한 하동환제작사다. 이후 1977년 동아자동차로 사명을 바꾸고 코란도를 생산했다. 코란도로 차량 판매로 실적을 올려 해외로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하동환씨는 자동차 연구개발 비용 부담에 회사를 쌍용그룹에 매각했다.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김석원 쌍용그룹 전 회장은 사명을 현재와 같은 쌍용차로 바꾸고 파격적 투자를 감행한다. 투자를 기반으로 무쏘, 뉴코란도를 출시했지만 현대, 대우 등에서 만든 차량과 경쟁에서 뒤쳐졌다. 당시 쌍용차의 시장점유율은 1.6% 수준이었다.

재기를 위해 김 전 회장은 4500억원을 체어맨 개발에 투입했지만 적자로 이어졌다. 결국 3조4000억원의 빚과 외환위기라는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1998년 대우그룹에 인수됐다. 

대우그룹에서도 쌍용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1년 뒤 대우그룹마저 분해되고 쌍용차가 채권단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우그룹에서 나온 뒤 렉스턴 출시로 잠시 반등에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 지분 49.8%를 인수하며 위기감이 고조됐다. 지분 매각 후 신차 개발은 전무했고, SUV차량 점유율마저 현대차에 추월당하게 된다. 


쌍용차가 본격적인 하락의 길을 걷게 된 계기다.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인수하기 전부터 ‘먹튀’ 가능성을 내비쳤다.

먹튀 우려는 바로 현실로 다가왔다. 연구 개발 자료가 상하이차에 유출된 것이다. 또 상하이차는 인수 시 약속했던 재투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쌍용차는 2008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은 회복 불능 상태가 됐다. 상하이차가 사업 철수 결정을 내린 탓이다.  

본격적인 법정관리에 돌입하자 쌍용차는 비상경영을 선언한다. 경영위기가 닥쳐 인원 감축 계획을 발표하자 노조가 반발에 나섰다. 

노조는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며 평택공장을 점거한 뒤 파업에 돌입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노조 파업은 970여명이 정리해고 나서야 일단락 됐다. 

산전수전
다사다난

장기간 파업으로 판매망, 품질관리 등이 붕괴됐다. 이는 쌍용이 더 이상 쌍용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됐다.

인원 감축을 통해 버티던 쌍용차는 2010년 인도 자동차 업체 ‘마힌드라’를 쌍용차의 새 주인으로 맞는다. 마힌드라의 과감한 투자로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생산과 실적도 회복 추세를 보였다. 

안정을 되찾은 쌍용차는 2013년 14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창사 후 최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여전히 영업손실 적자가 이어졌지만 매년 적자를 축소시켰다. 

매출 상승에 힘입어 2015년에는 소형 SUV ‘티볼리’를 출시했다. 티볼리는 출시 첫 해에만 4만대 이상이 판매됐다. 다음 해에도 5만대 이상이 팔리며 꾸준한 판매량을 보였다. 

영업이익도 2015년 말 흑자로 전환됐다. 업계에서는 당시 쌍용차가 소형 SUV 시장을 선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때 티볼리 흥행으로 내수시장 3위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티볼리 판매는 점차 하락세에 들어섰고 2017년이 되면서 닫시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적자의 원인은 기아자동차가 ‘니로’, 현대자동차가 ‘코나’를 출시하며 티볼리가 소형 SUV 1위 자리를 내주면서다. 변형 ‘코란도’ 출시도 쌍용차에 위기가 닥친 원인이었다. 출시 전 높은 기대감과 다르게 외형과 디자인 면에서 악평이 쏟아지며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회생 공신 티볼리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다른 변화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자를 면치 못한 쌍용차의 위기는 지난해에도 이어졌고 쌍용차는 마힌드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마힌드라 임원이 직접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구했으나 결국 없던 일이 됐다.

티볼리로 잠깐 반짝했지만…
연속 적자 내면서 ‘허우적’

마힌드라의 지원이 무산되자 서울서비스센터 부지와 부산물류센터 등을 연속으로 매각했다. 마힌드라도 쌍용차 지배권 포기를 선언했다. 코로나19로 경영난에 시달린 상황에서 투자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마힌드라가 사업을 철수하자 쌍용차는 12년 만에 두 번째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증권거래소에 의해 쌍용차 유가증권 거래도 정지됐다. 상장폐지 이야기까지 거론됐지만 1년의 개선 기간을 받았다.

폐지를 면한 쌍용차는 법정관리에서 탈출하기 위해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현재 회생 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 절차를 추진 중에 있다. 새 투자자의 투자 계획을 회생 계획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조직개편 등에도 나섰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조직과 임원 수를 줄여 자연스러운 조직개편 절차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된다. 


전 직원 20% 임금 삭감에 이어, 지난 6월엔 직원 절반이 무급휴직에 돌입했다. 복리후생도 중단됐다. 노조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쌍용차가 노조에게도 기업의 고통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과거처럼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이 반복되는 게 아닌지 하는 우려도 있다. 

66세 미수
관건은 돈

인건비를 줄이는 데 이어 자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평택공장 부지를 팔고 공장을 교외로 옮길 계획도 마련했다. 평택공장 부지는 자산재평가에서 약 9000억원으로 책정됐다.

해당 부지가 주택·상업용 용지로 변경되면 1조5500억원까지 치솟는다는 분석이다. 청산 가치가 잔존 가치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면 부지 가격에 따라 쌍용차의 생사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쌍용차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쌍용차는 2조950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손실은 4235억원, 당기순손실은 4785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수출 감소 및 부품 수급 문제로 인한 생산 차질 영향으로 전년 대비 적자 폭이 확대된 탓이다. 자구책 마련을 통해 비용절감을 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판매 감소와 경쟁 심화로 영업비용이 증가했다.

영업비용 증가는 신차 개발마저 지연시켰다. 관건은 신차 개발을 위한 투자와 차량 출시 후 판매 수익 확보 가능 여부다. 쌍용차는 자사 최초 전기차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그러나 혼란한 상황을 고려해 신차 출시가 미뤄졌다. 업계는 쌍용차가 전기차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실적을 회복하기에 늦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편으로는 자동차 위탁 생산업체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 상황에서 사업을 이어갈만한 능력도 부족한 점으로 꼽힌다.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도 신차 개발이 선순환으로 이뤄지려면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정상 운영이 가능하다. 

게다가 현재 상황은 마힌드라가 인수하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과거 마힌드라가 인수하던 당시에는 부채보다 자산보유액이 높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말 현재 쌍용차의 자산은 1조7686억원, 부채가 1조8568억원으로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 

더욱이 쌍용차는 3700억원이 넘는 공익채권마저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 1200억원은 밀린 임금이기 때문에 인수 절차가 완료되면 바로 갚아야 한다. 

주인 찾아 명가 재건 시도
“차라리 파산이 낫다” 시선도

과거 HAAH가 인수를 진행하지 않은 이유도 공익채권 때문이다. 따라서 쌍용차 정상화 여부를 따지는 과정에서 일부 인수 의지를 드러낸 업체들의 이탈이 예상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후 본 입찰을 진행하더라도 낮은 액수를 제시할 경우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쌍용차 인수금액이 약 1조원으로 추산된다는 점에서 업체들의 자금 확보가 중요한 점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인수전에 나선 업체 대부분의 자금력과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HAAH의 경우 최근 파산 문제를 겪었다. 듀크 헤일 회장은 4000억원 수준의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외의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에디슨모터스도 쌍용차 인수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에디슨모터스는 지난해 매출액 897억원, 영업이익 27억원을 기록한 회사다. 케이팝모터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여전히 자금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다만 업체들이 1조원을 마련해 쌍용차를 인수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업계는 쌍용차 정상화까지 3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 자체적으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산업은행의 지원 여부가 쌍용차를 매각하는 데 핵심으로 꼽힌다. 결과적으로 과거 자금조달을 위해 마힌드라와 같이 정부와 산업은행에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물론 이마저도 확실한 상황은 아니다. 과거 산업은행이 GM을 잡기 위해 8000억원이나 투입하고도 성과가 없어서다. 따라서 정부와 산업은행이 쌍용차를 돕겠다고 섣불리 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쌍용차는 이번 M&A를 통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 주인을 찾지 못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인수가 불발될 경우, 파산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에 보고된 쌍용차의 청산가치는 9800억원, 계속 가치는 6200억원이다. 

다음 주인은?
마지막 고비?

한 자동차 업계 전문가는 “쌍용차는 디젤, SUV에 편중된 사업 구조에 미래 기술력마저 떨어져 어느 업체가 인수하더라도 경영정상화가 쉽지 않은 업체”라고 말했다. 위기에도 수차례 살아남은 쌍용차가 명가 재건에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쌍용차의 미래 비전
“고유의 색 찾는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는 쌍용자동차가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미래 비전을 선보였다. 쌍용차는 지난달 26일 차세대 SUV KR10(프로젝트명) 디자인 스케치를 공개했다. 

그동안 쌍용차는 고유의 색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쌍용차가 이번 발표를 통해 정통 SUV 브랜드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또 쌍용차는 KR10에 앞서 자사 첫 번째 전기차인 ‘코란도 이모션’ 양산에 돌입했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기존 코란도와 차이는 없지만 미래차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KR10, J100은 쌍용차가 새 주인을 찾은 이후에도 지속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핵심 차량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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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