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 2세 경영 현주소

혈세로 크더니 단물은 오너가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한글과컴퓨터가 ‘2세 경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국민기업에서 가족기업으로 변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김상철 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나섰다. 김 회장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이는 그의 장녀인 김연수 한컴그룹 총괄부사장이다. 한컴은 지난달 2일 김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해 변성준 대표와 함께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한글과컴퓨터

한컴은 지난 5월24일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 김정실 사내이사(김상철 회장의 부인), 한컴의 계열사인 캐피탈익스프레스가 보유하고 있는 한컴의 주식 232만9390주를 에이치씨아이에이치(이하 HCIH)에 전량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HCIH는 김 대표가 설립한 사모펀드 운용사 다토즈파트너스의 계열사로, 김 대표가 역시 대표로 있다.

이로써 HCIH는 한컴 지분의 9.4%를 소유하게 됐고 2대 주주로 올랐다. 사실상 김 대표가 한컴의 2대 주주에 오른 셈인데, 상속이나 증여가 아닌 정상적인 매매이기 때문에 상속세나 증여세 등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일각에선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에 한컴 측은 “일반적으로 승계에서 취하는 자산의 포괄적 승계가 아니라 한컴의 미래가치를 반영해 지분가치를 산정해 전액 매수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오래 전부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2006년 위지트로 입사해 한컴그룹 전반을 오가며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한컴그룹의 운영총괄 부사장을 맡아 사실상 CEO 역할을 해왔다. 김 대표는 이번 지분 매수를 통해 더 클라우드 사업확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가 이끌고 있는 다토즈는 지난해 8월 설립된 사모펀드 운영사다. 우주·드론 전문기업 한컴인스페이스를 한컴그룹과 공동으로 인수하며 첫 펀드를 시작했으며, 가상화폐거래소 두나무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기도 했다.

다토즈는 “이번 한컴 지분 인수를 통해서 향후 한컴의 성장전략, M&A 및 IPO를 직접 리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아직 남은 절차가 있다. 아버지·어머니가 개인명의로 보유한 한컴 지분은 다토즈를 통해 인수했지만, 한컴의 1대 주주인 한컴위드를 승계해야 한컴그룹 전체에 대한 승계가 마무리된다. 

한컴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한컴위드 역시 김 회장 가족이 소유한 회사다. 김 회장이 15.77%, 김 이사가 3.92%를 보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활용해 지분을 늘려왔고 현재 9.07%의 지분의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의 차남 김성준씨도 1.22%를 소유하고 있다.

한컴그룹 경영권을 모두 이어받으려면 김 대표는 아버지·어머니가 보유한 한컴위드의 20% 가까운 지분을 인계받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보면 상속이나 증여가 아닌 다른 방법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컴위드가 보유한 한컴 지분을 다토즈 쪽에 매각하거나 양사가 합병하는 등의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컴의 승계과정을 두고 국민기업에서 가족기업으로 변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컴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국민기업서 가족기업으로…2세 경영 신호탄
다토즈 2대 주주 등극…승계 속도 ‘급물살’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오피스SW 시장에서 한컴오피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로 추산된다. 나머지 70%는 MS오피스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한컴오피스의 사용률은 높다. 정확한 수치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MS오피스보다는 한컴오피스 즉, 문서작업 시 HWP 포맷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산 SW라는 이유에서다.

공공기관이 한컴오피스를 표준으로 삼으며 제기되는 대표적인 문제는 ‘호환성’이다. 한컴오피스로 마이크로소프트365 파일을 열 수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365는 한컴오피스를 지원하고 있지 않다. MS오피스가 세계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파일을 열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아도 한컴오피스를 깔아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18년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공기관 한글(HWP) 독점을 금지시켜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공공기관이 HWP를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어 읽는 데 불편함이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내 오피스SW가 다양해진 상황에서 정부의 한컴오피스 도입 편중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과거 정부가 한컴오피스를 표준화한 배경에는 유일했던 토종 오피스SW였던 한컴오피스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인프라웨어의 ‘POLARIS오피스’, 티맥스의 ‘To오피스’ 등 국내에서도 다양한 오피스SW가 출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한컴오피스 포맷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선택권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소프트웨어든 특정 회사만이 제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공공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누구나 쓸 수 있는 표준문서 포맷을 만들어 사용자가 다양한 오피스 소프트웨어 제품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ODF(Open Document Formats)를 표준으로 채택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2014년 정부문서 표준으로 ODF를 채택해 국민들이 정부 문서를 열람할 때 자신이 원하는 오피스SW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컴은 2016년 경기도교육청에 한컴오피스를 도입한 이후, 정부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은 오피스SW로 ‘한컴오피스 네오(NEO)’를 선정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약 180만명에 이르는 교직원과 학생 수요가 있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또 2019년 8월 행정안전부는 한컴과 ‘공공기관 서식한글’ 개발·배포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공공서식용 HWP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무료지만 공공기관 내 문서를 다운로드 받기 위해서는 무료용 한컴오피스를 필수적으로 다운받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한컴 관계자는 “공공기관 수량은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며 “다만 이전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MS오피스를 완전 대체하고 한컴오피스만 들어간 첫 대규모 사례”였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컴오피스 도입에 따라 회사도 매출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2016년 매출 1012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1000억 클럽에 가입한 이후에도 ▲2017년 1341억원 ▲2018년 2129억원 ▲2019년 3193억원을 기록하며 외형적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가족 배불리기

한컴이 블록체인·AI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꾸준히 확장하며 성장세를 이어온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서 한컴오피스를 도입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정부 레퍼런스를 확보한 상태에서 해외 저변을 확대해나가는 것은 수월하기 때문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