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그렉 노먼의 파란만장 골프 인생

세계 최고의 선수였으면서 메이저대회에서는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호주의 그렉 노먼이 1986년에 있었던 마스터즈를 훗날 세인들은 ‘노먼의 토요 슬램’이라고 불렀다. 노먼은 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골프 선수였으며, 비즈니스 제국이라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쌓은 세계 최고의 사업가였다.

 

하지만 어거스타에서의 쓰라린 상처는 평생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청년 시절 서핑을 하다가 상어를 때려잡은, 금발의 냉철한 킬러 같다고 붙여진 별명 ‘백상어’. 프로 골퍼 이상의 실력가인 어머니에 의해 16세라는 늦은 나이로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불과 1년 만에 스크래치 골퍼가 되는 자질을 보이며 5년 뒤인 1976년 프로에 입문하면서 이듬해엔 유럽 상금랭킹 1위로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불운의 아이콘

비록 미국에서의 첫 우승이 다소 늦은 1984년에 있었지만 과감한 경기 스타일로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1986년 마스터즈. 3일 내내 노먼은 선두를 달리면서 4일째를 맞았다.

세비 바예스테로스와 잭 니클라우스, 탐 카이트 등이 끈질기게 따라 붙었지만 전반 9번 홀까지 노먼은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후반 첫 10번 홀. 어이없는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노먼에게 불행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부가 갈린 17번 홀. 극적으로 버디를 잡은 잭이 한 타차로 따라붙었다. 18번 홀에서 노먼은 적어도 파만하면 우승이었다. 하지만 세컨 어프로치 샷이 그만 홀을 지나면서 관중석에 떨어지고 만다.


‘수십 년간 해오던 어프로치 샷이 왜 하필’ 노먼은 입술을 깨물며 자책 해야 했다. 결국 보기를 범하면서 잭과 플레이오프에 돌입한 상황.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기싸움에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위대한 백상어’였지만 결국 잭에게 승리를 넘겨줌과 동시에 잭으로 하여금 46세라는 나이에 메이저를 차지함은 물론, 통산 메이저 18승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기게 만들어 준 조연이 돼야 했다.

두 달 뒤 뉴욕 쉬네콕 힐에서 열린 US오픈. 노먼은 역시 3일째 54홀까지 선두를 지키며 마지막 날을 맞았다. 하지만 골프의 여신은 또다시 그를 외면했다.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2인자
떼기 힘든 ‘토요 슬램’ 꼬리표

4일째 경기에서 노먼은 무려 75타를 쳐, 66타를 친 레이몬드 플로이드에게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실망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스코틀랜드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턴베리에서의 디오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기일전한 노먼은 역시 3일째 경기가 끝난 뒤 선두에 올랐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골프장에 나온 그는 두려움이 앞섰다. ‘지난 두 차례의 징크스가 또 재현되는 걸까?’

하지만 영국에서의 징크스는 다행히 없었다. 2위와 5타차를 유지하며 노먼은 비로소 여유 있는 우승을 한 것이었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으로 노먼은 비로소 ‘톱’ 선수로 인정을 받게 됐다.

1986년의 마지막 메이저가 열린 미국 오하이오의 인버네스골프장. 디 오픈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된 듯 노먼은 이 대회에서도 3일 내내 70타를 밑도는 65-68-69타의 선두로 4일째를 맞았다.


미국에서의 징크스가 다시 살아난 것일까. 마지막 날의 재앙은 시작되고 있었다. 76타로 무명의 밥 트웨이에게 2타차로 허무하게 우승을 넘겨주면서 1986년 한 해의 메이저에서 54홀을 리드하고 지켜내지 못한 최초의 선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4라운드 작아진 백상어
남달랐던 사업 수완

사람들은 이를 가르켜 ‘노먼의 토요 슬램’이라고 불렀다. 다만 세계 상금랭킹 1위의 타이틀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메이저와의 악연은 다음 해에도 이어졌다. 1987년 마스터즈 연장전 2번째 홀에서 래리 마이즈가 칩샷으로 버디를 하자 그린에 올려놓고도 우승을 놓쳤는가 하면, 1989년 마스터즈에선 닉 팔도에게 한 타차로 패했다.

마스터즈가 외면한 그의 마지막 불운은 1996년이었다. 역시 3일째 선두로 이번에는 2위와 무려 6타차. 하지만 4일째 경기는 이전의 징크스보다 더 지독했다. 2위 닉 팔도가 67타를 친 반면 노먼은 최악의 78타를 쳤다. 두 사람 간에 무려 11타차가 난 것. 마스터즈의 신이 장난을 치지 않고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모두들 경악했다.

30년 골프 인생에서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올랐지만 노먼은 마스터즈의 신으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노먼의 또 다른 일화 하나를 더 소개해본다.

 

2010년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쥬피터 섬. 타이거 우즈의 5백억 원짜리 대저택 등 세계적 갑부들만 살 수 있는 섬의 호화 골프장인 메달리스트 코스에서 그렉 노먼이 연습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12번 홀에 다다를 즈음 휴대폰이 울렸다. 리복 인터내셔널의 CEO 폴 파이어맨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노먼이 소유하고 있는 리복과 아디다스-살로몬사 간의 인수합병 작업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보고였다.

나무 그늘에 잠시 앉아 노먼은 20여분을 소비했다. 그의 휴대폰은 쉴 새가 없었다. 이번에는 노먼 어패럴의 인터내셔널 책임자인 바트 콜린스였다. 호주 본사에서 날아온 골프의류 ‘그레이트 샤크’ 책임자와 내일 오전 미팅이 있다는 통보였다.

전화통에 불이 나면서도 어찌어찌 18홀을 끝내고 이제 클럽하우스로 가서 대기 중인 와인생산 책임자를 만나야 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노먼 소유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새로운 5종의 시음을 위해서였다.

그를 통하지 않고 시판되는 와인은 없을 만큼 와인 전문가였던 그는 미국과 호주에 거대한 와인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1970년대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부터 와인에 심취돼 있었던 그는 호주에서만도 한해 20만 상자가 넘는 와인을 팔 정도로 호주 와인을 세계에 펼쳐놓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시음한 5종의 와인이 노먼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자 와인 책임자는 가벼운 목례로 경의를 표했다. 저녁 식사 이후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를 통해 제작될 ‘프로골퍼와 기업운영’의 마지막 수정원고까지 읽어야 했다.

사업에는 남다른 기질이 있었던 노먼은 현존하는 프로골퍼 중 최고의 세계적 갑부로 제국에 버금갈 정도였다. 골프 관련 의류업만 해도 지난해 한화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부동산 투자만 해도 호주를 비롯해 1만 군데가 넘는 골프장 안에 체인 레스토랑과 주택을 짓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화 5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이 필요했던 골프클럽제조사 킹코브라를 비롯해 몇 개의 골프클럽 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은퇴 후 전성기

골프장 디자인 사업과 미국에 여러 곳의 골프장을 건설하고 소유하고 있음은 물론이어서 사람들은 그의 사업적 기질에 혀를 내둘렀다. 사업은 앞을 내다보고 꼭 투자할 곳에 해야한다는 그는 “아놀드 파머가 내복 사업, 세차장 등등 너무 이름을 남발했으며, 잭 니클라우스는 대중들에게 어필되지 못했고, 무분별하게 부동산에 과잉 투자를 했다”면서 시행착오를 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노력했다.

미국인 스튜어디스와 첫 결혼 후 2년, 테니스 스타 크리스 에버트와 재혼 후 1년, 2010년 인테리어 디자이너 커스텐 커트너와 3번째 결혼을 한 그는 비록 마스터즈에서는 치욕을 맛보았지만 세계적인 재벌 중의 재벌로 보상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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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