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소녀 티 벗은 '소시 출신' 권유리

물오른 연기력 ‘배우를 훔치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유리는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로 가수가 된 지 15년 차다. 소녀시대의 일원으로 한류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정점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별의 빛이 영원하지는 않은 법. 결국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유리는 10년 전부터 배우의 문을 두드렸다. 혼자만의 힘으로 배우에 도전했지만, 그 빛의 힘은 가수로서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했다. 얼마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을까. 배우가 된 지 10년, 드디어 오랜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초등학생 5학년, 12세 어린 소녀는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이 된다. 먹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과의 대화도, 심지어 고된 훈련에 대한 어리광마저 사치일 정도로 고되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사 연습생
어리광도 사치

국내 아이돌 업계에서, 아울러 한국에서 아이돌을 가장 잘 기획하는 회사에서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상상조차 어려운 경쟁을 뚫을 순 없다. 아무리 예쁘고 누구나 혹할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해도 ‘1만 시간의 법칙’에 상응하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태우고 발화하는 별처럼, 대중의 눈에 보이는 연예계 스타들은 각고의 고통을 견뎌내야만 카메라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다. 무대에 서는 꿈을 꾸고 있던 15세 유리도 혹독한 트레이닝과 다투고 이겨냈다. 그리고 누군가는 수능을 준비하던 19세에 소녀시대로 한국 가요계에 혜성처럼 입성한다.

데뷔곡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다시 만난 세계’ ‘Kissing you(키싱 유)’ ‘소원을 말해봐’ ‘Oh!’(오!) ‘Run Devil Run’(런 데빌 런) 등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권을 뒤흔드는 명곡과 함께 우뚝 선다. 


SES와 핑클에 이어 그야말로 아이돌 2세대의 최정점에 있었다.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할 위치를 10년간 고수했다. 올라가기보다 어렵다는 1위 유지를 10년 넘게 했다. 그 안에서 유리도 20대를 거치며 성장통을 겪었다.

아무리 최정점에 있다고 하더라도 소녀시대가 평생 먹거리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아이돌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아서다. 새로운 얼굴을 원하는 대중의 욕망을 소녀시대가 전부 채워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남녀를 막론하고 7년이면 뿔뿔이 흩어지는 ‘7년 차 징크스’를 못 넘기는 아이돌이 허다하지 않은가.

그마저도 극복한 소녀시대지만, 결국 멤버 개개인은 솔로든 예능이든 연기든 다음 행선지가 필요했다. 

연습생에게 연기도 가르친다는 SM엔터테인먼트의 트레이닝을 받은 그는 자연스럽게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스타라고 해서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KBS2 <스타 인생극장>에서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학업에 열중하다 못해 교수에게 칭찬받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소녀시대 내에서 솔로 활동을 하기도 했고, 각종 예능에서 매력을 뽐낸 그다. 팬들로부터 끼를 잘 부린다고 해 ‘깝율’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건강미 있는 몸매로 섹시함을 과시하면서 ‘율란하다’는 신조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여러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했지만, 유리의 마음은 연기자로 향하고 있었다. 연극의 메카인 혜화동을 오고 가며 봤던 연극에 자극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고, 언젠가 연기자로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영과 무술, 승마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키웠다. 

MBN 드라마 <보쌈> 화인옹주 열연
시청률 9.8% 주역 ‘그 유리 맞아?’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2년 SBS <패션왕>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섰다. 이전에도 작게나마 연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극은 처음이었다. 데뷔 치고 혹평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소녀시대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있는 결과였다.

그래도 꾸준히 연기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 

영화 <노브레싱>을 비롯해 웹드라마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 OCN <동네의 영웅>, SBS <피고인>, MBC <대장금이 보고 있다>, 넷플릭스 <마음의 소리 리부트2> 웹드라마 <이별유예, 일주일> 등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연기 경험을 쌓았다.

작품 활동에 비해 대중의 각인이 된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연기자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만이 그를 위로했을 뿐이다.

배우가 된 지 10년, 권유리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MBN <보쌈: 운명을 훔치다>(이하 <보쌈>)를 통해서다. 여배우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권석장 PD의 작품이다. 

<파스타>의 공효진, <마이 프린세스>의 김태희, <골든타임> 황정음, <미스코리아> 이연희 등 다소 모호한 평가를 받고 있던 연기자들이 권석장 PD의 손을 거쳐 배우로 거듭났다. 그를 거친 배우들은 연기력이 날로 성장했다. 여배우의 연기력 논란은 권 PD의 작품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듯 여배우에 대한 특별한 안목을 가진 권 PD는 권유리를 선택했다. 후궁의 딸 옹주에서 이름 모를 시정잡배에게 보쌈을 당한 뒤 온갖 고초를 겪었음에도,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능동적으로 삶을 대하는 수경의 얼굴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이라 해도 무방한 가요계에서 꿋꿋하게 버틴 삶이 거장의 눈에 비췄나 보다. 

대본을 읽고 수경의 삶에 감동한 권유리는 장면마다 진심으로 연기했다. 글을 보고 느낀 감동을 시청자들도 느꼈으면 하는 욕망이 작동했다. 

거장 눈에 띈
단단한 내공

“처음에 대본을 읽고 갖은 고초와 고난 앞에 반응하는 수경의 방식이 매력적이었어요. 당당하고 카리스마 있을뿐더러 위엄도 있었죠. 삶에 있어서 능동적인 부분에 매료됐어요. 수경을 닮고 싶었어요. 권유리가 수경이라는 사람을 거울삼아 극대화해서 표현할 수 있을까에 고민했어요.”

워낙 오랜 기간 인기 연예인으로서 살아가다 보니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하기보단 주위의 시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익숙했을 테다. 법은 물론이고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것에 누구보다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 그를 조여왔을 수 있다. 그런 권유리에게 수경이란 인물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보쌈>에서 수경은 광해군(김태우 분)과 후궁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인옹주다. 궁에서 지내던 시절부터 이대엽(신현수 분)을 좋아했으나, 시아버지 이이첨(이재용 분)과 광해군의 정치적 밀약으로 그의 형과 혼약을 맺는다. 그 혼약이 기구한 삶의 시발점이 된다. 신혼 첫날밤도 치르기도 전에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조선의 건달이나 다름없는 바우(정일우 분)가 다른 여인 대신 실수로 화인옹주를 보쌈한다. 바우를 설득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어쩐 일인지 바우는 약속을 어긴다. 진실을 추궁하자 돌아온 대답은 “이미 당신은 죽었다”는 것. 

화인옹주가 없어지자 이이첨은 장례를 치른다.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을 노리는 그에게 화인옹주는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경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고초에 시달린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을 통해 이겨낸다. <보쌈>은 이때부터 수경의 성장 드라마로 변주한다.

“제가 수경이 매력 있고 멋지다고 생각한 지점은 수경이라는 인물이 타고난 성품이 정말 좋아서예요. 옹주임에도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수직적이지 않고, 주위를 다 돌봐요. 자신보다 주위에 있는 사람의 안위를 더 걱정해주는 올곧은 성품이죠. 마음도 따뜻하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늘 멋있게 이겨내요. 이타적인 방식으로요. 그렇다고 불의 앞에서 결코 주눅 들지도 않아요. 당차고 할 말도 다 하고요. 원수나 다름없는 좌의정과 다시 만난 장면에서 심리적 복수를 하는데요. 개인적으론 가장 통쾌했어요. 예의를 갖추면서 싸우는 모습이 단단하게 느껴졌어요.”

배려와 희생
쏟아진 호평


수경은 왕가의 출신으로 늘 용모를 단정히 할 뿐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중심이 명확한 여인이다. 아무리 자신을 괴롭히는 이가 있다 해도 마음으로 먼저 이해하려 한다. 불의에는 분명히 맞선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조선시대의 인격화’라는 피드백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시대가 사람이 됐다면 수경이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극 중에 그런 대사가 있어요. ‘내가 죽어 없어져야 모든 이가 편해진다’라고요. 온 나라의 국민과 나라가 편해질 수 있다면 죽음도 각오하는 여자예요. ‘내가 과연 저 정도의 대사를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그렇게 단단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이 작품이 끝날 무렵엔 수경이 내 안에 들어와 있기를 희망했어요.”

캐릭터와 그 인물은 연기한 배우의 능력치를 수치화해서 비교할 수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수경을 훌륭히 표현해냈다. 권유리에게도 수경이 가진 단단한 내공이 없었다면, 부족한 부분이 아마 시청자의 눈에 다 드러나지 않았을까. 배우를 두고 인물을 담는 그릇이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니 말이다.

호평이 쏟아지는 건 수경을 담는 그릇으로 권유리의 마음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저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수경이 옹주였던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았을 거예요. 누구보다 빨리 성숙해져야 했겠죠. 저 역시도 소녀시대 활동을 하면서 단체생활을 했어요. 열두 살부터 연습생이었고, 열아홉에 데뷔하면서 작은 사회를 또래보다 빨리 경험했어요. 15년 넘게 팀원들과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고요. 수경이가 감내해야 했던 것들을 저도 소녀시대 경험을 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서로서로 배려해줘야만 밸런스를 잡는다는 걸 비교적 어린 나이에 터득했거든요. 그런 지점이 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매 순간 당당하고 멋진 옹주, 닮고 싶다”
“고통 감내하며 연기, 궁금한 배우되겠다”

아이돌로서의 탄탄해진 마음의 힘과 배우로서 능력을 키우고자 한 노력이 대중의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매력적인 인물을 훌륭히 표현한 결과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내가 알던 유리가 맞냐”면서 연기력을 극찬하는 시청자들이 생겨났다.

뼈가 부서져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한 노력이 감동으로 전달된 덕이다. 0%대 시청률을 전전하던 MBN 드라마는 9.8%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냈다. MBN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보쌈> 같은 좋은 작품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결과까지 좋아서 정말 기뻐요. 좋은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에게도 좋은 의미의 자극이 됐어요.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어요. 첫 촬영까지 하루에도 5번은 고민했어요. ‘괜한 도전을 한 게 아닐까?’하고요. 그래도 용기 내서 도전했는데, ‘연기 잘 한다’는 피드백을 받다 보니까 계속 더 용기를 내서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대중에 배우로서 진정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고호의 별의 빛나는 밤에> 조수원 PD를 비롯해 그의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관계자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연기에 도전 중인 소녀시대 멤버들은 언제나 그를 응원했다. 주위의 응원과 스스로 일궈낸 성취가 자신감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수경이라는 캐릭터가 저한테 준 긍정적인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이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나면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수경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다가 바우를 만나고 비로소 수경이라는 주체적인 사람으로 거듭나잖아요. 연기하면서 ‘나 역시 수경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성찰을 했어요. 수경처럼 용감해지려고 늘 굳게 각오를 했어요. 그런 면에서 성장한 것 같아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호령한 권유리는 여전히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려한 미모는 주인공을 하기에 손색없으며, 연기력도 충분히 갖춰졌다. <보쌈>에서의 활약상 이후 수많은 제작자가 그와 파트너가 되고 싶다며 손을 내밀고 있다.

거듭한 성찰
커다란 성장

“데뷔할 때만 해도 대사가 많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고 연기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제는 인물에 대한 공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요. <보쌈> 이후에 감사하게도 많은 작품 제안이 들어왔어요. 머지않은 시일 내에 작품으로 만나면 좋겠어요. 언제나 그랬듯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연기할 생각이에요. 늘 다른 매력을 보이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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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