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22년간 쏟아낸 조우진의 건강한 투혼

“무게감·책임감이 늘 짓눌렀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충무로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이경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작’의 아이콘인 그는 너무 많은 작품에 출연한 탓에 ‘또경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겨움이 느껴질 정도의 출연 횟수는 출중한 연기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김의성, 배성우를 거쳐 조우진도 ‘다작 배우’ 계보에 속했다. 그 역시 ‘또우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 조우진이 한 작품에만 몰두했다. 영화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걸었다. 신작 <발신제한>을 통해서다.

1997년, 한 집 걸러 한 집이 파산했던 그 시절, 대구에 살던 한 가정의 가세도 기울었다. IMF 외환위기의 거센 풍랑에 휘말린 탓이다. 갑작스럽게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고등학생에게 대학교 입학은 언감생심으로 다가왔다. 대학에 가지 못할 정도로 학업 성적이 뒤떨어진 건 아니었다. 다만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했을 뿐이다. 

‘피 끓는 청춘’
일생일대 결심

이 고등학생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1999년 20세가 되던 해, 고향인 대구에서 단돈 50만원을 들고 상경하는 것.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다. ‘이왕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도움받지 못하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의지가 작동했다. 

20세 청년은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문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연기자다. 직업적 특성상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이 평가받아서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개똥철학’으로 보이지만, 얼마나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답안이었을까.

연기를 택한 시점부터 ‘피 끓는 청춘’은 고생길로 접어든다.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꿈이 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실현되는 데까지 걸린 기간은 무려 22년이다. 


연고도 없는 타지의 땅에서 연극과 입학을 목표로 삼았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에서 비교적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했다는 것 말고는 연기에 관한 트레이닝이 전무했던 그에게 연극과의 벽은 높았다. 첫해 낙방하자마자 극단에 입단해 연기를 학습했다.

결국, 2000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1000년이 끝나고 1000년이 시작되는 불안의 시대에 그 역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연극 <마지막 포옹>을 시작으로 막연한 꿈의 첫발을 내디뎠다. 어렵게 뗀 첫발 뒤엔 끝이 보이지 않는 천릿길이 있었다.

세상은 그에게 기회를 쉽게 주지 않았다. 어렵게 따낸 배역은 이름 없는 ‘범인2’이나 ‘행인5’였다.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 현장에 갔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꿰차고 자신이 외운 대사로 연기를 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를 보고도 무명의 배우는 아무런 저항 없이 되돌아왔다. 소주 두 병으로 쓰라린 고통을 잊으려 했다. 

시간이 흘러 영화 <내부자들>에서 “여! 썰고, 여 하나 썰고… 거기 말고 여 썰으라고!”라는 대사로 스크린을 썰어버리며, 조우진이라는 세 글자를 알렸다. <마지막 포옹>을 시작으로 배우로서 이름을 찾기까지 15년을 버텼다.

국내 연기력 ‘원투펀치’로 불리는 이병헌마저 ‘영화의 성패와 상관없이 이 배우는 회자되겠구나’라는 직감이 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이었다. 영화의 흥행 덕에 그는 ‘여썰고좌’라는 기분 좋은 별명도 얻게 된다. 그로부터 조우진의 시계는 바삐 흘러간다. 


영화 <발신제한> 통해 첫 단독주연
“무게감·책임감, 늘 나를 짓눌렀다”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엔 성역이 없었다. 누구보다 비열한 악의 화신이었다가, 타인을 배려하는 데 도가 튼 선한 사람도 됐다. 범죄자를 잡는 정의로운 인물에서 부조리의 극치로도 치달았다.

부유한 삶을 살다가도, 권력의 최약체가 되어 가족의 죽음에 뜬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로는 매우 지혜롭고 민첩한데, 어디에서는 무능하고 나태했으며, 그저 얕잡아보고 싶을 정도로 무식한 적도 있었다.

조우진의 필모그래피에는 레퍼런스가 없다. 

연기의 스펙트럼만 따지면 육각형의 스펙을 가진 배우라 해도 무방하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천재와 둔재를 오고 가는 중에 언제나 제작진의 기대를 넘는 연기력을 보였다. 너무 많이 작품에 참여해 ‘또우진’으로 불릴지언정, 연기력에서 흠결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주인공을 해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배우였지만, 충무로 관계자들은 그를 조연으로만 소모했다. 한국 영화계의 불찰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에게 첫 주연의 기회를 마련해준 <발신제한> 제작진의 혜안조차도 늦은 감이 있다.

조우진 역시 조연이 자신에게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으로 하자는 말에 겁부터 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딱히 싫지 않았음에도 고사부터 했다. 소속사 대표의 “그래도 제작진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권유마저 거부하지는 못해 <발신제한>의 김창주 감독을 만난 것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겁부터 났던 건,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컸기 때문이에요. 만듦새나 역할이 마음에 드냐 안 드냐는 차후의 문제였어요. 제가 해내기 쉽지 않은 감정선으로 느꼈어요. 안 할 생각이었죠. 그러다 김 감독님을 만난 거죠. 눈을 봤는데 열정이 들끓고 있었어요. 손을 덥석 잡았어요. 그 뜨거운 눈빛에 감동했어요. 다른 관계자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날 ‘저 불구덩이 같이 뛰어듭시다’라고 했었어요.”

육각형
스펙트럼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의 리메이크 버전인 <발신제한>은 국내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면이 있다. 영화 <폰 부스>나 <스피드>, 한국 영화로는 <더 테러 라이브>와 닮아있다. 거론된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이름 모를 범죄자로부터 전화로 조종당한다는 것과 역할의 비중이 90% 이상에 다다른다는 데 있다. 

<폰 부스>의 콜린 파렐과 <스피드>의 키아누 리브스,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가 그랬듯, 조우진도 이야기의 90% 이상을 혼자 끌고 나가야 했다. 

“영화를 보니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나’였어요. 거의 모든 신에 제가 나오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실패했습니다.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자평을 제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감독님께서 애 많이 쓰신 것 같아요. 제 연기에 대한 자평은 영화를 몇 번 더 봐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공을 좀 더 키워야겠죠.”


영화에서 조우진이 맡은 성규는 VIP 고객만 관리하는 부산의 은행센터장이다. 출근길에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아이를 태우고 출근하는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들려오는 이야기가 무시무시하다.

다짜고짜 차 안에 폭탄이 있으며 내리는 순간 폭파된다는 것. 전화를 건 남성은 이를 빌미로 수십억원을 요구한다. 

이 와중에 후배 직원(전석호 분)이 협박을 받았다고 전화를 건다. 꺼림칙한 기분은 점점 공포가 된다. 아내와 같이 있던 후배를 만나 대화를 시도하는 도중 후배의 아내가 급한 성격을 못 이기고 차에서 내린다. 그 즉시 후배의 차가 폭발한다.

예언이 현실이 된 순간부터 성규는 테러범의 조종에 따를 수밖에 없다. 

<발신제한>은 초반부터 속도를 낸다. 성규 가족이 차에 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오면서부터 내달리기 시작한다. 첫 폭탄이 터진 뒤부터 불안과 공포가 급격히 솟구친다. 극한 상황에 몰린 성규는 질주한다. 정체 모를 테러범과의 줄다리기 중에 성규를 범인으로 인식한 경찰까지 더해지며 목줄은 점점 조여진다. 

극도의
스트레스


작품 속 조우진은 거의 모든 분량을 차 안에서 연기한다. 그가 활용할 수 있는 부위는 상체 뿐이다. 움직임이 제한돼있다. 표정과 눈빛, 팔의 제스처 정도로만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대부분이 바스트샷이다.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감정이 훤히 보인다.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건, 표정이나 감정이 상황과 조금만 어긋나도 몰입이 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배우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이제껏 해본 적 없는 미션이 조우진에게 주어진 것.

조우진은 인터뷰 내내 밀도를 중시했다.

“정확한 감정표현보다도 중요했던 건 작품 내의 밀도였어요. 비슷한 감정이지만 세분화하면 다른 포인트가 있어요. 긴장감의 정도가 상황마다 다르죠. 과하지 않고, 또 약하지 않게 나오길 바랐어요. 관객들이 보기 어렵지 않게 연기하려고 했죠. 정확보다 적확하게 하려고 했어요.”

쉽지 않은 임무였다. 혈압약을 챙겨 먹어야 할 정도로 압박감이 심했다. 단독주연의 무게감은 이전 작품에서의 책임감과는 결이 달랐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그를 짓눌렀다.

“빠른 속도로 장면이 확확 바뀌는데 그 순간이 주는 서스펜스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여러 상황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찰나를 건져야 하는 작품이었어요. 기술로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어요. 이 상황에 저를 빠뜨리려고 했어요. 거기서 전해진 느낌을 표현하고자 한 거죠. 살면서 이런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느끼면서 산 적이 없었어요. 인생 최대의 고비를 넘기면, 더 큰 고비가 찾아왔어요. 부담을 갖고 상황에 빠뜨리다 보니까 정신이 혼미해진 적도 있었어요.”

“고비 넘기면 찾아온 더 큰 고비”
“계속 꿈을 꾸며 살아도 되겠어요”

막중한 책임을 온전한 연기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욕망이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행센터장의 품격이 전해지면서도 전사에 담긴 성규 개인의 삶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가족들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으로 가족을 소홀히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나, 센터장으로 오기까지 꼭 옳지만은 않게 살아온 성규의 성격적 특성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이 같은 무의식적 감정선이 켜켜이 쌓이다가 후반부에는 적잖은 감동으로 밀려온다. 강력한 난제를 준수하게 풀어냈다. 

“한일전을 앞둔 스포츠 선수들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게 됐어요. 성규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상황에서 매 테이크마다 질문이 쏟아졌어요. 연기하기 위해 뭘 연구하고 담아내야 할지에 많은 생각을 했죠. 제가 잘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센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아버지라면, 주연배우는 엄마의 역할을 한다. 스태프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힘든 점을 들어주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끄는 몫이 생긴다.

멀티캐스팅인 경우엔 이 몫이 줄어드는데 <발신제한>처럼 인물의 수가 적은 작품이면 현장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임무가 주연배우에게 집중된다. 연기자로서 맡은 소임을 수행하기도 벅찬 일인데, 단독주연을 처음 맡은 조우진에겐 무거운 짐이었다.

“모든 스태프가 저만 보고 있더라고요. 첫 단독주연일 뿐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책임지는 인물이잖아요. 스태프들에게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최대한 많이 소통하려고 했어요. 작품 외적으로 스태프들에게 침투하려고 했어요. 여러 선배가 소통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거기서 오는 행복감이 컸어요.”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연기 경험을 가진 그는 인터뷰 현장에서조차 비장했다.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꼭꼭 씹어 말했다. 그의 대답에는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몸에 밴 겸손으로 느껴졌다. 연기에만큼은 스스로 가혹다는 것이 분명히 전달됐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서인가 봐요.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아요. 제게 잣대가 높은 건, 그렇게 높여놔야 그 잣대에 못 미치더라도 관객들을 설득하는 수준에 닿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에요. 정신병적인 수준은 아닌 거 같아요. 작품에 맞는, 그리고 인물에게 맞는 연기를 더도 덜도 아니게 하는 게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분량이나 비중에 상관없이요.”

1999년 50만원을 들고 상경한 지 22년 만에 단독주연이라는 타이틀로 대중 앞에 섰다. 타인으로부터 평가받고 싶어했던 20세 청년의 꿈은 이뤄진 것일까. 앞서 그는 기적이라는 말로 속내를 전하기도 했었다.

꿈, 동경…
지금도 기적

“꿈, 동경이란 단어로 지금까지 버텨왔어요. 포스터 나온 걸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나왔어요. 갑자기 오열하듯 쏟아지더라고요. 홍보하는 지금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우진 기특해’ 이런 건 아니에요. ‘계속 꿈을 꾸며 살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주어진 작품에 매진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제껏 그래왔든 건강하게 투혼을 발휘하면서요.”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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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