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아이돌급' 사주팔자 팬덤 문화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6.21 14:06:23
  • 호수 13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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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 선 무당…복채 대신 후원금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연예인들만 팬이 있는 게 아니다. 명리학에서도 팬이 존재한다. 사주풀이 상담을 받은 내담자들은 상담해준 사람을 오히려 걱정한다. 심지어 이들은 선물을 보내주는가 하면 현금 후원도 한다. 

사주풀이와 관상을 보는 명리학은 이전부터 꾸준히 인기가 있다. 명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매년 신년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이나 철학관을 찾는다. 용한 곳은 최소 6개월 전에 연락해야 예약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입소문이 난 점집은 국회의원, 연예인 등이 자주 찾는다.

용한 점집
문전성시

사주팔자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 또는 이에 근거해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다. 학문이라고 해서 어렵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사람들은 신통방통한 것을 신기해하면서 흥미를 갖는다. 매해 연초 TV 예능프로에서 연예인 사주팔자나 관상을 본다. 특히 패널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사주풀이를 통해 서로를 놀리거나 칭찬하며 재밌는 장면을 만든다. 

토크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은 서슴없이 사주를 본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주로 히트한 드라마나 영화를 만나기 전, 용한 점집 도사가 예언했다는 이야기다. 

사주팔자를 가벼운 호기심에 보러 온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생의 갈림길을 두고 혼란이 올 때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점집이나 철학관을 찾는다. 인생사는 변화가 심하고 예측이 불가하지만 사주를 통해 미리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사주풀이는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졌지만 최근 들어 젊은층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대학입시, 취업 불안, 결혼 고민 등 인생에 다양한 고민을 사주풀이로부터 해결책을 받으려 한다. 이전처럼 용한 점집을 찾기보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사주풀이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비대면 운세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예다. 운세 앱 중 하나인 ‘점O’의 경우 지난해 1월 초 하루 평균 50여만명이 이용했었지만, 올해 초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 1월1일의 경우 1일 평균 120만명가량이 운세를 확인하며 연말 연초 효과를 톡톡히 누린 바 있다.

50~60대 이용자 비중도 높아졌다. 앱 ‘점O’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8일~올해 1월3일 7일간 50~60대 이용자는 31%로 전월 같은 기간(23%) 대비 7% 이상 상승했다. 단순 앱 이용만 늘어난 수치가 아닌 앱 내 결제 비율도 상승하고 있다.

재밌고 간단한 풀이
짧은 시간 흥미 유도

점O에서 제공 중인 유료 운세 상담의 50~60대 이용 비율은 연말 같은 기간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월 같은 기간(19%) 대비 14%가량 상승한 수치로, 연초가 다가오면서 운세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었지만 대면 접촉이 제한되면서 비대면 혹은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셈이다.

젊은 층은 앱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유튜브를 통해 사주풀이와 관상 등 명리학에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 용하다는 한 사주 전문 채널에서 상담받거나 사주풀이 방법에 대해 검색하기도 했다. 서바이벌 웹예능 <머니게임> 방영 당시, 사주 전문 채널에서는 출연진 사주를 통해 탈락 여부를 점치기도 했다. 

수많은 사주 채널 가운데 판X도사 X이드(이하 X이드), 도O도르, 더O학당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인기 많은 사주 콘텐츠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신통방통 점을 잘 보는 것이다.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미래를 잘 예측하거나 상담받는 사람의 속사정을 꿰뚫어보면 용한 채널로 바로 입소문이 난다.


한때 과거 연예인 전문 사주풀이 블로그들이 재조명됐다. 한 연예인에게 악재가 일어나면 그 블로그에서 사주풀이했던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공유되곤 했다. 마치 미래를 본 것마냥 연예인의 앞날을 예측하면서 상담 전화도 늘었다. 이처럼 최근 유튜브에서도 미래를 맞추는 채널이 주목받고 있다.  

둘째, 어려운 사주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 용어를 쉽게 설명하면 젊은 층은 흥미를 가진다. 유튜브 특성상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단 요점만 간단히 설명하는 게 시청자 관심을 유발하는 방법이다. 

명리학은 공부를 하면 공부할수록 전문성을 요하는 깊은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주 유튜버는 스스로도 공부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스스로 사주를 보는 방법도 알려주는 전략으로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최소 6개월
예약 힘들어

세 번째는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말발이다. 과거 나이 든 사람이 외진 곳에서 점집을 차려 사주를 봐줬던 데 반해 근래엔 온라인이 대세다. 

게다가 명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고 부정적인 인식도 바뀌면서 젊은 층들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훤칠한 외모를 가진 젊은 사주풀이 전문가도 많이 나타났다. 예쁘장하고 잘생긴 외모에다가 매력적인 목소리까지 갖춘 사주 유튜버들이 인기를 얻는 건 시간문제다. 

특히 X이드는 유튜브 뿐 아니라 다양한 SNS채널에서 팬들과 소통한다. 유튜브 외에도 인스타그램, 트위치, 오디오형 SNS 클럽하우스, 카카오 음 등을 통해 동시 송출하고 있다. 또 일반 회원이 아닌 특별 회원끼리 소통할 수 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특별 회원이란 클럽하우스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방을 자유롭게 만들고 사람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이들은 서로 모여 같이 게임을 하거나 방송을 자유롭게 하는 등 특별 권한이 주어진다.

X이드는 올해 설날 우연한 계기로 방송을 시작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사주, 타로를 봐주는 방을 살펴보다가 이론적 근거가 없는 방을 보고 아쉬움을 느꼈다. 결국 본인이 사주 상담방을 열게 됐다. 

첫날부터 100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오면서 시간이 부족해 상담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다. 상담을 계속 해줘도 대기자가 늘어나면서 방 규모도 점점 커졌다. 내담자 요구에 발맞춰 클럽하우스는 유지한 채 유튜브와 트위치를 통해 송출을 시작했다.  

높은 적중률 시선 강탈
외모도 연예인급 인기

X이드 유튜브 구독자 수는 3600명(지난 17일 기준)에 불과하지만 인기 유튜버 척도라 할 수 있는 유튜브 멤버십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 멤버십이란 매달 후원하는 구독자에 한해 특별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방송 초기부터 X이드가 현금 후원을 받은 건 아니었다. X이에 따르면 첫 현금 후원자였던 한 시청자가 “음질이 좋지 않다”고 마이크 교체를 권유하며 5000원을 후원했다. 

X이드는 유튜브 채널 초창기 라이브 방송이 많았다. 구독자와 소통하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구독자들과 친밀한 사이가 됐다. 한 팬은 그의 건강을 생각해서 도라지즙, 프로폴리스 등의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후 유튜브 운영을 집중하면서부터 슈퍼챗(현금 후원)을 통해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X이드 채널의 한 팬은 “X이드에 빠지게 된 이유는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듣지 못했던 이야기도 가감없이 솔직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사주를 직접 보러 간 적도 있었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다. X이드는 구체적인 해결방안도 제시해주고, ‘사주에 좋고 나쁨은 없다’고 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X이드는 여타 인기 크리에이터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충성도 높은 팬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을 한 그는 갑작스레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혼란스러워졌다고 한다.

규칙이나 체계가 없다보니 관리자가 필요했고 스태프를 모집했다. 그러다 보니 클럽하우스 상담방 운영을 도와주는 팬이 생겼으며 현재는 6명 스태프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스태프 역할은 기획, 운영, 편집 등 세 가지다. 기획팀은 유트브 채널 방향을 결정한다. 운영팀은 유튜브 동영상 업로드 일정 관리, 유튜브 동영상 멤버십 관련 등을 관리한다.


종종 커뮤니티 게시글, 카카오톡 채팅방 등도 확인한다. 편집팀은 영상편집과 업로드 관련 임무를 맡는다. 또 콘텐츠 영상을 촬영 및 편집하고 유튜브 영상 관련 개선사항이 있다면 편집팀끼리 회의한다.

호기심 유발
혹한 시청자

스태프를 하게 된 계기도 다양하다. 좋은 마음으로 알려 주다보니 지금까지 계속하게 된 사람, 모집한 한다기에 지원한 사람, 무료 상담 보상차원으로 운영방법을 제안했다가 덜컥 스태프가 된 사람 등이다. 

신기한 건 스태프 역할을 하게 되면서 체계적으로 금전 보상이 없다는 점이다. X이드는 스태프에게 2주에 한 번씩 사주 수업을 무료로 해주는 게 보상이면 보상이다. 또 언제든지 질의사항과 관련해 X이드와 소통이 가능한데 스태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기프티콘을 보내는 게 전부다.

한 스태프는 “자신의 사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고 힘들 때 인생 선배인 X이드로부터 조언을 듣기 때문에 스태프 임무를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 스태프 및 회원과 소통하며 배우는 점이 많아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X이드 혼자서 운영하기 힘든 부분을 충성심 있는 팬이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팬심 하나로 스태프를 맡아 홍보 및 운영 역할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태프가 늘어난 이유는 사주에 대한 관심있는 연령층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금전 부분이 아니어도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발휘해 홍보를 한다거나 영상 기획 및 편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X이드는 “채널 초창기 구독자 연령대가 50~60대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20대, 30대가 30%가 된 만큼 구독자층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사주상담 라이브 방송을 열어도 ‘20대 초반인데 올바른 진로를 알고 싶다’는 고민 등 20대 초반인 시청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연애부터 진로까지 다뤄야 할 주제가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구독자가 내 방송을 보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콘텐츠 제작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인스타 활동…회원제 운영
팬클럽 만들고 도라지즙 선물까지

X이드 채널이 주목받는 이유는 높은 적중률이다. X이드 채널에서 내담자의 월간 운을 봐주는 콘텐츠가 있는데 적중률이 꽤 높다. 

X이드 채널은 유독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 나이대가 많이 찾는다. 이들은 사회생활에 발을 내딛기 전이나 사회 초년생이라고 볼 수 있다. X이드는 회사를 실제로 다녔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에 임한다. 

그는 기업 인·적성평가나 이력서 및 자소서 작성에 대한 고충을 몸소 느껴봤다. 또 연애를 하는 시기에 자평명리학을 실전에서 적용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자평명리학이란 시간의 흐름 사이에 사시에 관해 시간의 질서를 의미한다. 

역학계에서도 X이드는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한다. 상담을 할 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처세하기 때문에 어필이 된다고 한다. 

한편 아이돌 시장에서도 팬심을 활용해 과금을 유도하고 있다. 휴대폰에 버O 앱을 깔고 월 4500원을 결제하면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직접 써서 보내는 메시지를 수시로 받고 답장을 보낼 수 있다.

아티스트는 팬의 답장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개별적으로 답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채팅은 아티스트가 팬의 전반적인 반응을 살펴보며 ‘다대1 채팅’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버O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팬심’을 최대한 자극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설계했다. 먼저 카카오톡 개인 대화방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1대1 채팅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스타가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일괄 확인하면 채팅방에 ‘읽음’ 표시가 뜬다.

이용자는 아이돌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이름이나 ‘누나’ ‘오빠’ 등으로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답장을 보내다가 아이돌의 메시지와 내 답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양새가 되면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팬의 설명이다.

멤버십 운영
일상도 공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들은 버O을 통해 아티스트와 일상을 공유하는 기분을 느끼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팬들이 모르는 정보도 얻을 수 있다”며 “팬덤을 활용한 구독경제 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하고 팬들의 충성도도 함께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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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