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절대강자는 없다' 대기업 서열 전쟁 막전막후

'오르락내리락' 피 튀는 승강전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5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발표해왔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됐다는 건 ‘대기업’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기 위해 1987년 첫 도입됐다. 초창기에는 자산총액 4000억원이 기준이었지만, 2002년 2조원, 2009년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여기에 포함되면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호지급보증 금지 출자 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가 가해진다.

상위권
그대로

해당 기준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수정됐다. 2017년 7월11일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지정을 위한 세부기준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변화였다.

개정안은 석달 전 공표된 개정 공정거래법의 위임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시의무와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 대상을 기존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집단 외에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분류하는 게 핵심이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절차는 기존 상호출자제한집단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했다. 자산총액 산정은 직전 사업연도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총액 합계로 이뤄지며, 금융·보험사는 자본총액과 자본금 중 큰 금액에 따른다.


대신 금융·보험업만을 영위하는 기업집단이나 회생·관리절차가 진행 중인 소속 회사의 자산총액이 전체의 50% 이상인 기업집단 등은 지정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 1일 기준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총 71곳. 이는 전년(64개) 대비 7개 증가한 수치다.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분류된 기업은 40곳으로, 전년 대비 6개 늘었다.

계열회사수는 지난해 2284개보다 328개 늘어난 2612개로 집계됐고, 공정자산은 지난해 2176조원보다 160조원 증가한 2336조원이었다. 상위 10개 기업집단의 공정자산 비중은 2019년 69.7%에서 올해 66.9%로 줄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이 크게 증가해 자산가치가 급등하며 지정집단이 대폭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명단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상위권 대기업들의 순위에 변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1위(삼성)부터 17위(부영) 사이에 이름을 올린 대기업은 지난해와 동일한 순위를 나타냈다. 롯데(2020년 121조5240억원→2021년 117조7810억원)를 제외한 16곳은 전년 대비 공정자산이 증가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대신 네이버(27위), 넥슨(34위), 넷마블(36위) 등 IT 기업들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신규 지정이 두드러졌다. 이로써 카카오(18위)를 비롯해 국내 IT·게임 기업 가운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곳은 총 4개사로 늘었다.


IT기업이 상호출자제한기업에 지정된 것은 2016년부터다. 공정위는 당시 대기업집단에 카카오를 포함시켰고, 이듬해 네이버와 넥슨, 2018년 넷마블이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포함됐다. 카카오는 2019년 공정자산 10조원을 넘기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편입됐다.

IT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따른 비대면 수혜로 인해 보유주식 가치 상승, 수익 증가 혜택을 톡톡히 봤다. 이 영향으로 4대 IT기업의 공정자산은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했다.

실제로 IT 기업 4곳은 동반 순위 상승을 나타냈다. 카카오의 공정자산 기준 순위는 지난해 23위에서 5계단 올라섰고, 네이버는 14계단 수직상승했다. 넥슨은 8계단, 넷마블은 9계단 순위를 끌어올렸다.

셀트리온(24위)는 가장 높은 순위 상승을 나타냈다. 셀트리온은 3조1000억원 규모의 원주식 출자를 통해 계열회사를 신규 설립했고, 사업이익도 증가했다. 이를 토대로 순위를 21단계 끌어올렸다. 

새롭게 편입된 7개 새얼굴
동일인 변경 기준은 무엇?

지난해 9조원대 공정자산을 기록했던 호반건설(37위), SM(38위), DB(39위) 역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1년 새 공정자산을 7300억원~1조5000억원가량 늘리는 데 성공했다. 호반건설(2020년 44위)의 순위 상승이 두드러졌고, SM과 DB는 전년과 동일한 순위를 나타냈다.

특히 호반건설은 2017년 자산 5조원을 넘기며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지정된 지 3년여 만에 자산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부영, DL, HDC에 이어 건설그룹으로서 네 번째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됐다.

이들과 달리 대우건설(42위)과 코오롱(40위)은 공정자산 감소로 인해 순위 하락이 두드러졌다. 대우건설은 부채 감소로 인해 자산이 10조원을 밑돌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33위에 위치했던 코오롱은 약 1300억원 감소한 공정자산으로 인해 순위가 7계단 하락했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명단에서는 신규 지정된 기업들이 눈에 띈다. 쿠팡(60위), 반도홀딩스(62위), 대방건설(66위), 현대해상화재보험(67위), 한국항공우주산업(68위), 엠디엠(69위), 아이에스지주(70위), 중앙(71위) 등 7곳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도홀딩스와 아이에스지주는 주식·부동산 등으로 자산가치가 상승했다. 대방건설은 사업이익 증가와 사업용 토지 취득, 엠디엠은 회사 인수와 자산 신규 취득 등으로 신규 지정됐다.

중앙은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증가했고, 쿠팡은 매출액과 유형자산이 늘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사업이익 증가 등으로 공시대상 기업에 신규 지정됐다.

반면 KG는자회사 간 합병으로 회계상 자산총액이 감소해 지정된 지 1년 만에 제외됐다. KG는 지난해 공정자산 5조2560억원을 기록하며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63번째 순번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곳곳에
새얼굴

기존 공시대상 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 상승을 기록한 곳은 HMM(48위)였다. HMM은 1년 새 공정자산을 2조2600억원 늘린 데 힘입어 재계 순위를 다섯 단계 끌어올렸다. 지난해 공정자산 6조5280억원으로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지 1년 만에 50위 내로 진입한 것이다.

HMM과 달리 OCI(43위), 태영(44위), 이랜드(45위) 세아(46위) 등은 눈에 띄게 순위가 하락했다. 9단계 하락한 이랜드가 순위 변동폭이 가장 컸고, OCI는 8단계, 태영은 7단계, 세아는 6단계 뒷걸음질했다. 태영을 제외한 3곳은 공정자산도 감소했다. 

기업의 순위 변동만큼이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동일인(총수) 지정이었다. 공정위는 1987년부터 대기업집단 정책을 시행하며 동일인을 지정해왔다. 동일인 지정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순환출자, 일감 몰아주기 같은 재벌의 폐해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현대자동차와 효성에서 동일인 변경이 목격됐다.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은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동일인을 변경했다.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2세들을 동일인으로 판단해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정몽구가 보유한 주력회사(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에 대한 의결권을 정의선에게 포괄 위임했고 정의선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임원 변동,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상 변동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했다.


효성의 경우 조현준이 지주회사 효성의 최다출자자이며 조석래가 보유한 효성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조현준에게 포괄 위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준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배구조 개편, 임원 변동,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상 변동이 있었던 점 등이 반영됐다.

동일인 변경 가능성이 점쳐졌던 LS, DL(옛 대림산업), 현대중공업, 코오롱 등은 기존 체계가 유지됐다. LS의 경우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이 동일인으로 등록돼있다. 구자홍 회장은 2012년 구자열 당시 LS전선 회장에게 LS 회장직을 넘겨줬지만, 10년 가까이 동일인은 바뀌지 않았다.

DL도 현재 총수는 이준용 명예회장이지만, 사실상 지배자는 지난해 말 기준 52.26%의 주식을 보유한 이해욱 회장이다. 정몽준 전 회장(아산재단 이사장)에서 정기선 부사장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과 이웅열 전 회장의 퇴진 이후 이규호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코오롱도 비슷한 형국이다.

쿠팡의 경우 사실상 총수라고 봐도 무방한 김범석 의장이 동일인에서 제외됐다. 김범석 의장은 미국 쿠팡의 지분 10.2%를 들고 있지만, 의결권 기준으로는 76.7%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법인은 미국법인의 지배를 받는 구조다.

그럼에도 김범석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피한 건 미국 국적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총수로 지정될 경우 외국 자본이 투입된 기업들이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된 전례와 상충된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김범석 의장이 총수로 지정됐다면 매년 제출하는 자료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배우자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의무가 생긴다. 김범수 의장은 이에 대한 의무를 피할 수 있게 됐다.

개선 필요한
애매한 기준

공정위는 "이번 지정을 계기로 동일인 정의·요건, 동일인 관련자의 범위 등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연구용역 등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요건·확인과 변경 절차 등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 제도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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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