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천우희 “찬란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20대에 대해”

불안을 떨쳐내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최근 국내 미디어 콘텐츠 산업 내에서 여배우들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콘텐츠의 다양성도 커질 뿐 아니라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작품들도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여성 서사 콘텐츠가 동틀 무렵부터 최전방에 있었던 천우희를 만났다. 새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기저에 깔린 불안을 떨쳐낸 천우희는 다시 한 번 인상적인 연기를 그려냈다. 

배우 천우희가 만든 캐릭터들은 어딘가 예민해 보인다.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고 살 떨린다. 때론 무섭기도 하고, 때론 너무 아픈 상처를 지니기도 했다. 웃는 얼굴에서는 무언의 쓸쓸함이 스쳐 간다.

외롭거나

필모그래피가 이를 증명한다. 본드를 마시는 불량 학생이었던 <써니>를 시작으로, 수준 이하의 남성의 여자친구였던 <마더>, 말로 꺼내기조차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 삶의 길을 잃었던 <한공주>, 선인지 악인지, 사람인지 신인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존재였던 <곡성>, 감정 기복이 심한 신인 드라마 작가였던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불안정한 현실에 치여 고통스러운 삶에 허덕이는 <버티고>까지, 천우희가 그려온 인물들은 외롭거나 힘겨웠다. 

고교시절 연극반에서 아마추어로 첫 무대에 오른 작품이 일제강점기 ‘성 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반쪽 날개의 새>였다는 걸 보면, 그의 발자취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천우희가 30대 중반에 깊은 내면을 표현해야 하는 인물 대신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야 하는 현실적인 인물을 택했다. 새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다.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현실을 살아가는 소희를 연기한다. 


그간 천우희가 맡아온 역할과는 결이 다르다. 감정 소모가 큰 장면이나, 마음의 상처를 깊게 토해내는 장면이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공감 가는 인물의 평소 생활을 그려낸다. 

“감독님이 중점적으로 생각한 건 저의 다른 모습이었어요. 욕심을 많이 내셔서, 저도 궁금했어요. 극적인 부분보다는 잔잔한 인물이잖아요. 게다가 매 장면마다 예뻐 보이게 하시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감사하죠.”

소희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하나뿐인 언니는 희귀병에 걸려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다. 언니에게 주어진 삶은 약 한 달 정도다. 엄마와 함께 중고책 서점을 운영하고, 밤에는 언니를 돌본다. 힘든 나날이지만, 늘 웃음기를 잃지 않는다.

천우희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하기 힘든 캐스팅이다. 

“무거운 역할을 많이 했다 보니까, 제 나이 때 할 수 있는 역할에 갈증이 있었어요. <멜로가 체질>의 진주도 보면 현실에 딱 붙어있는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나이을 먹어가면서 청춘물을 해보고 싶었어요. 청춘물에서 멀어질까 봐 걱정도 있었고요. 이제라도 이런 작품을 해봐서 만족감이 커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20대의 불안한 청춘을 대변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화되던 세기말의 청춘들의 이야기다.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고,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예상 못한 변화에 전 국가적으로 불안감이 급속도로 커진 시기기도 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통해 감성 멜로 연기
“내면 연기보다 제 나이 때 연기 하고 싶어” 


아날로그에 더 가까운 환경에 익숙한 소희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언니를 꼭 만나고 싶다는 한 남자 영호(강하늘 분)의 편지다. 몸이 아프다는 말을 대신 전하는 게 마음에 걸렸던 소희는 여러 조건을 내걸며 오롯이 편지로만 소통하자고 한다. 편지를 보내면서 설렘이 시작된다. 

불안했던 이들에게, 편지는 오히려 삶의 동력을 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긍정적인 마음이 어떻게 인생을 변화하는지를 말하는 작품이다. 

“꿈이 없어서 불안한 청춘도 있고 꿈을 포기해야 하는 청춘, 막연하게 꿈은 없지만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20대도 있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가장 찬란했던 것 같지만 가장 불안했던 시기가 20대였던 것 같아요. 저는 뭘 잘하는지 몰랐던 20대였어요. 막연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연히 촬영 현장을 느끼면서 배우의 꿈을 가져갔어요.”

영화의 덕목은 내레이션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점이다. 대부분 멜로 장르 작품은 두 남녀의 짙은 사랑 이야기를 담지만, 이 영화는 편지로 연애의 감정을 느낀다. 강렬하기보다는 잔잔하다.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소희에겐 가뭄 속에 단비 같은 편지였던 거 같아요. 삶이 힘들잖아요. 소희의 노곤한 삶에 건강한 자극이 된 거죠. 언니에게 삶의 동력을 줄 아이템도 생긴 거고요. 영호의 편지는 지친 일상에 위안을 줬어요. 우리 삶도 그럴 때가 있잖아요.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말이나 글을 통해 위안을 받는 것처럼요. 저 역시 팬들로부터 종종 편지를 받는데, 제가 어떤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데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워낙 강한 내면을 표현해야 했던 20대를 지나 30대로 넘어오면서 천우희가 연기하는 인물들의 감정의 깊이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대신 순간순간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살리는 연기에 도전 중이다. 이번 작품 역시 감정의 폭은 깊지 않지만, 짧은 대사에서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잡아내야 한다. 물론 그 연기 역시 일품이다. 

즐겁거나

“과거에는 경험이 없다 보니 인간 내면에 대해 많이 탐구할 수 있는 인물이 끌렸던 것 같아요. 한석규 선배님께서 ‘네 나이 때 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말씀에 영향을 받아서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접근 방식과 선택이 달라졌죠. 이제는 막 분석하기보다는 즐겁고 재밌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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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가 스스로 입국한 지 이틀 만에 구속됐다. 도주의 우려가 크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경찰은 약 2년간 황하나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해 왔다. 지난해에는 은거하던 장소를 특정했다. 일부러 검거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정보기관 안팎에서는 그간 황하나가 경찰에 마약 관련 정보를 제공해 왔다고 보고 있다. 황하나는 지난해 초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가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경찰은 공식적인 입국 기록이 없었기에 국내로 데려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황하나가 어떤 범죄에 연루됐는지 행적만 추적할 수 있었다. 은신처 알고도… 경기 과천경찰서가 황하나를 추적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23년부터다. 같은 해 황하나가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지인 2명과 필로폰을 매수해 투약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과천경찰서는 그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압박감을 느낀 황하나는 2023년 12월 갑작스레 태국으로 출국했다. 황하나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인터폴 청색수배 대상이 된 황하나는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일요시사> 취재와 정보기관이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면, 황하나는 망고·태자 단지 배트남계 보이스피싱 조직 간부 또는 자금 세탁범들과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캄보디아 카르텔에 20~30대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해 성접대를 강요한 원정 성매매 알선 의혹을 받는다. 지난 24일 오전 2시 황하나는 캄보디아 프놈펜 태초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했다. 경찰은 캄보디아로 건너가 현지 영사와 협의를 거쳐 항공기 내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5시간 후 과천경찰서 수사관들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황하나를 압송했다. 황하나는 “해외로 수차례 한국 여성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마약 유통과 투약 혐의를 인정하느냐?” “자진해서 입국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일요시사>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을 들여다보지 않던 과천경찰서는 갑자기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본래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은 다른 청에서 내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관련 의혹을 캐물을 방침이다. 태국·캄보디아 전전…갑자기 자진 입국 밀입국 이후 1년 넘게 고급 호텔서 생활 황하나는 이달 초 경찰 측에 자진 입국 의사를 밝혔다. 2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 갑자기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게 황하나의 입장이다.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제대로 책임지고 싶어 스스로 귀국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마약 투약 혐의도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이 없고 지인에게 투약해준 적도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수원지법 안양지원 서효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황하나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며 수사를 피해 온 점과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기관은 황하나가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주장에 대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캄보디아에 밀입국한 정황이 있고 1년 넘게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갈 정도로 자본적 여유가 충분했다는 게 근거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최소한 아이를 키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생활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나은 환경일 순 있겠지만, 황하나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현재 아이의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거나 캄보디아에서 끼니를 굶을 정도로 생활력이 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하나의 자진 입국이 과천경찰서와의 사전 조율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황하나가 이달 초 과천경찰서 측에 변호사를 통해 자진 입국 의견을 전달하긴 했으나 이전부터 그가 수사기관의 ‘야당’ 역할을 해왔다는 게 골자다. 정보기관 “아이 때문에? 신빙성 부족” 마약 정보 제공 ‘플리바기닝’ 노리나 실제 황하나는 경찰 측과 직접 연락하거나 측근을 통해 특정 인물들에 대해 ‘마약을 투약했다’ ‘한국으로 유통하는 것 같다’는 등의 정보를 전달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곧 황하나에 대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플리바기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공범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일컫는다.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도 수사 과정에서 협상의 일종인 ‘플리바기닝’을 피의자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이미 검거한 마약사범을 통해 상위 공급책을 잡으려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플리바기닝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막혀 추진하지 못했다. 추적이 어렵고, 증거 확보가 어려운 범죄가 늘고 있어 플리바기닝 공식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플리바기닝은 수사기관의 오랜 관행이다. 마약범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허위 진술이 내재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간혹 마약범에게 억울한 혐의가 추가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황하나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당국에 황하나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이유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가 밀입국했기 때문에 캄보디아 입국 기록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캄보디아에 있으니 잡아달라고 할 수 없었고 거주지를 특정한 이후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캄보디아 당국이 한국 경찰에 비협조하는 일이 빈번한 건 사실이지 않나”고 반문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 측과 연락했던 건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설득의 과정이었다”며 “일부 마약 관련 정보를 들은 경찰도 있겠지만 황하나를 비호해 온 것처럼 보인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