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손' 코오롱 장남 '꿀보직' 맡은 사연

자질론 벗기고 금테로 포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이규호 코오롱 부사장이 차기 회장에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정당성’을 두고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의 “능력을 인정받을 때까지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에 비해 이 부사장의 경영성과가 미미한 탓이다. 이 부사장은 승계 마무리 전 부진 세탁을 위한 발판으로 자동차 시장을 택했다. 일각에선 후계자가 호실적이 보장된 계열사로 이동하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8년 전무로 승진한 지 2년 만이다. 당시 코오롱그룹은 “이규호 전무는 그룹 패션사업을 총괄하면서 온라인 플랫폼 전환 작업 등을 이끈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어떤 성과?

1984년생인 이 부사장은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해 부장-상무보-상무-전무로 오르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룹 핵심 중 한 곳인 코오롱글로벌에서 부장을 지냈고 2015년 이후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로 넘어와 패션부문 최고운영책임자로 사업을 이끌었다.

지난 2018년 11월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은 전격 퇴진을 발표한 뒤 “아버지로서 재산은 물려주겠지만,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주식 한 주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남 이 부사장에게 언제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잘 해낼 것”이라고 확신하며 사실상 이 부사장이 후계자라는 점을 은연 중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이 부사장의 나이가 35세의 젊은 나이였던 것을 감안해 그룹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가 컸다. 


이 전 회장은 아들의 경영성과가 두드러질 수 있도록 ‘캐시카우’인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을 맡겼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맡았던 시점부터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패션부문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패션 부문 2018년 매출액은 1조456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패션사업을 맡은 이후 2019년 9729억원, 2020년 8680억원으로 하락세를 그렸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이외에 이 부사장이 2018년 초부터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온 셰어하우스(공유주택) 계열사 리베토 역시 연간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부사장은 지난해 7월 조용히 리베토 대표이사직과 사내이사직에서 내려왔다.

이 부사장은 코오롱글로벌에서 수입차 유통·정비 사업을 하는 자동차 부문을 이끌게 됐다. 

코오롱그룹이 수입차 판매에 뛰어든 것은 1987년부터다. 소형차 수입을 시작으로 1988년 4월 수입차 시장이 전면개방된 시점부터 코오롱상사를 기반으로 BMW의 국내 판매를 도맡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수입차 종합정비 사업을 하는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의 보통주 100% 인수를 의결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는 볼보 딜러 사업을 하는 코오롱오토모티브 지분 100%와 아우디 딜러 사업을 하는 코오롱아우토 지분 99.33%를 보유하고 있다.

기존 판매 브랜드에 아우디와 볼보를 추가하며 다양한 차량 라인업을 갖춘 셈이다. 코오롱글로벌은 2025년까지 수입차 유통 부문에서 2조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수입차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수입차 판매는 코오롱의 주수익원 중 하나다. 최근 3년간 매출은 2018년 1조1481억원, 2019년 1조1329억원, 2020년 1조4436억원으로 꾸준히 상승 중이다. 수입차 시장에서 BMW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1%로 전년 대비 3%포인트 증가했다. BMW 내 코오롱글로벌의 시장점유율은 25%를 유지하고 있다.

이로써 이 부사장은 조현상 효성 부회장과 수입차 시장 선두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됐다.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의 3남인 조현상 부회장은 지난 2000년대부터 효성의 수입차 사업을 이끌며 인수·합병(M&A) 등을 주도해 수입차 사업을 확장했다.

부진한 ‘패션’ 만회하려 ‘자동차’로 선회?
부친 이어 차기회장 확정…승계 정당성은?

효성은 ▲더클래스효성(벤츠) ▲포르자모터스코리아(FMK, 페라리·마세라티) ▲신성자동차(광주·전남 벤츠) ▲효성토요타(토요타) ▲효성프리미어모터스(렉서스) ▲더프리미엄효성(재규어·랜드로버)을 통해 국내에 수입차를 판매한다.

조 부회장은 각 관계·계열사의 최대주주로 효성의 수입차 판매 사업을 이끌고 있다. 효성의 주력 수입차 딜러사인 더클래스효성과 신성자동차의 지분을 각각 93.04%, 42.86% 보유한 에이에스씨의 지분 100%를 갖고 있으며 FMK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조 부회장은 부동산 매매·임대업을 영위하는 신동진의 최대주주(80.0%)며 신동진은 더프리미엄효성, 효성프리미어모터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조 부회장의 ‘필승 카드’는 벤츠다. 효성 내 주력 수입차 딜러사인 더클래스효성은 지난 2019년 연간 매출액 약 1조1200억원을 기록했다. 더클래스효성은 지난 2018년 연간 매출액 약 1조100억원을 넘긴 이후 매출액 1조원 클럽에 안착했다는 평가다.

효성은 코오롱이 넘어야할 산이다. 코오롱은 지난 2015년 이후부터 벤츠의 인기에 힘입어 수입차 업계 선두자리를 차지한 효성의 실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코오롱글로벌은 수입차 브랜드 폴리폴리오 확대와 정비 사업의 매출액을 모두 합하면 올해 효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판매량이 위축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도 하지만 효성과 코오롱은 사업확장을 통한 시장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할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이 물러난 지도 올해 벌써 3년 차가 됐지만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일각에선 이 부사장의 코오롱글로벌 입성이 지금까지의 부진을 세탁하기 위한 ‘후계자 밀어주기’라는 말들도 나온다.

이 부사장이 코오롱글로벌에서 기대치에 밑도는 성과를 내더라도 차기 회장에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승계 정당성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언제 인정?

한 업계 관계자는 “후계자가 주요 계열사 곳곳을 거치며 사업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호실적이 보장된 계열사로의 이동은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의 ‘능력을 인정받을 때까지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 이 부사장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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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