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먹는 약을…’ 반려동물 의약품의 비밀

노인 치매약을 개한테 처방?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A씨의 강아지는 노쇠해 인지장애가 생겨 치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진단을 동물병원으로부터 받았다. A씨는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가족 같은 강아지가 고통받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진료를 받았다.
 

동물병원에서는 강아지의 경우 반려견 전용 치매약이 없다며, 사람 약을 먹여 예방해야 한다고 사용을 권했다. A씨는 반려동물에게 동물용 의약품이 아니라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전문가가 말하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가정반려동물백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약 1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지난 2년간 반려동물 치료를 위해 사용한 치료비는 가구당 평균 47만원이다. 또 반려가구 중 71%가 반려동물의 치료비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동물용 한계
인체용 사용

A씨는 동물병원에서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했다고 해 약 성분을 알고 싶어 진료기록부와 처방전을 요구했지만 동물병원은 일부 동물 의약품에 한해서만 진료기록부와 처방전 발급이 가능하다며 발급을 거부했다.

인체용 의약품의 처방전 발급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A씨는 약 성분이라도 알려달라며 통화를 요청했지만 동물 병원은 짧은 문자로 약의 성분만을 알려왔다. 


A씨의 경우 다행히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했다고 사전에 알려 성분을 알게 됐다. 하지만 실제 사용된 의약품이 인체용인지 동물용인지에 대해서는 수의사가 성분만 알려 줬기 때문에 보호자는 스스로 찾아보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동물병원은 2020년 기준 전국 4604개(반려동물병원, 농장동물, 혼합진료 포함)이고, 동물 약국은 6163개다. 이에 따라 수의사협회와 약사회에서도 인체용 의약품 사용과 처방전 발급에 대해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는 시선이 많다.

수의사협회는 반려동물에게 인체용 의약품 사용은 약사법에 근거가 있으며, 개별적인 승인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의사가 진료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현재 나온 약들 중 동물용 의약품으로 치료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사협회 관계자는 “동물용 의약품의 종류가 많지 않아,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나뉘어 있는 인체용, 동물용의 구분보다 성분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했다. 처방전의 경우는 사람과 의료체계가 달라 수의사가 발급하는 처방전은 동물용 의약품 중 처방 대상이 아니면 발급하지 않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실제 처방전은 의사, 치과의사를 제외한 사람이 발급하면 불법이다. 처방전은 약을 사기 위한 서류기 때문에 만약 수의사가 보호자에게 임의로 처방전을 제공하게 되면 약물 오·남용의 우려가 있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진료기록부·처방전 요구 거절
일부 동물용 의약품 한해서만 발급 가능

우리나라 반려동물 관련 산업의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산업동물(돼지, 소, 닭 등)과 반려동물이 구분돼있지 않다. 산업동물의 경우 약을 대량으로 사용하는데 수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 약품 도매상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 수의사의 인체용 의약품 처방에 대해서도 명시된 조항이며 수의사의 의약품 사용은 약사법 제정부터 허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동물용 항생제, 마취제 등에 한해 수의사가 진단하고 보호자가 임의로 살 수 없는 것에 따라 처방전이 발급된다. 반려동물 자체에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는 행위는 현재 법률상으로 위법은 아니다.
 

▲ 수의사 ⓒpixabay

그러나 현재 수의사법에서는 진료기록부 등에 대한 사항이 규정돼있거나 의무적이지 않아 수의사들이 보호자들에게 열람 등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협회 관계자는 반려동물에 대한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이 먼저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진료기록부를 공개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인체용 의약품 역시 인체에 맞게 개발된 것이지만 성분을 따지고, 강아지의 무게, 크기 등에 따라 소분에서 밀리그램을 조절해 사용해왔고,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상이 없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허가사항에는 동물에게 인체용 의약품을 투여해도 된다는 규정이 없지만, 동물에게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기 때문에 진료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괜찮다는 입장이다. 

현재 인체용 의약품과 처방전을 두고 약사들과 수의사들은 대립 중이다.

협회 관계자는 “약사 역시 사람 의료 체계가 익숙하기 때문에 동물 체계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제3자가 볼 때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 대해 어느 정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동물 관련 전문가는 거의 수의사가 유일하며, 규제가 필요한 항생제와 관련해 약사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팔던 것에 대해 제한이 생기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증상 같으면 
약발도 같다?

법적으로는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약품을 약국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이 관계자는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약사들의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동물병원에서는 출납 대장 같은 기록도 있고 절차가 있기 때문에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함에 문제가 없다고도 했다.

협회 측은 법이 모든 사항을 세부적으로 담을 수 없으며, 인체용 의약품이 사람으로 한정돼있어도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는 입장이다. 동물병원에서는 인체용 전문 의약품을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진료비와 관련해서 각 항목을 따로 청구하거나 전체를 합쳐서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수의사협회 측은 의료체계 자체가 사람에 준하도록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행위는 치료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양한 요법이 있어서 동물용, 인체용 의약품이라 해서 된다와 안 된다를 구분하는 별도 규제가 없어 우려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관련 제도 자체가 얽혀 있기 때문에 동물 약품은 별도의 법안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한약사회는 수의사협회와 다른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의약품 법을 따로 두고 있지 않고 약사법 내의 동물용 의약품 특례 규정을 두고 있다. 동물에 사용하는 인체용 의약품에 대한 규정 역시 별도로 마련돼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 전까지는 제한이 없었던 인체용 의약품 사용이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 이후 수의사들이 인체용 의약품을 구입하지 못했다. 수의사들이 약사법 21조 수정을 국회에 청원해 약사법에 근거 동물병원 개설 수의사가 전문의약품을 약사로부터 구매가 가능해졌다.


수의사의 인체용 의약품 사용에 대한 법률 조항은 진료목적으로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조항 외에 별도의 법률 조항이나 규정이 미국처럼 존재하지 않아 사용 원칙 없이 관리 없는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또 인체용 의약품 대장이 있긴 하지만 의약품이 어디서 생산됐고, 어디에 사용됐는지 등의 통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라 
괜찮다?

동물에게는 동물용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쓸 만한 약이 없을 때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약에 대한 수요가 발생해야 동물용 의약품 개발이 활성화될 텐데,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해 수요가 없어 동물용 의약품과 관련해 개발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 

약사회 관계자는 “수의사들이 동물용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개발이 필요한 경우는 적극적으로 농림축산식품부와 정부 등에 건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동물용 의약품을 사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동물용 의약품을 먼저 사용하고 나서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또 농림축산검역본부 등과 같은 관련 부처 역시 손을 놓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pixabay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할 때 농림축산식품부 등에서 일시적으로라도 겸용을 허가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와 약사 그리고 정부의 합의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관리 부서에서 내놓는 조항과 법끼리 충돌하거나 겹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서로 안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만약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한다면 겸용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을 겸용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만약 사용해야 한다면 그런 방식을 일시적으로라도 인체용과 동물용을 겸용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시선이다.

이 약사회 관계자는 “인체용과 동물용을 반드시 나눠 생각해야 한다”며 “반대로 생각해보면 동물용 의약품을 성분이 같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사용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의사 vs 약사 밥그릇 전쟁
‘네 탓’법 충돌로 혼란 상태

만약 그런 경우라면 동물용과 인체용을 구분 짓지 않아도 될 것이며 수의사협회의 의학적으로는 성분이 중요하다는 견해에 대해 반박했다. 수의사는 동물용 의약품 사용을 우선시하고 만약 관련 약이 없다면 육성을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처방전과 관련해서도 처방 대상 의약품인데 처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결국 서로의 이익 문제로 연결된다. 누군가의 권한을 확대하고 축소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서로 합의해 이익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협의해야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역시 반려동물에게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 외에 진료기록부 관련해서도 법 체계가 미미한 점이 있다며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은 동물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 ⓒpixabay

동물 의료 분쟁이 잦은 이유는 현행법상 동물을 진료할 경우 사람과 달리 병원 측에서 진료기록을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어렵게 공개된 기록도 주요 정보가 빠진 경우가 많아 책임을 가릴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로 활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원은 “사람의 의료체계는 환자가 요구하면 진료기록을 공개하지만, 동물 진료기록은 공개 의무가 없어 보호자와의 갈등을 야기한다”며 “반려동물 관련 의료분쟁을 줄이기 위해 진료부 발급을 의무화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결국 두 집단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판적 여론이 다수다. 서로 이익만 생각하면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 아무것도 없다는 지적이다.

“용도 구분?
성분이 중요”

반려동물에게 인체용 의약품사용을 하려면 수의사는 더욱 철저한 관리와 충분한 사전고지가 필요하며, 약사는 의약품 사용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반려동물 약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정부 역시 반려동물과 관련된 산업의 규모가 커진 만큼 법 조항과 의약품 승인 등에 대해 더욱 철저한 감시, 세부적인 사항, 동물용 의약품 관련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커지는 반려동물 산업

개 가구에 고양이 신탁까지

펫코노미(Pet과 economy 합성어)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로 늘어난 반려동물 수만큼 관련 산업규모도 확대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반려동물 연관 산업의 규모는 2022년 4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반려동물 시장 확대와 4차 산업혁명의 발달로 반려동물 산업에도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펫테크의 발전규모도 커졌다.

펫테크는 반려동물 관련 제품과 서비스에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결합된 형태를 일컫는다.

또 반려동물의 음식 사업도 확대됐다.

시장 규모 2022년 4조 돌파 전망
첨단기술 적용 제품·서비스 등장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반려동물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돼, 유기농 재료를 활용한 반려동물들의 사료, 간식 등이 프리미엄으로 나온다.

동원, 하림 등에서도 반려동물 전문 브랜드를 내걸고 신사업으로 펫푸드 시장에 진출했다. 

반려동물의 가구 브랜드도 호황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에 대해 보호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최적화된 가구를 구매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펫신탁까지 출시했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가족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아  보호자가 더 이상 반려동물을 돌볼 수 없게 됐을 경우 반려인이 양육에 필요한 금액을 설정하는 신탁계약이다. 반려동물 산업은 2027년 6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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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