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시대의 얼굴’ 영화배우 설경구

“처음엔 이게 뭐지?’
세 번 읽으니 눈물 나더군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설경구가 처음으로 먼 과거로 갔다.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턱에 수염을 붙였다. 소시민의 삶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던 그가 간 곳은 조선 말기 흑산도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을 연기한다. 새 영화 <자산어보>에서다. 
 

▲ 배우 설경구 ⓒ메가박스플러스엠

배우 설경구의 연기에는 독한 맛에 있다. 강하고 진한 맛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군으로 현장에 투입됐던 <박하사탕>의 영호, 연쇄살인마를 쫓는 돌아이 경찰이었던 <공공의 적>의 철중, 김일성의 목을 베기 위해 인간 흉기가 됐던 <실미도>의 인찬, 김정일을 연기하다 실제 김정일이 돼버린 <나의 독재자>의 성근, 불한당 그 자체였던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의 재호 등 30년에 육박하는 시간이 담긴 그의 작품 목록에는 지독한 인간의 본능이 날뛰었었다. 

조급했던 과거

일부 역할 중에서는 소탈하고 인간적이기도 했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도 울분이 그득했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 하루 전부터 진한 감정을 입에 물고 연기에 임하고자 했던 곧은 태도를 지녔기에, 설경구의 얼굴에는 다른 배우에게서 볼 수 없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맡은 배역은 인생을 통달한 듯 만물을 넓게 바라보는 조선의 대학자다. 부패한 관료들로 인해 시스템이 마비된, 피폐해진 나라를 개인이 회생시킨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 흑산도라는 우물로 들어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정약전을 연기했다. 

태생부터 양반과 상놈이 정해진 시대에, 모든 인간에겐 존중받을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임금도 필요 없다고 여긴 개혁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다.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모든 사람과 편하고 즐겁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시스템이 마비된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마음을 가진 관료의 행정이 아닌, 백성이 배불리 먹을 방법이라 여기고 이를 고민한 학자다. 배우 설경구는 모든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어진 마음을 가진 약전을 훌륭히 표현해낸다. 

“감독이 똑똑한 거다. 제가 어찌 인생을 통달한 사람이겠나. 여전히 하루하루 불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대본에 충실했다. 인생을 통달한 인물로 비쳤다면, 그 공은 감독님과 제작진의 몫이고, 주위 동료들의 덕이었다.”

<소원>에서 이준익 감독과 호흡을 맞춘 설경구는 사극을 준비하고 있던 이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달라고 졸랐다. 고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이 감독이 일주일 만에 건넨 시나리오가 <자산어보>다. 처음에는 제목도 그렇게 눈길이 가지 않았고, 약전이라는 인물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고 한다.

“어류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인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 대사 위주로 읽어서 잘 몰랐는데, 세 번째 읽을 때는 눈물이 나더라.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서서히 쌓인 감정이 마지막에 눈물로 터지더라. 그 눈물이 좋았다.”

이준익 감독이 원했던 감정을 설경구가 그대로 느껴버린 것. 이 사실을 알렸더니, 이 감독이 매우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펑펑 우는 것이 아닌 차곡차곡 쌓여서 ‘핑’하고 흐르는 눈물의 힘이 영화 <자산어보>에도 담겨있다.

<자산어보> 정약용 형 정약전 연기
백성 배불리 먹을 방법 고민한 학자

약전과 창대 듀오가 영화의 줄기다. 약전의 이야기로 흐르는 듯하다가 창대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창대는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의 가치를 표현하고, 약전은 <자산어보>를 만드는 마음을 드러낸다. 


젊은 혈기로 입신양명해 자신이 배운 학문을 정치로서 활용하고 싶은 창대와 백성을 진짜 위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약전의 내공이 충돌한다. 설경구는 대학자이자 급진 개혁파이지만, 태생 자체가 양반인 약전의 한계까지 담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대사에 양반도 상놈도 필요 없고, 임금도 없어도 된다고 한다. 어쩌면 아주 위험한 인물이다. 급진적이라는 표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수평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양반이라는 한계는 있을 것으로 봤다. 자기도 모르게 양반의 습성은 튀어나오는 모습인 것이다. ‘상놈의 자식’이라는 말도 아이러니하게 뱉는 거고.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지 않았을까 여기며 연기했다. 적어도 양반의 습성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 배우 설경구 ⓒ메가박스플러스엠

<박하사탕>으로 세상에 알려질 때 이미 최고의 연기로 평가받은 그다. 연극판에서는 이미 알아주는 실력파였다. 연극 포스터를 붙이던 아르바이트생에게 극단 ‘학전’의 김민기 사장이 손을 내밀면서 그의 배우 인생이 시작됐다. 국내에서 유명한 연극 <지하철 1호선>의 초연 배우로 출발해 어느덧 30년 경력에 육박한다. 

그런 그에게 변곡점이 있었다면 영화 <불한당>이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설렁설렁 행동하지만, 모든 세포가 날카롭게 서 있어 자신을 짓누르려는 사람들을 모두 짓밟고 일어선 재호를 연기한 후 그에게는 많은 팬이 생겼다. 

외모는 점점 더 멋있어졌다.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것도 그 영화 이후다. 내적인 변화도 그때부터 일어났다.

“<불한당> 전만 해도 나는 매우 조급했다. ‘언제 연기를 그만두나’를 생각하며 살았다. <불한당>을 하기 위해 변성현 감독을 만났을 때 내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지금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다’고. 계단을 밟고 내려가고 싶은데, 추락할 것 같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변 감독이 계단으로 내려오게 해주겠다고 했다. 겨우 두 작품을 한 감독이 그랬다. 그때 이상하게 믿음이 갔고, 그 영화를 하고 나서 편해졌다. 여유가 생겼다.”

<자산어보>가 개봉한 뒤에도 그의 영화는 줄줄이 대기 중이다. <킹메이커> <야차> <더 문>은 이미 촬영이 모두 끝났으며, <유령>은 촬영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역사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단절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이젠 여유롭게

“전 세계적으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나 역시 단절된 듯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 힘들다. 그래도 이겨내면 된다. 골짜기가 깊으면 봉우리가 높다고 했다. 언젠가 높은 봉우리에 오를 날이 있다고 여기고 모두가 버티고 견뎌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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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