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풀지 못한 구미 사건 미스터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3.22 13:20:32
  • 호수 13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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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뀌고 아빠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막장드라마 줄거리보다 더한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경북 구미의 한 빈집에 6개월 동안 방치됐다가 숨진 3세 여아의 친모가 최초 발견자였던 외할머니로 밝혀졌다. 정작 당사자는 DNA 검사 결과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친모가 자신이 낳은 딸과 비슷한 시기에 출산 외손녀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 구미 3세 여아 살인 사건과 관련해 DNA 검사 결과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석모씨. 석씨는 외조모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사 결과 친모인 것으로 드러난 상태다.

지난 2월10일 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3세 여자아이인 보람양이 숨져 있는 것을 건물 아래층에 있는 외할머니인 석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집주인은 보람양의 어머니인 김모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석모씨에게 집 방문을 요청했다. 집을 찾아간 석모씨는 숨진 지 오래된 외손녀 보람양을 발견한 것이다.

3세 여아
반미라 상태 

사건이 벌어지기 약 6개월 전 김모씨는 딸을 두고 혼자 8월경에 이사했다. 이후 홀로 버려진 아이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조하고 밀폐된 곳이었기 때문에 시신이 완전히 부패하지 않아서 반미라 상태로 발견됐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딸과 함께 살았던 김모씨는 몇 달 전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아이만을 집에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수사당국은 전기도 끊긴 상황에서 혼자 남겨진 아이가 아사하고,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뒤 발견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지난달 19일 경찰은 김모씨를 살인, 아동복지법· 아동수당법·영유아보호법 위반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김모씨는 진술을 통해 “이사 후 빈집에 아이를 두고 왔다. 아마 죽었을 것”이라며 “전 남편의 아이라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방치돼 반미라 상태가 될 때까지 몰랐던 것은 석모씨와 김모씨가 서로 왕래를 하지 않은 까닭으로 전해진다. 또 보람양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석모씨도 아이의 죽음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아이가 질병이나 폭행, 상해, 학대 등으로 이미 기력을 잃은 상태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모씨는 남편과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고 결혼했다. 지인들에 의하면, 김모씨의 외도로 지난해 4월 이혼했다.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된 김모씨가 아이를 양육하게 된 것이다. 또 김모씨는 지난해 8월 초 딸을 빌라에 남겨둔 채 혼자 재혼할 남성 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한전의 단전 조치로 집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 구미지점에 따르면 A씨가 전기요금 5개월치를 내지 않아 지난해 5월20일 단전 조치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김모씨는 혼자 집을 나선 8월 초까지 2개월 반 동안 전기 없이 딸과 함께 생활한 것이다.

지난해 8월 딸만 두고 이사
2개월 동안 전기 없이 생활


빌라 아래층에 친정 부모가 살고 있었지만, 왕래를 전혀 하지 않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보람양은 제대로 씻지 못하고 영양 공급도 받지 못해 아사 직전의 비참한 모습이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25일 한국전력공사 경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경 김씨와 3세 딸아이가 함께 살던 빌라에 전기요금이 3개월간 체납돼 전류제한기를 설치했다. 빌라는 가구당 월평균 1만2000원정도 전기를 사용하는 미니 투룸 형태다.

전류제한기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주택용 전기에 한해, 최소한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660와트(W)의 전기를 제공하는 조치로 흔히 ‘단전’으로 알려져 있다. 한전은 전류제한기 설치 후 곧바로 보건복지부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 단전 사실을 알렸으며, 이후 6월과 7월 두 차례 더 연속해서 단전 사실을 전했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은 단전, 단수 등 공공·민관 기관의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복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회 취약계층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복지 지원을 돕는 장치다.

▲ 김한탁 구리경찰서장

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한전이 단전 사실을 알린 지 4개월이 지난 9월에야 해당 자치단체인 구미시에 이런 사실을 ‘행복이음시스템’으로 전달했다. 보건복지부는 2개월에 한 번꼴로 단전 등의 자료를 수집해 해당 지자체에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들을 통보하고 있다.

구미시가 김모씨의 가정을 위기 가구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김모씨의 거짓말로 무산됐다. 구미시가 해당 절차에 따라 통보받고 동사무소로 통지했다. 동사무소 공무원이 실태조사를 위해 김모씨 집으로 찾아갔지만 사람이 없어 안내문을 현관문에 붙인 뒤 돌아왔다.

안내문을 본 김모씨는 동사무소에 연락해 “나는 현재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고 있고 남편도 소득이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동사무소 직원들은 간단한 안내만 한 뒤 조사를 마무리했다. 김모씨의 거짓말로 인해 동사무소 직원들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960만원
수당 챙겨

주위 증언에 따르면 김모씨는 딸이 숨진 채 발견되기 전까지 가족 및 주변인에게 아이와 함께 생활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 숨진 딸의 명의로 구미시가 매달 지급하는 양육·아동수당을 받아왔다. 시는 김모씨에게 약 96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모씨의 이상한 행동은 SNS 계정에서도 나왔다. 김모씨가 이사한 지 석 달 후 SNS에 아이 사진을 올린 뒤 “사랑해, 말 좀 잘 들어줘. 제발”이라고 적었다. 신기한 점은 이사한 날 SNS에 게재한 딸 아이 사진을 모두 없앴다가 3개월 뒤에 다시 올렸다는 점이다.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김모씨와 이를 공모한 석모씨가 경찰에 검거된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상황이 상황이 바뀌었다. 외할머니로 알고 있던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로 밝혀진 것이다.

보람양과 김모씨는 자매지간인 셈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숨진 보람양과 구속된 석모씨의 DNA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DNA 검사를 주변 인물까지 확대해 숨진 아이와 석모씨 사이에 친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애초 외할머니로 알려졌지만 DNA 검사 결과 아이의 친모로 밝혀진 석모씨에 대해 사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석모씨는 끝까지 출산을 부인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석씨가 친모일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고 밝혔다.

석모씨는 지난 17일 오후 검찰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숨진 아이가 본인의 딸이 맞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 ⓒ구미경찰서

석모씨는 ‘DNA 검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기자의 손을 붙잡으며 “제가 아니라고 얘기할 땐, 제발 제 진심을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며 “진짜 낳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 잘못한 점이 없느냐’는 물음에도 “네, 없다”며 “정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국과수는 “유전자 검사 정확도는 케이스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면서도 “이번 경우에는 친자관계 확률이 99.9999%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과수는 숨진 여아, 김모씨, 김모씨의 전 남편 등의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낳은 적 
정말 없다”

국과수는 결과가 너무 황당해서 여러 번 반복 검사를 하고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김모씨의 친정어머니인 석씨에게까지 유전자 검사를 확대한 결과, 석모씨가 3세 여아의 친모인 것으로 확인했다. 모근과 구강상피세포 등을 이용하는 DNA 검사 정확도는 99.9%로 알려져 있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는 석모씨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적 가족 관계가 아니었고, 가족 간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여러 사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며 “유전자 검사로 결과를 남겨 놓자는 취지에서(석모씨를) 검사했는데 외할머니가 친모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일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으며 석모씨와 김모씨의 임신과 출산 시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석모씨가 자신의 출산 사실을 남편 등에게 감추기 위해 숨진 아이를 손녀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숨진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당초 숨진 아이의 ‘외할아버지’로 알려진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석모씨의 출산 경위와 아이를 손녀로 둔갑시킨 이유 등을 조사하면서 숨진 아이의 친부도 찾고 있다. 보람양의 친부를 찾기 위해 친모 석모씨와 관련된 주변 인물 100여명의 DNA 검사에 경찰이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모씨가 출산한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선 또 다른 강력범죄의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출산 사실을 감추고 숨진 아이를 손녀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진짜 손녀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는 2018년 1월 딸을 출산했다. 경찰은 비슷한 시기 석모씨도 출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48세였다. 전문가들은 폐경기에 가까울수록 출산율이 낮지만, 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보통 폐경기는 50대 전후지만 생리를 하고 난자가 나올 경우 임신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박경동 효성병원 이사장도 “난소 기능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50세가 넘어서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DNA 검사…외할머니가 친모 
친모가 딸 바꿔치기 가능성?

석모씨와 남편은 구미시 상모사곡동 빌라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김모씨가 살던 빌라 위층 집에서 보람양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도 두 사람이 함께 갔다.

석씨는 DNA 결과가 나온 뒤에도 “나는 출산한 사실이 없다”며 출산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함께 사는 남편에게 과연 9개월 이상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남는다. 물론 남편이 석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모르는 체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석모씨가 혼외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출산 사실을 숨겼다면 남편과의 부부관계를 파탄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의미다. 그렇더라도 몰래 출산한 아이를 자신의 외손녀와 바꿔치기했다는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가 2018년 1월 출산한 사실은 병원 기록과 담당 의사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그러나 석모씨의 임신·출산과 관련한 병원 기록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아직 석모씨의 병원 기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모씨가 조산원이나 집에서 출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임신·출산의 전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점도 남는다. 

경찰 관계자도 “DNA는 일치하는데 병원 진료기록이 없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남편이 아닌 남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임을 알고 있을 석모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건강보험으로 병원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모씨와 그의 전남편이 모두 보람양과 친딸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김모씨가 전남편과 헤어진 시점은 지난해 4월쯤으로, 출산 전후인 2018년 1월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때다. 경찰에 따르면 김모씨와 전남편 모두 3세 여아가 숨진 이후에도 자신의 친딸로 알고 있었다. 

김모씨의 전 남편은 지난 11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자신이 ‘처제’를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모가 모두 친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석모씨는 어떻게 딸을 바꿔치기 했을까.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가 진행한 총 4번의 검사에서는 모두 석씨가 보람양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니었다. 물론 김모씨의 전 남편도 아니었다. 경찰은 석모씨의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의 DNA도 검사했지만 두 사람 모두 보람양 친부가 아니었다. DNA 검사로는 A양 친모가 석모씨라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친부는 누구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남편도
몰랐을까?

전문가들은 석모씨가 딸을 바꿔치기했다면 그 행동이 일반적인 범죄 심리와 거리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출산 직후 자신의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그 아이를 숨지게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지, 아이를 바꿔치기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석모씨와 김모씨 두 모녀 모두 일을 저지르고 수습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였다”며 “석모씨는 보람양이 친딸이란 사실이 알려진다는 결과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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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