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그룹 위기의 두 가족 경영 내막

‘동업 신화’ 70년 동거 끝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 지붕 두 가족’ 영풍그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70년 동안 이어져온 영풍의 두 가족 경영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계열분리설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배력은 장씨 일가가 월등히 높지만 현금창출 능력은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는 계열사들이 우월하다. 무작정 둘로 나누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영풍 본사 ⓒ카카오맵

영풍그룹은 국내 재벌가에서 유일하게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해방 직후인 1949년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그룹의 모태다. 이후 두 집안은 70여년간 번갈아 그룹 회장을 맡으며 잡음 없이 성장을 이끌어왔다. 

재벌가 유일
파열 징후 포착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영풍그룹의 자산은 12조4450억원, 매출은 9조3800억원으로 재계 서열 28위를 기록했다. 장씨 가문은 대표회사인 ㈜영풍과 전자 계열사인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코리아서키트 등을 이끌고 있다. 최씨 가문은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 중심의 비철금속 사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두 그룹의 파열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심지어 계열분리설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영풍그룹은 현재까지 지주사 업무와 전자부품, 비철금속 제련 사업은 장씨 일가에서 맡고, 고려아연 등 계열사는 최씨 일가에서 각각 분담해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대로 계열분리 작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룹 내에서 고려아연을 제외하고는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계열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금창출 능력은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는 계열사가 압도적으로 앞선다. 지난해 9월까지 고려아연이 창출한 영업이익은 5789억원이다. 고려아연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연평균 7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만들어왔다.

반면 다른 계열사들이 거둔 영업이익은 2020년 9월 누적 기준 ㈜영풍과 영풍전자가 각각 336억원, 439억원, 코리아써키트와 서린상사가 274억원, 124억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같은 기간 인터플렉스와 시그네틱스는 각각 237억원, 15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3세 체제 들어서며 잡음…깨진 황금 지분율
최씨일가 입지 축소…분쟁 발생 여부 관심

반면 지분율은 장씨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 2019년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이 서린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영풍 지분 10.46%를 전부 인수했다. 장씨·최씨 일가가 공동 지배하던 지분이 장 고문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최씨 일가의 지분율 10%에 대한 간접 지배력이 사라졌다.

서린상사는 장씨 일가가 18.3%, 최씨 일가가 12%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분은 고려아연(50%), 영풍문화재단(5%)이 각각 나눠 갖고 있다.

장 고문은 지난해 6월과 9월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1.5% 중 9.18%를 씨케이에 넘겼다. 씨케이는 장 고문 아들 장세준 대표,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와 딸 장혜선씨, 부인 김혜경씨가 지분 100%를 나눠 보유하고 있는 장씨 집안 회사다. 최씨 일가와 나눠 보유하고 있던 10%에 가까운 지분은 장 고문을 거쳐 장씨 일가 3세들에게 넘어간 셈이다.
 

▲ (사진 왼쪽부터)장형진 고문, 장세준 대표, 최창걸 명예회장, 최윤범 사장

최씨 일가의 직접 지배력은 13.3%로 변하지 않은 반면, 장씨 일가의 ㈜영풍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31%에서 40%로 증가했다. 공동소유 법인을 통한 간접 지배력은 기존 서린상사 10.4%, 영풍개발 14.66%, 영풍정밀 4.39% 등으로 총 30.9%에서 영풍개발 15.5%, 영풍정밀 4.39% 등 총 20.7%로 감소했다.

공동소유 법인인 영풍개발에서 최씨 일가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풍개발은 ㈜영풍 지분 15.5%를 보유하고 있다. 영풍개발의 주주구성은 장씨 일가가 33%, 최씨 일가가 19.8%, 나머지 지분 중 34%는 영풍문고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영풍문고홀딩스의 주주구성 변화에서 발견됐다. 기존에는 장씨 일가가 14.5%, 최씨 일가가 6.6%를 각각 보유하는 등 두 집안이 나눠서 영풍문고홀딩스 지분을 소유해왔다. 나머지 지분 중 33%는 ㈜영풍이 보유하고 있었다. 

치고나간 장씨
힘빠지는 최씨

하지만 2018년, 이를 전부 씨케이에 넘기면서, 비교적 중립적이었던 33% 의결권이 장씨 일가 3세 법인 소유로 넘어갔다. 결국 영풍문고홀딩스→영풍개발→㈜영풍으로 이어지는 최씨 일가의 지배력 역시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됐다.

고려아연 역시 장씨 일가 중심의 지배력 확대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최씨 일가는 가족을 총동원해 고려아연 지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최창걸 명예회장의 아내인 유중근 전 대학적십자사 총재를 비롯한 최씨 일가는 장내 매수 방식으로 지난해  9월까지 총 고려아연 지분 0.06%를 추가로 확보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이 최씨 일가가 장씨쪽 지분율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일주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영풍이 장씨 일가 중심으로 재편된 탓이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고려아연의 특수 관계인 포함 최대주주 지분율은 48.4%다. 세부적으로는 ㈜영풍이 26.9%, 장 고문(4.4%)을 비롯한 장씨 일가가 5.96%, 공동 회사인 영풍정밀이 1.56%씩을 갖고 있다. 나머지 10%대 지분은 최 명예회장을 비롯한 최씨 일가 2~4세 수십명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두 가문은 최근 3세 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16년 장 고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영풍은 현재 전문경영인 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장세준 코리아서키트 사장이 최근 전자 계열사의 실적 개선을 이끌면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장 사장은 장 고문의 장남으로 장씨 가문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2009년 시그네틱스 전무로 그룹 경영에 합류한 장 사장은 2013년 영풍전자 대표를 거쳐 올해 초부터 코리아서키트를 이끌고 있다. 

3세 체제
누가 잘하나?

주목되는 사실은 전자 계열사 실적이 장 사장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하는 코리아서키트의 경우 내년 매출이 사상 최대인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주가 역시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3월 이래 3배 가까이 상승했다. 계열사인 인터플렉스의 영업이익이 2018년 적자로 전환한 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옥에 티’로 지적되고 있다.

최씨 일가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6년 2세 경영인 최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고려아연은 그동안 동생인 최창근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최근 3세 대표주자인 최윤범 고려아연 사장이 1년6개월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 ⓒ영풍

전통적으로 최씨 가문이 65세 이전에 회장직을 넘기는 점을 감안할 때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 역시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최 부회장은 2007년 고려아연 입사 후 페루 광산과 호주 아연제련소 등을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최근에는 신사업 개발을 이끌면서 최씨 가문의 후계자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최근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금이나 은값이 상승하면서 매출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7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증권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최씨 가문 입장에서도 계열분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금은 최, 지분은 장…복잡한 셈법
“계열분리 논하기엔 시기가 이르다”

재계의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2세인 장형진 전 회장이 과거 그룹 승계 과정에서 영풍문고 지분을 매각할 때도 최씨 일가는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가풍이 3세 경영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영풍그룹 역시 언론을 통해 “계열분리를 논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의 시각은 다르다.
 

▲ ⓒ고려아연주식회사

한 재계 관계자는 “두 가문의 분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재계에서 회자돼왔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룹을 쪼개느냐는 수순만 남았다”면서 “그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순환출자구조 또한 지난해 해소된 만큼 계열분리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가문이 계열분리를 할 경우 관건은 크게 두 가지다. 최근 영풍 계열 전자회사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공정위 발표 기준으로 ㈜영풍과 고려아연 계열의 매출 격차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26.91%의 지분을 보유한 ㈜영풍이다.

그동안 두 가문이 경영해 온 것처럼 영풍과 고려아연을 나누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LG-GS 
사례 답습?

재계 안팎에선 “과거 LG와 GS 가문의 계열분리 모델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GS그룹은 정유와 건설, 홈쇼핑 등 당장 현금성이 높은 계열사를 가져가고, LG그룹은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전자와 화학, 2차전지 사업 등을 맡았다”면서 “재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경영분리 모델로, 영풍그룹이 답습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