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그룹 위기의 두 가족 경영 내막

‘동업 신화’ 70년 동거 끝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 지붕 두 가족’ 영풍그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70년 동안 이어져온 영풍의 두 가족 경영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계열분리설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배력은 장씨 일가가 월등히 높지만 현금창출 능력은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는 계열사들이 우월하다. 무작정 둘로 나누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영풍 본사 ⓒ카카오맵

영풍그룹은 국내 재벌가에서 유일하게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해방 직후인 1949년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그룹의 모태다. 이후 두 집안은 70여년간 번갈아 그룹 회장을 맡으며 잡음 없이 성장을 이끌어왔다. 

재벌가 유일
파열 징후 포착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영풍그룹의 자산은 12조4450억원, 매출은 9조3800억원으로 재계 서열 28위를 기록했다. 장씨 가문은 대표회사인 ㈜영풍과 전자 계열사인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코리아서키트 등을 이끌고 있다. 최씨 가문은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 중심의 비철금속 사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두 그룹의 파열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심지어 계열분리설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영풍그룹은 현재까지 지주사 업무와 전자부품, 비철금속 제련 사업은 장씨 일가에서 맡고, 고려아연 등 계열사는 최씨 일가에서 각각 분담해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대로 계열분리 작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룹 내에서 고려아연을 제외하고는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계열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금창출 능력은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는 계열사가 압도적으로 앞선다. 지난해 9월까지 고려아연이 창출한 영업이익은 5789억원이다. 고려아연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연평균 7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만들어왔다.

반면 다른 계열사들이 거둔 영업이익은 2020년 9월 누적 기준 ㈜영풍과 영풍전자가 각각 336억원, 439억원, 코리아써키트와 서린상사가 274억원, 124억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같은 기간 인터플렉스와 시그네틱스는 각각 237억원, 15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3세 체제 들어서며 잡음…깨진 황금 지분율
최씨일가 입지 축소…분쟁 발생 여부 관심

반면 지분율은 장씨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 2019년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이 서린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영풍 지분 10.46%를 전부 인수했다. 장씨·최씨 일가가 공동 지배하던 지분이 장 고문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최씨 일가의 지분율 10%에 대한 간접 지배력이 사라졌다.

서린상사는 장씨 일가가 18.3%, 최씨 일가가 12%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분은 고려아연(50%), 영풍문화재단(5%)이 각각 나눠 갖고 있다.

장 고문은 지난해 6월과 9월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1.5% 중 9.18%를 씨케이에 넘겼다. 씨케이는 장 고문 아들 장세준 대표,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와 딸 장혜선씨, 부인 김혜경씨가 지분 100%를 나눠 보유하고 있는 장씨 집안 회사다. 최씨 일가와 나눠 보유하고 있던 10%에 가까운 지분은 장 고문을 거쳐 장씨 일가 3세들에게 넘어간 셈이다.
 

▲ (사진 왼쪽부터)장형진 고문, 장세준 대표, 최창걸 명예회장, 최윤범 사장

최씨 일가의 직접 지배력은 13.3%로 변하지 않은 반면, 장씨 일가의 ㈜영풍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31%에서 40%로 증가했다. 공동소유 법인을 통한 간접 지배력은 기존 서린상사 10.4%, 영풍개발 14.66%, 영풍정밀 4.39% 등으로 총 30.9%에서 영풍개발 15.5%, 영풍정밀 4.39% 등 총 20.7%로 감소했다.

공동소유 법인인 영풍개발에서 최씨 일가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풍개발은 ㈜영풍 지분 15.5%를 보유하고 있다. 영풍개발의 주주구성은 장씨 일가가 33%, 최씨 일가가 19.8%, 나머지 지분 중 34%는 영풍문고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영풍문고홀딩스의 주주구성 변화에서 발견됐다. 기존에는 장씨 일가가 14.5%, 최씨 일가가 6.6%를 각각 보유하는 등 두 집안이 나눠서 영풍문고홀딩스 지분을 소유해왔다. 나머지 지분 중 33%는 ㈜영풍이 보유하고 있었다. 

치고나간 장씨
힘빠지는 최씨

하지만 2018년, 이를 전부 씨케이에 넘기면서, 비교적 중립적이었던 33% 의결권이 장씨 일가 3세 법인 소유로 넘어갔다. 결국 영풍문고홀딩스→영풍개발→㈜영풍으로 이어지는 최씨 일가의 지배력 역시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됐다.

고려아연 역시 장씨 일가 중심의 지배력 확대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최씨 일가는 가족을 총동원해 고려아연 지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최창걸 명예회장의 아내인 유중근 전 대학적십자사 총재를 비롯한 최씨 일가는 장내 매수 방식으로 지난해  9월까지 총 고려아연 지분 0.06%를 추가로 확보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이 최씨 일가가 장씨쪽 지분율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일주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영풍이 장씨 일가 중심으로 재편된 탓이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고려아연의 특수 관계인 포함 최대주주 지분율은 48.4%다. 세부적으로는 ㈜영풍이 26.9%, 장 고문(4.4%)을 비롯한 장씨 일가가 5.96%, 공동 회사인 영풍정밀이 1.56%씩을 갖고 있다. 나머지 10%대 지분은 최 명예회장을 비롯한 최씨 일가 2~4세 수십명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두 가문은 최근 3세 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16년 장 고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영풍은 현재 전문경영인 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장세준 코리아서키트 사장이 최근 전자 계열사의 실적 개선을 이끌면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장 사장은 장 고문의 장남으로 장씨 가문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2009년 시그네틱스 전무로 그룹 경영에 합류한 장 사장은 2013년 영풍전자 대표를 거쳐 올해 초부터 코리아서키트를 이끌고 있다. 

3세 체제
누가 잘하나?

주목되는 사실은 전자 계열사 실적이 장 사장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하는 코리아서키트의 경우 내년 매출이 사상 최대인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주가 역시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3월 이래 3배 가까이 상승했다. 계열사인 인터플렉스의 영업이익이 2018년 적자로 전환한 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옥에 티’로 지적되고 있다.

최씨 일가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6년 2세 경영인 최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고려아연은 그동안 동생인 최창근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최근 3세 대표주자인 최윤범 고려아연 사장이 1년6개월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 ⓒ영풍

전통적으로 최씨 가문이 65세 이전에 회장직을 넘기는 점을 감안할 때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 역시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최 부회장은 2007년 고려아연 입사 후 페루 광산과 호주 아연제련소 등을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최근에는 신사업 개발을 이끌면서 최씨 가문의 후계자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최근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금이나 은값이 상승하면서 매출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7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증권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최씨 가문 입장에서도 계열분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금은 최, 지분은 장…복잡한 셈법
“계열분리 논하기엔 시기가 이르다”


재계의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2세인 장형진 전 회장이 과거 그룹 승계 과정에서 영풍문고 지분을 매각할 때도 최씨 일가는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가풍이 3세 경영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영풍그룹 역시 언론을 통해 “계열분리를 논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의 시각은 다르다.
 

▲ ⓒ고려아연주식회사

한 재계 관계자는 “두 가문의 분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재계에서 회자돼왔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룹을 쪼개느냐는 수순만 남았다”면서 “그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순환출자구조 또한 지난해 해소된 만큼 계열분리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가문이 계열분리를 할 경우 관건은 크게 두 가지다. 최근 영풍 계열 전자회사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공정위 발표 기준으로 ㈜영풍과 고려아연 계열의 매출 격차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26.91%의 지분을 보유한 ㈜영풍이다.

그동안 두 가문이 경영해 온 것처럼 영풍과 고려아연을 나누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LG-GS 
사례 답습?

재계 안팎에선 “과거 LG와 GS 가문의 계열분리 모델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GS그룹은 정유와 건설, 홈쇼핑 등 당장 현금성이 높은 계열사를 가져가고, LG그룹은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전자와 화학, 2차전지 사업 등을 맡았다”면서 “재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경영분리 모델로, 영풍그룹이 답습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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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