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오피스텔…솟아날 구멍은?

한때 부동산 시장에서 알짜 투자처로 인기를 모았던 오피스텔이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미분양 물량이 속출하고 거래 수익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건설사들의 과잉 공급과 세 부담 증가가 맞물린 결과다.

그동안 오피스텔은 부동산 규제 정책의 풍선 효과를 톡톡히 누려왔다. 아파트 매매에 필요한 대출이 제한되면서 투자 수요가 오피스텔로 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방세법 개정안에 따라 지난해 8월12일 이후 취득한 주거용 오피스텔이 주택수에 포함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대출 제한
상황 반전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이는 보유자의 주택수에 포함돼 다른 주택을 취득할 때 취득세가 중과되고, 오피스텔을 여러 채 갖고 있으면 다주택자로 분류돼 종합부동산세 등 세 부담이 늘어난다.

과잉 공급도 미분양 사태를 키웠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2019년 수도권에 공급된 오피스텔은 7만가구 이상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6만가구가 입주했거나 입주를 앞두고 있다. 공급이 늘면서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수도권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연 5.14%로 2015년 6.17%보다 1.03%포인트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으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로또 단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아파트 특별공급 대상이 확대되면서 오피스텔은 더욱 외면받는 분위기다.


위기의 오피스텔 시장에도 돌파구가 생겼다. 가격이 치솟고 당첨이 힘든 아파트 대신 신혼부부, 독신자 등 20~30대 실수요자들이 가세하면서 복층 오피스텔·아파텔, 아파트 생활권 주거복합 단지 내 오피스텔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주택수에 포함되지 않고 전매가 가능한 기숙사용 오피스텔, 주택수에 포함되지 않는 시가표준액 1억원 이하, 규제지역 100실 미만 오피스텔들이 틈새 투자처로 부각되고 있다. 

먼저 실수요자들이 주로 찾는 주거용 오피스텔. 1인가구는 공간 활용도가 높은 복층형을, 신혼부부 등 2~3인 가구는 2룸, 3룸 오피스텔을 선호한다. 각종 편의와 서비스를 아파트 못지않게 제공받을 수 있어서다. 아파트는 오피스텔과 달리 주택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넓은 조경시설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입주민들을 수용해야 하므로 편의성 증대를 위해 커뮤니티시설도 대거 확충한다. 

아파트는 오피스텔보다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오피스텔이 아파트 단지 내에 지어지면 오피스텔 입주민들도 아파트의 장점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게 된다. 아파트 입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취미생활이나 특기, 자녀교육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공유할 수도 있어 매력적이다.

투자 쪽에서는 기숙사용 오피스텔, 시가표준액 1억원 이하, 규제지역 100실 미만 오피스텔이 틈새 투자처로 부각되고 있다. 기숙사용 오피스텔은 지식산업센터 내 근무자들이 임차 대상이다. 업계는 주거용 오피스텔을 대신해 지산 내 기숙사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로, 사용자 입장에서 직주근접성과 편의성 및 경제성이 뛰어나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임대수익률이 높고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을 꼽는다.

아파트 생활권 주거복합 단지내 오피스텔 각광
시가 1억 이하 100실 미만 틈새 투자처로 부각

지식산업센터 내 기숙사는 전매제한이 없고 주택수에 포함되지 않는 데다가 오피스텔보다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저렴하면서도 더 높은 비율의 대출이 가능하고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 일반적으로 투자수익률이 오피스텔보다 높은 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피스텔에 비해 관리비가 저렴하고 주차공간이 더 여유롭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주택수에 포함이 되지 않는 오피스텔도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올해부터 다주택자의 종부세율이 최고 6%로 인상되며, 조정지역 내 다주택자에게는 양도세가 중과돼 세금폭탄을 맞을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 이에 시가표준액 1억원을 넘지 않는 소형 오피스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방세법 시행령 28조에 따르면 지난해 8월12일 이후 계약된 시가표준액 1억원 이하의 오피스텔은 주거용이라도 주택수 산정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소형 오피스텔은 다주택자 규제를 피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투자가 가능하며 청약 당첨 후에도 무주택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전매 제한이 없어 아파트보다 처분이 쉽다는 이점 덕분에 아파트 분양가보다 더 비싼 오피스텔이 수백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 203호를 모집하는 성남 고등지구의 ‘판교밸리자이’오피스텔은 6만5503명이 청약을 신청하며 평균 23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매 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 인기가 높았던 3단지(5군)의 경쟁률은 830대 1로 최고 경쟁률을 찍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신축년에도 규제와 초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실거주 위주의 오피스텔과 규제가 없는 틈새 오피스텔이 각광을 받고 있다”며 “실거주인 경우 교통 및 생활 인프라가 잘 형성돼 있고, 투자의 경우는 배후수요가 풍부하고 확실한 개발호재를 갖춘 지역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눈길 가는 서울 오피스텔.
 

▲선유도 더채움 2차= 서울 선유도 역세권 오피스텔인 ‘선유도 더채움 2차’가 분양한다.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6가 2-3, 4번지에 있으며 총 3개동이 들어선다. 각 동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14층까지 규모로 건축되며 주차는 기계식 52대, 자주식 30대로 총 82대가 계획돼 있다. 자전거 거치대도 27대까지 설치된다.

로또 단지
속속 등장

내부 호실은 1.5룸과 2룸, 3룸 등으로 다양한 타입이 제공된다. 8.5평, 10.9평, 6.6평, 16.4평 등 4가지 타입이 제공되므로 본인이 원하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분양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각종 규제로 인한 주택담보대출도 규제를 받고 있는데 청약통장 1순위 가능 상품이라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신도림 명남더블레스=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10-7번지 일대에 즉시 입주가 가능한 오피스텔이 분양 중이다. 지난 2월 초부터 입주 가능한 ‘신도림 명남더블레스’오피스텔이 그곳. 총 2개동 104호실(1.5룸~3룸, 전용면적 27.92㎡~59.9㎡)로 아파트 25평형과 유사한 중·대형 면적의 아파텔 구조다.

분양 관계자는 “아파트를 대체할 수 있는 중·대형 면적에 실용적인 구조로 설계돼 신혼부부·직장인 등 실수요자와 부동산 임대사업자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주변에 다수의 업무지구와 상업지구가 밀집해 배후 임대수요가 풍부한 데다 초저금리 속 트리플 역세권의 이점이 있고 소액투자가 가능해 상품성이 크고 향후 높은 시세차익도 기대할만하다”고 강조했다.

트리플 역세권 
소액투자 가능

한편, ‘신도림 명남더블레스’아파텔은 선착순으로 원하는 동호수 지정이 가능하고, 초기에 계약금(10%)만 입금 후 중도금 없이 입주 시 잔금을 납입하면 된다.
 

▲G밸리 하우스디 와이즈타워=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조성한 국가산업단지 G밸리 지구 안에선 ‘하우스디 와이즈타워’가 지원시설인 기숙사를 분양 중이다. 지하 5층~지상 13층 규모 지식산업센터로, 이 중 11~13층을 기숙사 111실로 조성한다.


기숙사의 경우 주변 오피스텔과 비교해 저렴한 분양가와 50%대의 높은 전용률을 보이며 테라스 공간 등 서비스 공간을 제공해 타 상품보다 넓은 공간을 제공한다. 내부에는 인덕션과 세탁기, 냉장고 등 생활에 필요한 필수 가전제품을 풀옵션으로 적용하고, 이 모든 가전제품이 빌트인시스템으로 설치해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 연출과 함께 거주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주거시설이 아닌 지원시설이므로 1가구 2주택 규제 및 종부세 대상이 아니라는 점,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분양받은 후 전매가 자유로운 점 등이 장점이다. 대출 조건과 세금, 다주택 규제 등의 이점에서 투자자들이 크게 매력을 느끼는 데다가, 최근 법이 바뀌면서 법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지식산업센터 및 기숙사에 투자할 수 있게 돼 투자열기가 더욱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식산업센터 기숙사는 오피스텔보다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저렴하면서도, 오피스텔에 뒤지지 않는 인테리어 및 부대시설을 갖춰 상대적으로 임대수익률이 높은 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피스텔에 비해 관리비가 저렴하고 주차공간이 더 여유롭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연면적 3만1285.27㎡ 지하 5층과 지상 13층 규모의 G밸리 하우스디 와이즈타워는 맞춤형 섹션공간을 제공한다. 지하 2~지상 10층까지는 업무공간으로, 지상 11~13층까지는 업무지원시설인 기숙사로 구성해 업무의 편의성을 높였다. 190대가 수용 가능한 주차장과 다양한 수목과 넓은 휴게공간으로 입주민은 물론 주변 유동인구의 휴식까지 배려한 공개공지를 갖췄다. 간단한 산책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탁 트인 옥상정원으로 높은 업무의 효율성도 기대할 수 있다. 
 

▲여의도 리브하임= 건화종합건설이 서울 영등포에 복층형 평면으로 설계를 특화한 오피스텔 ‘여의도 리브하임’을 분양한다. 지하 1층~지상 15층, 전용면적 19㎡ 154실 규모다. 시가표준액이 1억원이 되지 않아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고, 취득세 중과대상에서 제외돼 절세 혜택을 볼 수 있다. 일부 호실은 ‘한강뷰’가 가능하다. 복층 구조를 도입해 침실과 주거 공간을 분리했다.

보일러실을 외부에 설치하고 세대별 창고도 따로 설치한다. 내부엔 신발장, 수납장, 붙박이장, 냉장·냉동고, 세탁기, 전기 쿡톱(2구)을 설치하고, 오피스텔 입주자들이 선호하는 스타일러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업무지구 근접
1인 가구 수요

분양 관계자는 “각 금융기관 본사와 KBS 방송국, 국회의사당 등이 모여 있는 여의도 업무지구와 가까워 1인 가구 수요가 풍부하다”며 “아직 무주택자라면 아파트 청약 시 무주택 자격을 유지할 수 있고, 강남 등 타 지역 대비 투자 금액도 적은 등 장점이 있어 관심을 가지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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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