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기다리는 선수들> 한국 육상 김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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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02.22 11:20:56
  • 호수 1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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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종목 경보 ‘일낸다’

▲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20km 경보 동메달에 빛나는 김현섭 선수

[JSA뉴스] 경보의 김현섭은 한국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다. 비인기 종목 경보가 배출한 한국 육상의 전설이자 아시안게임에서 3연속 메달을 획득한 두 번째 육상선수이기도 한 그는 현재 고향 속초에서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대회가 될지도 모르는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고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개최국 한국은 하나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 육상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한 적은 있지만, 세계선수권 대회 메달과는 거리가 있었다.

거의 유일한 메달리스트 후보였던 20km 경보의 김현섭은 위경련 등의 컨디션 난조로 6위로 대회를 끝냈다.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의 최초이자 유일한 메달 기대주라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컸다.

기둥

그런데 2019년 반전이 일어났다. 러시아 선수들의 약물 파동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김현섭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던 3명의 선수가 기록을 박탈당하면서 최종 3위가 됐다. 이로써 김현섭은 한국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됐다.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뒤늦게 동메달 수여식도 진행했다.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된 김현섭은 메달을 받기 전 출전한 2013 모스크바와 2015 베이징에서도 나란히 10위를 기록하며 한국 육상선수 중 유일하게 3개 대회 연속 10위권에 안착하는 성과를 냈다.


그는 아시안게임에서는 2006 도하 은메달, 2010 광저우와 2014 인천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어 육상 선수 중 두 번째로 아시안게임에서 3연속 메달을 획득한 선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는 4연속 메달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4위에 그쳤다.

한국 최초 세계육상선수권 메달
아시안게임 3연속 메달 획득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난 김현섭은 시골에서 태어난 여느 아이들처럼 동네를 뛰어다니며 운동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운동부가 많았던 설악중학교에 입학해 마른 체형 탓에 육상부로 스카우트됐다. 육상부에서 중거리 종목을 시작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경보로 종목을 바꾸게 된다. 

선수와 코치의 숫자가 적고 비인기 종목인 경보는 예나 지금이나 타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 아이들이 전환하는 사례가 많다. 경보로 종목을 바꿨음에도 고1 때까지 김현섭은 평범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동계 훈련에 임했고, 고등학교 2학년 첫 고교대회에서 부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고교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단한 김현섭은 달라진 환경 덕에 2004 아테네올림픽 출전을 노렸다. 어렵게 선수생활을 했던 고교 시절을 지나 실업팀에 입단하니 자신감이 붙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니어의 10km와 성인의 20km는 단순히 거리만 두 배가 아니었다. 훈련도 몇 배로 힘들었고 회복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상의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이었던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김현섭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목표로 했던 금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첫 출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금메달을 거둔 중국의 한유청이 시작부터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치고 나갔고, 그 뒤를 일본 선수들이 뒤따라가는 형태로 레이스가 진행됐다.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김현섭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 오버페이스를 했던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최국 중국 선수들이 1, 2위를 하고 김현섭은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당시 랭킹 3위 안이었던 중국 선수들은 개최국의 이점을 가지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 경보 김현섭 선수

한국은 2011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세계육상선수권을 개최하면서 10-10(10개의 종목에서 10위 내의 성적을 거둔다는 의미를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메달을 목표로 했던 선수는 경보의 김현섭이 유일했다. 안타깝게도 6위를 기록했지만, 도핑 파문으로 일부 선수들이 기록을 박탈당하면서 최종 동메달로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됐다. 

언론과 세간의 관심 속에서 고된 훈련을 했던 김현섭은 경기를 앞두고 위경련이 왔었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 덕에 좋은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현섭도 주변의 관심과 협회, 소속팀의 지원에 힘입어 비인기 종목 경보에 전환점을 만들고 싶었다.

이후 김현섭은 2013 모스크바와 2015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도 10위를 기록하며 세계육상선수권에서 3연속으로 10위 안에 안착한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됐다. 그 사이에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김현섭에게 아쉬움이 큰 대회였다.

2011 대구 세계선수권에 이어 자국에서 열린 두 번째 메이저 대회였고, 당시 세계랭킹도 3위였던 만큼 금메달을 목표로 출전했다. 하지만 중국의 왕첸, 일본의 스즈키 유스케에 이어 동메달에 머물렀다. 두 선수는 당시에도 세계 상위권 랭커였고, 특히 스즈키는 20km와 50km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6 리우 중도 기권
은퇴 후 지도자 준비

김현섭의 경기 운영 방식은 상위 그룹에서 이어 달리면서 선수의 페이스에 맞춰 레이스를 완주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중국과 일본의 선수들이 자신만의 페이스로 경기를 주도하는 데에 비해 자신은 (상대에)반응하는 레이스를 펼쳤다”며 “내가 주도하는 레이스를 했다면 경기가 달라지지 않았겠냐”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소속팀은 김현섭에게 20km와 50km 병행을 제안했다. 김현섭은 성인 무대 20km에서만 뛰었지만, 소속팀은 50km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20km와 50km의 병행은 다른 세계적인 선수들도 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50km의 훈련이 버겁고 두려워서 거절하려 했으나,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50km를 병행하며 리우올림픽을 준비했다. 그리고 처음 출전한 50km 경기에서 올림픽 출전 기준을 가볍게 통과하며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막상 올림픽에서는 50km 경기 중 중도 기권하고 말았다. 20km 경기의 피로감이 5~6일 휴식기 동안 충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40km 지점을 넘어서 근육 경련이 일어나 43km를 지나면서 기권했다. 결과적으로 하나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회였다.

김현섭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고향팀인 속초시청으로 이적했다. 어느덧 노장이 된 전설은 리우올림픽 이후 두 차례의 세계선수권에서 26위와 37위에 머물렀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도 4위에 머물며 아시안게임 4연속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이제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도쿄를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으로 삼고 싶다는 그는 현재 고향에서 고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비인기 종목에서 육상의 전설을 쓴 김현섭은 한국 경보를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올해의 올림픽과 그 이후의 지도자 생활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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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