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US 오픈서만 작아진 전설

눈앞에서 놓친 메이저 타이틀

미국의 전설적인 골프 영웅이면서도 정작 US 오픈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 1895년 이래 1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US 오픈은 미국인들에게 자랑스런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영웅에게도 뼈아픈 상처는 있는 법이다.
 

미국이 낳은 전설적인 골퍼 중 한 명인 샘 스니드는 US 오픈이 외면한 불운의 선수다. 미국프로골프(PGA) 통산 82승으로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려 37번의 US 오픈에 출전해 우승 기회도 4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유독 여기서만

1939년 필라델피아의 스프링 밀 골프장. 마지막 날의 파5 18번 홀. 넬슨 등 2위로 따라 오고있는 선수들이 3명, 스니드는 한 타 차로 이기고 있어 파 세이브만 해도 우승이 가능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에 마지막 홀에서 그는 계산 착오를 일으켰다.

17번 홀까지 동점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해야만 이기는 줄 알고 있었던 것. 결국 18번 홀의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려고 무리한 스윙을 하다가 벙커에 볼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이미 평정을 잃고 있었다. 벙커에서 무려 5타 만에 그린에 올라온 것도 모자라 3퍼팅까지 하고 말았다. 파5에서 무려 8타, 트리플 보기를 범해 5위에 그치고 만 샘은 가슴을 쥐어뜯었다. 훗날 그는 “10kg은 줄었고, 머리는 다 빠졌다. 잊으려 하다가도 화가 치밀어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고 통곡했다.


8년이 지난 1947년 우승 기회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골프장에서 스니드는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6m나 되는 롱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루이스 워샴과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마지막 홀까지 워샴에게 한 타를 뒤지면서 8년 전과는 반대되는 상황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확한 계산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끝에 회심의 버디를 했고, 동타를 만들어 연장전에 돌입한 것.

다음 날 연장전에서도 스니드는 마지막 3개 홀을 남겨놓고 2타를 리드, 그토록 바라던 US 오픈 우승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러나 불행은 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16, 17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해 내리 2타를 까먹으면서 다시 동타가 돼버렸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두 사람은 동시에 1미터도 안 되는 퍼팅만 남겨놓게 됐다.

스니드 4번에 걸친 준우승
통산 82승 무색케 한 불운 

스니드가 먼저 퍼팅 자세를 잡았다. 두 선수 모두 스니드의 볼이 몇 센티미터 뒤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니드가 먼저 퍼팅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켜보는 갤러리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옆으로 서서 하는 퍼팅이 아닌 스니드 특유의 퍼팅 자세대로, 그는 퍼터를 뒤로 뺐다. 

순간 워샴이 “잠깐!”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는 두 사람의 볼이 홀컵에서 거리가 비슷하니 자로 재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워샴은 왜 소리를 질렀을까. 스니드가 퍼팅을 하려는 순간, 그가 버디를 성공시킬 것 같은 예감이 루이스의 머리를 스쳤을까. 그래서 그는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일까.

그렇게 잠시 경기를 멈춘 채 볼의 거리를 재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 결과 스니드의 볼이 몇 센티미터 더 길게 나왔다. 당연히 처음대로 스니드가 먼저 퍼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니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스니드의 퍼팅이 들어갈 리 없었다. 그의 볼은 홀컵을 스치면서 비켜나버렸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크게 땅을 치고 통곡을 해야 할 회한의 70㎝ 퍼팅이었다. 반면 기묘하면서도 저질적일 수도 있는 꾀를 짜낸 워샴은 그대로 버디퍼트를 성공시켰고, 스니드는 다시 한 번 분투를 삼켜야 했다.

3번째 기회는 2년 뒤인 1949년의 시카고 메다이나에서 열린 대회였다. 스니드는 이 경기에서도 한 타 차로 캐리 미들코프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마지막 4번째는 1953년 피츠버그의 오크몬드 골프장이었다. 이번 대회는 스니드의 라이벌이었던 벤 호건을 위한 시합이었다. 호건은 거의 죽을 수도 있었던 자동차 사고에서 회복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눈부신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로페즈, 48승 거뒀지만…
끝내 추가하지 못한 여정
 

이 대회에서 스니드는 첫 날부터 단 하루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던 호건을 3일째 경기부터 한 타 차로 따라붙으며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건을 상대하기에 그는 너무도 벅찼다. 마지막 날 스니드는 호건과 무려 6타나 차이가 나는 2위를 기록 했고, US 오픈을 향한 스니드의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었다.

여성 골퍼로서 세계 최고의 선수임에도 US여자 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던 프로도 있었다. 낸시 로페즈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수였다. 20세의 나이인 1977년 프로 데뷔 후 78년 9차례 우승으로 올해의 신인왕, 올해의 선수상, 베어 트로피, AP사 올해의 여자선수 등 LPGA를 뒤흔든다.

불행히도 20여년간 메이저대회 3승과 LPGA 48승으로 전설의 반열에 오른 로페즈는 US 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다. 무려 4차례나 US 오픈 정상에 오를 기회가 있었음에도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997년 7월12일 펌킨 릿지 골프장. 불혹의 나이를 맞은 로페즈는 그의 생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US 오픈 우승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3일 내내 60대의 스코어로 신기록마저 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4일째 경기에서 앨리슨 니컬라스라는 선수가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4타 차로 따돌리고 도망가는 니컬라스를 쫓기 위해 로페즈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로페즈가 13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반면, 니컬라스는 14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4타 차가 졸지에 1타 차로 줄어들어 로페즈에게 역전의 기회가 왔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트로피의 잔상이 지나갔다. US 오픈이 혹시 그의 품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 18번 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두 선수는 기싸움을 하며 모두 안전하게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렸다. 니컬라스의 볼은 낸시의 볼보다 조금 더 뒤에 떨어졌다.

먼저 퍼팅을 한 니컬라스의 볼이 홀컵에 못 미치며, 60㎝ 앞에 멈춰섰다. 로페즈의 차례였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는 볼 앞에 섰다. 버디를 해야 동점으로 연장전에 갈 수 있다.

운명의 볼이 그린을 타고 홀컵을 향해 굴렀다. US 오픈 무관의 한을 풀게 될 것인가. 볼이 라이를 따라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로페즈는 환호의 제스처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매정한 볼은 홀컵의 가장자리를 돌며 비껴가고 말았다. 로페즈는 눈을 감았다.

4일 내내 60대 타수의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울분을 삼킨 로페즈는 “너무나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이 대회에서 나는 이길 줄 알았다. US 오픈의 여신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못 이룬 꿈

로페즈는 잠시 눈을 감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낸시가 8살이 되던 해, 아버지 도밍고는 딸에게 골프채를 잡도록 한 정신적 지주였다. 아버지는 어느 날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낸시, 너는 아마도 US 오픈에서 이기지 못할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응답했다. “아빠. 나는 언젠가는 US 오픈을 차지할 수 있을걸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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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