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대교그룹 후계구도 해부

건재한 아버지 속타는 형제들

[일요시사 취재1팀] 대교그룹의 승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같은 교육 ‘빅(Bibg)3’로 불리는 교원그룹과 웅진그룹은 이미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은 아직까지 80%가 넘는 지주사 지분을 보유하며 건재한 경영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로 인해 속이 타는 건 두 아들. 승계를 위한 길은 멀기만 하다.  
 

▲ ▲대교타워 ⓒ대교그룹

올해 들어 교육업계에서 후계자에 대한 본격적인 승계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 교육 ‘빅(Big)3’간 승계 진행 속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원그룹과 웅진그룹은 사실상 후계자를 낙점한 상태다. 반면 대교그룹은 강영중 회장의 두 아들 가운데 누가 회장 자리를 물려받을 지 가늠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경쟁사 소식
조급해진 2세

현재 대교그룹 내에서는 73세인 강 회장이 여전히 건재한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두 아들은 물론 임원들도 승계 준비를 거론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더욱이 강 회장은 연일 대교 주식을 매입하며 경영자로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대교는 교육 그룹이다. 대교의 전신은 1976년 1월 세워진 한국공문수학연구회로 창업자는 강영중 회장이다. 당시 20대였던 강 회장은 서울에 종암교실을 열었다. 이후 일본의 구몬수학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3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대교는 입소문을 타고 성장했다. 

1991년 일본 구몬수학과의 ‘구몬’ 상표 로열티와 관련해 이견이 생겨 결별하면서 현재의 대교라는 상호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때 등장한 ‘눈높이’ 학습지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거치는 학습지의 대명사가 됐다.


대교가 시장의 지배력을 높인 비결은 명쾌했다. 국내서 처음으로 시도한 1대1 방문학습시스템은 체계적인 맞춤 지도라는 평가와 함께 시장에 자리 잡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대교그룹은 지주사 대교홀딩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이 대교홀딩스 지분 82%를 보유하며 공고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 아래 대교, 대교D&S, 대교CNS, 대교심층수, 대교ENC, 대교에듀피아, 대교에듀캠프, 대교CSA, 위더그린, 에듀베이션, 티엔홀딩스, 대교아메리카, 대교홍콩유한공사, 상해대교자순유한공사, 장춘대교자순유한공사, 대교말레이지아, 대교인도네시아, 대교싱가폴, 대교인도, 대교영국, Eye Level HUB LLC, KNOWRE AMERICAS INC, 크리스탈와인컬렉션, 크리스탈앤컴퍼니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교육 빅3’본격 승계…뒤처지는 이유는?
2세들 노력…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좌초?

승계를 위해선 대교홀딩스 지분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지분율로만 봐도 두 형제들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장남 강호준 최고전략책임(CSO) 상무와 차남 강호철 최고재무책임(CFO) 상무는 영향력이나 위치 모두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누구 하나 이렇다할만한 성과를 보인 것도 없어 후계구도에 앞선 이도 없다.

강호준·강호철 상무가 보유한 대교홀딩스 지분율은 0.1%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형제가 지분 49.02%씩을 보유한 크리스탈원이 확보하고 있는 지분까지 포함하면 소폭이나마 더 늘어난다. 크리스탈원은 대교홀딩스 우선주 1.8%, 대교 보통주 0.02, 우선주B 9.56%를 소유하고 있다. 

크리스탈원은 승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됐다. 대교그룹과의 내부거래를 통해 규모를 키워 승계 재원을 마련하는 동시에 대교홀딩스와의 합병 및 지분스왑 등의 방법으로 자연스레 두 형제에게 지배력을 승계하는 수순이 예상됐다.


크리스탈원은 2004년 대교글로벌어쏘시에이츠라는 이름으로 IT토탈 서비스 및 교육출판업을 영위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강호준·강호철 상무가 각각 50% 지분율을 차지했다. 대표이사는 강호준 상무와 강호철 상무가 번갈아 맡았다.
 

▲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대교

비슷한 시기에 통신판매 및 아동복 생산판매업을 영위하는 대교CNS(옛 하모라)가 ㈜대교의 종속기업으로 설립됐다. 대교의 종속기업으로 설립됐다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며 대교홀딩스의 100% 자회사가 됐다.

크리스탈원과 대교CNS는 대교를 기반삼아 각각의 사업을 펼치며 총 합산 수백억원대의 실적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양사가 나름 엇비슷한 덩치로 커진 2011년, 크리스탈원은 돌연 이비즈(e-biz) 사업부문을 약 70억원에 대교CNS에 매각했다. 매각대가로는 현금대신 대교CNS가 발행한 보통주 98만9888주를 넘겨받았다.

성과 없는데…
사라진 발판

크리스탈원의 최대주주였던 강호준·강호철 상무가 대교CNS 지분 33.11%를 확보하며 그룹 내 주요주주로 부상했다. 이들은 대교CNS의 등기임원 및 대표이사 자리에도 오르며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를 기점으로 크리스탈원의 성격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정관상 사업 목적에 설립 목적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여행·홍보·부동산임대·방문판매통신업·경영지원서비스·경영컨설팅 및 자문업 등이 잇따라 추가됐다.

사업부문 매각으로 대교그룹과의 내부거래가 70억원에서 20억원대로 줄긴 했으나 대교CNS의 주요주주로서 배당을 챙겼다. 확보한 재원으로는 와인사업으로 외연을 넓혔다. 디뱅와인·크리스탈와인컬렉션 두 곳에 불과했던 자회사는 크리스탈앤컴퍼니·크리스탈에비에이션·크리스탈와인컬렉션 등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크리스탈원을 키워 승계의 발판으로 쓰려 했던 계획은 결과적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일감 몰아주기 및 부당 내부거래 이슈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대교그룹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 ▲▲ 강호준·강호철 대교그룹 상무

크리스탈원이 자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일감 몰아주기로 재원을 마련하려 했던 게 화근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등 전방위 압박에도 시달렸다.

결국 크리스탈원에 대한 그룹의 지원은 2018년경 지분정리와 함께 중단됐고 크리스탈원의 종속기업인 크리스탈와인컬렉션과 크리스탈앤컴퍼니 보유지분 전량을 부동산개발사업을 영위하는 대교DNS에 매각했다.

갑작스런 매입
손주에게 증여?


뉴미디어·보험·여행사업부문을 각각 대교·대교에듀피아·대교에듀캠프에 총 6억3000만원에 양도했다. 대교CNS 지분도 대교홀딩스에 전량 넘겼다.이후 대교그룹으로부터 받는 내부거래도 모두 끊겼다. 

장남 강호준 상무가 총괄하고 있는 해외사업도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2018년 중국법인인 북경대교자순유한공사를 청산했던 대교가 지난 2019년에는 베트남법인인 대교베트남을 마스터 프랜차이즈로 전환하며 사실상 정리했다. 

대교가 베트남 등지에서 철수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매년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실제 2002년 설립된 북경대교자순유한공사는 2018년 청산 때까지 10년간 총 66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2014년 설립된 대교베트남 역시 2018년까지 5년간 30억원의 순적자가 발생했다.

즉 이들 해외법인의 누적손실 규모가 감내할 수준을 넘어서면서 관련 사업부문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해외법인들의 경영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교는 현재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인도, 영국, 중국 등지에서 교육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중 홍콩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적자를 기록 중이다.

강호준·강호철 상무는 2009년 대교홀딩스 주식 2000주를 처음 매수한 뒤 지난 2019년까지 10여년간 각각 보통주 기준 3000주씩을 추가 취득했을 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보통주 뿐 아니라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도 매입 대상이었기 때문에 승계와는 거리가 먼 단순 지분 취득 거래로 비춰졌다.


아무리 사들여도…“부친 지분에 멀었다”
회장 심경에 변화?…승계 속도 빨라지나

그러던 중 지난해 오너 2세들이 갑작스레 대교홀딩스의 주식을 약 3300여주씩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 장남인 강호준 상무는 보통주 2720주, 우선주 614주를 매입했다. 차남 강호철 상무는 보통주와 우선주를 각각 2718주, 617주를 사들였다. 

지분 매입은 장외에서 이뤄졌다. 강 회장뿐 아니라 특수관계자의 주식수에 변화가 없고 전체 주식총수 역시 그대로인 점을 감안하면 소액주주 지분을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 회장이 주식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아무리 매입강도를 높여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다.

더욱이 강호준·강호철 상무가 지분을 매입하고 나섰어도 지분율을 동일하게 유지했다는 점은 아직까지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승계 후보자가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결국 강 회장이 지분을 넘겨주는 결단을 내려야만 승계 윤곽이 나타날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강 회장은 지난해 5월 돌연 자신의 손주들에게 우선주 60만주를 증여했다. 강 회장의 증여로 오너 3세들이 보유한 대교 주식의 총합은 110만5612주로 개인당 약 1.39~1.48%의 지분을 가졌다. 
 

▲ 대교 눈높이 학습지

특이한 점은 오너 3세들이 보유한 대교의 지분율이 강호준·강호철 상무보다 높다는 점이다. 강호준·강호철 상무의 경우 지난해 9월 기준 지분율은 0.03%에 불과해 자식들보다 낮다. 강 회장이 오너 2세들에게 지분을 승계하지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내용은 없다. 

최근 대교그룹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다. 매출은 10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고 고작 몇 백억원대 순이익을 남기는 데 그친다. 그나마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적자전환됐다. 

변화 움직임
회장 속내는?

다만 오너 2세들이 10여년 만에 최대치의 지분 매입에 나섰고 강 회장이 3세인 미성년 손주들에게 대교 지분을 증여했다는 점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소액주주가 유의미하게 줄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룹의 지분은 전적으로 강 회장 권한으로 관리된다. 비상장 주식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지배력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승계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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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