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K-콘텐츠 명암 

팬데믹 대격변 속 절반의 승리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방송가와 영화계는 치명상을 입었다. 제작 환경은 더욱 복잡해졌고, 영화관으로 향하던 발길은 뚝 끊겼다. 대격변은 불가피했다. 기대작은 줄줄이 개봉을 미뤘고, 해외 로케이션 제작 작품은 대부분 중단됐다. 영화 <기생충>이 유례없는 역사를 썼고, <킹덤2> <사랑의 불시착> 등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예년만큼 좋은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올 한 해 K-콘텐츠는 절반의 승리에 가깝다. 올해를 되짚어보며 내년을 내다봤다. 
 

▲ (사진 왼쪽부터)&lt;킹덤2&gt; JTBC &lt;부부의 세계&gt;, SBS &lt;스토브리그&gt;,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국내 이야기 산업은 꾸준한 성장세에 있다. 드라마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영화는 프랑스와 미국 등 예술의 본고장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찬욱과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를 비롯해 나홍진, 연상호, 김지운 등 영화감독들의 행보는 글로벌하다. <사랑의 불시착>은 일본 열도를 관통했으며, <킹덤2>는 세계의 좀비물 팬들에게 한국을 각인시켰다. 

한국영화
예의주시

한국 영화계에는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낭보가 전해지고 있다. 지난 2월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4관왕을 거둔 지 얼마 되지 않아 3월엔 홍상수 감독이 영화 <도망친 여자>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받았다. 

지난 2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던 <미나리(정이삭 감독)>의 기세도 만만찮다.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은 로스앤젤레스비평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의 이야기 산업이 더 이상 변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부문도 전 세계에서 위상을 드높인 한 해였다. 그 중심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2>가 있다. SBS <싸인>, tvN <시그널> 등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의 <킹덤> 시리즈는 ‘조선 시대 좀비’라는 독특한 소재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좀비물 팬들을 매료시켰다. 

외국 시청자들에겐 신기할 수밖에 없는 조선 시대 배경에 좀비들이 들이닥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더불어 좀비의 발생 원인에 뒤틀린 권력욕이 있다는 점, 이로 인해 힘없는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대목,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놓인 정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물샐 틈 없이 촘촘했고, 메시지는 날카로웠다. 아울러 좀비와의 대규모 육탄전을 통해 그간 쌓아 올린 갈등을 폭발시키는 마무리까지 작품의 완성도는 그 어떤 좀비물보다 뛰어났다. 

<기생충>과 <도망친 여자> <미나리> <킹덤2>는 한국 고유의 문화가 매우 강하게 녹여져 있는 작품인데, 한국적인 문화가 세계에서도 통용됐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tvN <사랑의 불시착>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완벽하게 착지했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말 한국에서 방영된 뒤 올해 초부터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무려 7개월 넘게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 한국 알린 <킹덤2> <불시착>
망가진 영화계…이름값 못 미친 스타들

단순한 드라마의 인기를 넘어 외교적으로 얼어붙은 한일 관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내에서는 ‘욘사마 신드롬’을 일으킨 KBS2 <겨울연가>의 인기에 못지 않다는 반응이다. 


심지어 한 혐한 소설가는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 빠져버렸다고 고백해 일본 내 우익 세력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으며, 한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조차 이 드라마를 전부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드라마 분야에서는 수작도 많았다. 치정극부터 시작해 사회고발, 리더쉽, 스릴러 장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대표적인 작품은 JTBC <부부의 세계>다. 불륜이 소재이기는 하나, 그 안에 작은 사회가 담겨있으며 인간으로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풍성하게 그려냈다. 
 

▲ (사진 왼쪽부터)박찬욱·최동훈·류승완·한재림 감독 ⓒ왓챠, NEW

올해 SBS는 수많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4년 만에 제작된 <낭만닥터 김사부2>와 스포츠 드라마는 실패한다는 편견을 깬 <스토브리그>,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의 해법을 제시한 <하이에나>와 스릴러 장르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인 <아무도 모른다> 등 걸작으로 평가받는 드라마를 다수 제작했다.

새로운 드라마 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tvN은 <사랑의 불시착>을 비롯해 <비밀의 숲2>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큰 화제를 모았다. <비밀의 숲2>는 설명하기 복잡하고 민감한 검경수사권 조정을 소재로 묵직한 서사를 그려냈으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신원호·이우정 사단의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의학드라마로 수많은 팬덤을 양산했다.

매년 수준 높은 장르물을 제작하는 OCN은 <경이로운 소문>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기대감을 높인 한 해였다. <킹덤>을 비롯해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 홈> 등이 관심을 받았다.

특히 신인들을 중용한 <인간수업>은 빠른 전개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10대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초반에 우려됐던 배우들의 연기적인 측면도 흠이 없었다는 평이다. 

성공작 반
실패작 반

많은 작품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한편, 평판이 좋지 않은 드라마도 적지 않았다. 특히 KBS와 MBC는 미니시리즈 부분에서 최악의 한 해를 경험했다. 두 방송사엔 10%가 넘는 시청률을 일군 드라마가 없을 뿐 아니라 대다수가 5%대에 머물렀다. 심지어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도 전무하다.

특히 KBS는 <어서와>가 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평일드라마 부문에서 역사상 가장 참혹한 성적을 받게 됐다.

MBC의 경우 <꼰대인턴> <365:운명을 거스르는 1년> <카이로스> 등이 낮은 시청률에 비해 호평을 받은 작품에 속한다. 그럼에도 워낙 결과가 좋지 않아 KBS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한 해를 면하지 못했다. 


영화계 역시 올해가 기록적인 최악의 해로 남겨질 듯하다. 기대를 모은 대다수 작품이 개봉을 미뤘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뚝 떨어져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과 비교적 방역이 잘되고 있던 여름에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올해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던 <반도>는 스토리 면에서 허점을 보이며 혹평을 받았다. 비록 손익분기점은 넘겼지만, 분명 기대 이하의 결과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정직한 후보> <#살아있다> <소리도 없이> <담보>가 올해 코로나19 시국에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로 기록됐다. 

대다수 영화가 대중의 호응조차 얻지 못한 채 빠르게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많았다. 유일하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높은 완성도를 보였음에도,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아 결과가 좋지 않은 작품으로 남았다.

대부분은 꼭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성공하기엔 무리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는 대목은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의 약진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가족의 일상을 통해 강렬한 공감대를 형성한 영화 <남매의 여름밤>이 특히 올해 나온 영화 중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청춘 스타 
실패 연속


이외에도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남연우 감독의 <초미의 관심사>, 최하나 감독의 데뷔작 <애비규환>, 박지완 감독의 데뷔작 <내가 죽던 날>, 최윤태 감독의 <야구소녀>가 어두웠던 2020년 한국 영화계의 빛나는 영화들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 영화들은 여성을 앞세운 작품으로, 매우 뛰어난 만듦새를 보였다. 이에 국내 여성 서사 작품들이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뛰어난 연기파 배우들이 각종 작품에서 맹활약하며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지만, 청춘스타들의 성적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희애와 박해준, 남궁민, 조승우, 한석규, 조정석, 현빈, 손예진, 김소연과 같은 30~40대 배우들은 뛰어난 연기력과 더불어 작품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론된 배우들은 작품 내에서 최선의 연기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반대로 김수현(tvN <싸이코지만 괜찮아>)과 박보검·박소담(tvN <청춘기록>), 배수지‧남주혁(tvN <스타트업>)은 기대작으로 불리는 작품에 출연했지만, 연기적인 평가도 작품의 호평도 기존의 이름값에 비해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민호와 지창욱·김유정은 예상 밖의 흥행 부진은 물론 연기적인 측면에서도 혹평을 받았다. SBS 기대작이었던 <더 킹:영원의 군주>와 <편의점 샛별이> 모두 숱한 논란에 휘말렸고, 작품 내적으로도 이를 타개할만한 수준을 보여주진 못했다. 
 

▲ 김은희 작가 ⓒ넷플릭스

이외에도 MBC <저녁 같이 드실래요?>의 송승헌, JTBC <쌍갑포차>와 KBS2 <그놈은 그놈이다>의 황정음 등도 이름값에는 못 미치는 결과를 맞았다. 

2020년이 예측 밖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K-콘텐츠는 절반의 승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아쉬운 결과가 있기는 하나 내년에는 올해보다 기대되는 요소가 많다. 

먼저 줄줄이 개봉을 미룬 것이 다행일까? 내년을 바라보는 기대작이 즐비하다. 특히 뛰어난 연출력을 가진 스타 감독들의 작품이 대기 중이다. 

아울러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로 인해 편집할 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기회가 커졌다는 기대감도 생긴다. 실제로 올해 개봉한 감독들 다수가 “ 오랫동안 고민하고 편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비교적 후회 없이 작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찬욱·최동훈·류승완 등 A급 감독 대기 중
좀비·스릴러·호러, 웰메이드 장르 제작 완료

걸출한 연출진의 작품이 내년을 기다리고 있다.

<도둑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인>, <명량> 김한민 감독의 <한산>, <베테랑>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 <터널> 김성훈 감독의 <피랍>, <더 킹> 한재림 감독의 <비상 선언>,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의 <영웅>,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드림> 등이 촬영을 마치고 편집 중이거나 후반 작업을 마쳤다. 대부분 수백억 예산이 투입됐으며 뛰어난 역량을 가진 배우들이 함께한다.

올해 나올 작품 대다수가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생긴 결과다. 내년 초반에 백신이 보급되면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누그러진다면 2021년은 역사상 유례없는 숫자의 관람객을 동원할 수도 있다.

드라마 시장의 기대작도 적지 않다. SBS <뿌리깊은 나무>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감독의 신작 <홍천기>, SBS <육룡이 나르샤> 신경수 감독의 <조선구마사>, 배우 김명민의 2년 만의 안방 복귀작 JTBC <로스쿨>, 배우 송중기의 복귀작 tvN <빈센조>, 김은희 작가의 신작 tvN <지리산> 등이 내년을 대표할 작품으로 거론된다. 

올해 유독 활발하게 작품을 내놓은 넷플릭스 신작 역시 무게감이 다르다. 아기자기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비롯해 비교적 예산이 많이 투입된 장르물도 대거 준비 중이다. 

특히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학교에 좀비가 들어왔다는 설정의 <지금 우리 학교는>과 연상호 감독의 웹툰 <지옥>을 실사화한 <지옥>, <킹덤>의 세 번째 시리즈 <킹덤 아신전>, 스페인 인기 드라마 <종이의 집>을 모티브로 한 <종이의 집>, 인기 웹툰을 기반으로 한 <D.P 개의 날>, 이정재 주연의 <오징어 게임> 등 올해보다도 많은 작품이 대기 중이다.

남다른
무게감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을 주는 연출가와 작가진이 내년 대중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 블루’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됐다. 여기저기서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어려운 시대에 놓여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국민들에게 있어 새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의 작품이 즐비하다는 건 새로운 희망이 될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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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