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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15일 14시10분


<식재료 이력서> (37·38) 파, 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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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지 않지만 몸에 좋은…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파 ⓒpixabay

문득 육체 노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 영락없이 파김치가 됐던 상황들 말이다.

파김치가 되다, 파김치가 익으면 단단했던 파의 기다란 줄기가 축 늘어진다는 이유로 그에 빗대어 ‘사람이 몹시 피곤하고 기운이 다해 사지가 늘어지고 나른해지다’라는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이런 이유로 고문서를 뒤지던 중에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게 된다.

이덕무의 시문집 <청장관전서>에 실려 있다.

脚軟如葱葅(각연여총저)

脚軟(각연)은 ‘다리가 연약하고 무력하여 서거나 걷기 곤란한 증상’을, 如(여)는 ‘처럼’을 그리고 이어지는 葱(총)은 ‘파’, 葅(저)는 ‘김치’를 의미한다.

위 문장은 ‘파김치처럼 다리에 힘이 쭉 빠졌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조상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하필이면 파에 비유했고 또 언제부터 파를 김치로 담가 먹었던 것일까.

첫 번째에 대한 해답은 이규보의 시문집에서 구해본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다.

萬疊山深嵐翠重(만첩산심람취중)
만 겹 깊은 산 푸름 이내 짙으니
恰如瓊壁立靑葱(흡여경벽립청총)
석벽은 푸른 파가 서 있는 듯하네 

瓊壁(경벽)은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옥으로 된 벽’이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옥처럼 푸른 빛을 띤 봉우리 즉 푸르게 깎아지른 산봉우리를 의미하는데 그 모습이 푸른 파(靑葱)와 같다고 했다. 

즉 우리 선조들은 파를 기세등등한 채소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무 따위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살피며 울울총총(鬱鬱蔥蔥)이란 말이, 이어 ‘파김치가 되다’라는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蔥(총) 역시 파를 지칭한다.

다음은 식품의 보조 재료인 파를 언제부터 김치로 담가 먹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아쉽지만 파김치는 조선 중기부터 등장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파로 김치를 담가 먹은 시점은 상당히 늦은 듯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 조상들은 파를 즐겨먹었을까.

그 해답을 이응희의 작품 ‘파’(葱, 총)에서 찾아보자.

味苦溫腸胃(미고온장위)
맛은 매워 장과 위 따뜻하게 하고
津甘補腎陰(진감보신음)
진액은 달아 신장 기능 도와주네
田翁長取食(전옹장취식)
시골 늙은이 오랫동안 먹으니
居下病難侵(거하병난침)
미천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네

이응희에 의하면 파가 신장 기능을 도와준다고 했다. 신장 즉 콩팥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서울대학교병원 신체기관정보에서 인용한다.

「첫째는 대사 산물(중간 산물) 및 노폐물을 걸러서 소변으로 배출하는 배설 기능, 둘째로 체내 수분량과 전해질, 산성도 등을 좁은 범위 안에서 일정하게 유지하는 생체 항상성 유지 기능, 셋째로 혈압 유지, 빈혈 교정 및 칼슘과 인 대사에 중요한 여러 가지 호르몬을 생산하고 활성화시키는 내분비 기능을 한다.」

이를 살피면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파김치로 변한 몸을 파김치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결국 결자해지 차원에서, 파김치 상태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파를 즐겨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파를 서거정이 놓칠 리 없다. 

그의 작품 ‘파’(葱, 총)이다. 

五葷人所戒(오훈인소계) 
사람들은 오훈 경계하는데
我病不能無(아병불능무) 
나는 병으로 먹지 않을 수 없네
箇箇黃金本(개개황금본) 
하나 하나가 황금 뿌리 같고
鬆鬆白雪鬚(송송백설수) 
더부룩한 게 흰 눈 수염 같네
多功扶藥餌(다공부약이) 
약으로 도움 준 공도 많고
有味助庖廚(유미조포주) 
맛있어 식탁에 입맛 돕네
三斗誰能食(삼두수능식) 
누가 세 말 먹을 수 있나
鹽梅小所須(염매소소수) 
염매보다 덜 필요하네

五葷(오훈)은 자극성이 강한 다섯 가지 채소를, 鹽梅(염매)는 앞서 매실에서 등장했듯 소금과 매실을 지칭한다.

내친김에 쪽파를 노래한 김창업의 작품을 감상해본다.

水晶葱 俗名紫葱(수정총 속명 자총) 
수정총, 속명은 자총이다

有號水晶葱(유호수정총)
수정총이라 불리는 게 있으니
葱葉而蒜根(총엽이산근)
파 잎사귀에 마늘 뿌리네
此物爽人口(차물상인구)
이 물건 입 시원하게해주고
可同葷臭論(가동훈취론)
동시에 매운 냄새도 지니고 있네 

‘파김치’로 변한 몸은 ‘파김치’로 해결
황제의 반찬에서 ‘덜 귀한’ 음식으로

표고

표고를 논하기 전에 버섯의 종류를 살펴보자.

능이, 송이, 석이, 목이. 팽이, 양송이 등 거의 모든 버섯을 ‘이’라 지칭한다.

귀를 의미하는 耳(이)가 귀뿐만 아니라 버섯처럼 귀 모양을 지니고 있는 물체를 지칭하기 때문으로, 그런 이유로 버섯을 ‘이’로 지칭했다.

그런데 표고는 ‘이’라 하지 않고 표고(蔈菇)라 명명하고 있다.

왜 여타의 버섯처럼 ‘이’라 하지 않고 표고란 독특한 이름을 지니고 있을까. 

참고로 뽕나무에서 자라는 상황(桑黃)버섯은 현대에 들어 ‘누런 뽕잎’을 살피며 붙인 이름으로 결국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버섯들은 거의 모두 ‘이’로 지칭된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를 염두에 두고 표고란 이름에 접근해보자.

표고의 蔈는 능소화를 菇는 버섯을 지칭한다.

능소화는 시들 때까지 피어있지 않고 절정의 시기에 스스로 꽃을 떨군다.

이런 특성 때문에 명예를 상징하는 꽃이다.

표고(蔈菇)는 능소화 같은 버섯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표고가 가장 귀하게 대접 받았다.

실례를 들어보자.

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1450년) 10월2일의 기록이다.

우부승지 이숭지에게 명해 두 사신에게 문안하게 하니, 윤봉이 말하기를 “원컨대 표고를 얻어 황제에게 바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버섯은 나무에서 나는 것인데, 세속에서 이를 표고라 한다)
命右副承旨李崇之, 問安于兩使臣, 尹鳳曰: "願得蔈古, 以獻于帝." 
(菌之生於木者, 俗謂之蔈古)

蔈古의 古는 菇의 약자로 보이는데, 윤봉은 조선 출신 명나라 환관으로 당시 명의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 중이었다.

명나라 황제에게 표고를 바치고자 하는 그의 충정과는 별도로 표고가 황제의 밥상에 올라가는 귀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기 글 마지막 부분이 흥미를 끈다.

‘버섯은 나무에서 나는 것인데, 세속에서 이를 표고라 한다’라는 대목이다.

이를 살피면 조선 초까지 모든 버섯을 표고라 지칭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표고가 현대에 들어 능이, 송이, 석이, 목이에 비해 덜 귀하게 취급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인공재배에 있다.

표고는 인공재배가 가능하고 또 오래전부터 인공 재배됐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역시 조선왕조실록 영조 시절 기록을 간략하게 요약해본다.

영조 시절 부역을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온 노비 중 한 사람이 영조에게 표고를 바치면서 아뢴 말이다. 

“신 등이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 가운데 살면서 자주 흉년을 만났지만, 굶어 죽는데 이르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우리 성상께서 곡식을 옮겨 구휼하신 은혜에 말미암았으니, 신 등이 비록 지식은 없으나 어찌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마저 없겠습니까?”

이에 감복한 영조는 이 노비가 바친 표고를 인원왕후(아버지 숙종의 계비)의 빈전에 바치도록 한다.

이 일로 당사자인 노비는 자신을 포함해 아들과 손자들 모두 영원히 천인 직을 면하는 보상을 받게 된다.

여하튼 표고가 영조 시절 구황작물로 이용됐듯이 오래전부터 인공재배가 가능했다.

이에 따라 일반에게 가장 손쉽게 가까이 가게 되면서 덜 귀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를 살피면 단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표고가 은근히 애처로워진다.

그러나 표고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섭취한다면 그 만족감은 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표고라는 이름 자체에 버섯이 내재돼있으므로 표고버섯이 아닌 표고로 지칭함이 옳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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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제부터 이곳이 나의 집이라 했다. 이제부터 이 사람들이 나의 부모라 했다. 하지만 철들기 전부터 알았다. 집에는 온기가 없었고 부모는 사랑이 없었다. 약하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 집의 탈을 쓴 정글, 부모의 탈을 쓴 사육사. 사육사의 손가락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투명인간’이 됐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보육원에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사라졌다. 얼굴,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부모 없는 아이, 나는 고아였다. 보육원을 집이라 배웠고, 보육교사와 수녀·수사들은 부모를 자처했다. 18세, 보호 종료가 되자마자 집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부모를 고소했다. 버린 부모 학대한 부모 지훈이(가명)에게 부모란 그저 희박한 개념이다. 낳아준 부모는 지훈이를 버렸다. 박지훈이라는 이름은 그 유래조차 알 수 없다. 땅 지(地), 공 훈(勳). 한글 프로그램에서 지와 훈을 한자로 변환했을 때 첫 번째로 나오는 글자를 조합했다. 박씨라는 성도 어떻게 붙게 됐는지 모른다. 지훈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꿈나무마을(옛 소년의집)로 옮겨졌다. 그리고 18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지훈이에게 꿈나무마을에서의 10여년은 ‘진절머리’가 나는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18세 이후 꿈나무마을은커녕 은평구에도 잘 가지 않는다. 당시에 하도 울어서 이제는 눈물도 말라 버렸다. ‘맞고 있다’고 자각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가해지는 행위가 ‘학대’라는 것을 알았다. 10여명의 소년이 모여 있는 방은 정글이었다. 누구는 호랑이, 누구는 사자, 누구는 토끼. 보육교사는 사람, 사육사였다. 보육교사가 부여한 역할을 소년들은 충실히 이행했다. 힘이 약하고 몸이 왜소했던 지훈이는 토끼였다. 사육사의 ‘토끼몰이’는 집요하고 잔인했다. 당시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몸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졌다. 마음도 망가졌다. 무엇보다 괴로운 점은 같이 망가져 가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지훈이와 같이 꿈나무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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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했다. 피고소인들의 조종 아래 소년들은 훼손돼갔다. 지훈이는 나무 몽둥이, 대걸레 자루, 플라스틱 빗자루 등으로 엉덩이, 머리, 팔 등을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피고소인이 휴대폰으로 지훈이의 머리를 찍어 남은 열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샤워장 구석에 몰아넣고 호스와 샤워기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가며 수십분간 뿌리기도 했다. 지훈이와 소년들은 화장실에서 전과를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500~1만번 반복해야 했다. 지훈이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 좁은 곳에 애들이 모여 기합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더웠겠나. 애들이 쓰러져도 기합은 끝나지 않았다”고 진저리를 쳤다. 엎드려뻗쳐나 기마 자세로 1~2시간씩 있는 일은 예사였다. 망가진 몸과 마음 장궤(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꿇어앉음) 자세로 종일 기도를 하도록 시킨 일도 있었다. 천주교에서 하는 묵주기도를 10시간 가까이 하기도 했다. 한 여성 피고소인은 밤마다 지훈이를 불러 자신의 어깨와 허벅지, 다리 등을 매일 마사지시켰다. 마사지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날 어김없이 보복이 이어졌다. 피고소인은 다른 아이들에게 지훈이가 ‘지능이 낮은 아이’ ‘장애인’이라고 말하며 모욕했다. ‘투명인간’이라는 벌을 만들기도 했다. 투명인간으로 지목되면 꿈나무마을의 어떤 아이와도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도 혼자 먹어야 했고, 그마저도 그릇을 엎어버리는 등 눈치를 줬다. 벌은 한 달간 지속됐다. 피고소인들은 교대근무를 했기 때문에 지훈이는 늘상 학대에 노출돼있는 셈이었다. 엉덩이가 찢어지고 곪아 터진 상황에서도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왜 때리느냐’는 반항에, 친구와 다퉜다는 이유로 지훈이는 정신병원에 행정입원(강제입원) 당하기도 했다. 모두 부모를 자처한 이들이 한 행위였다. 지훈이는 “원장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원장님하고 사무국장님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네 발로 곱게 (정신병원에)들어갈래, 강제로 (정신병원에)끌려갈래’라면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며칠 뒤 진짜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훈이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끌려갈 당시 원장실에는 경찰, 119구급대원, 구청 관계자 등이 있었다. 그는 “스타렉스 봉고차에 타고 30분 정도 가서 고양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너무 무섭고 끔찍한 기억이었다”며 “(정신병원에 있는)간호사 누나들한테도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지훈이를 정신병원에서 구한 건 학교 선생님이었다. 지훈이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면서 학교에 나오지 않자 꿈나무마을에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담당 의사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당시 선생님은 “(지훈이의)학교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꿈나무마을 안에서만 그런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문제 제기 해도 끝내 묵살 실제 가 확인한 지훈이의 생활기록부에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꺼리는 일을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주는 아주 듬직하고 든든한 학생’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해 행동하는 유쾌한 학생’ ‘자기 생각과 주장을 적절히 표현할 줄 알고 약속을 중요시 여기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큼’ 등 긍정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지훈이의 고소를 대리하고 있는 유정화 한강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고아들은 세상천지 그냥 자기 혼자뿐이다. 보육원에는 그렇게 세상천지 자기 밖에 없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보니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약자는 바로 이 아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훈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반복된 학대로 감정 조절 기능이 죽어버렸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 변호사는 “이 문제가 과연 보육교사 3명만의 문제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영 주체인 꿈나무마을 관리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꿈나무마을을 관리하는 수녀와 사무국장 등은 지훈이에 대한 피고소인들의 학대 행위를 알고 있었다. 지훈이가 여러 차례 보육교사들에게 학대 피해 사실을 언급했던 것. 이번 사건에서 더 충격적인 점은 꿈나무마을의 운영 주체가 수녀, 수사 등 천주교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재단이라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꿈나무마을을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2019년), 한국 예수회 산하 재단법인 기쁨나눔(2020년~ ) 등에 위탁, 운영을 맡겼다. 지훈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꿈나무마을의 운영 주체는 마리아수녀회였다. 반항하면 시설에 강제입원 피해자 고소…증언도 이어져 꿈나무마을 심모 사무국장은 와의 통화에서 “재단이 바뀌어서 해당 내용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도 “직원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심 국장은 자신도 꿈나무마을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고 털어놨다. 지훈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심 국장도 꿈나무마을에 있었던 셈이다. 마리아수녀회가 꿈나무마을 운영에서 손을 뗀 시점인 2019년 말까지 서울분원장을 맡았던 권모 수녀는 취재 전까지 피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권 수녀는 당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수녀를 관리하는 수녀’라고만 말했다. 권 수녀는 현재 마리아수녀회 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권 수녀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은 저희가 알 길이 없지만 저희 집에 머물렀던 아이에 대한 일이라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저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현재의 아이들이나 이곳에서 저희와 가족이 돼 생활을 같이했던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곳은 ‘집’입니다. 집에서 일어난 아픈 기억에 대해 저희도 귀와 마음을 기울이겠습니다”라고 전해왔다. 권 수녀를 비롯한 당시 사무국장 등 꿈나무마을 관계자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몰랐다면 직무유기, 알았다면 아동학대 방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가지 공교로운 부분은 꿈나무마을 관계자들은 물론 권 수녀까지 지훈이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는 점이다. 심 국장은 로 전화를 걸어와 “(지훈이의)친구가 잠을 깨우는 과정에서 (지훈이가)가구 등 기물을 파손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해서 정신병원 행정입원 절차를 밟았다”며 “절차를 확실하게 지켰다”고 강조했다. 권 수녀 역시 “강제입원에 대해 문제가 됐던 점은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훈이는 “당시 가구는 내가 부순 게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 원장님과 사무국장님께 명확하게 이야기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며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엇에 대한 무혐의 처분인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에 대한 조사도 없이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수녀·수사들 관리 책임은? 유 변호사는 “피고소인들의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는 1975년 ‘소년의집’으로 설립된 보육시설의 존립 이유를 의심케 한다”며 “확실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훈이는 고소 이후 오히려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꿈나무마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훤칠하게 자란 그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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