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35·36) 콩잎, 토란

가난한 이들의 식재료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콩잎 ⓒpixabay

콩잎

필자가 어렸던 시절엔 지금처럼 음식이 다양하지 못했다.

물론 그 양도 극히 제한돼있어 일부 어린이는 자주 굶주림에 처하곤 했다. 당시에는 서리가 빈번했다.

서리는 말 그대로 떼를 지어 남의 과일이나 곡식 혹은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다.

이 장난이 요즈음에는 절도로 둔갑됐지만 필자도 어린 시절엔 이 장난에 자주 참여했었다.


그 중에서도 콩서리에 참여했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콩밭이 따로 있지 않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콩을 심고는 했다.

그래서 콩서리는 다른 서리보다 쉬웠고 그런 이유로 또래 친구 여러 명과 자주 콩서리를 하고는 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 없이 서리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본격적인 서리에 앞서 몸이 빠른 측과 굼뜬 측의 두 파트로 조를 편성했다.

몸이 빠른 아이들이 행동대원으로 두렁을 어슬렁거리다 주변에 인기척이 없으면 콩을 통째 뽑아 들고 근처에 있는 야산으로 내달린다.

이어 굼뜬 아이들로 편성된 다른 조는 불을 피우고 기다리고 있다가 콩을 받아 되는 대로 굽기 시작한다.


콩껍질이 시커메지면 콩이 익었다 판단하고 모두 둘러 앉아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그 고소한 맛에 이끌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는 일도 잊어버린다.

그리고 모든 작업이 끝나면 포만감과 또 상대 어린이의 시커멓게 변한 얼굴을 살피며 파안대소한다.

그리고는 인근에 있는 시냇가로 달려가 대충 얼굴을 씻고는 시치미를 떼고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가끔 미소 짓고는 하는데, 앞서 깻잎을 이야기했을 때 밝혔듯이 아무리 기억을 짜내어 보아도 콩잎을 반찬으로 먹었던 경험은 없다.

콩만 식용하고 콩잎은 그저 가축 사료로 활용하고는 했다.

하여 여든을 넘어선 누나에게 내 기억에 대한 사실 확인에 나서자 누나 역시 콩잎을 식용했던 기억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첨언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콩잎을 반찬으로 식용했어”라고 말이다. 아울러 지역마다 식습관이 다른 점에 대한 설명 역시 이어졌다. 

누나의 말을 새겨 듣고 콩잎을 조사하는 중에 콩잎이 곤궁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에게 오래전부터 식용됐음을 알게 됐다.

아울러 그들을 가리켜 곽식자(藿食者, 콩잎을 먹고 자란다는 뜻으로 가난한 백성을 가리키는 말)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약용의 작품 중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古來藿食少深憂(고래곽식소심우) 
예로부터 콩잎 먹는 자는 깊은 근심 적다네

상기 글은 정약용이 중국의 고사를 인용한 것인데,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에 가난한 백성이 군주인 헌공(晉獻公)에게 나라 다스리는 계책 듣기를 요청하자, 헌공이 “고기 먹는 자가 이미 다 염려하고 있는데, 콩잎 먹는 자가 정사에 참견할 것이 뭐 있느냐.”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가혹하게 들리는 이 말은 가난한 백성은 정사에 관여하지 말고 그저 먹고 사는 데 신경 쓰라는 의미다. 

여하튼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나타난다.

콩잎을 의미하는 藿(곽)이란 글자다.

다른 여타의 잎은 채소의 이름에 잎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엽(葉)을 사용하는데 콩잎은 콩잎을 의미하는 두엽(豆葉)외에도 풀을 의미하는 초(艸→艹)와 빠르다는 의미를 지닌 곽(霍)을 합성한 독립된 글자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콩잎이 오래전부터 인간과 가까운 관계 즉 식용되었음을 입증하는 단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허균의 성소부부고를 살피면 ‘음식은 양약(良藥)이니 몸이 파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며 콩잎을 오소(五蔬, 아욱·콩잎·염교·파·부추)에 포함시켰다.

이는 콩잎이 사람에게 상당히 유용한 채소라는 의미다.

농촌진흥청은 콩 종자에는 이소플라본과 사포닌만 존재하는데 반해 콩잎에는 '이소플라본'을 비롯 '플라보놀' '소야사포닌' 등 16종의 건강 기능성 생리활성 물질이 함유돼 있다고 밝혔다.

이소플라본은 주로 콩과 식물에만 함유돼있으며 유방암과 전립선암, 골다공증, 심장병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며 특히 이번에 콩잎에 함유된 것으로 확인된 '테로카판'은 혈액 산화작용을 억제해 성인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동맥경화증 예방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야사포닌은 인삼 사포닌과 유사한 성분으로 항암과 항고지혈증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을 진즉에 알았다면 콩서리할 당시 콩뿐만 아니라 콩잎까지 먹어치웠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로부터 콩잎 먹는 자는 깊은 근심이 적다”
올빼미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의 토란

토란

지금도 어린 시절 추석이 되면 항상 차례상에 오르던 토란국, 토란탕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먹음직스러워 젓가락을 놀려보았지만 입에 들어가면 그저 그렇고 해서 이후에는 토란국을 멀리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세월 지나면 입맛도 바뀐다고 했듯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토란 맛에 이끌리게 됐다.

마냥 텁텁하게만 느껴졌었던 그 맛이 고소한 맛으로 바뀌어 이제는 자주 토란국을 접하고는 한다.   

그 토란이 서거정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는지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芋(우)
토란

病口曾無可(병구증무가) 
일찍이 병중에 입에 맞는 게 없는데
蹲鴟早策勳(준치조책훈) 
토란은 일찌감치 내게 은택 주었네 
龍涎香欲動(용연향욕동)
용연의 향기가 움직이는 듯
牛乳滑堪論(우유활감론)
우유의 매끄러움 논할만하네
啖擬山僧共(담의산승공)
먹을 때 산승과 함께 헤아리고
來從野客分(래종야객분)
찾아온 손님에게 나누어 주네
殷勤誰種汝(은근수종여)
누가 은근하게 너를 심겠는가
我亦望田園(아역망전원)
나 역시 전원 바라보리

蹲鴟(준치)는 토란의 별칭이다. 토란이 올빼미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山僧(산승)은 중국 당(唐) 나라 때 고승인 나잔 선사로 그가 토란을 구워 먹은 고사에서 온 말이다. 
 

▲ 토란 ⓒpixabay

법명은 명찬 선사(明瓚禪師)인데 성격이 게을러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만 먹었으므로 나잔(懶殘)이라 호칭했는데, 이필(李泌)이 일찍이 형악사에서 글을 읽을 때 나잔 선사를 몹시 기이하게 여겨 한 번은 밤중에 방문했더니, 그때 마침 나잔 선사가 화롯불을 뒤적여서 토란을 굽고 있다가 이필에게 구운 토란 반 조각을 주면서 이르기를 “여러 말 할 것 없다. 10년 재상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여하튼 토란의 한자명을 芋라 이르는데 이 글을 집필하기 전까지는 토란의 한자명이 土卵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토란 역시 맞는 말이지만 과거에는 土卵이란 이름 대신 주로 芋라 지칭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며 조사하는 중에 박지원의 연암집에서 芋에 대해 ‘俗所謂土卵’이란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토란은 세속에서 이르는 이름이라는 의미다.

또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或稱土芝。鄕名土蓮(혹칭토지. 향명토련)이라 기록되어 있다.

토지(흙에서 나는 영지)라 칭하기도 하고 시골 이름은 연을 닮았다는 뜻에서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다시 이응희 작품 芋(우, 토란)을 감상해보자.

種芋盈長圃(종우영장포) 
긴 채마밭에 토란 가득 심으니
秋來息且蕃(추래식차번) 
가을 오자 무성하게 자라났네
紫莖含露茁(자경함로줄) 
자줏빛 줄기 이슬 머금고 자라며
靑葉向風飜(청엽향풍번) 
푸른 입은 바람 향해 펄럭이네
抱玉傍多子(포옥방다자) 
옥 품은 듯 구근 많이 달렸고
懷蒼碩本根(회창석본근) 
푸른 빛 속에 줄기 굵다네
俗名稱毋立(속명칭무립) 
속명으로 무립이라 부르니
端合老翁飧(단합노옹손) 
늙은이 저녁밥으로 제격이네 

이응희에 의하면 토란이 저녁밥을 대신한다고 했다.

또 증류본초에서도 우(芋)를 삶아 먹으면 양식으로 대용할 수 있어 흉년을 넘길 수 있다고 기록돼있다.

이를 감안하면 토란 역시 과거에는 구황작물로 각광받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유의 토란 저장 법(藏芋, 장우)을 감상해보자.

蹲鴟宜沃野(준치의옥야)
토란은 비옥한 들에 적격이고
荒歲可代穀(황세가대곡)
흉년 시 곡식 대용 가능하네
我圃最重此(아포최중차)
내 채마밭에 토란 가장 중하니
頗費抱甕力(파비포옹력)
물 길어 대는 일 매우 힘들었네
秋魁動徑尺(추괴동경척)
가을 되면 큰 놈은 지름이 한 치나 되고
一區收一斛(일구수일곡)
한 구역에서 열 말 거둔다네
深窖藏不爛(심교장불난)
깊은 움에 저장하면 문드러지지 않고
地爐煨易熟(지로외이숙)
땅 화로의 재는 쉽게 익게하네
留作歲暮計(유작세모계)
한 해 동안 지속해서 먹으리니
道人生事足(도인생사족)
도인의 살림 살이로 족하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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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