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25·26) 시래기, 아욱

서민들의 희망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시래기 ⓒpixabay

시래기

조선 후기 박제가·유득공·이서구와 함께 사가(四家)로 명성을 날렸던 이덕무의 작품, 농촌 집에서 씀(題田舍, 제전사) 중 일부로 이야기 시작해보자.

菁葉禦冬懸敗壁(정엽어동현패벽)
겨울 넘기려 시래기 누추한 벽에 매달고
楓枝賽鬼挿寒廚(풍지새귀삽한주)
액 막음하려 단풍가지 차가운 부엌에 꽂네

상기 글에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집안에 액을 막기 위해 즉 나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단풍나무 가지를 부엌에 꽂았다는 대목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집안에 액운을 쫓아내기 위해 행했던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단풍나무 가지로 액을 쫓는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런데 그 구절에 함정이 숨어있다.

楓(풍)이란 글자 단독으로 쓰이면 단풍나무를 의미하지만 구절 전체 내용을 살피면 단풍나무가 아닌 신나무를 지칭한다. 신나무는 단풍나무 과의 한 종으로 과거 액운을 쫓는다는 기록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 글에 등장하는 楓枝는 단풍나무 가지가 아니라 신나무 가지로 해석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풍나무 가지로 해석한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뜻을 한 번 더 새겨보라는 의미에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물론 상기 글에 등장하는 菁葉(정엽) 즉 시래기에 대해서다.

菁葉에서 菁은 ‘순무’를, 葉은 물론 ‘입’을 의미하며 시래기는 푸른 무청을 겨우내 말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단어가 등장하는데 바로 무청이란 단어다.

무청은 한자로 蕪菁으로 ‘순무’를 의미하는 蕪와 ‘우거지다’라는 의미의 菁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해당 단어에 등장하는 菁은 ‘정’이 아닌 ‘청’의 음가를 지닌다.

여하튼 시래기 하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집이 가난해서 시래기죽도 못 먹을 형편’이란 말이다.

이 말은 시래기가 지난 시절 구황식품으로 서민들로부터 각광받았었음을 의미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시래기와 상당히 친숙했었다.

초가 처마 여기저기에 볏짚을 꼬아 엮은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와 노르스름한 흙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다.

당시에는 시래기로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시래기와 선지를 함께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을 먹기도 했다.

시래기 된장국도 고소했지만 선지를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은 참으로 별미였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선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지금이야 선지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주변에 도살장이나 정육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자주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네를 드나들던 장사들 중에 지게에 혹은 짐자전거에 커다란 깡통에 가득 담은 선지를 가지고 와서 팔고는 했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선지 장사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는 했다.

저만치에서 선지 장사가 모습을 드러내면 급하게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선지를 구입하여 ‘시래기 선짓국’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먹을 음식이 다양해지자 시래기는 우리네 실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저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전락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가난했던 시절에 추억의 단편으로 물러섰다.


그랬던 시래기가 현대에 들어 별미 식품 또 건강식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시래기에 함유돼있는 영양 성분 때문임은 불문가지다.

이 대목에서 시래기란 명칭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자.

그 어원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과거에는 거친 채소 즉 식용하기에 변변하지 않은 채소들을 모두 시래기라 칭한 바 있다.

그를 염두에 둔다면 왜 시래기란 이름이 생긴 지 알 듯하다. 

구황식품으로 각광, 가난했던 시절 추억의 단편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솟구치는 느낌

아욱

필자가 정치판에, 한나라당 중앙사무처 축구부 감독으로 있을 당시에 일이다.

토요일이면 새벽같이 국회 운동장으로 달려가 축구시합을 벌이고는 사우나에 들러 땀을 씻어내고 어김없이 찾아가는 집이 있었다.

바로 아욱국 전문 집이었다.

된장에 아욱을 넣고 끓인 국인데 먹고 나면 전날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은근하게 솟구치는 느낌이 일어나 언제나 아욱국을 찾았었다.

그런데 필자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응희 역시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남긴다.

葵(규)
아욱

綠葵盈樊圃(녹규영번포)
녹색 아욱 채마밭에 가득하니田家屬暮春(전가속모춘)
농가는 늦은 봄이로세沃葉津多滑(옥엽진다활)
기름진 잎에 진액 많고柔莖味更新(유경미갱신)
부드러운 줄기 맛 더욱 산뜻해氣踰蘇子筍(기유소자순)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香過季鷹蓴(향과계응순)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네王公知此物(왕공지차물) 
왕공이 이 물건 알았다면 安得入吾脣(안득입오순)
내 입에 어찌 들어올 수 있겠나

이응희에 의하면 규 즉 아욱의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다.

소자는 중국 송(宋)나라의 소동파 즉 소식(蘇軾)을 가리키는데 그의 시 ‘녹균헌(綠筠軒)’에 ‘밥에 고기가 없는 것은 괜찮으나,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 되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파리하게 할 뿐이나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지. 사람의 파리함은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의 속됨을 고칠 수가 없다네.’ 한데서 온 말로 아욱이 그 죽순보다 뛰어다는 의미다.

또 계응(季鷹)은 진(晉)나라 장한(張翰)으로 그는 혼란한 세상에 벼슬살이를 나갔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별미인 농어회와 순채국을 그리워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즉 아욱 향기가 계응이 그리워했던 순채보다 월등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葵(규)를 아욱이라 칭했을까.

그 답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타난다.

‘俗名아옥’이라는 즉 葵의 속명은 ‘아옥’이라 기록되어 있는 점을 살피면 왜 이름이 아욱인지 능히 짐작되리라 본다.

중국에서는 아욱이 채소의 왕으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그 이유 충분히 알 듯하다.

이를 위해  내친김에 이규보 작품 아욱(葵, 규) 감상해보자. 

公儀捘去嫌爭利(공의준거혐쟁리)
공의휴가 밀쳐버린 건 이익 다투기 싫어서고
董子休窺爲讀書(동자휴규위독서)
동자가 돌보지 않음은 책 읽기 위해서네
罷相閑居無事客(파상한거무사객)
재상 그만두고 일없이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何妨養得葉舒舒(하방양득엽서서)
잎이 무성해진들 무슨 관계 있겠는가

公儀(공의)는 중국 춘추 시대 노(魯) 나라의 재상인 공의휴(公儀休)로 재상으로 있으면서, 국록을 먹는 자들이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는 것을 꺼렸다.

한번은 자기 집 밭에 난 아욱을 삶아서 먹어 보고 맛이 있음을 알자 남김없이 뽑아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농민들이 재배한 채소를 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의 발로라 한다.

동자(董子)는 중국 전한시대의 대학자인 동중서(董仲舒)로 한때 학문에 열중해 3년 동안이나 자기 집 아욱 밭을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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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위기설’ 보수 합종연횡 시동

‘2월 위기설’ 보수 합종연횡 시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일각에서 “장동혁 체제를 무너트린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동혁 대표는 ‘중도 확장’을 언급하면서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친한계는 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도 친윤계와 일시적 휴전을 하고 있다. 장동혁·친윤·친한·개혁신당은 얽히고설킨 합종연횡을 시작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각각 지난 5일과 9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비판했다. 이후 국민의힘에선 장 대표가 물러난 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출범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장 다음은 신 비대위?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언더 찐윤 그룹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에 대해 ‘이 사람으로 되겠느냐’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면서 “장 대표가 물러나면 누구에게 비대위원장을 시키면 좋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주장했다. 장 소장은 “그들이 국민의힘 신동욱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려 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신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직을 맡기려는 이유로 경북 상주·언론사 앵커 출신이란 점이 거론된다. 장 소장은 “급소에 침을 넣을 수 있는 핵심은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핵심인 이유는 “언더 찐윤의 구심점이자, 장동혁 체제를 만든 5인방 중 1명”이란 것이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 일원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지난 1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에게 제시할 노선 변경 시한은 연말”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장 대표가 판단을 잘했다고 보긴 힘들다”며 “국민이 원하면 국민의 뜻을 따라야지, 국민을 이기려고 정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부가 연말까지 노선 변경에 대한 전향적 의견을 밝히지 않으면, 상당한 혼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상당한 혼선’은 장 대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흔들림 없이 강경 보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을 당 국민소통위원장에 임명했다. 국민의힘 장예찬 전 청년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에 임명됐다. 김 최고위원은 그로부터 4일 전인 지난 11일 TV조선 유튜브 채널 ‘엄튜브’에 출연해 “지난해 12월3일 계엄군의 총구를 잡은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행동은 사실상 즉각 사살해도 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같은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게 집계되는 여론조사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장 대표를 엄호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율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단 결과가 나온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 등이 발표한 여론조사를 제시했다. 이어 “한국갤럽 여론조사 외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단 여론조사 결과가 대부분”이라며 “장 대표의 투쟁에 모두 단결했으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개 제시된 장동혁의 시간은 ‘연말’ ‘통일교 특검’ 매개로 손잡은 장·이 장 부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청년 참모 1호로 알려졌던 친윤계 일원으로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가족이 연루됐다”는 논란이 발생한 당원 게시판 의혹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 공천을 받았다가 “과거에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은 장 부원장 공천을 취소했고, 이후 장 부원장은 친한(친 한동훈)계와 대립하고 있다. 장 부원장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 의원은 지도부를 흔들기 위한 게 아니라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라며 “연말까지 고름 같은 당내 문제를 해결하면, 새해부터는 대여 투쟁·민생에 집중해서 중도·외연 확장을 할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고름 같은 당내 문제’는 당원 게시판 의혹을 말한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은 지난 9일 당원 게시판 의혹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한 전 대표와 가족 명의로 게시된 글들의 실제 작성자를 확인하고 있다”며 “한 전 대표 가족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3명은 서울 강남병 소속이고, 휴대전화 끝자리가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중 1명은 재외국민 당원으로 확인됐고, 거의 같은 시기에 탈당했다”면서 한 전 대표 가족 실명도 공개했다. 지난 16일엔 친한계 일원으로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윤리위원회에 요청했다. 당무감사위는 지난달 26일부터 김 전 최고위원을 조사했다. 윤리위가 당무감사위의 의견대로 징계를 확정하면, 김 전 최고위원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정당 활동이 멈춰 총선 공천에서도 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최고위원은 같은 날 “터무니없는 결정”이라며 “윤리위가 당원권 정지를 결정하면 가처분을 신청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이 밝힌 김 전 최고위원 징계 사유는 “우리 당 운영을 파시스트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북한 노동당에 비유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당원을 망상에 빠진 정신질환자에 비유하는 등 모욕적 표현을 했고, 사이비 교주의 영향을 받아 입당했다는 특정 종교 비난·종교 차별 발언을 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영혼을 팔았다”는 등 장 대표를 비판한 것도 징계 사유로 제시됐다. 고름 같은 당내 문제 한편 장 대표는 통일교 특검법을 매개로 개혁신당에 연대를 제안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중 “통일교 특검법 통과를 위해 개혁신당과 뜻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무자비·포악한 이재명 정권을 막기 위해선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곧바로 “16일부터 특검법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만나 큰 틀에서 ‘통일교 특검 추진’에 합의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장 대표는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 같다”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라는 등 장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가 용꿈을 꾼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강조하면서 “국민의힘 대표를 하면, 대권주자로서 약 20% 정도의 지지를 얻으니, 다른 주자가 사라지면 내가 유일한 대권후보란 착각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유착 의혹이 제기된 후 두 사람은 제한적으로라도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관계자들은 민주당 일부 정치인들에게도 후원금을 제공했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은 “교단의 지시를 어긴 관계자 개인의 일탈이었다”면서 기소하지 않았다. 보수 야권으로선 특검의 공정성 문제를 대대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의원 상당수가 특검의 수사 대상이었던 국민의힘으로선 “되돌려줄 기회가 온 것 아니냐”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2018년부터 3년 동안 현금·명품 시계 등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수사 대상이 된 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아울러 장 대표가 친한계 정리 작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친한계와 개혁신당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단 사실도 주목받고 있다. 친한계와 개혁신당은 쿠팡 새벽 배송 논란 관련 토론회 개최를 놓고 크게 갈등했다. 국민의힘 김은혜·우재준 의원은 지난 15일 ‘새벽 배송 금지, 누구의 새벽을 위한 선택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개혁신당은 사흘 뒤인 지난 18일, 김성열 수석 최고위원이 주관하는 ‘새벽 배송 금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친윤·친한 여전한 갈등 김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김·우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예고했다가 취소해서, 개혁신당이 마음 다친 관계자들을 모시고 토론회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혁신당 주최 토론회가 개최될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 다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눈치 보다가 남의 것을 빼앗아서 하는 토론회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토론회에도 ‘원조’ 표기를 하고, 상표권도 등록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우 의원은 곧바로 반박했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새벽 배송 논쟁은 국민의힘이 먼저 제기했고, 우리 토론회는 원래부터 15일 개최가 예정돼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토론회 개최 직전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사회적 관심이 분산될 가능성을 우려해 일정 연기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론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이 15일 개최를 중요시 여긴 이유 중 하나는 지난 16일 진행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라고 한다. 구도를 정리하면, 장 대표는 당내 친윤계·친한계와 갈등하면서 개혁신당과 제한적 연대를 추진해 중도 확장·대여 공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으려고 한다. 개혁신당은 장 대표와의 제한적 연대를 통해 오랜 갈등 관계인 친한계와의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친한계는 장 대표·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 마찬가지로 오랜 갈등 관계인 친윤계와 중도 확장·지방선거 승리라는 대의 앞에서 일시적으로 휴전한 것 같은 구도를 만들었다. 이를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다. 장 대표는 지난 17일 경기 고양에서 연탄 배달 봉사활동 이후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방향·보수 가치 재정립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에 수반돼 많은 의원이 말씀하시는 당명 개정도 필요하다면 함께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명 개정’은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친윤계와의 갈등을 진화하기 위한 승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선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김민수·장예찬 내세워 한동훈 축출 작전? 개혁신당과 쿠팡 갈등…친윤과 일시 휴전? 개혁신당은 국민의힘 내 이준석계와 구 친윤계의 갈등 끝에 이준석계가 국민의힘을 이탈한 후 창당됐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 출마한 후 각계에서 언급했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끝까지 뿌리친 후 완주했다. 이는 구 친윤계와의 화학적 결합은 창당 배경·당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진행된 흐름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게이트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자, 천 원내대표가 특검 추진 합의를 위해 구 친윤계의 일원이었던 송 원내대표와 손을 맞잡는 그림을 연출했다. 제한적 빅텐트가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도가 ‘화학적 결합’으로 해석된다면, 지난해 2월 이낙연 전 총리와 함께 빅텐트를 치려다가 당원의 강한 항의를 들은 후 무산됐던 것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이 대표는 지난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는 황 전 대표처럼 굉장히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장 대표가 주장한 ‘우리가 황교안’이란 구호대로라면, 황 전 대표의 좋은 점·나쁜 점·정치적 진로 및 결과까지 다 답습할 것”이라는 등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당원권 정지 6개월을 받은 후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개혁신당 구성원·지지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돼있다. 이들은 국민의힘을 틈을 비집고 들어간 후 언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친한계는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징계가 막힘없이 흐르는 현 상황대로라면,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하는 방법이 막힐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친한계는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개혁신당과의 갈등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유권자를 상대로 “한 전 대표와 이 전 대표 중 누가 보수의 젊은 적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 이 전 대표를 제치고 ‘보수의 젊은 적자’라는 명분을 얻어야 장 대표·구 친윤계와의 당내 다툼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는 여론조사 수치가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는 지난 12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시장 선거 양자구도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약 최근 주목받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양자구도를 이루면, 45.2%의 지지를 얻어 38.1%의 지지를 얻은 오 시장을 이길 수도 있단 결과가 확인됐다. 비상 걸린 지방선거 이는 민주당이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고 행정 경험이 풍부한 새로운 후보를 내세우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장 대표 ▲구 친윤계 ▲친한계 ▲개혁신당 등 보수 4자 합종연횡 구도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가능성도 함께 내포한다. 장 대표에게 사실상 주어진 시한은 연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 제1심 선고가 진행될 예정인 내년 2월까지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등 매듭 짓지 않으면, 지도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2월 위기설’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은 과연 어떤 연말·연초를 맞이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