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개막, 치열했던 순간들

뚜껑 열리자 곳곳서 명승부 연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개막과 함께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김효주는 연장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고, 유소연은 김효주의 독주를 막는 짜릿한 승리를 만끽했다. 최혜진은 대회가 중도에 멈춰버리면서 반쪽짜리 승리에 만족해야 했다. 김지영은 호쾌한 장타를 앞세워 3년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김효주는 지난달 7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 스카이힐 제주 컨트리클럽 스카이·오션 코스(파72)  에서 열린 KLPGA 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최종일 18번홀(파5)에서 치른 연장전에서 김세영(27)을 제치고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나란히 5언더파 67타를 친 두 선수는 4라운드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연장전을 벌였다. 김효주가 먼저 3m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고, 김세영은 더 짧은 2m 남짓한 버디 퍼트를 놓쳤다. 우승 상금은 1억6000만원.

시작과 함께
명경기 속출

김효주는 고교 2학년 때 이곳에서 열린 롯데마트 여자오픈에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했다. KLPGA 투어 무대 첫 우승이었다. 당시 우승으로 롯데와 인연이 된 김효주는 지금까지 롯데 후원을 받고 있으며, LPGA 투어 진출 이후에도 이곳에서 열린 롯데 주최 대회는 빠짐없이 출전해왔다.

공동선두 홍란(34)과 한진선(23)에 3타 뒤진 공동 3위로 최종 라운드에서 동반 플레이에 나선 김효주와 김세영은 8번 홀에서 공동선두에 올라서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오지현(23)이 합세해 3파전으로 전개된 선두 경쟁은 마지막 18번홀까지 땀에 손을 쥘 만큼 팽팽하게 이어졌다.

김효주는 12번홀(파4) 칩샷 실수로 1타를 잃었지만, 13번홀(파4) 2m 버디로 다시 공동선두로 복귀했고 김세영이 13번홀 버디로 치고 나가자 김효주는 14번홀(파3)에서 6m 거리 버디를 잡으며 따라붙었다.


김효주와 김세영은 18번홀에서 약속이나 한듯 버디를 잡아내 공동선두로 먼저 경기를 끝냈고, 오지현은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들어가는 바람에 버디 사냥에 실패해 연장전 합류에 실패했다. 2언더파 70타를 신고한 오지현(23)은 3위(17언더파 271타)에 만족해야 했다.

사흘 내리 선두를 달렸던 한진선은 1타를 잃고 4위(15언더파 275타)에 그쳤고, 홍란은 2타를 까먹어 공동 5위(14언더파 274타)로 밀렸다. 5언더파 67타를 때린 이정은(24)과 2타를 줄인 이소영(23), 1언더파 71타를 친 최혜진(21)이 나란히 공동 8위(13언더파 275타)를 차지했다.

김효주, 연장 승부 끝에 시즌 첫 승
유소연, 1타 차 한국여자오픈 우승

7개월 만에 공식 대회에 나선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은 공동 45위(4언더파 284타)로 대회를 마쳤다. 고진영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았던 대회였다”며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소연(30)은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개인 통산 5번째 여자골프 내셔널 타이틀을 획득했다. 지난달 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파72·6929야드)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0억원) 4라운드에서 버디 1개와 보기 1개를 묶어 이븐파 72타를 쳐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한 유소연은 2위 김효주(25)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2억5000만원은 코로나 극복 기금으로 전액 기부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유소연은 2018년 6월 LPGA 투어 마이어 클래식에서 통산 6승을 달성하고, 같은 해 9월 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일본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이후 약 1년 9개월 만에 우승을 거뒀다. 유소연이 한국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15년 8월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이후 약 5년 만이어서 감회가 새롭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KLPGA 투어 통산 우승은 10승으로 늘었다.

또한 유소연은 12년 만에 한국여자오픈 우승의 한도 풀었다. 유소연은 2008년 신지애(32)와 연장 3차전까지 가며 우승 경쟁을 벌이다 준우승에 머문 기억이 있다. 이번 우승으로 유소연은 내셔널 타이틀 수집가 명성도 재확인했다. 


유소연은 앞서 2009년 오리엔트 중국여자오픈과 2011년 US여자오픈, 2014년 캐나다 퍼시픽 여자오픈, 2018년 일본여자오픈에서도 내셔널 타이틀을 따냈다. 일본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국내 내셔널 타이틀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고 밝혔던 유소연은 한국여자오픈 우승으로 그 뜻을 이뤘다.

유소연은 5번홀까지 파 세이브 행진으로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사이, 김효주가 5번홀(파4) 버디로 추격을 시작했다. 유소연은 곧바로 6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달아났다. 김효주 역시 6번홀에서 연속 버디로 유소연을 압박했다. 유소연은 9번홀(파4)에서 보기를 적어내 김효주와 1타 차가 됐다. 1타 차의 팽팽한 긴장 상태는 17번홀(파3)까지 쭉 이어졌다. 18번홀(파4)에서도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유소연과 김효주의 두 번째 샷이 모두 벙커에 빠진 것이다.

김효주 상승세
상금 1위 질주

김효주는 그린 왼쪽 홀 앞에 있는 벙커에, 유소연은 그린 왼쪽 홀 뒤에 있는 벙커에 각각 공을 빠트렸다. 유소연은 벙커 샷을 홀 가까이 잘 붙인 뒤 파에 성공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김효주도 파로 잘 막았지만 1타 차를 좁히지 못했다.

한편 2014년 이후 6년 만에 한국여자오픈 제패를 노렸던 김효주는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효주는 지난달 7일 롯데 칸타타 오픈 우승으로 ‘부활’을 선언한 이후 상승세를 이어갔다. 김효주는 준우승 상금 1억원을 보태며 상금 선두(약 3억2400만원)로 올라섰다.

지난해 KLPGA 투어 전관왕에 오른 최혜진(21)이 최종 9언더파 279타로 3위에 오르며 ‘국내파’ 자존심을 지켰다. 공동 2위로 출발했던 오지현(24)은 3타를 잃어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로 공동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최종일 2타를 줄인 김세영(27)도 공동 4위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은 최종 6언더파 282타로 6위를 기록했다.

구관이 명관
유소연 저력

KLPGA 투어 시즌 다섯 번째 대회인 ‘제14회 S-OIL 챔피언십’은 1라운드 대회로 축소돼 막을 내렸다. 연이틀 이어진 악천후로 올 들어 처음으로 대회가 공식 취소됐다. 2012년 MBN여자오픈 이후 8년 만의 일이자 KLPGA 역사상 두 번째 사례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전날 일몰로 마치지 못한 2라운드 잔여 경기를 다음날 7시부터 치르고 3라운드를 이어갈 계획이었지만, 짙은 안개로 잔여 경기 시작이 거듭 연기되면서 오전에 3라운드를 취소한 데 이어 오후 3시 30분께 그대로 대회 종료를 선언했다.

애초 이번 대회는 지난달 12~14일 제주시 애월읍의 엘리시안 제주에서 3라운드(54홀) 대회로 열릴 예정이었다. 12일 1라운드는 정상 개최됐으나 13일엔 안개와 많은 바람, 낙뢰 등으로 5시간 지연된 낮 12시에 출발해 일몰까지 출전 선수 120명 중 절반가량만 2라운드를 마쳤다.

이날도 이른 오전부터 안개가 덮인 데다 강한 비도 이어지면서 결국 예정된 시간에 경기를 시작하지 못했고, 대회 축소가 불가피했다.

오전 9시 조직위 회의에서 36홀 축소를 결정한 이후에도 코스에는 강한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면 짙은 안개가 깔리는 등 정상적으로 경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초 예정 시각인 오전 7시에서 조금씩 밀리더니 결국 오후 3시까지 시작하지 못해 2라운드 잔여 경기마저 개최가 불발됐다.


최진하 KLPGA 경기위원장은 “2라운드 잔여 경기를 마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3시간 40분 정도였다. 기상관측 시스템 등을 총동원해 시간을 확보하려 했으나, 오늘은 물론 내일(15일)도 안개로 장담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회 성적은 모든 선수가 동등하게 마친 1라운드(18홀)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1라운드 8언더파 64타를 몰아쳐 단독 선두로 나섰던 지난해 우승자 최혜진(21)이 1위에 올랐다. 36홀 이상 진행돼야 공식 대회로 인정되는 규정에 따라 이번 대회는 공식 대회로 인정되지 않으며, 각종 기록도 반영되지 않는다. 최혜진도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아니다.

상금은 기존 총상금 7억원의 75%인 5억2500만원을 성적에 따라 배분했다. 최혜진은 상금 요율에 따라 그중 18%인 9450만원을 받았다.

한편 전우리(23), 이소미(21), 정연주(28), 이제영(19)이 한 타 차 2위(7언더파 65타), 장하나(28) 등이 공동 6위(6언더파 66타)에 자리했다. 김지영(24)은 전날 2라운드에서만 8타를 줄여 중단 전 12언더파 132타로 리더보드 맨 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나 2라운드는 ‘없던 일’이 되면서 1라운드 성적인 공동 19위(4언더파 68타)로 대회를 마쳤다. 이정은(24)과 김세영(27)도 공동 19위, 김효주는 공동 40위(3언더파 69타)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포천시 포천힐스컨트리클럽(파72·6605야드)에서 열린 KLPGA 투어 BC카드·한경레이디스 최종일 4라운드에서 연장 접전 끝에 김지영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선두로 출발한 이소미(21·SBI저축은행)가 마지막 18번홀에서 통한의 보기를 범하며 우승 경쟁에서 탈락한 가운데 이날 각각 6타와 5타를 줄인 김지영(23·SK네트웍스), 박민지(22·NH투자증권)가 우승 트로피를 놓고 연장전에 들어갔다.

최혜진, 기상 악화 반쪽 1위
김지영, 3년 만에 통산 2승


연장 1차전에서 두 선수 모두 버디를 잡아 다시 돌입한 연장 2차전에서 ‘장타자’로 손꼽히는 김지영은 두 번째 샷으로 승부를 걸었다. 힘차게 날아간 공이 그린 앞에 떨어진 뒤 굴러 핀 2m 지점에 멈춰 선 순간 사실상 승부 축은 김지영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긴장감 속 김지영의 이글 퍼팅이 홀 속으로 사라졌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올 시즌 첫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2016년 KLPGA 투어 루키로 데뷔한 김지영은 2017년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대회에서 약 3년 만에 통산 2승을 기록했다.

지난해 신인왕 랭킹 4위에 이어 준우승만 세 차례 기록했던 이소미는 이번 대회 2·3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를 달리며 생애 첫 승을 노렸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합계 16언더파 272타를 기록한 이소미는 안나린(24·MY문영그룹), 지한솔(24·동부건설)과 함께 공동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올 시즌 2승을 노렸던 김효주(25·롯데)는 목통증으로 기권해 아쉬움을 남겼다. 

우승 노렸지만
날씨가 문제

빼어난 외모로 인기를 끌었던 안소현(25·삼일제약)은 최근 “실력으로 외모 논란을 극복하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켜냈다. 안소현은 이날 버디 3개와 보기 1개로 2타를 더 줄이며 합계 8언더파 280타 공동 21위로 대회를 마쳤다. 목표였던 ‘톱10’에는 실패했지만 올 시즌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탈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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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