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진 향한 ‘언론의 마녀사냥’

▲ ⓒ티핑엔터테인먼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또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이번엔 팟캐스트와 유튜브 위주로 활동 중인 방송인 정영진이다. MBC 라디오 개편으로 인해 <싱글벙글쇼>에 투입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EBS <까칠남녀>의 ‘넓은 의미의 매춘’ 발언이다. 정영진은 당시 방송서 “남성들이 주로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의 태도는 넓은 의미서 보면 매춘과 다르지 않다”고 발언했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의견 제시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영진의 이 같은 발언은 같은 편이나 다름없는 황현희마저도 옹호해줄 수 없었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정영진은 <우먼스플레인> 20회에 출연해 해당 발언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이 데이트를 함에 있어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남성이 지불하는 것을 당연히 여길 뿐 아니라, 여성이 지불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서 데이트를 마치 조건 만남을 해주는 것처럼 한다면 이는 넓은 의미의 매춘 성매매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남성이 룸살롱을 간다면, 한 여성은 적어도 두세 시간은 지불한 돈에 의해 여자친구처럼 행동한다. 그런 것과 같다는 말이다. 서로 좋아서 만나는 것이 맞다면 비용을 서로 같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만약 여성이 ‘내가 만나주는 건데 오빠가 당연히 데이트 비용도 내고 집에도 데려다주고 택시비 줘야지. 안 그러면 저 남자를 왜 만나’라는 생각이라면 남자가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 편의에 의해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매춘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진이 비판하는 대상은 모든 여성이 아닌 전제 조건이 붙은 여성이다. 남성과 데이트할 때 비용을 전혀 지불할 생각이 없으면서 남성의 경제적 혜택과 편의를 누리려는 여성을 지칭한다.

그런 사고를 지닌 여성들의 행동이 넓은 의미로 볼 때 매춘이라는 것이다. 좋아서 만나는 관계라면 ‘데이트 비용’은 전혀 문제될 바가 아닌데, 이것으로 만나고 만나지 않고가 결정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라는 것. 

비록 매춘이라는 단어가 불편함을 야기할 수는 있지만, 의미를 전달하는 맥락에서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방송용으로는 비적합하나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이토록 매도당할 수준인지는 의문스럽다. 방점을 매춘이 아닌 '넓은 의미'에 찍는다면 크게 문제될 소지가 아닐 수 있다. 정영진의 발언이 잘못됐다면, 자신의 단 한푼도 손해보지 않으면서 남성의 경제적 혜택을 노리는 여성은 합당한 것인가. 

또 다른 문제가 된 발언은 ‘여자의 적은 여자’ 대목이다. 이 부분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일부 여성의 주장으로 인해 또 다른 여성이 피해보는 것을 비판한 내용이다. 정영진은 차 문을 열어주는 것에 비유하면서 “어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의 차 문을 열어주는 것도 여성 혐오며, 차 문을 열어주지 말자고 하는 것도 사회적 배려를 하지 않는 여성 혐오”라고 지적했다. 

그는 “차 문을 열어달라고 할 때만 열어주겠다고 말하는 것도 여성을 이기적인 존재로 몰기 때문에 여성 혐오가 된다”고 말했다. 지나친 여성운동의 세태가 오히려 평범한 여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소위 레디컬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과격한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지, 모든 여성을 통틀어 비판한 것은 아니다. 


소위 ‘한남참모충장’으로 불리는 정영진은 여성 혐오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그 배경은 지나치고 다소 불합리한, 여성만을 위한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부분이 있다. 강한 파이터 기질로 인해 꽤 직설적인 화법을 무기로 하기 때문에 이미지화 된 경향이 크다. 

실제로 정영진은 여성 혐오적 행동을 일삼았는가.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서 평소 보여지는 그는 어떤 문제가 있어도 화를 내지도 않으며, 어떤 존재 또는 집단을 혐오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인물로 통용된다. 이번 논란은 어떤 사안에서든 소신껏 말하고 일반적이 사람들과는 다른 비교적 넓은 관점을 지니고 있는 그가 <까칠남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 뿐이다.

팟캐스트 방송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를 비롯해 각종 방송에서 정영진이 보여주는 관점은 일반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는 늘 어떤 현실적인 문제에는 일원화된 원리가 아닌 매우 복합적인 것들이 얽혀있다고 강조한다. 한 가지 기준으로 어떤 상황을 풀어낼 수 없다는 얘기다. 여성에게 주어진 불합리한 상황을 주로 강조하는 페미니즘과 그가 대치되는 것도 이 차이다. 

정영진은 자유주의자에 가깝다. 남성과 여성을 굳이 구분하지 말고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자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남성 장난감을 갖고 노는 여성, 여성 장난감을 갖고 노는 남성에게 굳이 어떠한 강요를 하지 말자는 주의다. 이런 정영진을 두고 이선옥 작가는 ‘저평가된 지식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이 <싱글벙글쇼> 후임 DJ가 되지 못할 이유가 되는가. 무언가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그토록 문제일까. 그렇다면 방송사는 왜 그 장면을 편집하지 않았나. 

언론과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을 만큼 잘못됐는지 되묻고 싶다. <까칠남녀>서 정영진이 아닌 다른 여성 패널들의 문제적 발언은 왜 거론되지 않는지도 문제로 보인다. 정영진을 향한 언론의 공격은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편협하다. 

그의 하차 여부를 두고 수 많은 사람들이 반대 여론을 형성했다. 정영진의 지지세력도 공존하고 있다. 그가 많은 지지를 받는 배경은, 당시 여성 패널들의 지나친 주장에 꽤 정확한 팩트와 논리로 맞서 싸우면서 속 시원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출연했던 다른 패널은 오히려 남성 혐오의 색을 짙게 띠고 있었다. 당시 정영진과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은하선 작가는 <한겨레신문> 칼럼에 남성을 두고 “다리와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살덩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 우주로부터 환대받은 존재”라고 썼다. 또 방송서 남자들이 술자리서 하는 발언을 두고 ‘강간을 가르치는 남성 문화’라고 일컬어 비판받기도 했다. 이 발언이 정영진의 발언보다 더 거센 남성 혐오적인 발언에 해당하지는 않나.

심지어 그는 <까칠남녀>를 이용해 퀴어문화축제 후원금을 받으려다 걸렸고, 서부지방법원으로부터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가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벌금 100만원, 집행유예의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현재 여성철학자는 쇼타로 콤플렉스와 쇼타로 콘셉트를 설명하던 과정에서 쇼타로 콤플렉스를 옹오하는 발언으로 비춰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작진이 오독으로 인해 문제가 커졌던 이 사안을 미뤄봤을 때 <까칠남녀>는 남녀를 주제로 한 민감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했던 의도를 갖고 있었던 <까칠남녀>는 남성 패널은 남성을 옹호하고, 여성은 여성을 옹호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런 중 다소 과격한 논리와 설정이 있었기도 했다. 오히려 쉽게 설명하기 힘든 주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구성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당시 패널들이 자극적인 비유와 강한 논리를 펼치는게 자연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런 환경서 던진 발언만으로 정영진을 이토록 공격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당시 <까칠남녀>서 정영진이 상대한 패널이 이런 성향이라는 내용은 왜 거세돼있나. 오히려 정영진을 향한 날 선 비판이 편협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하지는 않을까. 정영진을 향한 비판이 상식적인 범주 안에 놓인 새로운 관점마저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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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