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1위’ 프리드라이프 족벌 경영 대해부

고객 돈으로 키워 아들 준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프리드라이프 경영 일선에 중대한 변화가 감지됐다. 오너의 외아들이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승계 작업이 본격화된 분위기다. 다만 황태자의 대관식에 앞서 프리드라이프가 계열사 지분을 사들였던 흔적이 예사롭지 않다. 승계를 염두하고 실탄 확보에 나섰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 프리드라이프 박헌준 회장

프리드라이프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박용덕 대표는 지난 1월1일부로 7년간 지켜온 대표이사직서 사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용덕 대표의 빈자리는 박헌준 회장의 외아들이 맡게 됐다.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박현배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2세 경영
신호탄

박 대표 선임에 따라 프리드라이프는 기존 ‘박용덕·고석봉·문호상’ 각자 대표 체제서 ‘박현배·고석봉·문호상’ 각자 대표 체제로 변신을 꾀하게 됐다. 프리드라이프는 2017년 7월 기존 박용덕 대표 이외에 문호상 대표와 고석봉 대표를 추가로 선임하며 3년 가까이 각자대표 3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영업부문 문호상 대표, 사업부문 고석봉 대표, 관리부문 박현배 대표가 맡는 구조다.

프리드라이프 측은 경영승계 차원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박현배 대표는 이번 인사를 계기로 회사 내 입지 강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 박 대표는 앞서 2017년 12월26일자로 프리드라이프 사내이사로 선임된 뒤부터 사실상 기업 후계자로 인식됐지만, 확실한 인상을 남길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박 대표 선임 소식이 전해지자 프리드라이프의 이번 결정이 성급했다는 얘기가 상조업계서 나오기도 했다. 박 대표가 35세에 불과한 데다 업계에 대한 이해도 역시 물음표가 붙기 때문이다.


1986년생인 박 대표는 미국 럿거스대학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2014년 프리드라이프에 입사한 이래 전문의전지도사, 미디어마케팅팀, 영업팀 등을 거치면서 현장 실무를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팜플러스 사내이사(2014년 10월∼현재)를 시작으로 엠투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2015년 6월), 일오공라이프코리아 대표이사(2016년 3월∼2020년 3월), 프리드캐피탈대부 사내이사(2019년 3월∼현재), 더코너스톤코퍼레이션 사내이사(2019년 11월∼현재)에 순차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헌준 회장 35세 장남에 대표 맡겨
업계 최초 자산 1조 돌파…관리될까

박 대표 선임으로 프리드라이프 오너 일가는 10년 만에 경영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2010년 3월 박헌준 회장이 대표이사서 물러난 뒤 박 대표와 박 회장의 첫째 딸 은혜씨가 각각 사내이사, 감사에 이름을 올렸을 뿐, 오너 일가는 공식적으로는 경영 일선서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박 대표가 전면에 나선 만큼, 프리드라이프 지분 구조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박 회장이 보유한 프리드라이프 지분을 박 대표가 물려받는 움직임이 뒤따를 수 있다.

2011년까지만 해도 프리드라이프 지분 구조는 박 회장과 고석봉 대표가 각각 71%, 29%씩 나눠 갖는 형태였다. 이듬해 이 같은 지분 구조에 변동이 가해진다. 박 회장과 고 대표의 지분율이 각각 16%, 15%로 급감한 것이다.

다만 지배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고 대표의 줄어든 지분 14%는 고스란히 장녀인 민정씨에게 돌아갔고, 박 회장에게서 떨어져 나간 55%의 지분은 기타 특수관계인이 온전히 흡수했다.
 


기타 특수관계인으로 묶인 주주들의 이름은 명확히 드러난 게 없다. 오너 일가 3남매(은혜, 은정, 현배)를 비롯한 박 회장의 친인척이 등재돼있다는 사실만 파악될 뿐이다.

현재 박 대표의 프리드라이프 지분율은 10% 안팎으로 추정된다. 박 회장이 승계를 염두한다면 본인 지분을 박 대표에게 증여 혹은 매매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실탄 확보는 필수다. 최근 프리드라이프 계열사인 일오공라이프코리아(이하 일오공라이프)와 엠투커뮤니케이션(이하 엠투)에서 발생한 지분 변동 내역을 유심히 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회장님 지분
누가 가져가나

2018년 말 기준 프리드라이프가 보유한 일오공라이프와 엠투 지분율은 각각 90%, 51%로 파악된다. 2018년까지 프리드라이프가 매입한 일오공라이프 지분은 총 발행주식 9만9000주 가운데 8만9100주에 해당한다. 총 매입금액은 1주당 1만원씩 총 8억9100만원이다. 엠투 주식은 총 발행주식 3만주 가운데 1만5300주를 액면가(1주당 1만원)와 동일한 금액에 2014년 사들였다. 취득원가는 1억5300만원이다.

두 회사에 대한 프리드라이프의 지분율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프리드라이프는 일오공라이프 지분 10%(9900주)와 엠투 지분 49%(1만4700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일오공라이프와 엠투의 모든 주식을 프리드라이프가 보유하게 된 것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프리드라이프가 지난해 두 회사 주식을 추가로 얻는 데 투입한 ‘취득원가’다.

2019회계연도 제무재표에는 프리드라이프가 일오공라이프 발행주식 전량을 얻는 데 투입한 취득원가를 10억980만원으로 기재하고 있다. 지분 90%를 확보하는데 사용한 비용이 8억910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지난해 나머지 지분 10%에 해당하는 주식 9900주를 사들이는 데 1억1880만원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1주당 매입 가격은 1만2000원으로, 이전과 대비해 소폭 높게 책정됐다.

엠투 지분 추가 취득 과정에선 자금 소모량이 한층 커졌다. 엠투 발행주식 전량을 사들이는 데 프리드라이프는 총 17억5530만원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16억230만원은 지난해 지분 49%(1만4700주)를 획득하는 데 사용됐고, 1주당 매입가격은 10만9000원으로 책정됐다. 5년 전 엠투 지분의 절반가량을 얻고자 투입한 자금의 10배 이상을 나머지 절반 획득에 쏟아 부은 양상이다.

프리드라이프 측은 이들 회사 지분 매각을 100% 자회사로 구성하려는 회사 정책 차원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또 주당 가격은 외부평가기관의 평가에 따라 산정했다는 입장이다.

아들 회사 주식 프리드 고가 매입
액면가 10배나 넘게…승계 자금?

하지만 프리드라이프의 이 같은 지분 매입은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일단 두 회사 모두 외부 감사를 필요로 할 만큼 외형이 큰 것도 아닌데다, 일감 몰아주기가 없었다면 회사 존속을 낙관하기도 힘든 까닭이다.


광고대행업을 영위하는 엠투는 2017년 15억원, 2018년 3억9476만원, 지난해 6억2177만원 등 최근 3년간 매출액 총합이 약 26억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프리드라이프와 내부거래로 올린 12억7400만원을 포함시킨 숫자다.

안마의자 판매업체인 일오공라이프는 내부거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일오공라이프는 출범 첫해인 2016년에 매출액 32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표면상 내부거래는 73만원에 그쳤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 무렵 프리드라이프는 영업점에 300만∼400만원대 일반상품의 판매 제한을 걸고, 두 배 이상 가격이 높은 결합상품을 팔게 했다. 해당 결합상품은 일반상품에 일오공라이프의 안마의자를 추가로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안마의자를 동원한 결합상품 판매는 오래가지 못했다. ‘끼워팔기식’ 마케팅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피해 주의보를 발령하고, 프리드라이프에 시정 명령을 내린 탓이다.

우회 밀어주기가 막히자 프리드라이프는 본격적인 일감 몰아주기에 나섰다. 일오공라이프가 2017년 32억1180만원, 2018년 28억7654만원, 지난해 27억409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과정서 프리드라이프와의 내부거래 규모는 매년 상승곡선을 그렸다. 2017년 11억8700만원, 2018년 23억6300만원, 지난해 26억4484만원이 내부거래로 올린 매출이었다.

또 프리드라이프는 엠투와 일오공라이프의 지분 절반 이상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추가 지분 획득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두 회사는 비상장인 데다 주식 거래가 쉽게 이뤄질 성격이 아니었던 만큼, 정상적인 경우라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여지가 충분했다.


액면가를 기준으로 매매가 이뤄졌다면 추가 지분 매입에 필요했던 금액은 일오공라이프는 9900만원, 엠투는 1억4700만원이다. 이 기준에 대입하면 프리드라이프는 일오공라이프와 엠투의 나머지 주식을 인수하면서 각각 1980만원, 14억5530만원의 웃돈을 기존 주주에게 챙겨준 셈이다.

자녀 회사
고평가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해 기준 최대주주가 프리드라이프라는 걸 빼면 일오공라이프와 엠투의 나머지 지분 소유주 신상이 명확치 않다는 점이다. 두 회사는 외부 감사를 받지 않는 데다 별도의 재무제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주주 파악에 한계가 있다.

물론 단서는 존재한다. 일오공라이프와 엠투는 박 대표가 출범 때부터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린 회사인 데다 이사회 구성원들 명단서도 오너 일가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오공라이프 사내이사는 박 회장의 둘째이자 박 대표의 누나인 은정씨가 맡았었고, 감사는 박 회장의 동생인 경희씨였다. 경희씨는 엠투 감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만약 나머지 지분의 주인이 오너 일가 구성원이라면, 프리드라이프가 내놓은 지분 매각 대금 17억2110만원(1억1880만원+16억230만원)은 온전히 오너 일가 수중으로 흘러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프리드라이프가 주식 전량을 사들인 일오공라이프는 지난달 1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공식 해산을 결정했다. 프리드라이프 측은 운영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당사 렌탈사업본부서 해당업무를 통합하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폐업과 함께 박 대표는 일오공라이프 대표이사직서 내려왔고, 안마의자 판매는 프리드라이프가 넘겨받았다. 일오공라이프의 안마의자 브랜드였던 ‘쉴렉스’ 홈페이지에 기재된 회사명은 현재 프리드라이프로 바뀐 상태다.

딸도 사내이사·감사로 등재 
지분 이동 명확치 않아 의문

일오공라이프와 엠투를 통해 드러난 지분 변동 사례는 프리드라이프의 또 다른 계열사인 팜플러스서도 비슷하게 연출됐다. 이를 두고 박 대표가 프리드라이프를 물려받는 대신 또 한 명의 후계자에게 일종의 위로금을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꽃 도매업체인 팜플러스는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매출액 15억3814만원 가운데 14억7762만원이 프리드라이프서 파생됐고, 지난해에는 100% 내부거래로 매출액 16억1082만원을 기록했다.

프리드라이프는 2014년 말 기준 팜플러스 지분 주 51%(2만5500주)를 인수했다. 취득원가는 2억5500만원, 1주당 가격은 1만원이다. 해당 지분율과 취득원가는 2018년 말까지 변동 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프리드라이프는 팜플러스 주식을 90%로 높였다. 여기에 투입된 총 비용은 10억8500만원이다. 51%에 대한 취득원가가 2억550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나머지 39%에 해당하는 1만9500주를 얻는 데 8억3000만원의 비용을 투입했음을 알 수 있다. 추가 지분 확보 과정에선 1주당 약 4만2560원에 매입했다.

이는 액면가 대비 4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팜플러스 역시 주주명부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관계로 프리드라이프가 39%의 지분을 누구에게 사들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너 일가로부터 지분 매입을 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현재 팜플러스 대표이사는 은정씨가 맡고 있다.

계열사 곳곳
오너 회사 지배

업계 관계자는 “팜플러스는 예전부터 은정씨 개인회사로 회사 관계자들도 인정하던 분위기였다”며 “세부 내역은 알 수 없지만 팜플러스에 은정씨 지분이 상당수 포함돼있을 거란 추측이 무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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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