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희생정신 무리수

“쿠팡맨도 사람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배송업체 쿠팡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감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된 쿠팡맨들의 안전 역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쿠팡은 쿠팡맨들의 안전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직원들에게 상실감과 무력감을 안겨주며 노사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김범석 쿠팡 대표는 쿠팡맨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국민들이 불요불급한 접촉을 줄이는 데 쿠팡맨들이 기여할 수 있다면 그만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도 도움이 되고 결국은 우리 고객과 우리 가족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략)쿠팡이 있는 유일한 이유는 고객이다. 그 고객들이 우리를 찾고 있다. 고객이 필요할 때 그 옆을 지킬 수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여러분 모두가 이 어려운 시기의 숨은 영웅들이다.’

편지 의도는?

한 쿠팡맨은 “대표가 격려하려고 보낸 건지, 위협하려고 보낸 건지 모르겠다”며 “배송물량이 폭주하고 전염병 위험에 노출돼있는 쿠팡맨들의 안전 보장과 처우개선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어 진정 쿠팡맨들을 영웅처럼 생각하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쿠팡맨들을 하대하는 회사 관계자들의 태도 또한 논란이 크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는 택배 일을 하는 태사자 출신 김형준의 모습을 담았다. 쿠팡 트럭을 타고 배송하는 정직원 ‘쿠팡맨’과는 달리 김형준은 아르바이트 개념의 ‘쿠팡플렉서’다. 이날 방송서 김형준은 과거 화려했던 아이돌으로서의 삶을 뒤로한 채, 택배 아르바이트생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날 회사 측이 촬영 준비를 위해 쿠팡맨들에게 보낸 공지 사항이 빈축을 샀다. 해당 공지에는 ‘시골사람처럼 어슬렁거리지 말라’ ‘밝게 인사는 필수’ 등의 하대하는 듯한 지시 사항이 난무했다.

이후 이 사실은 직장인 앱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와, 쿠팡에 대해 비난을 쏟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의 뜻은 알겠으나 ‘시골사람’ ‘어슬렁’이란 단어를 사용해 공지하는 마인드 자체가 관리자들이 직원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 지 알 수 있어 서글프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왕이면 ‘촬영장이 붐빌 수 있으니 안전사고 대비를 위해 촬영현장 방문을 자제해 주세요’라던가 ‘외부 인사가 방문할 시 밝은 목소리로 환영인사를 해주세요’라고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에도 비하발언을 서슴없이 사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사필수’라는 단어서 충성을 강요하는 갑질이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8일 쿠팡 노조는 “회사 측이 비상체제 돌입에 대한 긍정적 기사와 ‘고객들에게 과자를 받은 사진’을 기사로 유포해 쿠팡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쿠팡의 입장은 ‘소비자들의 평가’가 최우선이고 쿠팡맨들은 그저 ‘배송 인력’에 불과했으며 배송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배송인력을 확충하는 데만 바빠 보였다”고 지적했다.

대표가 보낸 한 통의 편지…격앙된 택배원들
사지로 몰아넣고 확진자는 임금 70%만 지급?

그러면서 “언론을 통한 쿠팡의 브랜드 이미지 개선보다 쿠팡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며 “소비자가 감동하는 서비스가 중요한 만큼 그 서비스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감동하는 일터를 만들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쿠팡은 지난달 21일부터 당분간 모든 주문물량에 대해 ‘비대면 언택트 배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로 늘어난 배송물량 만큼, 신속성을 위해 집까지 전달하지 않고, 문 앞에 두고 가는 방식이다.

지난달 23일 쿠팡 노동조합은 “쿠팡은 배송방식을 ‘비대면 언택트 배송’으로 바꿨지만 이것은 소비자들만 생각한 방식”이라고 지적하며 “코로나19로 노출된 일터서 일하는 쿠팡맨의 불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캠프에서는 심지어 쿠팡맨 중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런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첫 번째로 마스크 착용, 소독, 체온 검사를 철저히 할 뿐 아니라 쿠팡서 코로나19 대응으로 검토 중인 사안, 계획 등을 쿠팡맨이 잘 알 수 있도록 소통채널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질병관리본부서 보고하고 있는 확진자들의 이동경로, 영향권은 배송운영을 최소화하는 방침을 고려해야 한다”며 “더불어 쿠팡맨의 자가격리 신청, 소독이 되지 않은 배송물품·차량 등을 교체 요청하거나 사용을 거부했을 경우 적절히 요구대로 이행이 될 수 있도록 운영방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쿠팡맨 A씨는 “전염병에 노출되는 근무환경도 문제지만 만약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어 검사할 경우, 음성이면 근무를 쉰만큼 무급휴가이며 양성으로 판정받으면 임금의 70%만을 지급 받는다”며 “이런 사측의 방침 때문에 의심증상이 발생해도 마음 놓고 검사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회사는 3월에 들어서면서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했다. 기본물량을 완수하고 그 기본물량 외의 배송물량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인데 최근 기본물량이 평균 140∼145건서 200여건으로 늘어나 인센티브를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기본물량을 배송하기도 힘든 상태서 인센티브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라고 전했다.

이러한 기본물량 증가로 인한 애로사항은 특히 대구경북지역이 더했다. 지난달 20일 배송물량이 급증하면서 쿠팡 측은 대구 지역 쿠팡맨의 출근시간을 9시30분에서 10시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오후 8시30분까지이던 퇴근 시간이 9시로 바뀌었다.

회사 측은 출근시간이 늦어진 것에 대해 물량 증가로 간선 상·하차 혹은 소분완료 시간이 지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쿠팡맨들의 입장은 달랐다.

쿠팡맨들은 “대구지역 캠프는 그전부터 조기출근 분위기가 형성돼왔으며 출근시간을 늦추면서 사실상 전체 근무시간이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평소보다 배송물량이 급증하면서 쿠팡맨들은 배송물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존의 출근시간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난 노조 

쿠팡 노조도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법적으로 보장된 휴게시간을 지키며 일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상대평가 시스템이라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하위 점수를 받고 몇 년이 지나도 월급이 인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쿠팡맨들은 “회사는 호황이라고 하지만 정작 근로자들은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 업무는 배로 가중돼 즐겁게 일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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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