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9.30 11:19:03
  • 호수 12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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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잡힌 그놈 “누구냐 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33년 만에 처음으로 특정됐다. 총 10차례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DNA 증거물 가운데 최소 3건이 이 용의자와 일치했다. 용의자가 화성연쇄살인사건 발생 장소 인근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그는 처제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이춘재. 그는 1급 모범수였다.  
 

▲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내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이다. 범인은 1986년 9월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서 13세부터 71세 여성 10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며 전 국민을 공포와 충격에 빠트렸다. 

80∼90년대 
전 국민 공포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의 범행 수법은 잔인했고, 엽기적이었다. 범인은 피해자의 스타킹이나 양말 등 옷가지를 이용해 목을 졸라 살해하는 교살(絞殺)을 살인 수법으로 가장 많이(7건) 사용했다. 손 등 신체부위로 목을 눌러 사망케 하는 액살(縊殺)도 2건 있었다. 

범인은 또 피해자가 사망한 뒤 신체 주요부위를 훼손하는 극악무도한 짓도 4건이나 저질렀다. 당시 경찰 수사에 따르면 범인은 버스정류장서 연결된 논밭길 혹은 오솔길에 숨어 있다가 귀가하는 피해자들을 노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듯 화성을 중심으로 반복되던 살인은 1991년 4월 3일 동탄면 반송리에서 벌어진 사건을 끝으로 멈췄다.


실제로 범인 검거를 위해 205만여명에 달하는 경찰이 투입됐다. 화성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신속 해결을 주문하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지시까지 떨어진 상황에 혹시나 이어질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24시간 경계 근무 체제에 들어가기도 했다.

용의자에겐 당시 최고액인 5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렸고, 1992년 기준 누적 수사비만 해도 5억400만원에 달했다. 용의선상에 오른 수사 대상자만 2만1280명, 지문 대조 대상자는 4만116명으로 단일 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수사본부가 꾸려진 화성경찰서 서장 2명이나 연달아 직위 해제되기도 했다. 범인은 그렇게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고, 결국 사건은 장기 미제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가정폭력 등 이유로 아내 집 나가 
처제 성폭행·살해·유기 무기징역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이후 1996년 연극 <날 보러 와요>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등으로 만들어졌다. 드라마 <시그널>과 <터널>서도 다뤄졌다. 특히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은 2013년 개봉 10주년 행사 당시 “범인이 이 행사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첫 사건 후 33년, 마지막 사건으로부터 28년이 지난 2019년 한국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그 누구도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던 범인을 잡게 될 것이라고는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주요 미제 사건 수사 체제를 구축하고 관계 기록 검토와 증거물을 분석하던 경찰은 지난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화성 연쇄 살인사건 6차 사건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증거물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인물이 있다는 국과수의 통보를 받게 됐다. 경찰은 잔여 증거물 감정을 추가로 의뢰하고 수사기록 정밀 분석 등을 통해 특정한 용의자와 사건의 관련성을 파악 중이다. 공소 시효는 지난 2006년 4월 2일 끝나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용의자가 진범으로 확인될 경우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9일 경찰은 “오랜 시간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심심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화성 사건과 관련해 다양한 제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 규명을 위해 당시 수사기록과 증거물을 보관해 왔다”며 “화성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DNA 3건과 용의자 DNA가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DNA 분석 기술 발달로 사건 발생 당시에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재감정서 DNA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 7월15일 현장 증거물 일부를 국과수에 DNA감정 의뢰했다”며 “대표적 미제 사건들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더라도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1리로 현재의 진안동 인근. 당시 사건 현장지도를 살펴보면 10차례의 사건 가운데 다수가 진안1리서 멀지 않은 장소서 벌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살인강간 10명
진짜 범인일까

특히 6차 사건은 본적 주소와 아주 가까운 지점서 발생했다. 이후 7차 사건은 비교적 먼 곳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버스를 탄 범인을 본 운전기사에 증언에 의해 첫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경찰과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이씨는 1993년 4월 화성을 떠나 충북 청주로 이사할 때까지 줄곧 화성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발생한 10차례의 연쇄살인이다. 만약 이씨가 진범이라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10차례의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경찰 수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주민이었다는 말이 된다.

또 33년 전 이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화성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이씨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강간 및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씨가 수사선상에 오른 건 1987년과 1988∼1990년, 1991년 총 3차례다.

하지만 경찰은 특별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8번째 사건서 발견된 체모의 유전자(DNA)가 이씨 것과 일치하지 않고 ▲8번째 사건의 범인이 검거된 데다 ▲범행 현장 족적이 이씨의 발 크기와 다른 점 등을 이유로 수사 대상서 배제했다.

지금까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던 건 그가 이미 교도소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력 용의자 이씨는 이미 20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였다. 그는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그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붙잡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의 아내 역시 1993년 12월 가정불화와 가정폭력 등을 이유로 집을 나간 상태였다. 

이씨는 1994년 1월 20세였던 자신의 처제에게 “토스트기를 주겠다”며 말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자택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전날 미리 준비해둔 수십 개의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건넸다. 이씨는 음료수를 마시고 잠이 든 처제를 성폭행한 뒤, 망치 등으로 머리를 4회 이상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시신을 1㎞가량 떨어진 철물점 창고로 옮겨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반인륜적 범죄로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점, 범행에 대한 뉘우침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우발 범행일 가능성을 감안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씨는 파기환송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달래며 조사 
유도 애먹어

이씨가 처제를 살해한 수법은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닮은 점이 많다. 이씨는 처제의 시신을 청바지 등으로 묶어 싸놨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서 피해자의 옷가지가 발견된 것과 유사하다. 시신 유기 방식도 비슷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에도 범인은 피해자의 시신을 범행 현장 인근의 농수로나 축대, 야산 등에 숨겼다. 현재로서는 이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게 경찰과 프로파일러의 진단이다. 
 

1995년 부산 교도소에 수감된 이씨는 20년 넘는 수감 생활 동안 단 한 차례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1급 모범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유영철이나 다른 흉악범죄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킨 것과 달리 흔한 징계조차 한 번 받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부산교도소는 이씨를 4등급으로 나뉘는 수감자 등급 중 1급 모범수로 분류했다. 무기 징역수가 아니었다면 이미 가석방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자신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이후에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음은 물론, 지난달 18일 자신을 조사하러 부산까지 내려온 경찰 앞에서도 얌전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씨는 현재 불거진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교도소 1급 모범수…조용한 성격
범행수법·인상착의 유사…자백할까?

경찰은 이씨의 입을 열기 위해 2009년 강호순 사건에 활약했던 베테랑 프로파일러 투입을 결정했다. 부산교도소서 안양교도소로 이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57명 규모로 꾸린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 수사본부에 프로파일러를 대거 포함시켜 이씨 접견에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18일 이후 세 차례 이상 진행된 이씨 접견조사에 동행, 그의 반응 등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이 프로파일러 중에는 2009년 10명을 숨지게 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으로부터 자백을 이끌어낸 A 경위도 포함돼있다. 강호순은 2009년 1월 경기 군포서 실종된 여대생 살해 혐의로 체포됐으나 추가 수사를 통해 2006∼2008년 7명의 여대생을 살해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수사팀이 봉착한 가장 큰 문제는 이씨가 경찰 조사를 거부해도 특별히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1991년에 끝난 연쇄살인사건은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로, 경찰이 DNA 감식 결과 등을 들이밀어 압박을 가해도 이씨로선 다시 법정에 설 일이 없다. 

경찰은 다른 사건 DNA 감식 결과를 기다리며 이씨와 꾸준히 접촉,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 우선 집중하고 있다. 앞서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도 이씨와 ‘라포르(rapport·신뢰관계) 형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또 이씨의 혈액형이 당초 알려진 범인과 같은 B형이 아닌 O형이라는 점은 ‘이씨가 진범이 아닐 수 있다’거나 ‘공범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확보한 혈흔이 용의자의 것인지, 피해자의 것인지 불분명하고 당시 경찰이 왜 B형을 특정했는지 알 수 없어 증거 효력이 떨어진다”며 “이씨가 진범이 아니라거나, 공범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경찰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수사 초기 혈액형을 B형으로 특정함에 따라 진범을 놓쳤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소시효 만료 
처벌 못하나

만약 이씨가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추가적일 처벌은 어려울 전망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전에 일어난 범죄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공소시효 폐지 전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를 낸 화성연쇄살인사건. 30여년간 감춰져 있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정의를 바로 세우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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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