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스캔들’ 신도리코에 무슨 일이…

가족끼리 족벌경영 직원은 안중에 없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사무기기 전문업체 신도리코가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여직원들에게 임원들의 밥상 서빙을 시키는가 하면, 걸그룹 댄스와 차력쇼를 강요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지만 사측은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노조원들을 상대로 노골적인 따돌림을 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 직장 내 갑질 근절에 대해 공감대가 안착되는 분위기지만 신도리코에선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 ▲ 기자획 갖는 신도리코 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동부지역지부와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신도리코분회는 지난 11일, 서울 성수동 신도리코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도리코의 직장 갑질 사례를 알렸다.

여직원 서빙
춤도 강요?

신도리코분회에 따르면 신도리코는 올해 초까지 임원이나 외부 방문객이 왔을 때 여직원들에게 구내식당 밥상을 차리게 했다. 회사는 서빙 순번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회사 총무부서에서 여직원들에게 보낸 ‘전략회의 시 서빙 순서’ 표를 보면 6명의 여직원이 2인 1조로 돌아가면서 밥상을 차리게 돼있다. ‘전략회의’는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 이하 임원들이 매월 아산공장서 여는 생산전략회의를 말한다. 표에는 올해 1월까지의 서빙 순서가 명시돼있었다. 

서빙 차례가 된 여직원들은 구내식당서 임원들이 먹을 점심식사 상차림을 하고 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식판을 치웠다. 여직원들은 본사서도 서빙을 했다. 


한규훈 신도리코분회 부분회장은 “외부업체 관계자들이 오면 해당 부서 여직원들에게 서빙을 맡겼다”며 “뒷말이 나오자 남성 직원들에게도 ‘돌아가면서 하라’고 시켰는데, 남성 직원들이 서빙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직원에 밥상 서빙 강요…순번까지 정해줘
걸그룹 댄스, 차력쇼…주말에 나와 연습도

2017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 장기자랑과 비슷한 갑질 사례도 나왔다. 매년 9월마다 우석형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아산공장 직원들이 참석하는 ‘아산공장 확대석식 간담회’서 여직원들은 걸그룹 댄스를, 남직원들은 차력쇼·여장 댄스 같은 장기자랑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한규훈 부분회장은 “말이 장기자랑이지 누가 하고 싶어 하겠느냐”며 “퇴근 후나 주말에 장기자랑 연습을 시켜 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신도리코의 전근대적 조직문화는 직원교육 프로그램서 두드러진다. 신도리코 신입직원들은 연수 과정서 배방산 야외훈련을 거쳐야 한다. 협동심을 기른다는 취지인데 10킬로그램이 넘는 산악자전거(MTB)를 들고 산을 오른다. 

신도리코 기업 블로그엔 신입직원 야외훈련에 대해 “선배 사원들 사이서 계속 회자될 정도로 힘든 훈련”이라며 “훈련을 마치고 나면 참가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만족을 하는 보람찬 훈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임급 교육에선 4∼6인 1조로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한강을 건너게 한다. 여직원은 배 앞머리에 태워 방향 지시를 맡긴다. 전형적인 군대식 극기훈련이다. 분회 관계자는 “협동은커녕 힘들어서 싸움만 난다”고 말했다. 


남녀 차별도?
여성 파일 따로

노조 측에선 여직원들이 승진과 임금에 있어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강성우 신도리코분회장은 한 매체와의 통화서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까지 여성 직원 중에는 차장 진급자가 없었다”며 “진급 대상자 파일에 특정 직급 이상은 여성 파일이 따로 존재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노조는 이를 여직원의 승진 배제 증거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금에도 남녀 간 차별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제시했다. 강 분회장은 “동등한 시기에 동등한 조건으로 입사한 남녀 직원의 월 봉급이 10만원가량 차이가 나고 있는 사실이 포착됐다”며 “교섭 과정서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사측에 문의를 했지만 사측은 답변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신도리코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은 735명이다. 이 가운데 남성 직원이 647명, 여성 직원은 88명으로 나타났다. 남자 직원의 1인당 평균급여는 6429만원으로 여성 직원(4768만원)보다 1661만원이 더 많다.   

노조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불성실 교섭(교섭 해태)을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신도리코가 더 견실하고 지역서 칭찬받는 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해나가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를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노조는 4번에 걸친 파업과 31번의 노조 탄압 중단 등을 포함한 단체협약안 제출을 통해 요구했지만, 한 차례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신도리코는 창립 58년 만인 지난해가 돼서야 노동조합이 구성됐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교섭 태도에 대한 반성과 사과도 없이,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막겠다며 건물 입구를 봉쇄해 현장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노조는 이 같은 근무 환경의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사측과 맞서고 있다. 

강 분회장은 “사측과의 긴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부당해고 논란 등 문제가 많다.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지만 본사 측이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족벌경영 폐해
사실상 개인회사

노조는 또 사측이 최근 현수막을 떼는 과정서 셔터 칼로 줄을 잘라 ‘드르륵’ 칼날 소리를 내며 공포감을 주는 등 여전히 명분 없는 폭력적, 일방적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노조 결성 직후부터 강성우 분회장과 한규훈 부분부회장 등 일부 조합원에게 일감을 주지 않는 등 차별을 노골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신도리코는 대표적인 족벌기업으로 유명한데 일감 몰아주기, 불투명한 내부거래, 경영권 세습의 전형적인 족벌경영의 폐해가 계속됐다.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자들은 지분 48.7%를 쥐고 있는 신도리코를 통해 연 100억원가량의 배당수익을 올리고 있다.

우 회장이 신도리코 지분 11.70%를, 우 회장의 동생인 우자형(59)씨가 6.33%를 보유 중이다. 우 회장의 장남 우승협(23)씨와 장녀 우소현(34)씨, 차녀 우지원(30)씨 등 삼남매도 회사 지분의 0.13~0.18%가량을 확보했다. 

노조 설립 1년째…노조원 따돌림
두 얼굴의 현금부자 기업 도마에 

오너 일가가 지배력을 확보한 신도SDR과 신도시스템은 각각 신도리코 지분의 22.63%, 6.05%를 쥐고 있다. 신도SDR은 1967년 출범한 부동산 관리·통신기기 업체로 강남 포스코사거리 인근에 신도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신도SDR 주주는 우석형 회장(31.80%), 신도시스템(29.18%), 우자형씨(22.40%)로 구성됐다. 


신도시스템은 1988년 출범한 회사로 진행하는 사업은 없으며 관계회사를 관리하는 지주사 성격을 띄고 있다. 우승협씨가 이 회사 최대주주로 지분 40.00%를 보유 중이다. 그가 신도시스템을 통해 자산을 증식하고 신도리코 승계의 지렛대로 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

신도리코 측은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밝혔다. 여직원 식당 서빙에 대해서는 “손님이 많을 때 해당 부서나 총무부서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며 “일손이 부족할 때 서로 돕는다는 게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산공장 확대석식 간담회 장기자랑과 관련해서는 “몇몇 부서가 여흥시간을 마련해 장기자랑을 하긴 했지만, 여직원들에게 선정적 춤 등을 강요한 적은 없다”며 “오래된 행사지만 변화하는 분위기에 맞춰 지난해부터 폐지했다”고 해명했다.

산악자전거를 들고 산에 오르는 신입직원 교육 프로그램도 지난해 폐지했다고 덧붙였다. 

“오해” 주장
논란 일자 폐지

신도리코는 국내 프린터·복합기 분야를 대표하는 중견기업으로 1960년 설립된 신도교역을 전신으로 하는 업체다. 신도교역은 1969년 일본의 복사기 제조사인 리코와 제휴를 맺으며 현재의 사명으로 이름을 바꾼 바 있다. 2002년 창업주인 우상기 회장이 타계한 후 우석형 회장이 대표이사에 올라 회사를 이끌어왔다. 최근 1년간 노사 갈등이 극단으로 심화되면서 우 회장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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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